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나가시마 하루나는 중학교까지 열혈 운동소녀였다.
서클 활동에 주력하는 학교의 소프트부 에이스로, 3년 간 아침부터 밤까지 필사적으로 연습했다.
노력하는 성격이라, 그런 생활도 나름대로 좋았다.
소중한 친구들도 생겼고, 괴로운 연습도 승리의 기쁨과는 비할 바가 못 됐다.
하지만 또 한 가지, 연습이 끝나고서 순정만화를 읽는 것도 삶의 보람이었다.
사랑이란 분명 굉장히 , 굉장히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결심한 것이다.
중학교에선 모든 것을 서클 활동에 걸었으니까, 고교에선 사랑에 모든 것을 걸자고!
고교데뷔 !!!
고등학생이 되면 자동적으로 모두 남자친구가 생기는 줄 알았으나,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난 노력하지 않으면 무리라는 것을 알았기에, 열심히 공부해서,
어쨌든 난생 처음으로 헌팅을 기다려보고 있는데---
한 명도 안 걸어왔단 말야?
역시 독학으론 한계가 있는 게 아닐까?
소프트볼도 좋은 지도자가 없는 학교는 실패하잖아.
그러니까 하루나에게 어떻게 하면 남자들이 끌리는지 가르쳐줄 코치 같은 사람이 있으면 되겠네.
코치?
나의 감이 지금이라고 말하고 있어. 저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어.
기회는 여러 번 오지 않아.
나한테 인기 비결을 코치해주겠어? 난 남자들에게 인기 있고 싶어! 사랑을 해보고 싶거든!
사람 하나 구하는 셈치고--- 부, 부탁이야!
여자는 금세 좋다거나 싫다거나 하면서 제멋대로 우울해져서 울잖아.
절대로 싫어. 여자 같은 건 딱 질색이야.
어제는 미안했어. 오빠가 심한 말을 해서. 오빠는 확실히 인기가 많지만, 뭐랄까?
말하는 것도, 말투도 아주 가차 없어서, 다가오는 여자애들을 하나같이 상처 입히고 울려버려.
하지만 아사미는 하루나를 도와주고 싶어.
너 말이야. 왜 그렇게 남자한테 인기를 얻고 싶어 하는 거야?
남자친구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어디서? 어떤 식으로? 어떻게 좋은데?
거기까지 깊이 생각하진 않았어---
연애라고 좋기만 한 건 아니야.
요우 선배 말대로 좋기만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
괴로운 일도 있을 테고, 울 때도 있을 거야.
하지만 분명 열심히 하면, 그래도 후회는 안 할 거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있는 힘껏 해보고 싶어!
향수 너무 뿌렸어. 옷도 너무 오버야. 너무 과해서 말 걸기 힘들어. 전체적으로 무리야.
코치해 줄게.
정말?
응. 그럴 맘이 생겼어. 울지 마. 짜증나니까.
이 말만 해두지. 난 귀찮은 건 딱 질색이야. 그러니까 절대로 날 좋아하지 마! 그것만 지키면 코치해 줄게.
요우! 고마워!
너 말이야--- 얼굴은 보통이지만, 웃는 얼굴은 괜찮은데? 그 얼굴로 승부해보지?
인기인의 길은 생각보다 험난하지만 훌륭한 코치와 만났습니다.
있는 힘껏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는 전혀 인기가 없었으니까,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그렇게 많은 일이 있었다면, 상처받겠지? 슬프겠지?
요우는 가차 없을지도 모르지만, 요우는 차가운 사람은 아니잖아?
그런 생각이 드는 건--- 내가 순정만화를 너무 많이 본 걸까?
나는 요우 같은 경험은 할 수도 없겠지만, 그래도 연애를 하면 조금 정도는 그런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사랑해서 알고, 그래서 요우의 기운을 북돋아줄 수 있으면 좋겠다.
네가 어긋난 원인이 바로 이거야! 인기 비결만 모아봤자 좋은 게 아니라구!
콜라랑 우롱차랑 오렌지 주스를 섞어서 마시면 메슥거리잖아! 그런 거라구!
아무튼, 넌 아사미 같은 옷은 안 어울리니까.
넌 피부가 까매서 연한 색은 안 어울려.
울퉁불퉁해서 하늘하늘한 소재도 안 어울려. 그리고 리본도. 안 어울리니까 금지.
아--- 위험해! 빨려 들어가는 줄 알았어!
