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 <언문세설> 연재 6화 - ㅂ(비읍)
| 연재 코너 ★★★/고종석 <언문세설> 2013/10/08 09:00
"모국어는 내 감옥이다. 오래도록 나는 그 감옥 속을 어슬렁거렸다.
행복한 산책이었다. 이 책은 그 산책의 기록이다."
은 한글 자모의 여섯째 자다. 이 글자의 이름은 ‘비읍’이다. 북한에서는 ‘브’라고도 부른다. 이 글자가 나타내는 소리는 국제음성문자로는 /p/로 표기하는 양순 파열음이다. 이 글자의 꼴은 ㅁ에서 번져 나왔다. ㅂ이 나타내는 소리는 ㅁ이 나타내는 소리와 그 조음 지점이 같기 때문이다. 한국어의 ㅂ 소리는 두 울림소리 사이에서 울림소리로 변해 [b]로 실현된다. 그래서 ‘바보’는 [pa:bo]에 가깝게 실현된다. 앞의 ㅂ이 안울림소리인 데 견주어 뒤의 ㅂ은 울림소리인 것이다.
ㅂ은 한국어에서 일부 동사를 형용사로 만드는 접미사다. ‘놀라다’라는 동사의 어간에 접미사 ㅂ이 붙어 ‘놀랍다’라는 형용사가 나왔고, ‘그리다’라는 동사의 어간에 접미사 ㅂ이 붙어 ‘그립다’라는 형용사가 나왔다. 그 동사의 어간이 자음으로 끝나면 접미사 ㅂ은 ‘읍’으로 변하기도 한다. ‘웃다’에서 ‘우습다’가 나오듯이.
현대 한국어에서 이런 식으로 파생되는 말은 꽤 많은데, 그 가운데는 이 말들의 역사를 반영해서 그 파생의 양태가 다소 불규칙적인 것이 많다. 어간 말음이 탈락하기도 하고 ㅂ 앞에 ‘으’ 말고 다른 모음이 첨가되기도 한다. 아무튼 ‘믿다’에서 파생한 ‘미덥다’, ‘아끼다’에서 온 ‘아깝다’, ‘즐기다’에서 온 ‘즐겁다’, ‘반기다’에서 온 ‘반갑다’, ‘배곯다’에서 온 ‘배고프다’, ‘앓다’에서 온 ‘아프다’ 같은 말들이 이런 유형의 파생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동사나 형용사 같은 용언의 어간이 ㅂ으로 끝날 때, 이 ㅂ이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 앞에서 ‘오’나 ‘우’로 변하는 수가 있다. 이런 식의 활용을 ‘ㅂ불규칙활용’ 또는 ‘ㅂ변칙활용’이라고 하고, 이런 부류에 드는 용언을 ‘ㅂ불규칙(변칙)용언’이라고 한다. 예컨대 형용사 ‘곱다’의 어미 ‘-아’가 붙으면 ‘곱아’가 아니라 ‘고와’가 되고, 동사 ‘돕다’에 어미 ‘-아서’가 붙으면 ‘돕아서’가 아니라 ‘도와서’가 된다. 이와 비슷하게, ‘춥다’는 ‘춥어’ ‘춥으니’가 아니라 ‘추워’ ‘추우니’로 활용하고, ‘덥다’ 역시 ‘덥어’ ‘덥으니’가 아니라 ‘더워’ ‘더우니’로 활용한다.
영남 지방의 일부 방언에서는 ‘덥어’ ‘덥으니’ ‘춥어’ ‘춥으니’로 활용하기도 하지만, 아무튼 현대 표준 한국어에서는 ‘덥다’ ‘춥다’가 ㅂ불규칙형용사여서, ‘더워’ ‘더우니’ ‘추워’ ‘추우니’로 활용한다. 동사 ‘눕다’도 ‘눕어’ ‘눕으니’가 아니라 ‘누워’ ‘누우니’로 활용하고, 형용사 ‘반갑다’도 ‘반갑어’ ‘반갑으니’가 아니라, ‘반가워’ ‘반가우니’로 활용한다.
