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키노에게 지나치게 접근했어.
아리마는 사실은 남자든 여자든 자기 이외의 누군가가 유키노에게 접근하는 걸 싫어해.
진짜 아리마는 기질이 과격하고, 독점욕이 강해.
아리마가 아무 조건없이 상냥한 건, 유키노한테 뿐이다.
내가 유키노와 있는 것을 아리마가 허락한 건---
내가 결코 유키노에게만은 손을 대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
두렵지?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감정이 어떻게 되질 않아.
안 그래?
왜 그런지 가르쳐 줄까?
너는 깨달아버린 거야.
유키노를 안아도--- 행복해질 수 없는 네 자신을.
서로 접촉해버렸기 때문에 두 사람의 거리가 잘 보인 거야.
두 사람은 완전히 따로따로인 개인이라는 걸.
알았겠지?
네 자신은 유키노 없이는 이제 살아 갈 수 없다는 것과,
유키노는 이제 너 없이도 살아 갈 수 있다는 것을.
불쌍하게도--- 행복해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자신의 딴마음과 싸우며 갈등하는 아리마.
아리마는 내게 상냥하게 대해준 제일 좋은 친구.
공평하고, 상냥하고, 그리고 무섭도록 머리가 좋았다.
미안해.
그렇게 유키노가 소중한 줄 몰랐어.
하지만 솔직히 놀랐다.
아리마가 그렇게 감정을 드러내다니.
연애란 그런 것일까.
좋아하는 마음은 전부 유키노에게.
반발이나 적의는 유키노와 자신을 방해하는 사람 모두에게.
유키노와 관계 될 때만 아리마는 감정을 누를 수 없게 된다.
처음으로 나는 꿈이나 동경이 아닌 아리마를 알고 싶어졌다.
이번에야말로 정말로, 난 너와 친구가 되고 싶어.
아리마--- 네 마음은 어디 있는 거냐.
토나미가 아리마를 경계한다.
어째서일까.
아리마는 가끔 마치 딴사람 같은 눈을 해.
그런가? 이상해? 무서워?
아니~
날 놓지 마.
매일 톱니바퀴가 어긋난다.
어둠 쪽으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널 독점하고 싶다니---
자유로운 네가 정말로 좋은데.
일방적으로 모든 것에서 빼앗고 싶다.
이런 마음, 들키고 싶지 않아.
나도 내 세계란 걸 갖고 싶어. 그렇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
게다가 아리마는 날 좋아하는 걸.
아리마는 나보다 세계가 깊어.
아무것도 모르는 날 고민시키거나 괴롭히기 보다 차라리 자기가 끌어안아버리는 게 아닐까.
그래서 나는 내 세계를 만들고 싶어진 거야.
아리마에게 응석부리는 건 좋아하지만, 응석부리다가 게을러지는 건 죽어도 싫어.
흐응~ 그래서 아리마는 많은 여자애들 중에서 유키노한테만 반응한 거로군.
사쿠라가 저랬던가?
어라? 회로가 하나 연결되어 있질 않아.
뭔가 중요한 것이 하나 빠져 있어.
간단한 일이야.
왜 사쿠라가 날 아무렇게도 생각지 않았다는 것에 그토록 깊이 상처를 입었는지,
왜 어떻게든 내 존재를 사쿠라에게 새겨 주고 싶었는지---
좋아하기 때문이야.
줄곧 가슴 속에서 갈 곳이 없었던 마음은 이제야 출구를 찾았다.
나는 다만 네가 알아주길 원했을 뿐이야.
나라는 인간이 여기 있다는 것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는 자유로운 여자.
잘 될 확률이 보이지 않는 사랑.
포기는 안해.
하지만 ---
그저 다시 한번 사쿠라를 만나자.
그런 생각만이 날 지탱하고 있었다.
내가 '고독'을 깨닫는 계기를 만들어준 네가 이번에는 '나'를 알아차려야 해.
네가 날 알아차린다면 나는 고독에서 구원받을 것 같은 예감이 드니까.
해방되고 싶다.
날 알아차려줬으면---
나만은 특별히 자유로운 사쿠라의 마음을 잡는 사람이고 싶다.
이유가 뭐야?
응?
왜 나하고 키스를 하지?
하고 싶으니까 하는 거겠지.
하고 싶으면 누구하고든 해? 너 돌았어?
누가 이 사람, 저 사람 안 가리고 한댔어? 보통 남자하고는 안해. 더러우니까.
토나미하고는 전에도 했고, 싫지도 않고.
그렇게 하는 게 자연스럽게 생각되었을 뿐이야! 너도 그런 것 아냐!