드디어 헌팅에 성공한 하루나.
그러나---
요우는 말할 땐 가차없지만 거짓말 같은 건 안 해.
날 속이지 않아. 내가 이상한 차림을 해도, 불평하면서도, 그래도 계속 함께 걸어 다녀줬어.
그런데도, 미안해, 요우. 요우를 안 믿어서 미안해.
'이제 몰라'라고 했으면서, '맘대로 해'라고 했으면서, 와줬어.
요우, 나--- 남자 보는 눈은 전혀 없지만, 코치를 보는 눈만은 있는 것 같아.
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 넌 어떤 타입의 남자가 좋아? 지금까지 누군가 좋아해본 적 없어?
응? 없어.
괜찮다고 생각한 적 정도는 있을 것 아냐?
없어.
뭐? 한번도? 그럼, 굳이 말하자면 좋아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타입인 거냐?
그럴지도 몰라! 좋아해주면 기쁘잖아!
바보! 아무나 좋다는 거야? 또 이상한 녀석한테 걸린다.
요우는, 아주 좋은 코치지만--- 코치가 좋아도 학생이 나쁘면,
노력하면 보답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난 재능이 없는 게 아닐까? 나를 좋아해줄 사람이 정말 있을까?
무슨 소리야? 하루나는 좋은 사람이잖아! 하루나랑 함께 있으면 재미있다구.
그렇게 생각할 녀석은 꼭 있을 거야!
요우의 친구인 후미에게 다정한 말을 듣고 가슴이 두근거려지는 하루나.
요우--- 누군가에 대해서, 이 사람과 있으면 즐겁다든가, 이 사람과 있으면 기쁘다든가,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면--- 그건 사랑일까?
그렇지 않을까?
요우--- 나--- 사랑을 한 것 같아.
후미지?
어떻게 알았어?
정말 알기 쉬운 애라니까. 근데 후미의 어떤 점이 좋아?
--- 굉장히--- 좋은 사람이잖아?
고백해도 돼. 정말로 후미를 좋아하는 것 같으니까 말이야.
정말? 그렇구나. 이런 기분이 사랑이구나. 처음 알았어.
아사미, 저기--- 후미 선배 말인데--- 왜 사귀기 전에 아무 말도 안 해줬어?
내가 왜 하루나한테 말해야 하는데?
하지만 아사미, 내가 후미 선배 좋아하는 거 알고 있었잖아.
하지만 분위기란 것도 있고, 먼저 사귀자고 한 건 그쪽인걸.
그랬구나, 하지만--- 역시 한마디만 해줬더라면, 제대로 이야기 해서---
이건 시합이 아니야, 하루나.
그리고 만약 연애에 규칙이 있다고 해도, 이건 위반이 아니지 않아?
후미 오빠가 날 좋아했다는 것일 뿐이잖아.
요우, 나--- 전에 요우의 비즈 사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도 연애를 하면 요우의 마음의 아픔이라든가,
연애 때문에 괴로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역시 상상한 거랑 현실에서 직접 느끼는 건 다르네.
굉장히 슬퍼.
하지만 난 포기하지 않을 거야.
방금 실연했지만, 지금도 연애하지 말걸, 그랬다는 생각은 안 들어.
다음엔 좀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노력할 테니까, 잘 부탁해!
울어도 돼. 이럴 땐 울어도 되는 거야.
내가--- 정말로 후미보다 멋진 남자를 찾아 줄게.
처음으로 사랑을 해서, 처음으로 사랑의 즐거움과 기쁨을 알고,
처음으로 사랑의 슬픔과 괴로움을 알고,
처음으로 사랑에 울었다.
괜찮아. 어제보다, 생각보다 괴롭지 않아.
언제까지나 의기소침해 있지 말자.
가슴이 아프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젠 앞으로 걸어 나가자.
앞으로 걸어 나가자고, 그렇게 생각한 건,
분명 요우가 마음껏 울게 해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옷이나 머리 모양도 네가 좋아하는 걸 고르면 돼.
그래도 너에겐 너의 장점이 확실히 있으니까. 알겠지?
요우.
요우의 말은 굉장히 솔직하게 내 마음을 울려.
요우 : 역시 후미한테 미련이 남은 거야?
하루나 : 아니! 그건 이젠 다 잊었어. 후미 선배는 아사미랑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요우 : --- 그런데 왜, 다른 녀석한테 눈길이 안 가냐구!
