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하지 않는 문장가 고종석 <언문세설> 연재 4화 - ㄹ(리을)
| 연재 코너 ★★★/고종석 <언문세설> 2013/09/26 11:40
"모국어는 내 감옥이다. 오래도록 나는 그 감옥 속을 어슬렁거렸다.
행복한 산책이었다. 이 책은 그 산책의 기록이다."
은 한글 자모의 넷째 글자다. 이 글자의 이름은 ‘리을’이다. 북한에서는 ‘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글자가 나타내는 소리는 두 가지다. 음절의 처음에 올 때는 설단음(r: 혀끝소리, 튀김소리)이고, 음절의 마지막에 올 때는 설측음(l: 혀옆소리)이다. 그러나 설측음 다음의 ㄹ은 설측음으로 발음된다. ‘날래다’에서처럼. ‘래’의 ㄹ이 음절의 처음에 왔음에도, ‘날’의 ㄹ(설측음 l)에 영향을 받아 설단음 [r]이 아닌 설측음 [l]로 소리 나는 것이다.
ㄹ자의 꼴도 ㄴ자에서 번져 나왔다. 혀끝이 ㄴ 소리를 낼 때와 비슷한 자리에 닿기 때문이다. ㄹ은 표준어에서 단어의 첫소리로는 쓰이지 않는다. 이 ㄹ이 단어의 첫소리에 왔을 경우에, 그 뒤의 모음이 ㅣ 모음이거나 ㅣ 선행모음일 경우에는 탈락해버리고, 그 밖의 모음이 왔을 때는 ㄴ으로 변한다.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한국어에서 단어 첫머리의 ㄹ은 무조건 ㄴ으로 변하고, 그 ㄴ 가운데 ㅣ 모음이나 ㅣ 선행모음의 앞에 놓인 것은 탈락해버린다. 그래서 ‘력사’는 (‘녁사’를 거쳐) ‘역사’로 변하고, ‘리발소’는 (‘니발소’를 거쳐) ‘이발소’로 변하고, ‘류형’은 (‘뉴형’을 거쳐) ‘유형’으로 변하고, ‘료리’는 (‘뇨리’를 거쳐) ‘요리’로 변한다. 또 ‘로력’은 ‘노력’으로 변하고, ‘랑만’은 ‘낭만’으로 변하고, ‘루수’는 ‘누수’로 변하고, ‘론리’는 ‘논리’로 변한다. 그러니까 남쪽의 국어사전에서 ㄹ 항목에 오른 말들은 독립된 단어의 자격이 부족한 어미, 조사, 불완전명사를 빼놓으면 모두 외래어들이다. 라일락, 러브스토리, 럭비, 레미콘, 레몬, 레이더, 레저, 륙색, 룸, 룰, 리듬, 리바이벌, 리바운드, 링크, 링거, 릴레이, 린치, 린스, 리포터, 리사이틀, 롱슛, 로터리, 로맨스, 렌즈, 레프트잽, 레인코트, 러시아워, 랑데부, 라이트윙, 라이터, 라스트신, 라디오 같은 말들이 그 예다.
그러나 북한의 문화어에서는 이런 두음법칙이 없다. 다시 말해 ㄹ이 단어 첫머리에 오는 것을 허용한다. 그래서 ‘력사’ ‘리발소’ ‘류형’ ‘료리’ ‘로력’ ‘랑만’ ‘루수’ ‘론리’라는 말이 사용된다.
단어의 처음이 아니더라도 현대 한국어에서 ㄹ 소리는 ㄹ 이외의 받침 다음에는 나타나지 못한다. 즉 위에서 예로 든 ‘날래다’에서처럼 ㄹ 받침 다음에만 그 소리를 유지한다. 다른 받침 뒤에서는 이런저런 음운 규칙의 적용을 받아 ㄴ 소리로 변한다. 예컨대 ‘감루’는 [감누]로 소리 나고 ‘종로서적’은 [종노서적]으로 소리 난다. ‘삼라만상’ ‘무중력’은 [삼나만상] [무중녁]으로 소리 난다. 앞의 받침이 ㄱ이나 ㄷ이나 ㅂ인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 경우에는 이 받침들에 뒤따르는 ㄹ이 ㄴ으로 변한 뒤, 이 ㄴ이 다시 그 받침들을 콧소리로 동화시킨다. 그래서 ‘율곡로’는 /율곡노/를 거쳐 최종적으로는 [율공노]로 소리 나고, ‘맏량반’(맏양반)은 /맏냥반/을 거쳐서 [만냥반]으로 소리 나며, ‘왕십리’는 /왕십니/를 거쳐 [왕심니]로 소리 난다. 물론 여기서 변화의 차례는 역사적 차례가 아니다. 즉 실제로 그 변화가 일어난 시간적 순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설명을 명료하게 하기 위해서 설정한 기술적 차례일 뿐이다.
