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었어?
기분탓이겠지.
노부가 날 보고 웃어줄 리 없잖아.
와 줬네.
고마워.
신이 좋아할 거야.
어떡하지---?
너그럽게 봐 줄 거라니, 생각이 짧았어.
타쿠미의 머릿속은 일뿐이면서.
울지 마. 나한텐 울 자격은 없어.
타쿠미는 뭘 하든 남들보다 뛰어난 남자지만, 인간으로서 중요한 정이 없다.
난 그걸 알고서 타쿠미를 선택한 거니까.
하지만 타쿠미가 시키는 대로 하면, 나까지 점점 차가운 인간이 되고 말아.
레이라와 신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아 갔다.
타쿠미가 화를 내면서 돌아가라고 한다.
우리 손님이다. 네 멋대로 굴지 마. (으~ 멋져~ 야스!)
잘 왔어. 가자. 신이 찾고 있어.
더 이상 울지 마.
타쿠미와 만들어갈 미래는
나름대로 고민해서 선택한 길이기에
후회 따윈 하고 싶지 않은데,
그것과 바꾼 것들의 소중함을 이제야 깨달았다.
네가 열여섯이라는 것만으로도 위험한데,
거기다 거래를 한 게 사실이라면 사태는 최악이지.
덩달아 레이라도 끝장이야.
하다 못해 열 여덟이 될 때까지 참아라.
사랑이 있다면 다시 시작해.
레이라와 만나는 사실을 들켜버린 신이 타쿠미에게 혼이 난다.
미안, 잊어버려.
내가 돈을 받는 것도, 얘기한 것도, 전부 잊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다시 한 번---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럼 누구보다도 내가 레이라 씨를 소중히 여겨줄 텐데.
신--- 생일축하해.
하치--- 이런 데 오면 타쿠미한테 혼나지 않아?
괜찮아. 네 생일축하도 못 하게 하는 남자랑은 결혼 같은 거 안 할 거니까.
최후의 승부다.
이 일로 타쿠미한테 버림 받으면,
이번에야말로 울면서 친정에 처박힐까?
그게 가장 편하고 안전한 길이지만,
가능하다면 일자리를 구해서 707호실로 돌아가고 싶다.
돈은 최소한만 있으면 되니까,
다정한 친구들이 모이는 그 방에서 애정을 듬뿍 쏟으며 아이를 키우고 싶다.
얼굴은 타쿠미를 닮을지 몰라도,
노부 같은.
파티장에 더 이상 노부의 모습은 없었다.
같이 있던 여자가 누군지 신경 쓰였지만---
손을 놓은 건 자신이면서,
상처받고 마는 자신의 뻔뻔함에 다시금 상처받는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마음이 흔들린다.
노래하기 위한 목소리를 신에게 부여받고 태어났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트라네스의 여왕님은,
눈부시리만치 아름다운 데다 다정하기까지 하고,
타쿠미를 잘 알고 있었다.
저렇게 완벽한 보물을 늘 곁에 두고, 지키는 일에 정신을 빼앗겨서
타쿠미는
달리 아무 것도 진심으로 소중히 여길 수 없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나. 어이, 일어나.
눈 떠. 날 두고 죽지 마.
뭐야, 시끄럽게. 네가 죽였잖아.
나, 널 조만간 진짜로 죽일지도 몰라. 어떡하지?
황천에서 기다려 줄게.
있잖아, 나나.
난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나나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어도 나나를 찾아낼 자신이 있어.
그러니까 아무리 슬픈 날에도, 고개를 숙이고 걸을 순 없어.
내가 찾고 있는 종착점은 그 손 안에 있으니까.
만약 타쿠미에게 버림받는다면 707호실로 돌아가고 싶다.
나나에게 그렇게 털어놨더니
다정한 눈으로 웃어줬다.
나나씨,
좋아하는 것을 소중히 간직하기 위해선 참을성이 필요한데,
어째서 신은 인간을,
좋아할수록 참을 수 없게 만들어 놓으셨을까요?
신은 악마인가요?
(나나의 기사를 스크랩하면서 혼잣말을 하는 유리)
이날 파티의 메인 이벤트는 레이라가 초대객들을 위해
스탠더드 넘버를 부른 어쿠스틱 라이브였다.
기타 한 대에 실린 레이라의 음성은 넋을 잃을 정도로 요염해서,
나는 그때까지 타쿠미가 베이스 외의 악기도 다룰 수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레이라의 가성의 매력을
최대한까지 끌어낼 수 있는 소리를 만들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어.
타쿠미의 신념은
어디서부터가 일이고, 어디까지가 사랑인 걸까?
