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그런 순간에, 이따금 그녀는 자신에게 묻는다.
언제부터 이 모든 일들이 시작되었을까.
아니, 무너지기 시작했을까.
영혜가 처음 이상해진 것은 삼년여 전 갑작스럽게 채식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채식주의자들이야 이제는 흔해졌지만,
영혜의 경우 특이한 점은 그 동기가 불분명하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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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혜의 엉덩이에 남아 있는 작고 파릇한 몽고반점이 남편에게
어떤 영감이라는 것을 주었는지 그녀는 알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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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제 안 먹어도 돼.
--- 언닌, 알고 있었어?
뭘?
난 몰랐거든.
나무들이 똑바로 서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게 됐어.
모두 두 팔로 땅을 받치고 있는 거더라구.
봐, 저거봐, 놀랍지 않아?
모두, 모두 다 물구나무 서 있어.
어떻게 내가 알게 됐는 지 알아?
꿈에 말이야, 내가 물구나무 서 있었는데---
내 몸에서 잎사귀가 자라고, 내 손에서 뿌리가 돋아서---
땅속으로 파고 들었어.
끝없이, 끝없이---
사타쿠니에서 꽃이 피러나려고 해서 다리를 벌렸는데,
활짝 벌렸는데---
나, 몸에 물을 맞아야 하는데.
언니, 나 이런 음식 필요없어. 물이 필요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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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
더이상은 견딜 수 없다.
더 앞으로 갈 수 없다.
가고 싶지 않다.
그녀는 다시 한번 집 안의 물건들을 둘러보았다.
그것들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삶이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것과 꼭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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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말이야.
그녀는 문득 입을 열어 영혜에게 속삭인다.
--- 어쩌면 꿈인지 몰라.
꿈속에선, 꿈이 전부인 것 같잖아.
하지만 깨고 나면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걸 알지---
그러니까, 언젠가 우리가 깨어나면,
그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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