앞의 받침이 ㄴ인 경우에는 뒤의 ㄹ이 살아남는다. ㄹ 이외의 받침 뒤에서는 ㄹ이 모두 ㄴ으로 변한다고 했는데, 이 경우에는 왜 ㄹ이 살아남는가? 뒤의 ㄹ이 ㄴ으로 변하기 전에 자신이 선수를 쳐서 앞의 받침 ㄴ을 ㄹ로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우리가 ㄴ항목에서 살폈듯, ㄴ 소리는 ㄹ의 앞뒤에서 ㄹ로 변하는 것이다. 그래서 ‘난로’는 [날로]로 소리 나고 ‘인력’은 [일력]으로 소리 난다. 그러니까 앞의 받침이 ㄴ인 이 경우 역시 앞의 받침이 ㄹ인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현대 한국어에서 ㄹ 소리는 ㄹ 이외의 받침소리 다음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ㄹ 이외의 받침소리 다음에는 ㄴ으로 변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앞의 받침이 ㄹ인 경우에도 ㄹ 소리가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비록 철자법에 반영돼 있지는 않지만, ‘래’나 ‘리’의 ㄹ이 혀끝소리(설단음 r)인 반면에, ‘날래다’나 ‘쏠리다’의 ㄹ은 혀옆소리(설측음 l)다. 몇몇 유럽어에서라면 철자법의 차원에서도 ‘r’과 ‘l’로 엄격히 구분되는 소리다. 결국 ‘날래다’나 ‘쏠리다’의 두 번째 ㄹ은 첫 번째 ㄹ에 동화되어 그 음질이 달라진 것이다.
부분적으로는 일본어의 영향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는 [r]과 [l]을 한 음소 안에 보듬고 있는 우리말의 특성 탓에, [l] 소리를 포함하고 있는 외국어들이 외래어로 정착될 때 그 [l] 소리가 [r]로 변하는 일이 흔히 있다. 예컨대 대중가요 듀엣 ‘클론’을 ‘크론’이라고 부르는 팬들도 드물지 않다. 그것보다는 드문 예이지만 그 역도 있다. 곧 외국어의 [r] 소리가 우리말에서는 [l] 소리로 정착되는 경우다. 《미메시스》의 저자 이름인 ‘아우어(르)바흐’(Erich Auerbach)는 ‘아우얼바흐’로, 본국에서 지니지 않았던 [l] 소리를 한국에서 지니게 되었다.
ㄹ과 홀소리 사이에 형태소 경계가 있을 때, ㄹ 뒤의 형태소가 ㅣ 모음이나 ㅣ 선행모음으로 시작할 경우엔 설측음 ㄹ 소리가 덧난다. 그래서 ‘할 일’은 [할릴]로 소리 나고, ‘볼 일’은 [볼릴]로 소리 나며, ‘서울역’은 [서울력]으로 소리 나고, ‘마실 약’은 [마실략]으로 소리 난다. 그러나 ㄹ 뒤의 형태소가 다른 모음으로 시작할 때는 설측음 ㄹ 소리가 그냥 연음해서 설단음으로 변한다. 예컨대 ‘입을 옷’은 [이브롣]처럼 소리 나고, ‘서울 안’은 [서우란]처럼 소리 난다.
‘빨래를 빨려고’에서 ‘래’의 ㄹ과 ‘려’의 ㄹ은 같은 소리가 아니다. 뒤의 ㄹ은 앞의 ㄹ과 달리 구개음이다, 비록 한국어에서는 그 두 소리가 동일한 음소이지만. 그 두 소리가 의미의 분화에 관여하고, 그래서 그 두 소리를 철자로 구분하는 언어도 있다. 예컨대 표준 스페인어(카스텔랴노)에서는 일반적인 설측음 ㄹ을 ‘l’로 표기하는 반면에, 구개음 ㄹ은 ‘ll’로 표기한다. 예컨대 ‘카스텔랴노’는 ‘castellano’로 표기한다.
