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걱! 설마 이런 내용인 줄은 몰랐다. 일이 있어서 새벽에 일어나야 했는데, 차라리 눕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가볍게 보려고 몽땅 빌려왔는데--- 물론 그다지 읽을 것은 없어서 가볍기는 했다. 근데 뒷목이 뭉쳐오는 아찔함.
이 만화는 제목에 눈이 가서 몇 번 쳐다보기는 했지만, 선뜻 집어들지는 못했다. 그것은 작가의 전작들이 보여주었던 부담감 때문이었다. 그림은 예쁜데, 가시 박힌 꽃잎처럼 아슬아슬한 이야기들. 사제간의 사랑이야기인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이나 복잡한 가족사를 다루었던 [Really?]를 보면서 드라마 작가 임성한 식의 태도를 지녔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만한 소재를 아무렇지 않게 드러내어, 정말 별 문제없는 것처럼, 사람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면서 아주 흥미롭게 끌어간다. 대단히 감각적인 언어와 도발적인 구도로 보는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만, 기존의 관념과 도덕적인 잣대를 여지없이 부러뜨려버리는 단호함으로 가치를 혼란스럽게 만들어버린다.
작가는 [악의꽃]에서 근친이라도 한쪽의 일방적인 강요가 아니라면 남들이 참견할 문제가 아니며, 사생활일 뿐이라고 했다. 근친애도 다른 종류의 애정처럼 개개인의 사정이 있으며 타인이 뭐라고 참견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고,다만 여기엔 부모자식간처럼 상하관계가 뚜렷하고 권력과 억압의 지배와 피지배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반드시 붙어야 한다고 어필하고 있다. 도대체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작가는 또 이렇게 장담하고 있다. 소재가 이야기의 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같은 소재라 해도 풀어가는 이야기 구조, 작가의 철학, 메시지는 모두가 다릅니다. 장담하건대, [악의꽃]은 그 이전에 나온 어떤 근친이야기와도 다른 이야기일 겁니다. 근친이라는 소재가 가지는 무게감을 피해보려고 도망갈 구멍을 만들지도 않을 것이며 도덕적 비난으로부터 회피할 내용으로 선회할 생각도 추호도 없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발언이다. 소재가 이야기의 전부가 될 수 없다는 말에는 동의한다. 왜냐하면 작가의 말처럼 풀어가는 이야기의 구조나 작가의 철학, 메시지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른 결과의 창작물을 낳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데 근친이라는 소재의 무게감을 피해갈 구멍을 만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선회할 생각도 전혀 없다면 도대체 작가는 대단히 감성적이고 순수한 나이의 아이들이 지켜보고 있는 [악의꽃]에서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는 것인지, 두려워진다.
넌 세준이가 유일한 관심사고, 세준이를 중심으로 세계가 돌아가지? 뭐가 그렇게 좋은 거야? 난 모르겠어. 어떻게 안 좋아할 수 있어? 태어날 때부터 줄곧 세준이만 바라봐왔어. 눈을 뜨면 언제나 세준이가 있었어. 내 시선이 닿는 곳, 내 감각이 느끼는 곳. 거기에 언제나 세준이가 있었다. 세준이만으로도 충만해서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없었어.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너하고 샴쌍둥이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그럼 네가 어디에 있든, 누구하고 있든 절대로 떨어지지 않을 텐데.
거봐, 내 말이 맞지? 남매끼리의 애정 같은 건 다른 이성 친구가 생기면 별거 아니라고 했잖아. 잘됐네, 성찬이랑 잘돼가는 거 같아서. 비꼬는 거야? 내가 왜? 잘됐다는데. 먼저 배신한 건 너잖아. 넌 세상 모든 인간들 다 사랑해도 나만은 사랑할 수 없잖아. 안 그래? 내 사랑을 먼저 배신한 건 너야. 그러니까 넌 날 비난할 자격 같은 거 없어. 넌 집착일 뿐이잖아! 뭐? 사랑이라고? 웃기지마. 그건 사랑이 아니라 집착일 뿐이야. 네가 사랑한다는 게 어떤 감정인지 알아? 정말 사랑이 어떤 건지 알기나 해?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기나 하냐구? 아무 것도 모르는 주제에 함부로 지껄이지 마라, 은세와.
이란성 쌍둥이로 태어난 세준과 세와는 서로 사랑한다고 믿는다. 그들이 하는 사랑은 가족이 이루는 형태의 사랑이 아니다. 보통의 연인들이 느끼고 원하는 모습의 사랑이다. 그곳도 집착이 집착을 부르는 비뚤어진 모습으로. 작가는 동성애를 인정하는 것처럼 근친애도 참견하지 말라고 한다. 과거의 근친혼이야 왕가의 순수 혈통을 지키려는 의도에서 이루어졌다지만, 여러 이유로 근친 사랑은 위험하다고 하는데, 작가는 무슨 생각으로 장담하는 것일까? 시작은 혹평이었지만, 영광으로 이어진 보들레르처럼 될거라고 믿는 것일까?
<악의 꽃>의 시인 보들레르의 불우한 생애 /김붕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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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꽃>은 보들레르가 그의 전 생애를 바쳐 인간의 영과 육의 세계를 잔혹하리만치 예리하게 파헤쳐 그것을 정밀한 구성으로 전개시킨 시다. 이 시는 위고의 평대로 새로운 전율의 창시이며 시의 세계에 있어서는 <새 시대의 도래>를 의미하며, 이 한 권의 시집이 후세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악의 꽃>은 세상에 출간되어 나오기가 무섭게(1857년 6월 25일) 공격, 혹평, 야유의 기사가 빗발치듯 일제 사격을 가했고, 기소되어 법정의 유죄 판결을 받아 그 중 6편이 삭제되고 벌금형을 언도받는 등 수난의 선풍 속에 서 있게 되었지만 그래도 시인은 후세의 명성과 영광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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