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여왕이란 건, 이 세계를 지키는 상징적인 여신입니다.
왕가의 세습이 아닌, 신의 선택을 받은 소녀들은 그 임무의 소중함을 알아야 해요.
그리고 이 세계의 소중함도.
결투 신청이다, 루시아!
여왕 따윈 귀찮아서 생각이 없었는데--- 이 몸이 니 몫의 왕관을 가져가겠다!
왜 갑자기 여왕이 되겠다고 한 거지?
바라는 게 하나 있으면 가진 걸 하나 버려야 해.
그게 공평한 세상의 이치.
당신이 찾는 빛의 여왕의 로드입니다.
좋았어. 이걸 가져가면 내가 여왕님이 된다 이거지?
좋아! 나랑 같이 가자, 여왕의 지팡이!
여왕의 로드를 가진 자여.
그대, 나와 약속을 하지 않았나?
바라는 걸 갖게 하면 네가 가진 걸 하나 버리겠다고.
세즈루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소녀, 너는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소년은 근본적으로 너와 다른 존재.
빛의 여왕 후보인 너완 결코 어울려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역시 저 아이는 --- 마족인 것 같구나.
넌 절대 여왕이 될 수 없어.
왜냐면, 빛의 신의 최고 사제이자 여왕 심판관 중 하나인, 나, 유리 샤우어가 결사 반대할 테니까.
소년과 소녀는 계속 같이 있어도 되는 거겠지요?
그 언젠가부터 그랬던 것처럼.
그 곁에서--- 같은 꿈을 꾸어도 되는 거겠지요?
어서 오세요. 쥰 나르시크 양, 세즈루 네이 군.
빛의 신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바라는 것은 한 가지.
지키고 싶은 것도 한 가지.
그 작은 열망을 소중히 품고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부디 걸음을 멈추지 않게 해 주세요.
대체 그 녀석은 어디서 만난 거야? 설마 마계에서 훔쳐온 건 아니겠지?
우리 집 뒷산에서 주웠어. 너무너무 슬프게 울길래--- 내가 데려왔어.
괜한 짓을 했군. 여왕 후보 주제에.
한번도--- 문제된 적 없었어.
세즈루는 세즈루, 그대로도 다들 좋아해주는 걸.
내가 지킬 거야--- 아무도 못 건드리게 꼭 여왕님이 될 거야.
그래서 마족과 같이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만들 거야.
하지만--- 마왕이 요구한 아이야. 평범한 마족일 리가 없어.
모른 척해도 괜찮은 걸까?
처음엔 여기 오는 것도 싫어했는데.
하지만 그 녀석은 일단 노리는 게 있으면, 앞만 보고 달려가거든.
언제나 그렇게--- 저만치 가버리니까---
만약에--- 쥰이--- 정말로 여왕님이 되면--- 궁전에 가서 살게 되는 건가?
헤어지는 거야?
하지만--- 쥰은 원하는 게 있으면 손에 넣고 마니까--- 어쩌면 정말로 여왕님이 되어버릴지도 모르겠어.
그럼, 나는 쥰이 만큼은 기쁘지 않겠지만 그래도 축하해줘야겠지?
아마도--- 그래야겠지?
빛의 여왕이란--- 단순한 국가원수가 아닙니다.
그것은--- 어둠의 일족과 대비되는 빛의 인간계의 어머니이시며,
푸른 대지의 보호자, 그리하여 눈부시고 성스러운 그녀입니다.
마족의 칼을 받는 세즈루.
당신에게선, 제가 아는 인간 여자의 향기가 느껴집니다.
당신에게 검을 가르치고, 마음을 가르치고, 인간을 가르친 여자.
그리고--- 그녀의 작은 소녀.
너무나 소중해서 자작나무 아래에 숨겨두었던 작은 아이 하나.
요컨대 걸리적거리는 건 그녀인가요?
나는--- 얼마든지 상대해줄 수 있어.
왜 내게 이러는진 모르겠지만, 나는 얼마든지 당신들을 상대해줄 수 있어.
하지만 쥰이까지 건드리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어. 모조리 베어버리고 말겠어.
나는 언제나 니가 있어 괜찮았다.
니가 있는 풍경과 내가 아는 풍경 속에서--- 내가 아는 사람들과 내가 아는 미소 속에서---
나는 내가 되고 싶은 나를 수줍게 꿈꿔본다.
그러니까--- 지금은--- 울지 않아도 되는 거야--- 지금은---
조금만 더--- 나는 내가 아는 나인 채로 여기에 있고 싶은 거야.
누군가를 잃어버렸다.
그게 누구였는진 기억이 안 나지만, 굉장히 슬펐던 것 같다.
그래서 목이 터져라 울고 있었다.
그런데--- 모르는 여자애가 그런 날 보고 같이 울어줬다.
도대체 그 새벽부터 잠옷차림으로--- 왜 거기 있었는지, 언제부터 있었는지---
정말 서럽게 울어줬다. 별 수 없이 달래줬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더니, 어이없게도--- 고마워, 라면서 웃었다.