ㄹ은 목적격조사 ‘를’의 준말로 사용된다. ㄴ이 보조사 ‘는’의 준말로 사용되듯이. 그래서 ‘나는 너를 사랑해’는 보통 ‘난 널 사랑해’라고 말한다. ‘그 아이를’은 ‘그 아일’이 되고, ‘걔를’은 ‘걜’이 되며, ‘나를’은 ‘날’이 되고, ‘우리를’은 ‘우릴’이 되고 ‘너희를’은 ‘너흴’이 되고 ‘박정희를’은 흔히 ‘박정흴’이 된다.
‘를’은 폐음절로 끝나는 체언 뒤에서는 ‘을’로 바뀐다. ‘그는 박정희를 싫어하고 김영삼을 좋아한다’에서처럼. 그러니까 ‘를’과 ‘을’은 동일한 형태소의 변이 형태들이다. 한국어에는 한 문장에 목적어로 보이는 ‘를/을’ 성분을 둘 이상 포함하고 있는 문장도 흔하다. 예컨대 ‘현대건설이 그곳에 아파트를 20동을 지었다’에서처럼. 이른바 이중 목적어문이다. 이때 ‘아파트를’과 ‘20동을’이 둘 다 ‘지었다’의 목적어인지는 확실치 않다.
‘20동을’이 목적어인 것은 확실하지만, ‘아파트를’을 일종의 주제로 보는 견해도 있다. 말하는 사람이 그것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진술을 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ㄹ은 또 서술격조사(지정사) ‘이다’의 관형형 ‘-일’의 ‘-이’가 모음 뒤에서 탈락한 형태이기도 하다. ‘워싱턴 시에 늘어서 있는 건 벚나물(벚나무일) 거야’ ‘걔가 사랑한 건 내가 아니라 널(너일) 거야’에서처럼. 여기서 보듯 한국어에서 ㄹ이 가장 생산적으로 기능하는 것은 모음으로 끝나는 용언 뒤에 붙는 관형사형 어미로서일 것이다. ‘갈(가다) 곳’ ‘밀(밀다) 사람’에서처럼. 또 ‘읽을 책’ ‘갚을 빚’ ‘먹을(먹다) 것’에서 보듯, 관형형 어미 ㄹ은 어간이 ㄹ 이외의 자음으로 끝날 때 일반적으로 ‘을’로 바뀐다. 매개모음 ‘으’가 들어가는 것이다.
이 관형사형 어미 ‘-를/을’은 추측, 예정, 의지, 가능성 따위의 속뜻을 지니면서 미래 시제를 나타낸다. ‘눈이 내릴 것 같네’ ‘그 일은 내가 맡을 생각이야’ ‘심부름은 걔가 할 거야’ ‘내일까지는 끝낼 예정이야’ ‘떠날 시간이 됐군’ 같은 예에서 그런 용법으로 쓰인 관형사형 어미 ㄹ이 보인다. 또 이 관형사형 어미 ㄹ은 시제 관념 없이 추측 또는 가능성만을 나타낼 수도 있다. ‘발 디딜 틈이 없네’ ‘더 이상 참고 볼 수 없어’ 같은 문장이 그런 용법의 ㄹ이 쓰인 예다. 위에서 예시한 ‘워싱턴 시에 늘어서 있는 건 벚나물 거야’의 ㄹ도 마찬가지다. 또 관형사형 어미 ㄹ은 시제 관념이나 추측 따위의 속뜻이 없이 그저 뒷말을 꾸미는 기능만을 할 수도 있다. ‘여자는 눈물을 흘릴 때가 제일 예쁘다’ ‘일할 사람을 구하고 있다’ ‘쓸 물건이 없다’ 같은 문장에서 관형사형 어미 ㄹ은 그저 뒷말을 수식하는 기능만을 한다.