물론 어간이 ㅂ으로 끝나는 용언이 모두 ㅂ불규칙활용을 하는 것은 아니다. 형용사 ‘좁다’는 ‘조와’ ‘조우니’가 아니라, ‘좁아’ ‘좁으니’로 활용하는 정칙(규칙)형용사다. 또 동사 ‘잡다’ 역시 ‘자와’ ‘자우니’가 아니라 ‘잡아’ ‘잡으니’로 활용하는 정칙동사다. 형용사 ‘수줍다’나 ‘어줍다’, 동사 ‘집다’ ‘꼬집다’ ‘입다’ ‘씹다’ ‘업다’ ‘접다’ ‘뽑다’ ‘손꼽다’ 등도 마찬가지다. ‘수줍어’ ‘어줍어’ ‘집어’ ‘꼬집어’ ‘입어’ ‘씹어’ ‘업어’ ‘접어’ ‘뽑아’ ‘손꼽아’ 등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형태가 같고 의미가 다른 말들, 즉 동형어들 가운데 어떤 것은 정칙활용을 하고 어떤 것은 변칙(불규칙)활용을 하는 것도 있다. 위에서 예로 든 형용사 ‘곱다’는 ‘아름답다’는 뜻일 때는 불규칙활용을 하지만,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몹시 차서 잘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일 때는 ‘곱아’ ‘곱으니’처럼 정칙으로 활용한다. ‘굽다’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이 ‘굽다’가 ‘불에 익힌다’는 뜻의 동사일 때는 ‘구워’ ‘구워서’처럼 불규칙활용을 하지만, ‘한쪽으로 휘어져 있다’는 뜻의 형용사일 때는 ‘굽어’ ‘굽어서’처럼 정칙활용을 한다.
어간이 ㅂ으로 끝나는 용언이 규칙적으로 활용하느냐, 불규칙적으로 활용하느냐를 결정하는 규칙은 없다. 역사적으로는 그 이유를 밝힐 수 있지만, 공시적으로 보자면 그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어 화자들의 관습일 뿐이고, 그러니 무작정 익히는 수밖에 없다. ㅂ으로 끝나는 용언 가운데 압도적 다수가 ㅂ불규칙용언이라는 점은 말해두는 것이 좋겠다. 그 일부만 예를 들자고 해도 슬기롭다, 대수롭다, 외롭다, 괴롭다, 가소롭다, 애처롭다, 번거롭다, 날카롭다, 오줌 마렵다, 귀엽다, 흥겹다, 정겹다, 힘겹다, 역겹다, 지겹다, 눈물겹다, 매섭다, 무섭다, 어지럽다, 사랑스럽다, 안쓰럽다, 미덥다, 기껍다, 아니꼽다, 싱겁다, 놀랍다, 그립다, 차갑다, 뜨겁다, 두텁다, 아름답다, 간지럽다, 더럽다, 서럽다, 부럽다, 즐겁다, 너그럽다, 밉다, 맵다, 두껍다, 깁다, 우습다, 어둡다, 눕다, 사납다, 살갑다, 반갑다, 고깝다, 아깝다, 헐겁다, 안타깝다 등 한이 없다.
ㅂ불규칙용언으로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흔히 쓰는 말에 ‘고맙다’가 있다. 이 ‘고맙다’는 흔히 ‘감사하다’와 동의어처럼 생각되지만, 실은 어휘의 범주부터가 다른 말이다. 물론 ’와주셔서 고맙습니다’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는 거의 같은 뜻을 지닌 문장이다. 그러나 ‘고맙다’는 형용사이고, ‘감사하다’는 동사다. 그러니까 ‘고맙습니다’는 ‘나는 당신이 고맙습니다’의 준말이라고 할 수 있는 반면에, ‘감사합니다’는 ‘나는 당신에게 감사합니다’의 준말이라고 할 수 있다.