근데 넌 누구니? 난 쥰이라고 해.
응--- 난--- 세즈루---
여기서 참고 기다리면 잃어버린 그 사람을 다시 만날 거라고 생각했다.
확실히 나는, 그 숲에서 이상한 여자 아이를 만났지만---
몇 번의 계절이 바뀌고, 몇 번의 열사와 몇 번의 북풍을 함께 하면서--- 함께 커가면서---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유리, 네게 물어볼 것이 있다.
그 소년--- 어쩐지 낯이 익다. 게다가 그 빛--- 그건 여왕의 빛.
허나 그건, 현 여왕의 힘은 아니다.
한 세대에 두 명의 여왕은 없어. 그럼, 새 여왕의 등장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인가?
허면, 어째서 소년에게서 그 힘이 나타나는 거지?
그대는 답할 수 있는가? 여왕 심판관, 유리 샤우어.
쥰 나르시크. 네게 있어 아름다운 세상이란 어떤 거지?
루시아는 바보구나. 내가 태어난 이상, 이미 아름다운 세상인 걸.
그리고 그 아이가 내 곁에 있는 이상---
유리, 당신은 왜 안 돌아가고 아직도 여기서 어슬렁거리는 거야?
난 말야. 니가 가진 여왕의 로드를 가지고 돌아갈 거야.
그건 내 거야.
아아, 여왕의 것이지. 즉, 지금 계신 폐하의 소유한 뜻이야. 넌 그걸 너무 쉽게 가졌단 생각은 안 해봤냐?
아니, 오히려 마왕이 네게 넘겨줬다고 봐도 돼.
그에게 필요없었던 데다가, 애초에 그는 다른 걸 원했던 거야.
마족들이 로히니의 결계 안까지 무리해서 들어왔다. 단지 소년 하나 때문에.
마왕과 거래한 건 너야.
넌 어떤 식으로든 대가를 치뤄야 할 거야.
뭐지? 저 녀석은 대체 뭐야?
그러니까--- 결국 너는--- 세즈루를 위해서라면 뭐든 한다는 거냐?
그럼--- 그 녀석이 없어지면--- 너는 어떻게 되는 거냐?
아냐--- 이 녀석은 아니야. 난 이미 차기 여왕을 봤어.
그럼, 이것도 그냥 로드의 힘인가? 아니면---
참, 내가 얘기했어?
신성기사단의 적의 기사장이라는 여자랑 마주친 거. 날 너희 집 뒷산에 두고 간 사람.
어릴 때, 세즈루 니가 항상 기다리던 그 사람?
응.
너, 신성기사단이 어떤 곳인지 아는 거야?
응. 마계에 대항해서 인간계를 수호하는 상징이기도 하다고 하더라.
그래서 세즈루 너 거기 들어갈 거야?
응. 그래서 넌 여왕님이 되고, 난 기사님이 되면--- 쥰이는 내가 지켜줄게.
헤--- 좋아. 세즈루라면 믿을 수 있으니까.
난 여왕님이 될 거야.
꼭 그럴 거야.
그러니까--- 세즈루 너도 마음껏 꿈을 꿔.
그렇게 우리 같이 꿈을 꾸고--- 우리 같이 날아오르는 거야.
같이 꾸는 꿈의 깊이만큼--- 나는 더 강해질 거야--- 더 자라날 거야.
주목해주십시오. 새로운 여왕 후보 1순위이신, 쥰 나르시크 양입니다.
할머니--- 빛의 궁전에서도 그곳과 같은 별이 떠요.
나무 끝의 향기에 취하고, 또 언제나처럼 쥰이와 함께 있지만--- 어쩐지 저는 심심해요.
심심하지만 오늘은 중요한 날이고, 쥰이는 활짝 웃고 있으니까--- 그걸로도 괜찮아요.
당신은 여왕 후보 1순위입니다.
그 말은 즉, 혹시라도 지금 제게, 무슨 변고가 생긴다면, 바로 당신이--- 여왕이 된다는 뜻입니다.
물론 빛의 여왕은 신이 아닙니다. 하물며, 당신 뜻대로 움직여주는 세상도 아니지요.
그래도 인간들 중에선 대장이시잖아요.
그럼, 미래의 대장님은 어떤 각오이신가요? 당신은 부하들을 위해 어디까지 자신을 포기할 수 있죠?
--- 다 같이--- 행복하게 잘 살면 되잖아요.
그런 세상은 없습니다.
왜요?
글쎄요--- 왜 일까요?
이상하네--- 분명히 저 애(루시아)가 차기 여왕으로 보이는데--- 왜 자꾸 저 녀석(쥰)이 눈에 밟히지?
뭐, 모른 척하고 있으면, 루페르의 딸이 여왕이 될 거고, 어차피 이권의 향방 따위 내 알 바 아니지만---
한 세대에 두 명의 여왕은 없다. 그런데도 두 명이 보인다는 건--- 역시--- 그런 건가?