이런 용법들의 관형사형 어미 ㄹ은 다른 말들과 붙어서 수많은 어미나 조사나 관용구를 만들어낸다. ‘내가 할게’의 ‘ㄹ게’, ‘나보다 걔가 더 예쁠걸’ 또는 ‘도서관 말고 서점에나 가볼걸’의 ‘ㄹ걸’, ‘걔가 내일 올까’의 ‘ㄹ까’, ‘영화를 볼까 말까’의 ‘ㄹ까 말까’, ‘때려칠까 보다’의 ‘ㄹ까 보다’, ‘더 말할 나위 없다’의 ‘ㄹ 나위 없다’, ‘그리 쉽게 될라고’의 ‘ㄹ라고’, ‘꽃이 필락 말락’의 ‘ㄹ락 말락’, ‘얼굴은 못생겼을망정 마음은 곱다’의 ‘ㄹ망정’, ‘이왕 할 바에야 빨리 해버려’의 ‘ㄹ 바에야’, ‘차라리 사표를 낼지언정 그 일만은 못 하겠다’의 ‘ㄹ지언정’, ‘힘은 약할지라도 뜻은 굳어야 한다’의 ‘ㄹ지라도’, ‘행여 물가에 갈세라 계속 감시하고 있다’의 ‘ㄹ세라’, ‘못생겼을뿐더러 마음보까지 고약하다’의 ‘ㄹ뿐더러’ 등 예를 들자면 한이 없다.
어간 끝의 ㄹ, 즉 ㄹ 받침은 그 말 뒤에 붙은 일정한 어미 앞에서 탈락한다. 구체적으로는 ㄴ, ㅂ, ㅅ, ㅗ와 관형형 어미 ‘-ㄹ/을’ 앞에서 탈락한다. 이런 ㄹ 탈락 현상을 ‘ㄹ불규칙활용’이라고도 하는데, 실상 어간이 ㄹ로 끝나는 용언은 정칙활용을 하는 법이 없고 모두 ㄹ이 탈락하는 불규칙활용을 하므로 ㄹ불규칙활용이라는 말이 커다란 의미는 없다. ‘살다’라는 동사는 ‘살아서’ ‘살고’ ‘살면서’ 같은 예에서는 어간을 유지하면서 활용하지만, ‘사네’ ‘삽니다’ ‘사시다’ ‘사오’ ‘살 때’(‘살’+‘을 때’) 같은 예에서는 ㄹ이 탈락한다. 체언 끝의 ㄹ도 복합어가 되면서 탈락하는 수가 있다. ‘바느질’ ‘소나무’ ‘따님’ ‘아드님’ ‘싸전’ ‘마소’ 같은 말들에서 그 ㄹ 탈락 현상이 보인다.
어간이 ㄹ로 끝나는 용언 가운데는 불구동사(불완전동사) ‘달다’가 있다. ‘붙이다’ ‘재다’ ‘뜨거워지다’의 뜻을 지닌 동사나 ‘꿀맛과 비슷하다’는 뜻을 지닌 형용사 말고,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 ‘차라리 나를 죽여 다오’ 할 때처럼 ‘주다’의 의미로 쓰이는 ‘달다’ 말이다. 이 ‘달다’는 억지로 만든 기본형일 뿐 이 동사가 ‘달다’의 형태로 쓰이는 일은 없다. 실제로 쓰이는 형태는 ‘달라’와 ‘다오’의 두 명령형뿐이다. 그래서 이 동사가 불구동사인 것이다.
어간의 끝음절이 ‘르’인 용언이 ‘-아/어’로 시작되는 어미와 어울리면 대체로 ‘르’의 ‘ㅡ’는 탈락하고 어미가 ‘-라/러’로 바뀐다. 예컨대 ‘오르다’ ‘흐르다’ ‘다르다’ ‘모르다’ ‘고르다’ ‘나르다’ ‘그르다’ ‘가파르다’ 같은 용언의 어간에 어미 ‘-아/어’가 붙으면 ‘올라’ ‘흘러’ ‘달라’ ‘몰라’ ‘골라’ ‘날라’ ‘글러’ ‘가팔라’ 같은 형태를 취한다. 이런 활용이 이른바 ‘르불규칙활용’이고 ‘르불규칙활용’을 하는 용언이 ‘르불규칙용언’이다.
르불규칙용언 가운데 ‘가르다’와 ‘자르다’는 의미가 비슷한 듯하지만 실은 거의 서로 대체되지 않는 다른 말이다. ‘가르다’는 칼처럼 날카로운 물건으로 물체의 복판을 타는 것을 의미한다. 갈라진 부분이 원래의 물체에서 분리돼 나가지 않아도 된다. 갈라진 부분의 비중이 서로 같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물체의 복판을 탄다는 의미가 있으므로 대체로는 비슷하다. 반면에 ‘자르다’는 길이를 가진 물체를 어떤 부분에서 동강이 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를 때는 반드시 칼과 같은 기구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미시마 유키오가 배를 갈랐다’라고는 해도 ‘미시마 유키오가 배를 잘랐다’라고는 하지 않는다. 또 ‘나뭇가지를 잘라냈다’라고는 해도 ‘나뭇가지를 갈라냈다’라고는 하지 않는다.
