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이랑

치로 12 (끝)

2010. 1. 20. 15:23

찬경이가 며칠 밤을 꼬박 새워가며 심혈을 기울였다는 그 노래에는

치로의 목소리가 없었다.

대신 거의 완벽하게 재현된 송은요의 목소리가 있었다.

 

네가 까무러치게 놀라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이난 그 녀석 때문에 실패했지.

그래도 언젠가 무대 위에서 공개하면 네 반응이 어떨지 궁금해서 가지고 있던 참이야.

 

바보같이---

이렇게 코앞에서 날 속이고 있으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하고---

 

어쩔 수 없었어.

이 모든 게 다 끝나고 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너한테 돌아가려고 했어!

돌아가려고 그랬어---

좋아해--- 찬경아---

너까지 나한테 이러지 마---

 

네가 제일 힘들 때 단 한 번도 찾은 적 없는 남자를 좋아한다고?

착각하지 마, 은요야.

난 그저 너한테 옛 생각을 나게 하는 무능한 전 남자친구고,

넌 그런 날 기만하면서 네 연애놀음에 소품으로 사용했어.

--- 세상 모든 사람들이 송은요가 치로라고 해도,

난 네가 아니라고 하면 끝까지 널 믿었을 거야.

되게 병신 같다. 그치?

그러니까, 어때?

이런 나라면 너와 이난을 무너뜨릴 자격이 충분하지 않니?

이난의 약점을 알려줘서 고맙다.

네가 날 좋아해줘서 기뻤어.

 

담담히 웃으면서 말하는 그를 보며 깨달았다.

내가 그런 사랑을 두 번 다시 받을 수 없듯,

찬경이 역시 누구에게도 다시는 그런 사랑을 주지 못할 것이다.

 

 

 

이난이--- 목상태가 어떤데?

 

분명한 건,

이 게임이 끝나면

이난은 더 이상 가수가 아닐 거라는 거야.

넌 상상할 수 있냐?

가수가 아닌 그 녀석을.

 

오해 때문에 이난을 무너뜨리려 했던 치로는 이난의 상태에 기겁을 하고---

 

이봐, 정신차려!

갑자기 사람들 위로 쓰러지면 어떡해?

겨우 끌어냈잖아.

목 말야. 상태가 꽤 안 좋은가봐.

사람들은 눈치 못챘으니까 고맙단 말은 됐고,

절대 기권하지 마.

네 목소리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내가 짜낼 거니까.

 

알았어.

그럼 거기서 들어.

자꾸 울게 해서 미안해.

너무 놀란다, 너. 실례야.

계속 놀라게 해주지.

우찬경이랑 그렇게 헤어지게 해서 미안해.

네 목소리 망가뜨린 것도 미안해.

오빠들 못 만나게 한 것도 미안하고,

특히 현주 일--- 정말 미안하다.

머리카락 싹둑 잘라 버렸던 것도 미안하고,

차가운 욕실 바닥에 묶어 뒀던 것도 미안해.

동물 무서워하는데 억지로 승마 배우게 한 것도 미안하고---

밤낮없이 근육운동 시키고 실장님이랑 스파링 하게 한 것도 미안해.

닭고기랑 계란만 먹여서 입에서 닭냄새 나게 한 것도 미안하고,

강제로 키스했던 것도 미안하고---

 

무슨 속셈이야?

나까지 까먹은 일들까지 들먹이면서---

 

넌 잊어도 돼.

하지만 난 내가 저지른 일들을 기억해야지.

지금 당장 가.

가--- 제발---

가서--- 숨어 있다가--- 조용해지면---

다--- 잊고 살아.

지금 내가 하는 말도 잊어.

 

사랑한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사랑했어.

 

지금--- 뭐라고---

피 맛이 났어.

 

어떻게 된 거죠?

이난이 노래하지 않습니다!

기권인가요?!

 

미안해.

난 이제 끝난 것 같아.

 

치로랑 연습할 땐가 봐.

--- 성장하고 있어요.

처음엔 그냥 좀 잘하는 어린 가수였는데,

한 번 한 번 무대에 설 때마다 무섭게 성장했군요.

이렇게 쭉 연결해서 보니까 확실히 알겠는데요.

목은 이미 오래 전부터 망가지고 있었어.

그러니까 1년 간의 공백 이후 치로와의 듀엣 결성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적이었군.

이난의 망가진 부분들을 치로가 완벽하게 메꿔주고 있었어.

아니, 그 이상으로---

저 순간이 이난의 음악 인생에서 절정이었던 거야.

 

있잖아, 나는---

너를 좋아하는 내가 너무 좋았어.

지금의 너를 보면 아마 앞으로 점점 더 영광이었다고 생각하게 될 것 같아.

고마워. 나같은 애를 좋아해줘서.

그러니까 누군가를 미워하는 건 나로 끝내고,

원래의 너로 돌아가.

미안해.

 

그리고 각각 사라진 치로와 이난.

 

정말 이 머리만 하면 아무도 못 알아본다니까.

그동안 잘 지냈나 보지?

얼굴이 좋아 보여.

나는 별로였어.

누구 덕분에.

머리도 길러보고, 치마도 입어봤지만 어떻게 해도 어색해서 예전처럼 돌아갈 수가 없었어.

그래서 오빠들 앞에 나설 수도 없었지.

그러니까 말야---

일을 벌인 사람이 책임져줘야겠어.

나를 여자로 만들어.

--- 승낙은 말로 할 필요 없어.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까.

네가 유일하게 숨길 수 없는 부분이지.

너 말야--- 그런 얼굴 해봤자

네 심장소리 여기까지 들려.

 

무리하면 안 되는 거지.

아예 아무 말도 못하는 건 아니야---

이번엔--- 절대--- 절대--- 놔주지 않아---

 

귓가에 터질듯한 심장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이미 알 수가 없었다.

 

멍청아!

내가 놔주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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