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놈,
어떻게--- 어떻게 벌써---
어떻게 벌써
이럴 수가 있어.
축하해줘야 하는 거야, 신채경.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을 텐데,
다시 일어서줘서 고맙다고.
내 마음의 짐을, 조금은 덜어줘서 고맙다고.
사막 끝에 버려져서 건초처럼 말라버렸을
그 마음을
다시 추슬러서,
다시금 그런 예쁜 사랑을 시작하게 된 걸,
축하하고 싶다고---
하지만
역시 그건 위선일 뿐이겠지.
그저,
가슴이 아플 뿐이야.
그리고, 멍할 뿐이야.
단지 지금의 네 모습을 보며
약간의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됐어.
나도 언젠가
내 안에 질기게 엉켜있는 너를
이제 그만 놓아주고는
새 출발선 앞에 서서
씩씩하게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 짧은 순간에도
나는,
수십 번도 넘게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보고 싶단 생각을 했었다.
그때 만약,
고갤 들어 그 앨 봤다면
나를 보고 웃어주었을까?
정신 차려---
오랜만에 만나서 들뜬 거야 뭐야.
다른 애한테 청혼까지 해놓고
이 무슨 얼빠진 짓이냐구.
너도,
그런 눈빛이구나.
다들, 지금 네가 하는 그런 눈으로 날 봐.
내 차를 운전하던 운전사 아저씨의 눈도,
문을 열어주는 수문장의 눈도,
안내를 하는 궁내 시종들의 눈도,
웃전들 말씀을 전하는 상궁의 눈도
모두 다 이렇게 얘길 하는 것 같아.
당신은,
우리의 세자빈을 절대로 대신할 수 없어요, 하고.
너도 그래?
아직 내가 들어갈 자리가 완전히 비워지지 않은 거야?
정직하게 대답해봐.
얼마나 잊은 거야.
1년이 지났으니까 어느 정도는 지워졌겠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
얼마만큼이나 그 아이를 잊고 있는지---
전혀. 조금도---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천천히--- 천천히 해, 응?
기다릴게. 기다려볼게.
나, 그거 하난 잘하잖아.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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