어간이 ‘르’로 끝나는 용언 가운데는 어미 ‘-어’와 어울릴 때 ‘ㅡ’의 탈락 없이 어미 ‘-어’만 ‘-러’로 바뀌는 활용을 하는 것이 있다. 예컨대 ‘이르다[到達]’ 같은 동사나 ‘누르다[黃]’ ‘푸르다’ 같은 형용사는 어미 ‘-어’와 어울릴 때 ‘이르러’ ‘누르러’ ‘푸르러’처럼 활용한다. 이런 활용을 ‘러불규칙활용’이라고 하고 ‘러불규칙활용’을 하는 용언을 ‘러불규칙용언’이라고 한다.
또 어간이 ‘르’로 끝나는 용언 가운데는, 드물지만, 르불규칙활용이나 러불규칙활용을 하지 않는 것도 있다. ‘치르다’ 같은 동사가 그 예다. 이 동사의 어간에 어미 ‘-어’가 붙으면 ‘치러’가 된다. 즉 모음 충돌을 회피하기 위해서 어간의 마지막 소리 ‘ㅡ’만 탈락될 뿐, 어미는 변하지 않는다.
유년기에 즐겨 부르던 동요 가운데 이런 것이 있었다: “리 리 리 자로/ 끝나는 말은/ 괴나리/ 보따리/ 댑싸리/ 소쿠리/ 유리 항아리.” ‘리’로 끝나는 말이 어찌 이것뿐이겠는가? 막걸리, 피리, 노고지리, 코끼리, 며느리, 계명워리, 미투리, 꼬투리, 자투리, 사투리, 까투리, 원추리, 제비추리, 제비초리, 회초리, 광주리, 둥우리, 봉우리, 몽우리, 정수리, 상수리, 독수리, 무수리, 뿌리, 혹부리, 달무리, 마무리, 변두리, 테두리, 누리, 무꾸리, 옆구리, 멍텅구리, 쇠똥구리, 개구리, 도토리, 오리, 닿소리, 홀소리, 보리, 장도리, 꼬리, 반짇고리, 머리, 허리, 정어리, 덩어리, 벙어리, 모서리, 먹거리, 우뭇가사리, 사금파리, 느타리, 돗자리, 잠자리, 동아리, 종아리, 병아리, 송사리, 싸리, 고사리, 발바리, 키다리, 아주까리, 미나리, 개나리, 왜가리, 대가리 등 들자면 한이 없다. 위 노래의 가사를 “리 리 리 자로 끝나는 말은/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네 마리/ 대여섯 마리”로 ‘썰렁하게’ 바꾸어 불렀던 기억도 있다.
‘리’로 끝나는 말 가운데 내가 특히 좋아하는 말은 ‘거리’다. 그 ‘거리’의 이미지는 내게 어떤 연애의 이미지이고, 내가 그 이미지를 얻은 것은 김수영의 시 한 편으로부터다: “별별 여자가 지나다닌다/ 화려한 여자가 나는 좋구나/ 내일 아침에는 夫婦가 되자/ 집은 산 너머가 좋지 않으냐/ 오는 밤마다 두 사람 같이 貴族처럼/ 이 거리 걸을 것이다/ 오오 거리는 모든 나의 설움이다.”
ㄹ 받침을 지닌 말들은 밝고 가벼운 느낌을 준다. 방실방실, 둥실둥실, 몽실몽실, 산들산들, 부풀부풀, 보풀보풀, 재잘재잘, 종알종알, 졸졸, 간질간질, 반질반질, 넘실넘실, 새실새실, 꿈틀꿈틀, 보슬보슬, 흔들흔들, 한들한들, 야들야들, 매끌매끌, 빙글빙글, 싱글벙글, 둥글둥글, 서글서글, 생글생글, 솔솔, 술술, 훨훨, 훌훌, 너울너울, 나울나울, 옹알옹알, 뭉클뭉클, 깔깔, 나풀나풀, 새살새살, 데굴데굴, 까불까불 같은 의성어, 의태어들이 그렇다. 날다, 널다, 달다, 덜다, 털다, 알다, 돌다, 놀다, 걸다, 갈다, 뒹굴다, 여물다, 까불다, 부풀다, 몰다, 풀다, 여물다, 영글다, 거닐다, 노닐다 같은 동사들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죽다’라는 말의 반대편에 서 있는 ‘살다’라는 말이 그렇다. 또 ‘닫다’라는 말의 반대편에 있는 ‘열다’라는 말이 그렇다.