갑돌이가 을숙이에게 ‘고맙습니다’ 또는 ‘감사합니다’라고 했을 때, 갑돌이에게 을숙이는 ‘고마운 사람’이다. 그러나 ‘감사한 사람’은 아니다. 감사를 한 사람은 갑돌이니까. 갑돌이는 ‘을숙이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는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낄 뿐이다. 물론 구어에서는 ‘감사하는’과 ‘고마운’이 흔동되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이라는 뜻으로 ‘고마운 마음’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기도 하지만, 그리고 언젠가는 그 둘이 마음대로 넘나들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고마운 마음’이 다소 어색하다.
하느님은 ‘고마우신 분’이지 ‘감사하신 분’은 아니며, 우리는 그분의 은총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지 ‘고마운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고마운 마음은 우리 마음이 아니라 하느님의 마음이다. ‘고마운 마음’이란, ‘그 마음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 감사하는 마음, 그 마음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 고마워하는 마음’이라는 의미이니까.
ㅂ불규칙형용사 ‘두껍다’와 ‘두텁다’는 그 의미가 통한다. 그러나 ‘두껍다’는 대체로 물체의 두께에 대해서 쓰이는 반면, ‘두텁다’는 인정이나 사랑의 양에 대해서 쓰인다. ‘두꺼운 책’을 ‘두터운 책’이라고 말하지는 않고, ‘두터운 정’을 ‘두꺼운 정’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한국어 형용사 가운데는 어간에 접미사 ‘이’를 붙여서 부사를 파생시키는 것들이 있다. 예컨대 ‘많다’는 어간 ‘많’에 접미사 ‘이’를 붙여서 ‘많이’라는 부사를 만들고, ‘적다’는 어간 ‘적’에 접미사 ‘이’를 붙여서 ‘적이’라는 부사를 만든다. 또 ‘높다’의 어간 ‘높’에 접미사 ‘이’를 붙이면 ‘높이’라는 부사가 생긴다. ㅂ불규칙형용사에 부사화 접미사 ‘이’가 붙으면 그 어간 끝의 ㅂ은 어떻게 될까? ‘오’나 ‘우’로 변할까? 아니면 그대로 있을까? 둘 다 아니다. 그냥 탈락하고 만다. 예컨대 형용사 ‘곱다’에서 파생한 부사는 ‘곱이’도 ‘고위’도 아닌 ‘고이’이고, 형용사 ‘쉽다’에서 파생한 부사는 ‘쉽이’도, ‘쉬위’도 아닌 ‘쉬이’다. 마찬가지로 ‘즐겁다’는 부사 ‘즐거이’를 파생시키고, ‘반갑다’는 부사 ‘반가이’를 파생시킨다.
그런데 일부 형용사에 붙는 접미사 ‘이’는 때에 따라 명사화 접미사이기도 하다. 예컨대 ‘넓다’의 어간에 ‘이’가 붙으면 ‘넓이’라는 명사가 파생하고, ‘높다’의 어간에 ‘이’가 붙으면 ‘높이’(‘높게’라는 의미말고 ‘높은 정도’라는 의미)라는 명사가 파생하며, ‘크다’의 어간에 ‘이’가 붙으면 ‘키’(앞의 ㅡ모음은 탈락)라는 명사가 탄생한다. ㅂ불규칙형용사에 이런 성질의 명사화 접미사가 붙으면 어간 끝의 ㅂ은 어떻게 될까? 부사화 접미사 ‘이’ 앞에서처럼 탈락할까? 그렇지 않다. 활용할 때처럼 ‘우’로 변한다. 그래서 형용사 ‘춥다’는 ‘추위’라는 명사를 파생시켰고, 형용사 ‘덥다’는 ‘더위’라는 명사를 파생시켰다.
