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이랑

궁 17권

2008. 4. 17. 09:18

여긴--- 어떻게---

너 나갈 때 인사를 제대로 못하고 보냈잖아. 그게 영 맘에 걸리더라구---

이대로 달려가서 안기면 그림은 참 멋지겠는데, 보는 눈이 너무 많아.

장소를 잘못 골랐어, 바보야!

오지 마.

기다려.

오지 말래도!

잠깐만 기다려, 아이들이---

인사는, 이제 충분했지?

자, 이대로 돌아서서 네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

셋을 셀 테니까, 뒤돌아보지 말고 곧장 걷기다.

난 네 멋진 등 구경이나 하고 있을 테니까---

건강해야 해---!

------

매달리자.

지금이라도 달려가 붙잡고는

이대로 도망가자고

아무도 찾지 못할

어떤 곳으로

나를,

데려가 달라고---

 

너 [맨 인 블랙]이라는 영화 봤어, 신아?

거기 보면,

바라보기만 해도 기억을 없애주는 장치 같은 게 나오잖아---

나한테도 그런 기억 제거 장치가 있었으면 좋겠어.

우선, 사람들의 기억을 지우고

너의 기억을 지우고

그리고 나서

내 기억을 지우고 나면---

사랑하지 않았던 때로,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그때로 돌아가겠지.

기억이 지워지면

아픔도, 욕심도, 추억들도---

모두 사라져버리겠지?

때때로,

마음이---

이유 없이 아려오는 날들이 있겠지?

 

 

이제 앞으로

계속

이렇게

피해 다니며

살아야 하는 건가?

-----

현실일까?

꼭 잡은 네 손에서 느껴지는

이 온기와 떨림이,

내 귓불에 느껴지는 이 숨결이.

이 익숙하디 익숙한 향수 냄새가.

정말 현실일까?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들어줘, 내 부탁.

네 소식, TV나 신문으로 접하고 있어.

건강해 보이더라.

예전 모습 찾은 거 같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행복한 왕자님 연기야 원래 내 전문이었으니까.

네가 한 마디만 해주면

이 연기, 여기서 끝내버릴 수도 있어.

여기로 달려오면서,

이건 내가

나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어.

나도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놈이라,

일방적인 감정 때문에 뿌리부터 썩어 들어가는 내 자신을 방치할 만큼, 미련하진 않거든.

그러니까

너에게나 나에게나 이게 마지막 남은 기회라 생각해.

네가 어떤 답을 하든,

난 그 결정에 따를 거야.

그러니까

정직하고 신중하게 대답해.

남은 인생을 후회하면서 살아가지 않도록.

그때 나에게 했었던 말들이 정말로 진심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순간적인 감정에 휩싸여 내가 정신 차리길 바라며 한 혹독한 매질이었는지---

네 한 마디에 달렸어.

네가 기다리라고,

한 마디만 한다면

나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얼마든지 기다리며 살 수 있어.

네가 다시 궁으로 돌아오겠다는 한 마디만 해주면,

나는 다 내팽개치고 네가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모든 걸 바칠 거야.

그것도 안 된다면,

도저히 여길 떠날 수가 없다면

내가 다 포기하고 이곳으로 나와 평범한 인생을 살아갈 수도 있어.

 

나는 그때,

어떤 대답을 해야 했을까요?

서로가 더 이상 아파하지 않을 말들 중에서,

서로에게 더 이상 절망하지 않을 말들 중에서,

간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마지막을 이야기하는 이 아이를 앞에 두고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넥타이, 삐뚤어졌잖아.

잊지 않을게.

네가 해준 마지막 말들을.

거기 담긴 네 마음을

간직하면서 살게.

열심히 살아.

건강하게 살아.

멋지게 살아.

반드시 그렇게 살아내야 해, 너는.

-----

도착했군.

더 이상 볼 일 없으니 내려, 이만.

모질게 잊어줄게.

자다가도 문득문득 잊혀져 가는 게 느껴지도록.

나한테서 떨구어져 가는 게 느껴질 만큼.

새까맣게 잊어줄게.

 

나는

아직도

그때의 대답을 후회하지 않아요, 할아버지.

그때 저는 너무 지쳐서

단지 조금 평온해지기만을 바랐어요.

또다시 그런 삶 속으로 뛰어갈 용기가 제겐 없었어요.

무엇보다 흔들리고 있는 그 아이가

평온을 되찾길 바랐어요.

계절을 보내고

또 낯선 계절들을 맞이하면서

결국

내 결정이 옳았다는 걸 씁쓸히 받아들여야 했어요.

제가 끝내 해내지 못한 일을 그 아인 해내고 있었던 거예요.

분명히

나를 잊어가고 있었으니까.

 

거기--- 밖에 있어?

대학 입학하고 나면---

우리--- 결혼하자.

 

 

도대체 누구에게 결혼을 하자는 거냐, 신아?

휘리릭 보고, 던져놓았다.

마지막 이 대사가 너무 화가 나서

괜히, 심통을 부리며 구석구석 보는 걸 한참 동안 내버려두었다.

만화라, 딱히 상관 없는데---

내가 속상하다고 했더니, 딸은 왜?

혼자 멋쩍게 툴툴거려지는 마음 때문에---ㅎㅎ

며칠 지나서 다시 봐도 마찬가지.

내용도 신나지 않고,

그래서 그런지 흐름도 마음에 들지 않고---

아, 나도 몰라.

좌우당간 비틀리는 사랑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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