ㄱ이 죽음의 소리라면 ㄹ은 삶의 소리다. ㄷ이 닫힘의 소리라면 ㄹ은 열림의 소리다. 칼 포퍼에 따르면 플라톤과 마르크스는 “열린사회의 적”들이다. 그들의 생각이 실천으로 옮겨지면 사회는 필연적으로 닫힌다.
ㄹ은 액체성의 자음이다. ‘흐르다’와 ‘따르다’에도 이미 이 ㄹ이 있다. 그것은 흐른다. 술이 철철 흐르고 물이 졸졸 흐르듯. 바슐라르에 따르면, 아침의 물속에서는 모든 것이 새롭다. 파르르 떨리는 물의 생명만이 모든 꽃을 새롭게 만든다. 은밀한 물의 가벼운 한 가닥 떨림도 꽃의 아름다움이 터지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
고려속요 <청산별곡>은 ㄹ을 타고 흐른다:
그야말로 ㄹ의 향연이라고 할 만하다. 유랑민의 이 서글픈 노래는 ㄹ 소리로 가멸차다. 소리가 의미를 압도한다. <청산별곡>은 흐르고 흐르고 흐른다.
ㄹ 받침을 지닌 동사 가운데는 ‘말다’도 있다. ‘종이로 담배를 말다’ ‘콩나물국에 밥을 말다’의 ‘말다’도 있지만, 부정문을 만드는 조동사 ‘말다’도 있다. ‘떠들지 말아라’ 할 때의 ‘말다’ 말이다. 우리말에서 부정문은 서술어의 어간 뒤에 ‘-지 아니하다(지 않다)/-지 못하다’를 붙이거나, 서술어의 앞에 ‘아니(안)/못’을 붙인다. ‘나는 간다’의 부정문은 ‘나는 가지 않는다’이거나 ‘나는 안 간다’이다. 그러나 명령문이나 청유문에는 동사의 어간 뒤에 ‘-지 말다’가 붙는다. ‘떠들어라’의 부정문은 ‘떠들지 않아라’가 아니라 ‘떠들지 말아라’이고 ‘조용히 하자’의 부정문은 ‘조용히 하지 않자’가 아니라 ‘조용히 하지 말자’다.
‘말다’는 명령이나 청유 외에도 요청이나 희망을 나타내는 문장에 사용될 수 있다. 이때에는 ‘-지 않다’ 형과 ‘-지 말다’ 형이 둘 다 허용된다. 예컨대 ‘네가 여기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를 ‘네가 여기 오지 말았으면 좋겠어’라고 고쳐 말할 수도 있다. ‘말다’는 동사 어미 ‘-고’ 아래에 쓰여서 그 동작이 결국 이뤄진다는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 두 사람은 결국 헤어지고 말았어’의 ‘말다’가 그것이다.
ㄹ의 액체성을 드러내는 말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ㄹ 받침을 가진 말 가운데 ‘불알’이 있다. ‘불알’은 ‘불’과 ‘알’의 합성어다. ‘불’은 불알을 싸고 있는 주머니, 즉 음낭을 뜻한다. 그 ‘불’은 어쩌면 물질이 열과 빛을 내면서 타는 현상으로서의 ‘불’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과연 그럴까?). ‘불알’은 성기와 관련된 고유어 가운데 금기의 정도가 비교적 약한 말이다. ‘불알친구’라는 말도 흔히 쓴다.
ㄹ족(族) 말에는 ‘별’도 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詩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라고 읊은 것은 청년 윤동주였다. 김광섭의 별은 생텍쥐페리적 ‘길들임’을 거친 별이다. 그 별은 그러므로 낭만적 사랑의 별이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나해철의 별은 다른 자아이자 생명의 담지자이자 벗이자 동행자이자 그림자-존재이자 수호성이다: “한겨울 마른 나뭇가지 끝에도/ 주먹만큼한 별들은 매달려/ 외로워/ 외로워 말라고/ 파랗게 빛나는데/ 아직은 심장에 따뜻한 피 흐르는/ 내 가슴과 어깨 위에/ 어찌 별들이 맺혀 빛나지 않겠는가/ 사람들아 나를 볼 때도/ 겨울 나무를 만날 때도/ 큰 눈에 어린 눈물보다 더 큰/ 별이 거기 먼저 글썽이고 있음을 보라.”