쳇. 귀찮게 됐어. 엮이는 건 귀찮은데---
유리 형은 그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래도 저는 신성기사단에 꼭 들어가고 싶어요.
그럼, 적(赤)의 기사는 하지 마.
일단 그 여자는 적의 기사장이니까 거기만 피하면 그럭저럭 괜찮겠지.
하지만 솔직히, 너한텐 어떤 것도 권하고 싶지 않다.
아니, 되지 않아도 될 거야.
어차피 그 녀석은 여왕이 못 돼. 그러니, 세즈루 너도 사서 고민할 거 없어.
그런 거지? 같이 있고 싶다는---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있는 건 좋아. 그러니까, 그건 괜찮아.
아직 오지도 않은 시간이야.
네 사심 없는 맑은 눈으로 가능성 하나를 엿봤다고 삼라만상에게 사과할 건 없어.
유리, 요즘도 밤에 잘 못 자? 꿈이 괴롭혀?
응.
손끝으로 흐르는 우주--- 윗분들은 세기의 눈이라고 난리들이만, 난 필요 없다고 생각해.
필요 없어?
필요 없어. 봐, 니 잠만 방해하잖아. 내 기분만 잡치고.
앞날 같은 건 몰라도 돼. 인간은 어떻게든 앞으로 나가며 살게 돼있어. 그러니까 지금, 여기서 잘 살면 돼. 이런 능력은 조그만 니 머리만 복잡하게 만들잖아. 알겠니, 유리?
지금 여기서 행복해져. 그럼 돼.
볼 수 있지 않나?
보지 않는다.
스스로를 부정하고 싶은 거니?
그럴지도 모른다. 실제로도 그러길 바랐다.
스스로가 틀렸다고 말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웃을 수 있었던 그때처럼---
달콤한 위로에 속아넘어가도 좋았다.
여왕이 분명해 보이는 여자 아이 하나와, 또 다른 여자 아이 하나.
어쩌면 나는 두 세대의 여왕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게 가능하면 이유는 하나.
차기 여왕의 임기는 굉장히 짧을 것이다.
하지만, 빛의 여왕의 임기는 종신제.
어느 틈엔가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유성 같을--- 그리고 아마도,
그 유성이 네가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당신더러 바보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당신더러 돌아가라고 했던 거야.
흐르는 강물을 거스르는 당신은 너무도 작았지만, 내게는 너무도 아름다웠어.
쥰은 세즈루라면 껌뻑 죽으니까. 어쨌든 좋겠어, 누구는. 어마무지하게 사랑받고 계셔서.
그 대상이 좀 난감하긴 해도. 널 위해서라면--- 목숨도 내놓을 걸.
왜요?
왜--- 라니? 그 정도로 좋아한다는 거지, 뭐가 왜야?
목숨 같은 건 필요 없어.
누구나 그렇게 자라듯이,
미워했다가, 좋았다가, 또 잊어버리고 싸워대곤 했지만---
이제는 다 커버려서, 그런 일은 언제부턴가 잊어버렸지만--- 좋아해? 나를?
나를 좋아해? 니가? 나를?
배신자.
뭐지? 방금 그건? 그건 누가 한 말?
누군가--- 말을 거는 것 같아--- 기분 나빠--- 어쩐지--- 불안해.
누군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아---
특별히 용기를 내서 했던 말은 아니었다.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짓궂게 묻는 것처럼 툭 튀어나온 말.
나 좋아해?
아무 말 없이 공허했던 자색의 아름다운 눈을 보며 맹세했다.
그만 두자.
이대로도 괜찮으니까.
나는 괜찮아. 닿지 못한 그 말이 어딘가로 부유해 버려도--- 슬프지 않아.
세즈루!--- 아름다운 우리의 왕이시여.
세즈루랑만 있으니까--- 너무 좋아.
정말?
응.
여왕님이 그런 말하면 안 돼.
응.
그리고, 둘이서만 살아선 안 돼.
--- 응. 그러니까, 세즈루한테만 비밀이야.
나는 누구일까?
아니--- 나는 무엇일까?
그때 처음--- 다르다는 걸 알았다.
어쩌면 널 처음 만났던 날에도, 나는 널 마중나간 건지도 몰라.
행도지침은,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작은 어깨를 품 안에 가득 안기.
그리고 포인트는 스마일.
그 날의 일은 후에 할머니가 세즈루의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그리곤 나를 불러 말했다.
물고기에게 하늘을 나는 법을 가르쳐도, 물고기는 물 밖에선 살 수 없다고.
하지만, 세즈루는 물고기가 아니다.
세즈루는 세즈루. 쥰이는 쥰이.
우리는 같이 하늘로 날아오를 거다.
같이 날 수 없다면--- 같이 걸어가면 된다.
앞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면 된다.
그게 나의 결론이다.
세상은 서로 다른 존재들로 가득해서 오히려 충만하다.
나는 그런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