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랑

어깨너머의 연인

2007. 10. 25. 21:47

근래에 이와 유사한 부류의 영화들을 많이 본 것 같다.

아줌마들이랑 보기 편한 영화라는 이유에서라기 보다는

나름대로 꼭 봐야 할 이유는 있었다.

바람피기 좋은 날은 코믹함과 뒷처리가 신파조로 흐르는 바람에

그다지 진지하게 와 닿지 않았었고,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는

그런대로 산뜻했는데 예상치 못한 결론에 당황했다.

그리고 무료관람권을 처리하느라

볼 수 밖에 없었던, 그런데 보고나서 제목도 기억이 나지 않았던 영화,

내 생애 최악의 남자는

정말이지 뭐라 할 말이 없다.

다들 상투적으로 말하면 그저 바람피면서 나를 돌아본다는 이야기이지만

좀더 그럴싸하게 말한다면 뭔가 가슴 싸한 ,

그래서 조금은 우울해지기도 하고

약간은 억울해지기도 하고

어찌어찌하여 아줌마의 시린 구석을 채워주기도 했던

비상구 같은 영화들이었다.

비상구,

오늘 보았던 어깨너머의 연인에 등장했던 단어.

연애니 섹스니 하는 단어보다도 더 자극적이었던 단어다.

나에게는.

제목이 땡겨서 보고 싶었다.

문학상을 수상한 일본 소설이 원작이었다는 사실은 잘 몰랐고

그저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연애하는 여자와 결혼한 여자.

나야 결혼해서 아이가 줄줄이,

그래서 내가 여자인지 아닌지, 여자로 보이고 싶은건지 어쩐지

고민하고 유난을 떨 겨를이 없었는데...

그렇게 들뜰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희수의 말처럼

아이가 있어도 여자일 수 있다는 생각이 슬며시 든 적이 있었던가?

아주 가끔 예전 드라마에서 가슴치던 말이 떠오르기는 했다.

내가 사랑하는 한 당신은 여자입니다.

아내도 여자이고, 엄마도 여자이긴 하다.

오늘 하루는 정말로 그럴 것 같다.

유부남과 연애하는 친구를 아무렇지 않게 부추기는 유부녀가

그대로 자신의 일이 되었을 때는 그저 아무렇지 않을 수 없다는

현실이 흥미롭다.

아무리 치열하게 사랑한들,  

아무리 열정적으로 갈구한들,

연애는 연애일 뿐이고,

결혼은 현실일 뿐이다.

영화에 뜬끔없이 끼어든 마르코 이야기를 집어넣어서

영화를 보자니

외로운 인간들의 한 컷.

입양아와 이혼녀, 그리고 솔로

그냥 그렇게 혼자서 시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마르코의 이야기는 사족 같았다.

이혼녀 희수가 전남편과 다시 손을 잡기로 하고

화면 가득 둥그렇게 채워진

하얀 웨딩드레스 속에서 웃는 모습은

나름대로 당당한 비젼이었을까.

드레스 가운데 부분이  슬그머니 부풀어오르는

화면에서 그녀의 희망이 보였다.

희수, 그녀는 자신의 삶에 어떻게든지 당당할 것이다.

그런데도 마흔이 넘은 내 가슴은

희수의 당연함보다

정완의 발걸음을 더 세차게 느낀다.

그녀, 정완의 마지막 외침이 나를 설득한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나를 포함한 아줌마들

발걸음이 느려지면서

괜히 우울하단다.

무엇이 우리 아줌마들을 우울하게 만들었을까.

스산한 바람에 하염없이 감겨 흩어지는 낙엽들 때문은 아니었겠지?

 

영화에 나왔던 각진 와인잔

-- 유부녀 희수의 잔은 둥그렇게 갸름하고, 솔로 정완의 잔은 보기 드문 각지고 멋진 잔이었다.--

에 붉은 와인을 가득 채워서 마시고 싶은 날이었다.

 

나는 내가 품고 있는 어깨 뒤의 세상 속으로 선뜻 나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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