혹시 너--- 날 좋아하는 거야?
응. 너하고 있으면 즐겁고 널 자주 생각해.
게다가--- 너 같은 녀석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어?
--- 나도 사쿠라가 좋아.
알아차리지 못한 게 아니었어.
존재하고 있었어.
사쿠라의 의식 속에---
처음으로 만진 사쿠라의 어깨는 역시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가늘었지만,
계속 안아왔던 나의 고통을 지우기엔 충분했다.
나는 이제야 과거에서 해방되어 새로운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하지만 난 공부밖에 못한다고 낙담하지는 않겠어.
친구나 내 능력을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내 지능이 맘에 드는 걸.
이렇게 하나하나 나의 좋은 점을 찾아서 키워가면 더욱 더 나 자신을 좋아하게 될 수 있을 거야.
그러면 아리마는 날 더욱더 좋아해 줄 거잖아.
여기서 더 이상?
지금도 더이상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하는데.
아직 멀었어.
우리는 이제부터 자꾸자꾸 어른이 되어갈 테니까.
진짜 나를 알아도?
너의 빛으로 날 비춰줘.
어둠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틀림없이 유키노가 아니면 안되는 이유가 아리마에게는 있는 거야.
내게는 사쿠라 이외에 누구도 있을 수 없었던 것처럼.
유키노 아빠가 묻는다.
아리마, 사적인 걸 묻는 것 같긴 한데--- 그 사람들--- 네 친부모냐?
아뇨--- 친부모님은 아닙니다.
그렇군, 역시---
어떻게 아시죠?
나는 부모님이 안 계셨으니까.
넌 행복을 잡아라.
유키노가 있으니까, 넌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어.
아아, 어쩐지 이 집에 있으면--- 따뜻한 물 속에 있는 것 같아.
온 집안에 유키노의 기척이 있으니까, 그 녀석도 이곳에는 들어올 수가 없어.
유키노가 있는 한 그 녀석에게 마음을 빼앗기진 않아.
바깥은 심한 태풍이 부는데도 그날 나는 오랜만에 꿈도 꾸지 않고 푹 잤다.
난 역시 따라갈 수가 없어.
확실히 우리는 서로를 좋아하지만---
나는 사쿠라가 날 알아차리기만 하면 그것으로 채워지지 않을까 하고---
그거라면 행복하지 못했던 과거도 보답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다.
아무도 바람같은 사쿠라의 마음을 잡을 수는 없다.
토나미. 넌 그렇게 졸업할 때까지 내게서 도망칠 거니?
우린 헤어진 거라니까---
괜찮아, 난 네가 좋으니까.
후우-- 역시 좋구나.
뭐가?
유적. 난 유적이 좋아. 일을 해서 전세계의 유적을 찾아다니고 싶어.
어때? 토나미와 함께---
난 안 가. 넌 좋겠구나. 스케일이 커서.
어차피 내 고민은 시시하고 사소한 것뿐이야.
내가 싫어진다.
좋아해도 괴로울 뿐이야.
평생이 걸려도 나는 널 잡을 수가 없다는 게 뼈저리게 느껴져.
자아, 봐. 날 봐 줘. 넌 그 정도는 해줘도 되잖아!
나는 '토나미 다케후미'란 말이야! 네가 옛날부터 알던 그 '토나미'야.
그랬구나--- 하지만 어쩐지 너--- 괴로워보여.
잡고 잡히고--- 어느 쪽이 얼마만큼 좋아한다는가--- 그런 건 괴로울 뿐이잖아.
다른 사람하고는 틀림없이 무리겠지만,
너하고라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같은 방향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먼 지평선 너머까지.
사쿠라는 날고 싶으면 함께 하늘을 날자고 한다.
나는 이미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었어.
지상에 날 묶어놓고 있었던 것은 나 자신.
나는 이 여자에게 사랑받아서 행복하다.
아, 난 1등 노리는 거 이제 그만두기로 했어.
3학년이 되기 전까지는 10등 이내에 머물면서 다른 일을 열심히 할까 해.
그 전까지는 수석 자리는 아리마에게 양보할게~
나는
눈 앞에 펼쳐진 새로운 세계에 시선을 빼앗겨서
그가 보낸 작은 SOS를 놓치고 말았다.
시작은 혼자였다.
두 사람만의 세계에서 서로를 보고 있었다.
유키노는 괜찮아.
걱정할 일은--- 아무 것도 없어. 아리마.
네가 옆에 있으면서 웃어주지 않으면, 살아있다고 느낄 수도 없어.
널 잃는다면, 내 마음은 산산조각나고 말겠지.
그런 지나친 애정은--- 잘못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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