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을 공부하는 프랑스인에게
"모나리자는 이탈리아 사람이 그린 그림인데
왜 프랑스 와인의 이미지가 담겨 있습니까?"
라는 질문을 받았다.
듣고 보니 그렇다며 웃고 말았다.
프랑스인데 시마자키 도손의 시,
이탈리아인데 미륵보살상.
와인의 이미지에는 국경이 없다.
시간과 공간도 인종도 관계없다.
와인의 이미지는
오감으로 느낄 뿐.
그것은 우리 남매나,
와인을 마시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나
똑같다고 생각한다.
타다시 아기
5대 샤토로 잘 알려진 지롱드 강의 서부에 펼쳐져 있는 유명 양조 지역을,
보르도 강 왼쪽이라 부르는 것에 반해,
상류에 흐르는 도로도뉴 강의 동부에 있는,
포므롤과 생테밀리옹을 중심으로 한 와인 산지를,
보르도 강 오른쪽이라고 부른다.
와인사업부의 부장 자리에 사활을 걸고 특별한 와인을 찾으러
보르도 강 오른쪽으로 모인 세 사람.
카와라게 부장과 시즈쿠, 미야비.
이 생테밀리옹 거리는 10년 전 그대로야.
부장님은 이곳에서 오래 지내셨어요?
와인사업부를 만들기 위해 1년간 이곳에 와서 와인을 공부했지.
당시에는 식품수입부에 적을 두고 있었으니까
거기 일을 하면서였지만.
여기저기 샤토를 돌면서 포도 수확을 돕곤 했어.
그런 일까지 하셨어요?
와인을 이해하려면 무엇보다도 마시는 행위가 중요하지만,
시즈쿠 같은 천재적인 감성이 없는 평범한 나는,
와인의 보다 깊은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
그게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 알 필요가 있었어.
작업 현장을 눈으로 직접 봄으로써,
같은 와인이라도
샤토마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만든다는 것을 실감했다네.
강 오른쪽의 중심지인 생테밀리옹조차 10년에 1번은 등급 조정을 하고 있고,
주변 지구인 프롱삭과 코느 드 프랑 등은,
요즘 들어 높은 평가를 받는 샤토가 옹기종기 모여 있어서
그야말로 군웅할거의 전국시대 같거든.
이곳이라면 틀림없이 숨은 보물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이 거리에서 칸자키 유타카가 아들에게 뭔가 이야기를 해 줬다면,
사람들은 아마 와인에 관한 내용일 거라 생각할 거예요.
응--- 전에도 말했지만,
아버지는 그런 얘기는 거의 하지 않았어.
와인을 마시지도 않는 아이가,
경험이 동반되지 않은 지식만으로
와인을 아는 것처럼 구는 것을 바라지 않으셨을 거야.
여기저기 와이너리를 여행하며 뒤지는 세 사람.
이렇게 눈을 감고 바깥 바람에 집중하면,
갖가지 냄새를 맡을 수 있어.
신기하게도 같은 포도밭인데 냄새는 전혀 달라.
근사하고 윤택한 흙냄새가 나는 밭이 있는가 하면,
어딘가 메마른 사막 같은 냄새밖에 나지 않는 밭도 있어.
보르도 강 오른쪽에서 풍미를 느낀 세 사람이 선별한 와인 세 병.
과연 카와라게 부장은 나카하라 부장을 이길 수 있을까?
사실은 특별한 손님을 초대했습니다.
평론가이신 토미네 잇세 선생님입니다.
오늘밤에 오시는 손님들의 평가만으로 와인의 우열을 가리기는
약간 부족함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전문가의 의견도 수렴해서,
판정을 내리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걱정마세요, 선배.
토미네 잇세는 아무리 돈독한 사이든, 거금을 준다고 하든,
와인에 관해서는 자신의 의견을 굽히는 남자가 아니에요.
녀석이 10포인트나 쥐게 된다면,
요행으로 이기는 일은 없을 거예요.
