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넌 동물들을 진심으로 다루는구나.
그게 바로 내가 너한테 종마 돌보는 걸 도와달라고 부탁한 이유야.
넌 펙 방식을 가지고 있어.
바로 조용한 셰이커 방식 말이다.
아빠는 땅이 씨앗을 원하는 사랑스런 여인이라고 말했다.
나는 무릎을 꿇고서 촉촉한 찰흙덩이를 집어 들어 꾹꾹 뭉쳐 보았다.
흙에서는 상쾌하고 친근한 냄새가 났다.
비록 손이 흙으로 더럽혀졌지만, 셰이커 교인으로소 나는 진심으로 땅을 존중했다.
땅은 여러 방법으로 우리 가족을 먹여 살렸다.
점심 시간에도 소의 멍에를 풀어주지 않는 농부들이 있다.
아빠는 쉴 때면 언제나 멍에를 풀어 놓았다.
그것이 노동과 노동자를 존중하는 셰이커 방식이라고 말했다.
예전에 아빠는 이렇게 말했었다.
"사람이 아무리 소들을 재촉한다고 해도 사람 혼자만 서두를 뿐이란다."
엄마가 말했다.
"구름이 저 하늘의 일부인 것처럼 죽음의 안식이 이 땅의 일부가 되리라."
로버트, 이따금 우린 모두 실수를 한단다.
누구에게나 약점이 있어.
내가 해스켈 갬프에게 원한을 갖는 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용서야말로 요오드 용액이나 바느질 실보다 상처를 훨씬 더 잘 치료한단다.
얘야 , 정신 차리거라. 그래야 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해야 해.
다른 방법이 없어. 다른 선택이 없다고.
그게 유일한 해결책이란다.
데이지는 너희 가족과 잘 살았어.
이봐, 젊은이, 이제는 진실에 과감히 맞설 줄 아는 어른이 되어야지.
학교에서는 가르쳐 주지 않는 냉혹한 진실이 많단다.
땅 속 깊은 곳에서 씨앗은 싹을 틔우고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나는 씨앗을 뿌렸다.
하느님, 모든 것을 베푸신 그분이 나머지 일을 하실 것이다.
새로이 씨를 뿌린 밭 한가운데 홀로 서있자니,
농사의 물결이 나를 둥실 들어올리는 듯했다.
맨발을 뚫고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셰이커 옛 속담이 마음속을 훑고 지나갔다.
아빠가 내게 들려주던 속담이다.
"감사 드릴 줄 아는 마음이 최상의 기도란다."
몇 년 전, 교실이 하나뿐인 학교에 다니던 초기에 켈리 선생님이 비슷한 말을 했다.
"선생님들은 농부와 같아요. 우린 자라나는 파란 싹을 책임지고 있답니다.
매일 아침, 농부는 나가지요. 하지만 선생님들은 밭이 직접 찾아오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더욱 행운이랍니다.
농부의 마음은 토끼처럼 부드럽고
농부의 눈은 고독하다
하지만 그 눈매는 독수리처럼 매서워
사람의 마음을 꿰뚫는다
"그 농부가 바로 우리 아빠예요."
계속해요.
아빠가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준 게 기억나요.
사람은 피곤하다고 해서 일을 그만두는 게 아니래요.
일이 끝나야만 그만두는 거래요.
팔굽혀펴기가 뭔지 아니?
당연하지요. 체육시간에 하잖아요.
로버트, 네 시는 산문의 팔굽혀펴기란다. 네가 쓰는 모든 시는 네 영혼과 마음의 근육을 강화시켜 줄 거야.
말콤 선생님이 한숨을 내쉬었다.
난 네 나이의 세 배야. 어쩌면 네 배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늘 불 켜지 않은 초를 발견하고 싶었단다. 늘 자신의 삶에 불을 밝힐 준비가 된 초 말이다.
저요?
그래, 로버트. 비록 지금은 네 가족이 불행하지만 고개를 돌려 뒤돌아보면 안 돼.
네 삶은 앞에 놓여 있어.
네 덕분에 학교에서 실패하지 않았어.
하지만 아빠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난 농부로 일을 해야 했어.
베키가 내 손을 잡았다.
아무도 열세 살에 실패자가 되지는 않아.
네게 다른 기회를 줘봐.
비록 농사를 포기해야 하거나 땅을 잃게 된다고 해도, 그게 네 삶이 멈춘다는 뜻은 아니잖아.
우리가 떠난 보낸 이들은 여기 땅 속에 있지 않아요, 엄마.
그들은 우리 위에 있어요. 저 하늘 어딘가에.
언젠가는 우리 모두 함께 있게 될 거예요.
펙 가족이 모두 함께요.
친척과 동물들이 모두 함께 말예요.
은행도 우릴 절대 갈라놓지 못할 거예요.
엄마와 캐리 이모와 전 너끈히 잘 지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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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
언어가 마법 같고, 말하는 것마다 철학적이다.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이후 22년만이서일까?
훨씬 깊어졌다.
그래서인지 전편보다 더 또렷하고 묵직해서, 감동 또한 진하다.
성장소설이라고 단정짓기에는 부족한 듯하다.
더한 가치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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