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손우현·한림대학교 국제학부 객원교수
며칠 전 벼르던 광화문 광장 방문을 했다. 언론 보도로만 접하던 세종대왕 동상을 직접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동상 앞에 이르러 광장 바닥에 부착되어 있는 '광화문 광장'이란 동판의 영문 번역문을 보고 그만 아연실색했다.
광화문 광장'이라고 쓴 동판 양옆에는 세종대왕 동상 건립 취지를 설명하는 오세훈 시장이 서명한 한글과 영문 동판이 나란히 있었는데 "한글 창제 등 민족 문화를 꽃피우신 세종대왕"이란 구절을 "King Sejong the Great, who invented our national language Hangeul…"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다시 번역하면 "우리나라 말인 한글을 발명한 세종대왕"이란 뜻이다. 한글은 language가 아니고, script, alphabet, 또는 writing system이라고 해야 한다. 어떤 학자들은 한글의 의미를 살려 'Great (Korean) Script'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외국인들이 이 동판을 읽으면 한국민들이 독자적인 언어가 없이 중국말이나 다른 나라 말을 쓰다가 세종대왕 덕에 자기 나라 말을 처음으로 가지게 됐다고 생각할 것이다.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는 '나라의 상징가로'의 동판에 이런 중대한 오역이 아무 여과 없이 등장하다니, 우리 민족의 최대 자부심인 한글의 홍보는커녕 우리 민족을 15세기까지 고유한 언어도 없었던 미개 민족으로 만들고 있다.
세종대왕 동상 밑에 조성한 '세종 이야기' 지하 전시관으로 들어가 봤다. '세종 연대기'라는 것이 있는데 1443년 훈민정음 창제를 아무런 설명 없이 'Invented Hunmin Jeongum(Correct Sounds to Instruct the People)'이라고 번역해 놓았다. 이 번역을 광장 동판의 'language'와 연관지어 생각하면 세종대왕이 창제한 것은 나라 글이 아니라 나라 말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세종대왕 동상과 '세종 이야기' 전시관 같은 주요 국가 상징물은 워싱턴의 링컨 기념관이나 파리의 앵발리드 군사박물관과 같이 내·외국인을 위한 역사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 국가 경쟁력을 뒷받침하기 위한 국가 브랜드 제고가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그러나 국가 브랜드 제고는 반드시 거창한 일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선 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찾는 한국의 주요 상징물과 문화재 등을 제대로 소개하는 일부터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못지않게 중요한 제언 한 가지. 세종대왕 동상을 왜소하게 만들고 광화문 광장 전체의 조화를 깨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은 이제 충무로입구(한국은행과 신세계 백화점 앞 광장)로 옮기면 어떨까? 그래야 도로명과 두 동상의 주인공이 일치하고, 국민적 영웅의 동상이 거의 전무했던 서울의 거리는 좀 더 균형과 활기를 되찾을 것 같다. (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