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발레리 신도니,
내가 언제나 기다란 지팡이를 쓰는 건 아니다.
이따금 지팡이가 필요 없을 때가 있다.
옆집에 사는 사촌 로저네 갈 때는 지팡이를 쓰지 않는다.
걔네 집엔 하도 많이 가봐서 길을 훤히 안다.
왜 기다란 지팡이를 쓰냐고?
잘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뿐이다.
"나 집에 갈래!"
"왜?"
"네가 안 보이니까!"
"에이, 농담하지 마. 넌 볼 수 있잖아."
그러나 나는 이미 비틀거리면서 집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로저가 쫓아오며 말했다.
"야, 발레리! 눈멀었냐고 한 거 농담이었어. 이리와서 같이 놀아."
"됐어!"
나는 집으로 뛰어 들어가 문을 쾅 닫아 버렸다.
"눈이 멀게 되는 건가요, 선생님?"
선생님이 천천히 말했다.
"그렇지 않길 바라야지. 그렇게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보자."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다니는 특별학급이 떠올랐다.
거긴 가기 싫었다.
우리 반 친구들이랑 존슨 선생님이 너무 보고 싶을 테니까.
"이 분은 수자 선생님이시란다.
선생님은 잘 보지 못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특수교육 교사셔.
네가 공부하는 것을 도와주시고, 길을 잃거나 다치지 않고 혼자서 다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실 거야."
그럴 듯한 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실로 들어선 나에게 수자 선생님이 무언가를 불쑥 내밀었다.
기다란 지팡이였다.
당장에 속이 상해서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싫어요! 그딴 건 필요없어요.
그건 눈먼 사람들이 쓰는 거잖아요. 난 장님이 아니에요. 필요없다고요!"
수자 선생님이 내 손에 지팡이를 쥐어 주며 말했다.
"긴 지팡이는 긴 팔과 같단다.
지팡이로 아래에 뭐가 있는지 알아내면 부딪치지 않을 거야. '아야'하는 소리를 자주 내지 않아도 되고."
"빼빼 마른 긴 팔로요?"
내 말에 선생님이 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알겠니?
지팡이 여행을 한 거야.
훌륭한 지팡이 여행자가 되기는 쉽지 않아.
이제 시끄럽지도 어색하지도 않게 지팡이를 쓰는 법을 배워 보자꾸나."
그 뒤에 나는 지팡이를 집으로 가져갔다.
아이들이 나를 보고는 지팡이 쓰는 법을 알고 싶어 했다.
나는 시범을 보여 주었다.
모두들 긴 막대를 구해 와서는 걷는 연습을 했다.
누구보다 로저가 가장 잘했다.
그 아이는 뽐내며 잘도 걸었다.
다른 친구들처럼 잘 볼 수가 없어서 내 마음이 아프냐고?
그래, 그렇다.
하지만 내 마음이 가장 아플 땐,
내가 옆에 없다는 듯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나에 대해 말할 때다.
나는 지금까지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처럼, 앞으로도 더 많은 것을 배울 것이다.
수자 선생님 말씀이,
내가 배우고 있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판단하는 법이랬다.
다른 사람들도 그걸 배우면 정말 좋겠다.
그러면 그 사람들도 보는 방법이 무지 많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
눈으로 보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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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책.
용기를 주는 책,
부끄럽지 않은 책.
특별한 것을, 아주 평범하게 가르쳐주는 책.
그래서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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