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이랑

소녀화첩 / 김미정

2008. 5. 8. 16:15

 

엄마, 소녀화첩이 뭐야?

글쎄--- 화첩은 그림모음집인데--- 소녀 그림인가?

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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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이 허락되지 않은 인형---

감정 따윈 중요하지 않은

존재하지 않는 존재---

액자에 갇힌

빛바랜 그림처럼000

동상의 차가운 피부처럼---

피가 멈춘 박제된 새처럼---

나도 그렇게---

이번엔

누구의 장식품이 되는 걸까---

 

"소녀화첩이라---"

 

잠시 후

이 커튼이 열리면

모든 것이 정해지겠지---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나의 미래가---

 

다음에 소개해드릴 작품은 그 누구에게도 공개되어본 적이 없는 베일에 싸인 작품입니다.

역대 단연 최고라 할 수 있는 작가의 혼이 살아숨쉬는 작품,

바로, 광기의 천재화가 피에르의 소녀화첩입니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작품!

성장하고 진화하는 살아있는 그림!

그럼, 우선 시작 전에 작품부터 보시겠습니다.

 

잠깐! 다행히 늦지 않았군.

그 소녀화첩은 내가 접수하지.

죄송합니다만, 맥크폴트 경.

경매 전에 작품에 대한 확인을 하는 것이 절차인데요.

필요없어.

어차피 내 컬렉션이 될 물건을,

저런 쓰잘데기없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물건의 가치를 매기는 수준이 아주 낮으시군요.

저라면 최소한 5000억 루피는 부르겠습니다.

 

말로만 듣던 소녀화첩이라니 무척 놀랍군요.

근데, 그 방으로 해도 괜찮을까요? 사람이 지내기엔 좀---

문제 없어.

컬렉션은 컬렉션끼리.

 

그만해, 이안.

소녀화첩이라고 물건 취급하기엔 그냥 어린 여자애잖아.

오래된 골동품처럼 처박혀 살 순 없잖아.

 

이안 맥크폴트의 친구인 루크는 가난뱅이 귀족시인으로 이안의 일을 돕고 있다.

근데, 이름이 뭐야? 꼬마 아가씨?

수아제트---

 

컬렉션에게 무슨 이름을--- 했을까?

그러면서도 수아제트의 이름에 주목하는 이안.

수아제트의 과거를 묻는 루크를 끌고 나온다.

 

저 아이 크면 꽤 미인이 될 거 같은데~

근데 어떻게 소녀화첩이 된 걸까?

 

저--- 확인 안 하시나요?

제가 소녀화첩인지를---

필요없어. 내 눈은 정확하니까.

하지만 이전 분들은 모두 확인을---

널 감상하려고 산 게 아니야.

중요한 건 누가 최고의 물건을 얼마의 가격에 샀느냐인 거지.

그뿐이야.

 

책상 위에 네잎클로버를 두고 쓰러져 있는 수아제트가 크게 아프다고 생각한 이안은

호들갑을 떨며 의사를 불렀다.

수아제트를 안은 이안의 손에 흥건히 묻는 피.

초경입니다.

부끄러워할 필욘 없어.

이건 자랑스러운 거야. 진정한 여자가 된다는 여자지.

역시나 루크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남자다.

여자요?

그래, 파티에도 나가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사랑을 할 수 있는 숙녀가 되는 거야.

좋아하는 사람--- 하면서 이안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수아제트.

 

고마워요.

이안 씨가 제 주인이 돼주셔서--- 늦었지만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정말 고마워요---

 

수아제트를 팔았던 경매인에게 수아제트의 과거를 전해 들은 이안의 마음은 씁쓸하다.

게다가 이안의 무역선들이 모두 침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안의 집으로 투자자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이안은 당황하고,

수아제트는 불안해한다.

전--- 다시 팔려가나요?

도련님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겁니다.

지금까지 잘 해 오셨으니까요.

이안은 위기를 넘기기 위해서 성대한 파티를 열고 귀족들과 투자자들에게 재투자를 요구한다.

하지만 그들은 담보 조건으로 소녀화첩을 원한다.

 

자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네.

이대로 모두 잃고 끝날 텐가, 이안 맥크폴트 경?

할 수 없이 수아제트를 파티장으로 데리고 간 이안에게

소녀화첩을 공개적으로 확인하기를 요구하는 귀족들.

안 됩니다, 그건 절대로---

괜찮아요--- 전 이미 이런 일에 익숙한 걸요.

이안 씨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요.

전 당신의 소녀화첩이니까요.

 

그때 집사의 재치로 위기를 모면하는 이안과 수아제트.

