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어떻게---
너 나갈 때 인사를 제대로 못하고 보냈잖아. 그게 영 맘에 걸리더라구---
이대로 달려가서 안기면 그림은 참 멋지겠는데, 보는 눈이 너무 많아.
장소를 잘못 골랐어, 바보야!
오지 마.
기다려.
오지 말래도!
잠깐만 기다려, 아이들이---
인사는, 이제 충분했지?
자, 이대로 돌아서서 네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
셋을 셀 테니까, 뒤돌아보지 말고 곧장 걷기다.
난 네 멋진 등 구경이나 하고 있을 테니까---
건강해야 해---!
------
매달리자.
지금이라도 달려가 붙잡고는
이대로 도망가자고
아무도 찾지 못할
어떤 곳으로
나를,
데려가 달라고---
너 [맨 인 블랙]이라는 영화 봤어, 신아?
응
거기 보면,
바라보기만 해도 기억을 없애주는 장치 같은 게 나오잖아---
나한테도 그런 기억 제거 장치가 있었으면 좋겠어.
우선, 사람들의 기억을 지우고
너의 기억을 지우고
그리고 나서
내 기억을 지우고 나면---
사랑하지 않았던 때로,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그때로 돌아가겠지.
기억이 지워지면
아픔도, 욕심도, 추억들도---
모두 사라져버리겠지?
때때로,
마음이---
이유 없이 아려오는 날들이 있겠지?
이제 앞으로
계속
이렇게
피해 다니며
살아야 하는 건가?
-----
현실일까?
꼭 잡은 네 손에서 느껴지는
이 온기와 떨림이,
내 귓불에 느껴지는 이 숨결이.
이 익숙하디 익숙한 향수 냄새가.
정말 현실일까?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들어줘, 내 부탁.
네 소식, TV나 신문으로 접하고 있어.
건강해 보이더라.
예전 모습 찾은 거 같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행복한 왕자님 연기야 원래 내 전문이었으니까.
네가 한 마디만 해주면
이 연기, 여기서 끝내버릴 수도 있어.
여기로 달려오면서,
이건 내가
나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어.
나도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놈이라,
일방적인 감정 때문에 뿌리부터 썩어 들어가는 내 자신을 방치할 만큼, 미련하진 않거든.
그러니까
너에게나 나에게나 이게 마지막 남은 기회라 생각해.
네가 어떤 답을 하든,
난 그 결정에 따를 거야.
그러니까
정직하고 신중하게 대답해.
남은 인생을 후회하면서 살아가지 않도록.
그때 나에게 했었던 말들이 정말로 진심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순간적인 감정에 휩싸여 내가 정신 차리길 바라며 한 혹독한 매질이었는지---
네 한 마디에 달렸어.
네가 기다리라고,
한 마디만 한다면
나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얼마든지 기다리며 살 수 있어.
네가 다시 궁으로 돌아오겠다는 한 마디만 해주면,
나는 다 내팽개치고 네가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모든 걸 바칠 거야.
그것도 안 된다면,
도저히 여길 떠날 수가 없다면
내가 다 포기하고 이곳으로 나와 평범한 인생을 살아갈 수도 있어.
나는 그때,
어떤 대답을 해야 했을까요?
서로가 더 이상 아파하지 않을 말들 중에서,
서로에게 더 이상 절망하지 않을 말들 중에서,
간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마지막을 이야기하는 이 아이를 앞에 두고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넥타이, 삐뚤어졌잖아.
잊지 않을게.
네가 해준 마지막 말들을.
거기 담긴 네 마음을
간직하면서 살게.
열심히 살아.
건강하게 살아.
멋지게 살아.
반드시 그렇게 살아내야 해, 너는.
-----
도착했군.
더 이상 볼 일 없으니 내려, 이만.
모질게 잊어줄게.
자다가도 문득문득 잊혀져 가는 게 느껴지도록.
나한테서 떨구어져 가는 게 느껴질 만큼.
새까맣게 잊어줄게.
나는
아직도
그때의 대답을 후회하지 않아요, 할아버지.
그때 저는 너무 지쳐서
단지 조금 평온해지기만을 바랐어요.
또다시 그런 삶 속으로 뛰어갈 용기가 제겐 없었어요.
무엇보다 흔들리고 있는 그 아이가
평온을 되찾길 바랐어요.
계절을 보내고
또 낯선 계절들을 맞이하면서
결국
내 결정이 옳았다는 걸 씁쓸히 받아들여야 했어요.
제가 끝내 해내지 못한 일을 그 아인 해내고 있었던 거예요.
분명히
나를 잊어가고 있었으니까.
거기--- 밖에 있어?
대학 입학하고 나면---
우리--- 결혼하자.
도대체 누구에게 결혼을 하자는 거냐, 신아?
휘리릭 보고, 던져놓았다.
마지막 이 대사가 너무 화가 나서
괜히, 심통을 부리며 구석구석 보는 걸 한참 동안 내버려두었다.
만화라, 딱히 상관 없는데---
내가 속상하다고 했더니, 딸은 왜?
혼자 멋쩍게 툴툴거려지는 마음 때문에---ㅎㅎ
며칠 지나서 다시 봐도 마찬가지.
내용도 신나지 않고,
그래서 그런지 흐름도 마음에 들지 않고---
아, 나도 몰라.
좌우당간 비틀리는 사랑은 싫다^^
'만화책이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DVD / 땀이는 환상을 본다. (0) | 2008.04.18 |
---|---|
DVD /천계영 (0) | 2008.04.18 |
절대마녀 / 스카일라와 케일러스 (0) | 2008.04.15 |
신의 물방울 15 (0) | 2008.04.12 |
하이힐을 신은 소녀 3 (0) | 2008.04.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