왜일까--- 그러고 보니 전에는 모두 근사하게 보였는데---
요우 : 사랑하고 싶다면서, 어째서 남자를 안 보는 거야?
하루나 : 그, 글쎄---
아사오카 : 벌써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는 거 아니야? 그 사람과 비교하게 되는지도.
뭔가에 푹 빠져 있을 땐, 다른 것에 푹 빠질 수 없잖아?
벌써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니까, 다른 사람한테 눈길이 안 가는 게 아닐까?
요우 :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 그 사람한테 가면 되잖아.
아사오카 : 아니, 뭔가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요우 : 그런 거야?
하루나 : 아--- 아니야!
나, 요우가 안 된다고 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면---
그런가? 나 요우를 좋아하는 건가?
요우, 함께 있으면 있을수록, 왜 요우가 인기 있는지 알겠어.
요우가 안 된다고 하지 않았다면, 난 요우를 좋아했을 거야.
역시 요우는 멋지구나.
하지만 난, 멋지다거나 그래서가 아니야.
요우의 좋은 점을 잔뜩 알고 있어.
그런 생각만 하고 있으니까, 얼떨결에 좋아하게 되잖아! 안 된다니까!
좋아하게 되면 코치해주지 않을 거야.
안 돼--- 여--- 여자친구라니--- 요우는 나한테 코치해 주겠다고 했잖아---
응? 그건 관계없지 않아? 여자친구 있어도 코치는 할 수 있잖아?
하루나가 여자친구도 아니니까.
아--- 그런가--- 그렇구나
아사미 말이 맞아--- 그 말이 맞지만, 왠지 굉장히 기분이 나빠졌어.
요우에게 여자친구--- 요우의 예전 여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트라우마가 될 정도로 좋아했던 사람이겠지.
요우의 목소리다.
요우가 내가 모르는 곳에서, 모르는 여자랑 이야기하고 있어.
예전 여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었어?
여러가지 의미로--- 너랑은 정반대랄까?
아, 맞다. 나 너한테 남자친구 생길 때까진 여자친구 안 만들 테니까,
그러니까 넌 쓸데없는 걱정 말고 네 걱정만 하라고.
다행이다--- 다행인 걸까? 언젠가 요우랑 사귈 여자친구는 내가 아닌데---
좋아하면 안 된다고 부인해봤자 질투하게 되고, 부정해봤자 눈물이 나와.
있잖아, 요우. 나, 요우가 날 좋아해줬으면 좋겠어.
마음이란 막으려고 해도 안 되는 걸.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이미--- 난--- 요우를 좋아해!
좋아하면 안 되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봐!
그래서--- 고백하고 사귀게 된 두 사람, 하루나와 요우!
저기--- 저기 말이야---만약에 요우가 좋아하는 사람이 이사오카 선배가 했던 말처럼
좋아하면 안 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할거야?
무슨 얘기야?
만약에 말이야.
좋아해선 안 된다면, 좋아지지 않겠지.
그래도--- 좋아하게 되면?
좋아하게 되도 포기하지 않을까?
도저히 포기할 수 없을만큼 좋아한다면?
역시 고백하지 않을까?
하지만 두렵지 않아? 지금까지의 관계가 무너지면 어쩌나, 걱정되지 않아?
걱정은 되지만 말할 것 같아.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잖아?
응--- 굉장히 좋아해!
너--- 혹시, 나 좋아해?
아니--- 좋아하지 않아, 왜?
아니, 그냥. 그래--- 그래 아니구나.
요우!요우!요우! 코치라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거짓말 해가며 함께 있자고 생각했지만, 그만 둘래.
난 요우를 좋아해!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라니까, 조금 기쁜 걸,
정말? 그럼, 나 거리낌없이 쫓아다닌다?
붙잡혀볼까?
울지 마. 그렇게 울면 나도 울어버린다!
안 놓아 줄거야.
넌, 날 위해서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거야?
하지만 사귀게 되면서 요우는 내게 굉장히 행복한 감정을 느끼게 해줬는걸.
요우에게도 똑같이 행복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
저기--- (요우 화끈) 남이 나한테 이렇게까지 해준 적은 처음이야.
여자친구란 꽤 좋은 거구나.
난 뭘 해도 안 되는 애였지만, 요우가 도와줘서, 지금은 행복해졌는데---
요우는 지금까지 여자친구랑 좋은 추억이 없었어.
