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내소사 대웅전 단청에 담긴 전설에서 소재를 얻어 쓴 것으로, 천상의 새 가릉빈가가 자신을 구해 준 스님에게 보답하기 위해 여인의 모습으로 암자에 찾아와 법당의 단청을 칠하지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스님이 단청을 하는 동안 법당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는 여인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자 가릉빈가는 단청을 완성하지 못한 채 날아가 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호기심 때문에 신비로운 극락의 새 가릉빈가가 단청을 완성하지 못했다는, 사람의 힘으로도 새의 힘으로도 완성하지 못한 단청의 신비로운 이야기입니다. 오방색의 화려한 단청 빛깔과 여러 가지 단청 문양, 단청을 하는 목적과 시공 과정 등을 아름다운 이야기와 그림을 통해 자연스럽게 엿볼 수 있습니다. (YES24 책소개)
글 : 김미혜
그림 : 한태희
펴낸곳 : 보림(솔거나라 전통문화 그림책)
하루는 스님이 물을 길어 오는데,
새 한 마리가 가시덤불에 걸려 파닥거리고 있는 거야.
스님은 새가 가여웠어.
두 손을 가시에 찔려 가며 가시덤불을 떼어 냈지.
풀려난 새는 스님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이고 하늘 높이 날아 올랐어.
"허, 그 새 깃털 한번 곱구나."
그러고 나서 며칠 뒤였어.
온종일 장대비가 쏟아지더니, 저녁 무렵에 어여쁜 아가씨 하나가 절 마당으로 들어섰어.
"스님, 하룻밤만 묵어가게 해 주십시오."
스님은 차마 아가씨를 사나운 빗속으로 내몰 수가 없었단다.
"참 단아한 절입니다, 스님. 그런데 법당 기둥 여기저기 벌레 구멍이 났더군요."
"큰스님이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단청을 마치지 못해 그렇지요. 주춧돌 하나부터 손수 골라 정성을 다해 지으셨는데, 단청을 올리다 그만 기력을 다하여------."
그러자 아가씨가 조심스레 물었어.
"저, 스님. 제가 단청을 올려도 될까요? 재주는 없지만 해 보고 싶습니다."
아가씨가 다시 말을 이었어.
"그런데 스님, 부탁이 있습니다. 제가 단청을 할 때는 밖에서 기다려 주세요.
절대로 법당 안을 들여다 보시면 안 됩니다."
아가씨는 먼저 법당 안을 깨끗하게 닦아 냈어.
먼지 한 톨, 곰팡이 하나 없이 말이야.
"아! 바탕칠만 해도 이렇게 환한 걸------.
이젠 벌레들이 함부로 나무를 파먹지 못하겠습니다." (가칠)
아가씨는 잠시도 쉬지 않았어.
종이에 연꽃을 그리고, 굵은 바늘로 구멍을 뚫어 본을 만들었지.
스님은 그날따라 큰스님이 더욱 그리웠어.
정성껏 단청을 올리시던 모습이 어제 일처럼 떠올랐거든.
큰스님이 기둥에 본을 대고 가루 주머니를 탁탁 두드리면, 구멍에서 가루가 솔솔 새어 나와 하얗게 꽃무늬가 찍혔지. (타초, 타분)
법당 안에는 어느새 하얀 꽃이 활짝 피어나 있었지.
"허, 죽은 나무에 이렇게 아름다운 꽃이 피다니.
이 꽃은 백년, 이백 년이 지나도 시들지 않겠소이다."
스님은 향기 나는 풀을 넣고 약차를 달였단다.
닷새가 지난 뒤 아가씨가 밖으로 나왔어.
전보다 더 여윈 모습이 애처로웠지.
스님이 약차를 건네자 아가씨가 말했어.
"이번에 들어가면 단청을 마치게 됩니다.(도채)
마지막으로 부탁드립니다. 절대로 법당 안을 들여다보지 마십시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벌써 일곱 날이 지났는데."
한참을 서성이던 스님은 큼큼 헛기침을 하며 법당 문 앞으로 다가갔어.
스님을 그예 문고리를 잡아당기고야 말았어.
앗! 법당 안에 아가씨는 온데간데없고
오색영롱한 새 한 마리가 제 깃털에서 고운 빛을 뽑아 색을 입히고 있었어.
"저는 극락정토에 사는 가릉빈가입니다.
목숨을 구해 주신 은혜를 갚고자 한 일인데------.
제 본디 모습을 보셨으니 저는 이제 극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스님은 새를 눈으로 쫓다가 정신이 아뜩해졌어.
하늘에서 꽃이 쏟아져 내리는 듯했거든.
그건 바로 가릉빈가가 그려놓은 단청이었지.
그런데 꽃 하나가 칠하다 만 채로 남아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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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힘으로도, 새의 힘으로도 다 못 칠한 빈 단청에
그다지 아쉬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미완성이 남기는 의미도 클 테니까.
굳이 인간의 호기심을 욕심이라는 말로 매질할 필요도 없고.
칠하다 만 꽃 하나를 아이와 함께 찾아보았다.
꽉 채워지지 않고, 비어 있는 부분이
오히려 편안해지면서 꼭 아쉬움만 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 여백이
사람이어도 좋고, 짐승이어도 좋으니
또 다른 누군가에게 기회를 주는 거 같아서 오히려 반갑기도 했다.
단청을 사랑하는 누군가가 손을 대서 채우면 된다.
두려워하지 말고, 정성어린 손길로 가릉빈가의 깃털에 닿으면 괜찮지 않을까?
남겨진 우리의 몫일 수도 있으므로,
흐뭇하게 받아들여 완성에 다가가면 되지,
굳이 한숨 쉴 것까지야---
단청에 대해서 참 쉽게 알아버린 느낌이다.
그림도 참~ 좋고.
애들 기말고사 끝나면 선운사 대웅전이나 보러 갈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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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뒤에서>
단청이란 건축물의 천장, 기둥, 벽들에 여러 빛깔로 그림이나 무늬를 그려 놓은 것을 뜻한다. 건축물뿐만 아니라 조각품, 공예품에 색을 칠하거나 장식하는 것도 단청이라고 부른다.
목조 건축물에 단청을 하는 까닭은 건축물을 오랫동안 보존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나라에서 단청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솔거' 편이다.
신라 화가 솔거가 황룡사 벽에 소나무을 그렸는데 새들이 살아 있는 나무인 줄 알고 날아들었다가 부딪치곤 했다는 이야기.
경북 안동 봉정사 대웅전 단청은 조선 초기 건물을 처음 지을 때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전남 순천 송광사 대웅전 단청은 화려한 색과 금박을 써서 절의 장엄한 느낌을 준다.
전북 고창 선운사 대웅전은 아름다운 단청벽화로 유명하다.
가릉빈가 [迦陵頻伽/歌羅頻伽, Kalavink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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