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이랑

고종석의 언문세설 5 / 미음

2013. 10. 23. 16:53

 

 

타협하지 않는 문장가 고종석 <언문세설> 연재 5화 - ㅁ(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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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어는 내 감옥이다. 오래도록 나는 그 감옥 속을 어슬렁거렸다. 
행복한 산책이었다. 
이 책은 그 산책의 기록이다."

 

 

 은 한글 자모의 다섯째 글자다. ㅁ 글자의 꼴은 이 글자가 나타내는 소리를 낼 때 아래위의 두 입술이 붙기 때문에 입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 입의 모양을 왜 ㅁ처럼 모나게 본떴을까? 그것은 아마도 한자의 입 구(口) 자에 영향을 받았으리라. 한자의 ‘口’ 자도 입의 모양을 본뜬 상형문자다. 지붕이나 집의 평면이 ㅁ자 형인 집을 ‘ㅁ자집’이라고 부른다.

 

ㅁ이 표시하는 소리는 입술소리이자 콧소리다. 국제음성문자로는 /m/으로 표기되는 양순 비음이다. 입술을 다물어 입안을 비게 하고 목청에서 떨려 나오는 소리를 콧구멍을 통해 내는 울림소리가 이 소리다. ‘숨’ ‘곰’ ‘남’ ‘춤’에서처럼 받침의 경우에는 입술을 떼지 않는다.

 

ㅁ 받침은 연구개음 ㄱ(ㄲ, ㅋ) 소리 앞에서 그 ㄱ 소리에 동화돼 연구개음 ㅇ처럼 발음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감기’나 ‘곤궁’이 [강기]나 [공궁] 비슷하게 발음되는 경우가 그렇다. 그러나 이런 소리 변동은 임의적인 것이다. 표준 발음으로는 [감기]이고 [곤궁]이다.

 

ㅁ 글자의 이름은 ‘미음’이다. 북한에서는 ‘므’라고 부르기도 한다. ‘미음’의 동음이의어들이 한국어에는 여럿 있다. 미음(米飮)은 환자가 먹는 묽은 쌀죽이다. 줄여서 ‘밈’이라고도 한다. 미음(美音)은 아름다운 음성이라는 뜻이고, 미음(微音)은 희미한 소리라는 뜻이며, 미음(微吟)은 작은 소리로 읊는다는 뜻이다. 미음완보(微吟緩步)는 작은 소리로 읊으며 천천히 걷는다는 뜻이다. 또 날씨가 조금 흐릿하다는 뜻의 미음(微陰)은 음력 5월의 딴 이름으로도 쓰인다.

 

 

ㅁ은 한국어에서 받침 없는 용언에 붙어 그 용언을 명사형으로 만드는 전성어미로 쓰인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명사형을 학교문법에서는 제1명사형이라고 한다. ‘하다’ ‘오다’ ‘가다’ ‘가리다’ 따위의 동사들의 제1명사형은 ‘함’ ‘옴’ ‘감’ ‘가림’이다. 학교문법에서 제2명사형이라고 부르는 꼴은 어간에 어미 ‘-기’를 붙여 만든다. 그래서 위에 예시한 동사들의 제2명사형은 ‘하기’ ‘오기’ ‘가기’ ‘가리기’이다. 어간이 닿소리로 끝날 때, 다시 말해 어간이 받침 있는 음절로 끝날 때 제1명사형 전성어미는 ㅁ이 아니라 ‘-음’이다. 그래서 ‘먹다’ ‘막다’ ‘좋다’ ‘싫다’의 제1명사형은 ‘먹음’ ‘막음’ ‘좋음’ ‘싫음’이 된다.

 

이 명사형 전성어미 ㅁ과 혼동되기 쉬운 것이 명사화 접미사 ㅁ이다. 명사형 전성어미 ㅁ은 용언에 붙어서 그 용언의 품사를 그대로 둔 채 자격이나 성분에만 간여하지만, 명사화 접미사 ㅁ은 용언 뒤에 붙어서 아예 새로운 단어, 새로운 명사를 만든다. 예컨대 ‘슬프다’나 ‘기쁘다’라는 형용사의 어간에 이 명사화 접미사가 붙으면 ‘슬픔’ ‘기쁨’이라는 명사가 만들어지고, ‘자다’라는 동사의 어간에 명사화 접미사 ㅁ이 붙으면 ‘잠’이라는 명사가 만들어진다. 이 명사화 접미사 ㅁ은 동사 ‘얼다’의 어간에 붙어서 명사 ‘얼음’을 만들고, 동사 ‘꾸다’의 어간에 붙어서 명사 ‘꿈’을 만든다.