받침소리 ㅁ이 가벼움의 소리, 떠 있는 소리라면, 받침소리 ㅂ은 무거움의 소리, 가라앉은 소리다. 그래서 ㅂ으로 끝나는 말들은 답답하다. 어근이 ㅂ으로 끝나는 답답하다, 갑갑하다, 찹찹하다, 고리탑탑하다, 거무접접하다, 텁텁하다, 꿉꿉하다, 츱츱하다, 추접하다, 구접스럽다 같은 말들이 그 ㅂ 받침의 무거움과 가라앉음을 보여준다. ‘트집’이나 ‘발굽’ 같은 명사도 그렇다.
받침소리 ㅂ은 ㄴ이나 ㅁ 같은 콧소리 앞에서는 그 콧소리에 동화돼 콧소리 ㅁ으로 변한다. 그래서 ‘집느냐’ ‘꼬집느냐’ ‘입느냐’ ‘씹느냐’ ‘업느냐’ ‘접느냐’ ‘잡느냐’ ‘깁느냐’는 각각 [짐느냐] [꼬짐느냐] [임느냐] [씸느냐] [엄느냐] [점느냐] [잠느냐] [김느냐]로 소리 난다. ‘밥 먹어라’도 [밤머거라]로 소리 난다. 그래서 상황을 고려하지 않으면 [밤머거라]가 ‘밥을 먹어라’의 뜻인지 ‘밤을 먹어라’의 뜻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받침소리 ㅂ이 ㄴ이나 ㅁ 같은 콧소리 앞에서 그 콧소리에 동화돼 ㅁ으로 변하는 것은 필연적이고 보편적인 규칙이다. 그러나 ㅂ과 관련된 임의적 변동 규칙도 있다. ㅂ 받침이 ㄱ(ㄲ, ㅋ) 소리 앞에서 ㄱ으로 변하는 경우가 그렇다. 예컨대 ‘밥그릇’ ‘입가심’ 같은 말은 [박그륻]→[바끄륻], [익가심]→[이까심]처럼 발음된다. 또 정서법상 ㅂ 받침을 지니지 않은 말일지라도 그 받침이 ㅂ과 똑같이 소리 나는 경우라면 이 음운법칙이 적용된다. 예컨대 ‘덮개’라는 말이 /덥개/를 거쳐서 [덕개]→[더깨]처럼 발음되는 경우다. 이렇게 ㅂ이 ㄱ 앞에서 ㄱ으로 변하는 현상은 임의적인 것이고 표준 발음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다. 마음이 풀린 상태에서나 나올 수 있는 발음이다.
ㅂ을 연이어 쓴 ㅃ은 ㅂ을 되게 내는 소리다. 국제음성문자로는 /p’/로 표기한다. ㄸ으로 시작하는 말들이 그렇듯 ㅃ으로 시작하는 말들 가운데도 한자어가 없다. 죄다 고유어들이다. 빨래, 뽐내다, 뾰족하다, 빠르다, 뻗정다리, 빨갛다, 빻다, 빼다, 뽑다, 뼈대, 뿜다, 뿔잠자리, 뺨, 빨강, 빽빽하다, 뽀얗다, 뿌리등걸 같은 말들이 ㅃ 항목에 있다. 뿌리, 거대한 뿌리…… 시인 김수영은 “第三人道敎의 물속에 박은 鐵筋기둥도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 좀벌레의 솜털/ 내가 내 땅에 박는 거대한 뿌리에 비하면”이라고 노래한 적이 있다.
물론 ㅃ을 거느리고 있는 말로 ‘뽀뽀’도 빼놓을 수 없다. ‘아빠’ ‘오빠’에도 ㅃ이 있다. 어린 시절에 즐기던 공놀이 이름인 ‘찜뿌’에도 있다. ‘찜뿌’는 방망이를 사용하지 않는 야구다.