‘입술’ 역시 ㄹ족의 식구다. ‘입’의 ㅂ이 막아놓은 곳을 ‘술’의 ㄹ이 틔워주고 있다. 어떤 소설가는 여자의 입술을 술잔에 비유하기도 했다. 물론 ‘입술’의 ‘술’이 마시는 술은 아니다. 비록 “술은 입으로 들고/ 사랑은 눈으로 든다”는 시구도 있지만. ‘입술’의 ‘술’은 기원적으로 ‘눈시울’의 ‘시울’과 같다. “만져보는 거야/ 네 입술을/ 네 입술의 까슬함과 도드라짐/ 한숨과 웃음/ 만져보는 거야.”
그러니까 비록 한국어에 ㄹ로 시작하는 말은 없을지라도 ㄹ을 포함하는 말은 무수히 많고, 그 말들은 흔히 ‘흐름’이라는 ㄹ의 본성을 음성상징으로 간직하고 있다. 예컨대 고을, 마을, 가을, 겨울, 이슬, 구슬, 겨를, 들, 뜰, 부들, 버들, 결, 딸, 아들, 비늘, 미늘, 그늘, 하늘, 바늘, 마늘, 노을, 글월, 풀, 넌출, 날줄, 그물, 망울, 물방울, 눈시울, 밀기울, 여울, 개울, 저울, 거울, 꽃술, 관솔불, 덤불, 수풀, 샘물, 우물, 나물, 솔, 조약돌, 닮은꼴, 물별, 깃털, 봄철, 설, 널, 등걸, 산비탈, 말미잘, 밀알, 흰쌀, 부챗살, 빛발, 꽃말, 보름달, 한글날, 자갈, 맛깔 같은 말의 ㄹ은 얼마나 막힘없이 흐르는가? 서울과 시골의 ㄹ도 그렇다.
꼭 받침 ㄹ만 흐르는 것은 아니다. 스르르, 사르르, 까르르, 뱅그르르, 조르르, 함치르르, 찌르르, 번지르르, 반드르르, 야드르르, 보그르르, 가르르르, 와르르, 데구루루, 후루루 같은 의성어, 의태어에서 ㄹ은 흐른다. 의성어, 의태어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ㄹ은 말소리에 윤기를 부여한다. 마루, 나루, 가루, 시루, 그루, 노루, 머루, 벼루, 하루, 이레, 여드레, 아흐레, 자루, 모루, 신기료, 가로, 세로, 찔레, 민들레, 물레, 둘레, 켤레, 얼레, 글치레, 지레, 물푸레나무, 손수레, 써레, 사레, 사래, 두레, 모래, 모레, 겨레, 강강술래, 빨래, 진달래, 도르래, 고무래, 노래, 타래, 고래, 아래, 나래, 가래, 마누라, 소라, 물보라, 자라, 나라 같은 말들에서 ㄹ은 흐른다. 접미사 ‘-스레’는 ‘-스러이’의 준말이다. 그러니 ‘-스럽게’의 뜻이다. 미련스레, 퉁명스레, 억척스레, 변덕스레, 뻔뻔스레, 익살스레, 거추장스레, 우스꽝스레 같은 말에 그 ‘스레’가 보인다.
ㄹ은 한글 자모의 네 번째 글자다. ‘넷’이라는 수는 계절과 세계, 곧 시간과 공간을 상징한다. 한 해는 봄·여름·가을·겨울 넷으로 나뉘고, 세계는 전·후·좌·우 넷으로 나뉜다. ‘넷’이라는 수는 사지(四肢)서 보듯 육체적이고, 사원소(四元素)에서 보듯 물질적이며, 사방(四方: 동서남북)에서 보듯 대지적이다. 세계는 수직적으로는 지옥·땅·하늘 셋으로 나뉘지만, 수평적으로는 전·후·좌·우 넷으로 나뉜다. ‘넷’은 안정의 수이자, 네모지고 입체적인 세계의 수이다. ㄹ 글자의 꼴도 각져 있다. 그러나 ㄹ의 소리는 그렇지 않다. ㄹ은 그저 흐르고 흐른다. ‘흐르다’에도 ㄹ이 있다.
고종석 <언문세설> 연재 4화 - ㄹ(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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