 

그러니까 그 형태만으로 보면 어떤 용언의 제1명사형과 그 용언에서 파생한 명사가 서로 구별되지 않는 수가 있다. ‘고향 꿈을 자주 꿈은 즐거운 일이다’ ‘밤잠을 푹 잠은 건강에 중요하다’ ‘부채춤을 잘 춤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같은 문장들에서 처음에 나온 ‘꿈’ ‘잠’ ‘춤’은 동사 ‘꾸다’ ‘자다’ ‘추다’에서 파생한 명사이지만, 뒤에 나온 ‘꿈’ ‘잠’ ‘춤’은 동사 ‘꾸다’ ‘자다’ ‘추다’의 명사형이다. 그러니까 뒤에 나온 단어들은 명사형으로 활용했을 뿐 그 품사는 여전히 동사인 것이다. 동사의 이런 명사형을 동명사라고도 한다.

 

명사형 어미 ㅁ은 그 생산성이 엄청나게 높지만 명사화 접미사 ㅁ은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된다. 활용이라는 것은 일반적인 것이지만, 파생이라는 것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어의 모든 용언은 그 어간에 ㅁ(또는 -음)을 붙여서 명사형으로 만들 수 있지만, 그 어간에 접미사 ㅁ을 붙여서 명사를 파생하는 용언은 적어도 일상어에서는 극히 제한돼 있다. 위에서 언급한 ‘슬픔’ ‘잠’ ‘꿈’ ‘춤’ ‘얼음’ 같은 것들이 그렇게 파생된 명사의 예다. 우리가 자주 쓰는 ‘삶’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삶을 제대로 삶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는 문장에서 앞의 삶은 명사요, 뒤의 삶은 동사(의 명사형, 곧 동명사)다. 그러나 비록 용언의 어간에 ㅁ이 붙어 만들어진 명사가 아직은 그리 많지 않을지라도, 원리적으로 이 명사화 접미사 ㅁ은 개념어를 만드는 데 아주 적합한 재료다. 어떤 용언에도 ㅁ(-음)을 붙이기만 하면 적어도 ‘원리적’으로는 그 용언의 개념을 담는 명사를 만들어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앞으로 국어순화 운동이 힘을 얻게 된다면, ㅁ 명사형(동명사)의 많은 수가 완전한 명사로 굳어져 한자어 개념어들을 대체할 가능성도 있다.

 

 

‘-ㅁ’ 과 ‘-기’는 둘 다 명사형 어미로서 용언에 명사(체언)의 자격을 부여하지만, 이 두 어미가 붙은 말들의 의미가 똑같은 것은 아니다. 우선 ‘-ㅁ 형’은 지각 동사를 주절의 동사로 삼을 수 있지만, ‘-기 형’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나는 그의 성격이 살가움을 알았다’나 ‘나는 그 두 사람의 성격이 매우 다름을 깨달았다’나 ‘나는 해가 바다 위로 솟아오름을 보았다’ 같은 문장은 성립하지만, ‘나는 그의 성격이 살갑기를 깨달았다’거나 ‘나는 그 두 사람의 성격이 매우 다르기를 깨달았다’거나 ‘나는 해가 바다 위로 솟아오르기를 보았다’는 비문이 된다. 이것은 ‘-ㅁ 형’의 말이 ‘-기 형’의 말보다 더 명사적 성격(실체적・대상적 성격)이 크다는 것을 뜻한다. 그 말은 ‘-기’ 쪽이 ‘-ㅁ’ 쪽보다 더 동사적 성격(서술적 성격)이 크다고 바꿔 말할 수 있겠다. ‘-ㅁ’은 지각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기’는 지각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반면에 주절에 기대나 원망 등을 나타내는 동사가 오면, 내포절에선 ‘-기 형’만이 사용될 뿐 ‘-ㅁ 형’은 사용될 수 없다. 예컨대 ‘나는 네가 죽기를 바라’라거나 ‘우리는 그놈이 죽기를 기다리고 있어’라는 문장은 자연스럽지만, ‘나는 네가 죽음을 바라’라거나 ‘우리는 그놈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어’라는 문장은 비문이거나 어색하다. ‘-기 형’이 기대나 원망과 관련된 동사와 어울릴 수 있는 데 비해 ‘-ㅁ 형’은 그런 동사들과 어울릴 수 없다는 것은, ‘-ㅁ 형’이 완료, 확정 등의 의미 자질을 지닌 반면에 ‘-기 형’은 미완료, 미정 등의 의미 자질을 갖는다는 걸 뜻한다. 위의 두 문장에서 죽음은 아직 완료되지 않고 확정되지 않은 것이므로, ‘-ㅁ’은 사용하지 못하고 ‘-기’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ㅁ’이 지닌 실체적・대상적 성격을 이용하면, ‘-ㅁ 형’으로도 위 문장의 의미를 표현할 수 있다. 즉 ‘-ㅁ 형’을 사용해서 완전한 명사를 만드는 것이다. ‘나는 네 죽음을 바라’라거나 ‘우리는 그놈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어’처럼 말이다. ‘네가 죽음’ ‘그놈이 죽음’ 같은 주어-서술어의 절(節) 구조를 ‘네 죽음’ ‘그놈의 죽음’ 같은 수식어-피수식어의 구(句) 구조로 바꾸어, 복문이었던 문장을 단문으로 만드는 것이다.

