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있어서

모래도시의 비밀 / 김남일

2010. 6. 30. 11:51

당신은 별을 볼 수 없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처음 듣는, 그러면서도 전혀 낯설지 않은 목소리였다.

 

별은 과거의 빛입니다.

그러니까 별을 볼 수 있다는 건,

그 빛이 어디서 왔는지 그 출발점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이지요.

그때 우리는 우리 생에 앞서 있었던 모든 것들의 존재를 믿을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아니, 아무것도 없는 듯 보이는 이 사막이

실은 무수한, 정말이지 무수한 생, 사막의 모래알처럼 많은,

내가 태어나고 당신이 사는 동방에서는 그걸 항하사라고 한다는데,

그 항하사의 생들이 태어났다가 사라지고

태어났다가 사라지기를 거듭한 무대하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게 어찌 소중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노인이 뭐라고 더 말했나요?

사막은 꿈을 이루기 위해 들어가기에는 너무 위험하다는군요.

사막은 오히려 지상의 모든 꿈마저 잡아먹는다---

그리고 그게 바로 카라부란, 사막의 저 무서운 모래폭풍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지요.

전갈에 쏘이고 싶지 않거든 전갈이 있는 곳에 손을 넣지 마라.

 

 

사막에서는 시간이 다르게 흘러갑니다.

조급하게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모든 것은 인샬라, 말 그대로 신의 뜻에 맡겨야 합니다.

인샬라.

그것은 곧 사막의 시간이 사람들의 시간, 사람들을 위한 시간이 아니라 신의 시간, 신을 위한 시간이라는 것을 뜻하는 말이기도 했다.

 

 

죽음의 모래, 야만쿰.

이곳 사람들은 드넓은 바다와 같은 모래사막을 그렇게 블렀다.

그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자살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뿐인가.

그곳은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불가해한 마법이 지배하는 땅이라고도 했다.

마치 그곳에서는 해와 달이 서쪽에서 뜨기라도 하듯.

그들은 철석같이 그렇게 믿고 있었다.

 

 

참, 쟈니는 어떤 사람이에요?

어떤 사람?

글쎄--- 사랑에 실패했다고 무작정 사막으로 사라지는 사람?

하하, 그 말은 틀렸어요.

영원한 사랑을 위해 사막으로 들어간 사람이라고 해야겠죠.

영원한 사랑이라---

셰필드의 말이 더 정확한지 몰랐다.

쟈니는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인간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마법의 땅에서 이루려 한 것인지도 몰랐다.

 

할아버지는 말했다.

세상은 넓단다. 이 할아버지에게는 도시가 세상의 전부였지만, 너는 네가 꿈꾸는 만큼 세상을 갖게 될 거야. 중요한 것은---

세상은 매순간 늘 자라는데, 꿈을 꾸지 않는 순간, 자라기가 딱 멈춰 버리지. 그저 자기 발이 가 닿는 곳만큼으로 좁혀진다는 뜻이지.

 

 

마침내 오늘, 우리는 순전히 모래만 있는 사막에 접어들었다.

마치 드넓은 바다에서 하얀 거품을 일렁이며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처럼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사구들이 우리를 향해 밀려오고 있었다.

그것은 신이 우리 인간을 위해 만들어준 가장 아름다운 자연이지 싶었다.

두려움, 공포, 영원, 막막함, 무상함, 죽음, 고통, 시련.

그런 부정적인 감정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아니, 죽음 같기도 하고 영원 같기도 하고, 시련에의 유혹 같기도 하고, 무상함을 읊은 노래 같기도 한 거대한 모래물결 자체가 뒤짚어 생각하면 곧 절대적인 아름다움이었다.

우리는 그 절대적인 아름다움 앞에서 다시 할 말을 잊었다.

절대적인 시간들이 흘러갔다.

일 초, 일 초, 영원 속으로 사라져 가는 시간들---

 

 

내가 물었다.

당신들은 도대체 왜 아무것도 없는 이 쓸모없는 땅을 지키며 사는 거죠?

아무것도 없다니요?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습니까?

겉으로 보기엔 풀 한 포기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이 사막이 실은 얼마나 황홀하고 귀중한 보물인지 아신다면 그런 말씀은 못 하실 겁니다. 우리에게 이 사막은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사막이 없으면 우리도 없는 거지요. 여기에는 우리의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 할아버지와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역사 말입니다.

이 말은, 그분들이 천 년도 전 처음 이 땅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겪으셨던 모든 기쁨과 슬픔, 고통과 희망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는 말이기도 하죠.

나는 이 사막을, 이 사막이 품고 있는 그런 기억을, 천만금을 주더라도 바꾸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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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클라마칸에 가고 싶다고 했다.

타클라마칸에서 오래된 와인의 향기가 난다는 말에 솔깃했으니까.

누란.

그것은 처음으로 느낀 타클라마칸에 대한 동경.

이제 또 막연히 그곳을 떠올려본다.

모래언덕 아래 누워 눈부신 저녁별을 본다.

그렇게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가물가물 잠이 들어

혹여라도 모래바람을 만나면,

그대로 묻히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에 휩싸이는 요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