하지만 그런 걸 전부 날려버릴 만큼,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요우에게 선사하고 싶어.
내일은 요우가 잔뜩 웃어주면 좋겠다.
날, 오늘보다 더 좋아하게 되면 좋겠다.
상상이랑 달라.
하지만 상상보다 훨씬 많이 요우가 웃고 있어.
요우, 나, 너무너무 행복해!
여러분 어떤 숫자가 나왔습니까?
난 0이야. 요우는?
난 1.
실은 이 숫자에는 비밀이 있습니다.
숫자가 0인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
숫자가 1인 사람은 키스한 적이 있는 사람입니다.
커플 중에 숫자가 다른 사람은--- 없나요?
아---하하---다르네--- 미안---
일어서서 도망치듯 나가버리는 하루나.
요우가 여자친구하고 좋은 추억이 없다고, 어째서 내 멋대로 그렇게 생각했을까?
그렇지 않았어. 좋아했었어. 즐거운 일도 행복한 일도 있었어. 키스한 적도 있었어.
너랑 만나기 전 얘기잖아.
응. 그렇지. 하하하--- 그런 거야--- 미안--- 알고는 있는데---
싫어--- 이런 내 자신이 싫어---(글썽글썽)
만나기 전의 얘기란 건 알고 있어.
머리로는 잘 알고 있는데, 눈물이 멈추질 않다니, 내가 아닌 것 같아.
전에는 좀더 여유가 있었는데,
나, 지금의 요우도, 과거의 요우도, 누구에게도 넘겨주고 싶지 않나봐.
어쩔 수 없는 과거에까지 질투할 만큼,
처음 만났을 무렵보다, 고백했을 때보다,
어제보다 더, 훨씬 요우를 좋아하게 되었나봐.
너 이외의 사람과는 이제 안 해.
차가운 손끝, 차가운 뺨.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숨결만이 희미하게 뜨겁다.
요우랑 키스해버렸다.
아, 나 왜 눈을 피하고 있지? 요우 쪽을 돌아볼 수가 없어! 내가 어딜 가는 거야!
숨 막혀. 왜지?
요우한테 가까이 가면 심장이 멎을 것 같고, 호흡이 괴로워져.
내 몸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어떤 사람이랑 갑자기 제대로 대화를 못 하게 됐어.
같이 있기만 해도 의식이 멀어지고, 몸이 멋대로 움직여.
그건 싫어서?
아냐, 좋아서! 너무 좋아서!
난 어떻게 지금까지, 그렇게 평범하게 대할 수 있었을까?
요우의 시선을 받으면, 가슴이 두근거릴 때도 있었고,
기쁜 말을 들으면 좋아한다는 걸 실감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생각만 해도, 숨이 멎을 것 같아.
그래도 내일은 절대로 평범하게 대해야 해.
화난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짜증스럽고 기분 나쁜 애로 보이지 않도록--- 요우에게 미움 받고 싶지 않아!
어떻게 하면 요우와 전처럼 지낼 수 있지?
알았어. 이제 됐어. 그렇게 싫으면, 없었던 일로 하자.
어째서 일이 이렇게 된 거야--- 그건 무슨 뜻이야, 요우?
이걸로 끝내자는 뜻이야?
벌써 요우랑 오랫동안 못 만났어. 이야기도 못 했어.
만나봤자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이야기해봤자 대화가 불가능한 걸. 만나봤자 소용없어.
하지만--- 난 도망쳤었어--- 그런데도, 요우는 내게 와줬어.
제대로 전해지지 않아도 좋아. 나도 도망치지 않을 거야.
알고 있어. 감당하기 너무 벅차지. 알고 있어. 알고는 있었지만, 사실 기분 좋진 않았어.
무시하질 않나, 도망가질 않나. 나도 아무한테나 그러는 건 아니야. 익숙할 리가 없잖아.
그런 의도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정말로 화가---
요우--- 너무 좋아해---
그것도 알고 있어.
심술부려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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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첫사랑을 시작할 딸이랑 함께 보는 만화책.
딱! 좋다.
첫사랑은 아무래도 좌충우돌,
어쩐지 미숙하고, 미숙해서 참을 수 없을 만큼 두근거려지고, 애달파진다.
그리고 --- 사랑스럽다.
아름다운 사랑의 기술을 부드럽고 진지하게 전해주는 흐뭇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