 

 

 

ㅁ은 어린아이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소리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인 ‘엄마’에 이 ㅁ이 들어가 있다. 이것은 우리말의 경우에만 그런 것이 아니다. ㅁ 소리를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은 우리나라 아이들만이 아니니까. 그래서 ‘엄마’라는 말은 영어로는 ‘mama’이고 프랑스어로는 ‘maman’이다. 영어나 프랑스어만이 아니다. 알려진 언어의 태반은 ‘엄마’라는 의미의 어휘소에 ㅁ 소리를 포함하고 있다.

 

어린아이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엄마’라면, 그 다음에 배우는 말은 생명의 존속을 위해 가장 소중한 것, 즉 ‘밥’일 것이다. 그 ‘밥’을 어린아이 말로는 ‘맘마’라고 한다. 어린아이들이 최초로 먹는 ‘맘마’는 ‘젖’이다. 사람의 어린아이들만이 아니라 포유동물이면 다 그렇다. 그리고 그 젖이 나오는 곳은 유방이다. 영어로 포유동물의 유방을 ‘mamma’라고 하는 것은 그래서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이 영어 단어 자체가 라틴어에서 고대 영어로 수입된 것이다. 유방을 ㅁ 소리로 표현하는 것이 영어만은 아닌 것이다. 실은 포유동물을 뜻하는 영어 ‘mammal’ 역시 ‘가슴’을 뜻하는 라틴어 ‘mamma’에서 온 것이다.

 

 

 

 

 

ㅁ 소리에서는 따뜻함, 가벼움 같은 것들이 느껴진다. 막내, 말, 맛, 멋, 맵시, 물매, 마름모, 무지개, 물, 뭉클뭉클, 미끈하다. 민들레, 미나리, 미립, 미늘, 머금다, 머위, 무종아리, 무김치, 모으다, 모두, 머루처럼 ㅁ으로 시작하는 말들도 그렇고, 봄, 여름, 보름, 아름, 사슴, 아침, 김, 솜, 숨, 단감, 바람, 사람, 알밤, 개암, 옹달샘, 미끄럼, 헤엄, 냠냠, 자밤자밤처럼 ㅁ 받침으로 끝나는 말들도 그렇다. ‘몸’과 ‘마음’처럼 ㅁ으로 시작해서 ㅁ으로 끝나는 말들은 더 그렇다.

 

ㅁ 소리를 중간에 품고 있는 말들도 마찬가지다. 두루미, 지느러미, 동무, 나무, 풀무, 세모, 네모, 열매, 눈매, 소매, 가리마, 치마 같은 말 말이다. 영어의 ‘하드웨어’(hardware)를 직역한 ‘굳은모’와 ‘소프트웨어’(software)를 직역한 ‘무른모’도 마찬가지다. 어근이 ㅁ으로 끝나는 달콤새콤하다, 날름날름하다, 부유수름하다, 갸름갸름하다, 상큼하다, 소담하다, 삼삼하다, 함초롬하다, 매초롬하다, 둥그스름하다 같은 말의 가벼움을 음미해보라.

 

ㅁ 소리 두 개를 모음으로 연결한 ‘마음’이라는 말만큼 마음의 따뜻함을 드러내는 말은 없을 것이다. 영어의 ‘heart’라는 말에서는 심장의 박동이나 피의 뜨거움이 느껴지지만 ‘마음’에서와 같은 따뜻함과 은근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mind’라는 말에는 ㅁ 소리가 들어 있지만, 그 말에서는 정신 활동의 기계적 성질, 말하자면 차가운 성질이 느껴진다. ‘spirit’은 더 그렇다. 이런 영어 단어들에는 ‘마음’이라는 말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울리는 따뜻함이 없다. 줄여서 ‘맘’이라고도 하는 ‘마음’과 ‘넋’이라는 말을 비교해보아도 그렇다. ‘넋’은 뭔가 고귀하거나 원한에 차 있지만, ‘마음’은 늘상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로 따뜻하다.