승부는 보다 순수하게 와인의 본질에 의해 결정나게 될 겁니다.
역시!
한 모금만 마셔보고 무슨 와인인지 안 건 같아.
이 녀석의 귀신 같은 테이스팅은 흠잡을 데가 없어.
--- 지독한 녀석!
칠레 와인까지 다 마셔본 거야?
아니면 테루아르로 알아냈나---?
어찌 됐든 괴물인 건 맞아!
이 두 와인을 비교해서 마셔 보니,
양쪽의 컨셉의 차이가 여실히 드러나는군.
무슨 뜻이야?
젠장!
둘다 같은 수준으로 서빙하지 않으면,
잇세는 절대 인정하지 않을 거야!
--- 어느 쪽이야?
어느 쪽의 와인을 마시고, 감탄사를 내지른 거야?!
나는 와인을 점수로 매기는 일은 하지 않지만,
이 레스토랑의 컨셉에 비추어
거기에 맞는 와인을 선택하는 것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되겠습니까?
첫 번째 백포도주는 시즈쿠 쪽을↑
두 번째 적포두주는 나카하라 쪽을 ↗
손들어준 잇세.
메인 와인은?
과연--- 포르투갈의 와인을 블라인드로 빈티지까지 알아맞히다니.
하지만 그런 걸 해낸들, 그건 그냥 특별한 재주에 불과해.
우리가 가져온 논브랜드 와인이,
샤토 라피트가 만드는 숨은 브랜드 와인을 이기려면,
잇세의 안목에 기대를 거는 수밖에 없어.
--- 알고 싶다.
승부를 떠나,
우리가 고른 그 와인을 이 천재가 어떻게 표현할지,
알고 싶다!
나카하라 씨!
당신은 와인을 느끼기에 앞서 배우려고 했습니다.
그에 반해 카와라게 씨는 와인에 매료돼 그것을 느끼고,
그 세계를 엄숙히 여행해온 분인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3종 와인을 어우르는 마지막 와인으로
이 '샤토 르 푸이', 그것도 굳이 2003년산을 가져온 겁니다.
저는 마지막 메인 와인에 관해서는,
승패를 말하지 않고 이 자리를 떠날까 합니다.
답은 와인 안에 있으니,
두 분이 함께 마셔보기 바랍니다.
역쉬~ 멋있어~~
2003년 보르도.
평론가는 입을 모아 높은 점수를 매겼지만,
실제로 프랑스는 무더위로 고전한 해였어요.
포도가 지나치게 익은 감이 있어서,
이 레스토랑의 에인 요리에 맞추기에는 우아함이 약간 부족할 겁니다.
아니?!
어떤가?
아주 조용하고 우아한 와인이지?
도저히 2003년산 보르도 와인 같지가 않아요.
대체 어떻게 된거지?
샤토 르 푸이의 포도밭은 400년간 한 번도 농약을 뿌린 적이 없어서,
꼭 숲에 있는 흙처럼 부드럽다네.
흙속에 사는 미생물의 힘으로 밭이 끊임없이 경작되고 있기 때문이지.
흙이 살아 있는 거야.
살아 있는 밭에 심은 포도나무는 오랜 세월을 거치며 지하 70M까지 뿌리를 내린다는군.
--- 지상의 무더위도 지하 70M까지는 닿지 않지.
때문에 수확할 때 주변 포도밭의 포도나무 잎은 뜨거운 햇살에 시들어도,
르 푸이의 포도나무는 평소와 다름없이 파릇파릇한 잎과,
우아한 와인을 만들어내는 싱싱한 포도알을 맺는다는 군.
제가 졌습니다.
부장님의 식견에 비하면, 너는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저에게 와인을 가르쳐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가당치도 않네.
아무 자격도 없는 내가 뭘 가르칠 수 있겠나?
다만 함께 마시러 가는 건 할 수 있지.
맛있는 와인을 마시고,
와인 이야기로 꽃을 피워보세나.
그것이 와인이라는 신기한 음료를 아는,
최상의 지름길일지 모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