 

미안해--- 너에게 그런 일 시키고 싶지 않았는데--- 정말 미안해!

 

아주 어릴 적에--- 가족들이 이렇게 벽난로 앞에 모여 있었어요.

비록 잘 살지 못했지만--- 아빤 무명화가였고--- 저는 배가 고팠지만,

아빠가 그리는 물감들이 좋았고---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오독, 오독, 오독

망할 녀석!

이게 어떤 물감인데 먹어치워!

 

자신에게 호되게 맞은 수아제트의 상처를 보면서,

성장하며 변하는 그림을 생각했던 아빠!

수아제트!

넌 위대한 작품으로 다시 태어나는 거야!

그렇게 그려진 수아제트는 여기저기로 팔려가다가 결국 경매장까지 오게 되었다.

 

처음이에요.

지금까지 절 물건이 아닌 사람으로 봐준 건---

하지만 이안 씨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비록 흉측하고 예쁘지 않지만---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을---

 

달빛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떨리는 파란 눈동자 때문이었을까---

시리도록 가슴 아픈 공허와 정적---

살갗 깊이 파고든 지워지지 않는 상처---

몸 한 가운데로 날아오르는 나비떼---

이것이 소녀화첩--- 그리고, 수아제트---

 

수아제트가 이안에게 선물했던 네잎 클로버가 행운을 가져다 주었을까.

다행히 군함에게 구조된 무역선이 돌아와서 이안은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

 

돌아가.

집사 앞으로 네 계좌를 만들어놨어.

그걸로 새 삶을 시작하도록 해.

넌 더 이상 소녀화첩이 아니니까.

어느 곳으로 떠나든 너의 자유야.

--- 돌아가는 거야, 수아제트---

원래 너의 모습으로.

 

하지만 수아제트는 이안 곁에 남고 싶어 했고,

이안은 수아제트의 평범한 성장을 위해서 그녀를 기숙여학교에 보낸다.

수아제트는 그곳에서 평범한 학교생활을 하면서 이안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을 낙으로 삼는 듯.

(왠지--- 키다리아저씨 버전)

수아제트를 눈여겨보던 존스가 수아제트에게 러브레터를 보내면서

수아제트와 이안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

 

고모의 전보를 받고 급히 헤밍턴으로 향한 이안은 내친 김에 수아제트의 학교를 방문한다.

그곳에서 존스와 즐겁게 웃는 모습을 본 이안은 수아제트를 만나지 않고 돌아서버린다.

묘한 질투심.

방학동안 존스의 초대를 받은 수아제트는 이안에게 의견을 묻고,

이안은 저택으로 돌아와서 지내라고 답한다.

 

혹시--- 며칠 전에 학교에 오셨었나요?

아니--- 그건 왜 묻지?

아무 것도 아녜요---

포도농장에 못 가게 한 건---

괜찮아요. 전 포도 별로 안 좋아해요.

 

수아제트를 찾아온 존스는 이안에게 수아제트와 교제하도록 허락해달라고 한다.

겉도는 이안의 마음.

이제 그만 만나주지 그래? 나쁜 친구는 아닌 것 같은데.

제가 존스 씨와 만나길 바라세요?

같은 또래를 사귀는 건 좋은 경험이야.

분명 좋은 남자친구가 될 거야.

제 감정은 중요하지 않나요? 제게도 감정이 있다구요.

전 이안 씨에게 뭐죠? 그냥 어린애일 뿐인가요?

--- 난 수아제트의 후견인이야.

보호자로서 책임질 의무가 있어.

그뿐이야.

 

르웰린 씨가 부러워요.

난 오히려 수아제트가 부러운걸.

이안의 시선을 받고 있잖아.

그가 보는 곳엔 항상 네가 있어.

옆에서 보면 질투가 날 정도로 말이야.

 

존스와는 잘 돼가나?

자신감과 포부도 있고, 믿을 수 있는 좋은 친구야.

싫어요.

학교에 가는 것도, 존스 씨를 만나는 것도, 모두 싫어요.

어째서?

거기엔 이안씨가 없으니까.

 

--- 그래서 더욱 필요한 거야.

적은 경험으로 자신의 감정을 한정짓지 마.

그런 감정은 아직 세상과 사람을 대하는 경험이 부족해서 생기는 거야.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곧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거야.

아니에요! 그걸 모를 만큼 어리지 않아요.

왜 절 멀리 보내려 하는 거죠?

역시--- 소녀화첩이기 때문인가요? ---

평범하게 살려고 하지만 제가 소녀화첩인 건 변하지 않았으니까요. 

결국, 전 흉측한 물건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