 

‘마음’에 대응하는 한자어 유의어는 ‘정신’일 터이다. ‘마음’이 주로 감성이나 의지의 영역을 가리킨다면, ‘정신’은 이성이나 오성의 영역을 가리킨다. ‘정신 나간 놈’ ‘정신 차려 이놈아’ ‘그 순간 정신을 잃었어’를 ‘마음 나간 놈’ ‘마음 차려 이놈아’ ‘그 순간 마음을 잃었어’로 바꿀 수는 없다. 또 ‘마음이 아파’ ‘기쁜 마음으로’ ‘마음이 어찌 그리 곱니?’ ‘네 말이 걔 마음에 상처를 주었어’를 ‘정신이 아파’ ‘기쁜 정신으로’ ‘정신이 어찌 그리 곱니?’ ‘네 말이 걔 정신에 상처를 주었어’로 바꿀 수도 없다. ‘걘 지금 학교에 갈 마음이 없어’와 ‘걘 지금 학교에 갈 정신이 없어’는 둘 다 허용되는 문장이지만 그 뜻은 다르다. 여기서 ‘마음’은 의지이지만 ‘정신’은 이성이다.
‘말씀’은 ㅁ이 들어간 또 다른 아름다운 말이다. 유대-기독교적 상상력 속에서 ‘말씀’은 세상의 기원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있었고, 말씀이 하느님이었다.”

 

이 ‘말씀’은 중세어에서 ‘언어’나 ‘말소리’를 뜻했지만, 현대어에서는 ‘말’의 높임말로 쓰인다. 그런데 이 ‘말씀’의 대우법적 쓰임새가 재미있다. ‘말씀’은 상대나 윗사람의 ‘말’을 높여 가리키기도 하지만, 자신의 말을 낮춰 가리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말씀’은 ‘말’의 높임말이자 낮춤말인 것이다. “할아버님 말씀대로 합시다”에서 ‘말씀’은 ‘말’의 높임말이지만, “제 말씀 좀 들어보십시오’에서 ‘말씀’은 ‘말’의 낮춤말이다.

 

‘숨’과 ‘호흡’이라는 두 유의어에서 ㅁ 소리의 말랑말랑함과 ㅂ 소리의 답답함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품’이라는 말은 또 얼마나 안온한가? ‘품’을 안온하게 만드는 것은 그 ㅁ 소리일 것이다. 제 품에 저 아닌 것을 안을 수 있는 것들은 풍성하다. 나희덕이 노래한다: “세상에!/ 오동나무 한 그루에/ 까치가 이십 마리라니// 크기는 크지만/ 반 넘어 썩어가는 나무였다// 그 나무도/ 물기로 출렁거리던 때/ 제 잎으로만 무성하던 때 있었으리// 빈 가지가 있어야지,/ 제 몸에 누구를 앉히는 일/ 저 아닌 무엇으로도 풍성해지는 일// 툭툭 터지는 오동 열매에/ 까치들 놀라서 날아올랐다가/ 검은 등걸 위로/ 다시 하나 둘 내려앉고 있었다.”

 

‘함함하다’나 ‘함초롬하다’의 ㅁ도 그렇다. ‘샘’과 ‘섬’은 또 안 그런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고 정현종은 말한다. 물 가운데 섬이 있다. 그 섬이 조은의 몸을 빌려 말한다: “물이 나를 가둔다/ 물이 나를 조인다// 새들은 내 몸에다 배설을 하고/ 바람은 커다란 독처럼 나를 묻는다// ……// 가자/ 이 햇빛 좋고 바람 서늘한 날에/ 나를 기어오르는 물길을 다른 곳으로 꺾으며/ 홀가분해지며.”
어간이 ㅁ으로 끝나는 용언으로는 심다, 삼다, 감다, 보듬다, 더듬다, 다듬다, 가다듬다, 쓰다듬다, 담다 따위가 있다. 안온한 ‘품’을 지닌 ㅁ의 동사들…… 세상을 품은(품는) 동사들.

 

 

고종석 <언문세설> 연재 5화 - ㅁ(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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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문세설
국내도서
저자 : 고종석
출판 : 새움 2013.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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