707호실 열쇠가 내 손에 돌아오자,
나나한테 느꼈던 거리도 메워져 가는 기분이 들었다.
나와 타쿠미의 결혼이 연기된 일도,
오늘 일을 빌미로 하면 부자연스럽지 않아.
이젠 아무 걱정할 필요 없다.
꿈만 같아.
나나랑 같이 잘 수가 있다니.
역시 오길 잘했어.
나나, 여기 있어?
잠깐 이리 와.
제대로 얘기하면 타쿠미는 틀림없이 이해하고 용서해줄 거다.
그렇게까지 냉정한 사람은 아냐.
마음 어딘가에서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방에 들어가자 타구미는 갑자기 폭주해서 강제로 나를 안았다.
타쿠미의 비정상적인 초조함은 그렇게 해서 가라앉는다는 걸 배웠기에 그대로 따랐다.
하지만 그건 미래를 위해 용서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순간의 공포와 번거로움에서 도망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잊혀져 갔던
그때의 절망이 되살아난다.
넌, 아무 걱정 말고 내 기분만 맞춰 주면 돼.
이런 남자하곤 도저히 같이 살아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일초라도 빨리 나나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있잖아, 나나.
과오투성이인 이 인생을 만약 리셋할 수 있다면
나나는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할래?
나는
나나와 만날 수 있었던 그 눈 내리던 밤부터.
나나만은 지울 수 없으니까.
그 부서져버린 컵을 봤을 때
이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외면당한 기분이 들었다.
겹쳐진 컵이 하트처럼 보였다.
나는 그때
타쿠미의 말에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구원받은 거다.
그런데 나를 또 밀어뜨려?
구제할 길 없는 사내다.
천국을 보고 싶어하는 인간은 다들 지옥으로 떨어지는 건가.
욕망은 죄 많은 짓일지도. (렌)
노부는 내가 노부의 존재를 부담스러워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나 혼자 고민했던 일 따윈 노부한테 무엇 하나 전해지지 않으니까.
변명이다.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한들, 자신을 옹호하는 변명밖에 되지 않아.
정말로 노부를 생각했더라면,
그때 타쿠미를 선택하기 전에, 제대로 얘기를 했어야만 했다.
노부는 이제 내가 모르는 사람 같아.
그 때,
서로 믿고 있다고 여겼던 노부한테 의심받는다는 게 슬퍼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때 내가 타쿠미를 선택했던 건,
아이를 위해서라든가, 노부를 위해서가 아냐.
그 때 타쿠미가 제일 다정하게 대해 줬기 때문에,
그뿐이었다.
나는 늘 그것뿐.
나 자신뿐.
외톨이가 되는 게 두려울 뿐.
지금 707호실에 돌아가도,
나는 모두의 다정함에 기대기만 할 뿐이야.
그럼 진보가 없잖아.
한 번 더 타쿠미를 믿고 힘내자.
몇 번이고 힘내는 거야.
기죽지 마, 하치코.
인생은 칠전팔기야.
계속 다시 일어서면 이기는 거라구.
그래, 나나.
누군가와 강하고 깊게 연결되어서,
결코 풀 수 없는 매듭을
그 무렵 나는 필사적으로 찾아 헤맸어.
하지만 사람의 인연은 묶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잇는 거야.
자신을 옭아매지 마.
주민표는 스스로 떼러 가겠다면서
나나는 나의 제안을 딱 잘라 거절했다.
뭐든 좋으니까 나나한테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역시 짝사랑이다.
위험해.
한가운데로 들어와 버렸다.
어젠 진짜로 화났었는데, 거기서 안 끝내길 잘했어.
타쿠미의 좋은 점도, 나쁜 점도, 하나도 남김 없이 내가 받아주자.
이런 사랑스러움을 되찾아서 다행이야.
하치 : 걱정 마.
타쿠미 : 뭘?
하치 : 난 절대로 누구한테든 말 안 할 테니까. 이건 나한테 맡기고 타쿠미는 일에 전념해.
이런 때를 위해서 내가 타쿠미 곁에 있는 거니까.
타쿠미 : 그런 거야? 내 집중력을 흐트러트리기 위해 있는 건가 했지.
하치 : 뭐라고?
타쿠미 : 사랑한다고 했어.
하치 : ---
매일매일이 행복할 리 없잖아.
그래도 어제랑 오늘은 행복했어.
내일은 울지도 모르지만,
모레는 틀림없이 또 웃을 수 있어.
그걸로 족해.
일상적인 삶이란 그런 거니까.
무슨 일이 있든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 내일은 오니까.
그건 나나한테 배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