우린 학교라고 하는 안전한 울타리에 둘러 싸여 계속 함께 지내왔지만,
이젠 감싸고 지켜주는 것도 사라지고--- 어른이 돼가고 있다.
고1 봄,
라이벌로 만나,
서로 마음을 허락한 친구가 되고,
연인이 된 아리마는
많은 능력을 타고 났다.
3학년이 된 지금
모든 면에서,
이 학교에서 그와 겨룰 사람은 이미 없다.
나랑 함께 있을 때의 아리마는 무엇 하나 변하지 않았으니까 걱정할 것 없지만,
아리마의 빼어남에는 끝이 없는 것 같다.
더 이상 주변이 아리마를 놔두지 않아.
왠지 좀 쓸쓸하다!
한번 죽어버린 마음을, 다시 소생시킬 수 있을까?
내가 너를 버려 두지 않아.
네가 나를 버려두진 않을까 불안한 거지.
불안한 마음에, 감정을 확인하고는 안심한다.
그것을 되풀이하며---
그 날,
네가 나를 떠난 그 가을날--- 나는 야심에 휩싸였다.
난 그런 얘기 처음 들어.
그런 얘기를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입 다물고 있지 마.
싫은 일이라도 아리마에 관한 거라면 나한텐 모두 소중하니까.
아리마--- 앞으론 걱정할 필요 없어.
내가 있으니까.
청명한 초여름의 하늘같은 유키노가 나는 정말 좋으니까.
그러니까 말할 수 없어.
나의 증오.
단단히 마음을 닫고,
그 따위 신경쓰지 않으리라 마음먹으면서 '착한 아이' 가 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키노를 탐했다.
좋아하게 되는 만큼 마음은 풀리고,
얄궂게도 내가 무의식 중에 계속 숨겨오고, 존재를 말살해 왔던 '본심'이,
냉철하고 잔혹한 '본성'이 각성해 가는 것을 억누를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너와는 달라.
그러니까 절대 말할 수 없어.
며칠 전,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들킨 적 없는 '본성'을 사촌들에게 보였다.
아리마 일족이 나에게 해 온 처사에 대해,
이제부터는 나름대로의 보복을 가하겠다고.
주변이 소란스러워질 게다.
언젠가 네 우수함 때문에 네가 세력다툼에 말려들까봐 걱정이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만, 정말 의사가 되고 싶으냐?
혹시 우리한테 묘한 의무감 같은 걸 갖고 있지 않나 해서, 신경 쓰이는구나.
만약 그렇다면 그런 마음은 버리렴.
그리고 앞으로는,
원하기만 하면,
넌 자유로워질 수 있어.
넌 어릴 때부터 총명해서, 늘 먼저 마음을 쓰곤 했지.
그럴 필요 없었는데---
아이가 없던 우리에겐 너와 보낸 이 십 수년 간,
매일매일이 꿈처럼 행복했으니까.
더 이상 아무 것도 필요없다.
달리 되고 싶은 게 있으면 그걸 하렴.
넌 거기서 자유롭게 태어날 수 있어.
만약 진심으로 의사가 되길 원하면,
각오가 필요하다.
의료계에 들어가면
평생 '아리마 소이치로'라는 이름에 얽매일 테니까.
증오가 끓어오른다.
아버지,
모든 것을 물에 흘려버리고, 자유롭게 될 수는 없어요.
주어진 능력의 모든 것을 이용해서,
복수해 주마.
재가 될 때까지.
사실 난 이런 인간이라구요, 아버지.
나는 나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니까,
이 길을 계속 걷는 거다.
언제까지나.
그리고 이 길을 걷는 만큼
너와의 거리가
멀어져 간다.
너는 유키노한테 본심을 말하지 않은 채, 지속해 나가면, 구원받을 수 있어?
정말로--- 이곳에서 시간을 멈출 수만 있다면.
졸업을 하고 완전히 다른 목적을 향해,
접점을 잃어가는 우리들.
유키노, 너와 함께 변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소용없었어.
처음엔 그토록 가까운 두 사람이었는데,
약속했던 '진정한 나'가 되고 나니,
너처럼 잘 해나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지.
하지만 후회하진 않아.
진정한 목소리, 진정한 야심이었으니까.
막연한 불안을 품은 '착한 아이'였을 때보다도,
또 하나의 자신에게 겁먹었던 그 무렵보다도,
받아들여버린 지금은 안정적이다.
그 무렵엔 없던 살아있다는 실감을 분명히 느낀다.
다만, 네가 선택한 길과 너무 다르다는 것뿐.
유키노와 부모님껜 절대로 알리고 싶지 않다는 것뿐.
이걸로 됐어.
그녀에겐 말할 수 없으니까.
그래도 곁에 있고 싶어.
그러니까 언제까지든 숨길 거다.
마음이 멀리 떨어져 있어도,
최고의 연인으로 가장해서 너의 곁에 계속 있고 말 거다.
나 홀로 끝없이 이 계단을 올라간다.
일상은 꿈처럼 지나간다.
나는 진정한 의미로는 행복해질 수 없었지만,
그래도 너와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어.
그녀가 정말 좋았고,
그녀도 나를 좋아한다고 말해줬으니까.
그녀가 웃으면 기뻤다.
나 자신을 필요로 하고,
존재를 축복받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너와 만나고,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이젠 정말
이것으로 족해.
예상대로 경박하고 제멋대로인 어머니.
아무런 애정도 느껴지질 않아.
이런 부모한테 버림받고, 남겨진 내가 모든 일가친척한테 멸시를 받으며
부모 몫까지 노력해서 우등생이 됐다.
하지만 이번엔 그 덕분에 유키노와의 교제가 점점 거짓이 되어 가.
부모의 죄가 점점 나를 옭아맨다.
참을 수 없어.
나는 늘 타인을 속이고 있다.
그 여자도,
남을 다루는 게 능숙하다면?
어쩌겠어.
날 낳아준 어머니인 것을.
천벌이다.
어리석은 복수심으로 남의 위에 서려고 하니까,
금방 눈에 띄어서 그 여자한테 붙잡힌 거라구.
조만간 부모님도 거짓을 깨닫겠지.
나는 마치 재앙같아.
나, 속은 거야.
아리마가 이런 느낌이었나?
전신에서 굉장한 의지력이 발산되고 있는 것 같은---
저건 가짜 아리마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걸까?
마치 나만 눈이 제대로 보이는 것처럼.
너는 누구지?
나는 대체 누구와 사귀고 있었던 거야.
아냐.
또 한 사람,
진실한 아리마를 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
아리마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저기,
나 계속 속아왔던 거야?
그런 걸 왜 나한테 물어?
아리마한테 직접 물어보는 편이 낫지 않나?
사귀고 있잖아.
직접 물어볼 수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잖아.
깨달아 버렸다면
알아줬으면 해.
얼마만큼의 생각으로 아리마가 널 찾아왔는지.
그 암흑으로부터 구해낼 수 있는 건
유키노 뿐.
유키노만이 아리마를 변화시킬 수 있다.
아리마.
내가 절망에 빠졌다면,
있는 힘을 다해 끌어내 줬겠지.
나는 너에게 빛나는 세계를 보여줄 수 있어.
나를 좋아하게 돼서 행운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어주겠어.
언니, 오늘은 공부 안 해?
공부는 잠깐 접어두기로 했어.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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