ㅃ으로 시작되는 말들 가운데 많은 수는 ㅂ으로 시작되는 말들의 센말이다. 예컨대 ‘뻥긋’은 ‘벙긋’의 센말이고, ‘뻔드르르’는 ‘번드르르’의 센말이며, ‘빼끗거리다’는 ‘배긋거리다’의 센말이고, ‘빵그레’는 ‘방그레’의 센말이다. ‘빠드득’과 ‘바드득’, ‘빡빡’과 ‘박박’, ‘빨가숭이’와 ‘발가숭이’, ‘빨그스름하다’와 ‘발그스름하다’, ‘뻗정다리’와 ‘벋정다리’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뻗다’와 ‘벋다’의 관계도 그럴까? ‘길게 뻗은 가지’와 ‘길게 벋은 가지’는 같은 의미이므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뻗어 있는 고속도로’도 ‘서울에서 부산으로 벋어 있는 고속도로’라고 고쳐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주먹을 뻗는’ 것을 ‘주먹을 벋는’다고는 하지 않고, 그 주먹에 맞고 ‘뻗는’ 것도 ‘벋는’다고는 하지 않는다.
ㅂ이 받침이 아닐 때, 그 ㅂ 소리는 받침소리일 때처럼 무겁거나 가라앉아 있지 않다. 바다, 비늘, 바늘, 보라, 바람, 밤느정이, 버들, 버섯, 보늬, 보득솔, 빛깔, 빗살, 비름, 부추, 부럼, 바둑, 보슬비, 부지런, 부들, 부리, 봄, 볼, 보람, 보름, 베틀, 바지라기, 벼리, 벼루, 베개, 버선, 바퀴, 바리, 바위, 바깥, 보푸라기, 부드럽다, 비 같은 부드러운 말들이 국어사전의 ㅂ부(部)에 실려 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대중가요의 가장 흔한 제재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비는 대지의 모든 곳에 내린다. 배호의 ‘비 내리는 경부선’과 ‘비 내리는 명동 거리’가 있는가 하면, 현인의 ‘비 내리는 고모령’도 있고, 주현미의 ‘비 내리는 영동교’도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손인호는 ‘비 내리는 호남선’을 불렀고, 오기택은 ‘비 내리는 판문점’을 불렀다. 이 밖에도 비를 제재로 한 노래는 무수히 많다. 윤형주의 ‘어제 내린 비’, 송창식의 ‘비의 나그네’, 채은옥의 ‘빗물’, 김추자의 ‘빗속을 거닐며’와 ‘봄비’, 투에이스의 ‘빗속을 둘이서’,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 남진의 ‘빗속에서 누가 우나’, 정훈희의 ‘빗속의 연인들’, 펄시스터즈의 ‘빗속의 여인’, 김세환의 ‘비’, 박남정의 ‘비에 스친 날들’, 이광조의 ‘빗속에서’, 권인하·김현식·강인원의 ‘비 오는 날의 수채화’, 배따라기의 ‘비와 찻잔 사이’, 이문세의 ‘빗속에서’, 이승훈의 ‘비오는 거리’, 햇빛촌의 ‘유리창엔 비’, 이현우의 ‘이 거리엔 비가’, 오은주의 ‘지나가는 비’, 도미의 ‘비의 탱고’, 박광현의 ‘비의 이별’, 박영미의 ‘비 오는 토요일의 해후’, 바람꽃의 ‘비와 외로움’ 등은 비를 제재로 삼은 노래들이 채우고 있는 기다란 목록의 일부일 뿐이다. 비와 관련된 노래들이 이리도 많은 걸 보면, 내리는 비가 아드레날린의 분비를 촉진해 사람들을 감상적으로 만든다는 속설이 그럴듯하게 생각되기도 한다.
비는 세상의 더러움을 씻어낸다. 그래서 심재상의 비는 씻김굿이다: “비 지나가고 나면 눈치 없이 아스팔트 위에 나앉은 돌멩이도 이쁘다. 물기 머금은 마음에서 후끈하게 김이 오른다. 거기 아득하게 서 있는 게 누구요?”
고종석 <언문세설> 연재 6화 - ㅂ(비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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