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슬퍼---
하더니 훌쩍거린다.
뭐가?
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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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는 서양의 음악과는 달리 악보가 없어.
그러다 보니 좋은 명창을 만나 그의 소리를 듣고 흉내를 내는 것이
유일한 공부법인 게 현실이지.
명창을 만나러 가고 싶어도 경성 밖으로 나갈 수가 없는 걸 어쩌요!
그렇다면, 팔도의 명창들을 모두 불어오면 되는 거야.
그--- 그럴 수 있어라?
물론.
지금 당장 이 방으로 불러올 수도 있지.
내가 수년간 모아온 팔도 명창들의 레코드야.
이름난 명창들의 것은 물론이고, 내가 직접 팔도를 돌아다니면서 녹음한 것들도 많아.
지금은 세상을 떠나신 전설적인 명창들의 소리도 있으니---
여기 있는 걸 모두 들으면 어지간한 귀명창이 평생 들을 수 있는 소리보다
더 많은 걸 듣는 걸 거야.
왜--- 왜 지헌티 이렇게 잘혀주는 거죠?
우월감을 느끼고 싶은 건지도 모르지.
우월감?
언젠가 모든 사람들이 너를 보물처럼 우러러 볼 때---
그 사람들 속에 섞여서
그 누구보다 내가 먼저 너를 보고 있었다는
작은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서---!
한편, 김두한 부하들에게 납치되어 인천 월미도로 끌려간 마리코.
그곳에서 아편을 피우는 여가수를 만난다.
여가수의 노래 솜씨에 반해서 노래를 가르쳐달라고 청하는 마리코.
너를 아편쟁이로 만들면 네 아버지에 대한 복수 정돈 될 수 있겠지만---
뭐든 멈출 수 없는 건 시작하지 않는 게 좋아.
내가 최고라는 걸 증명하고 싶어요.
그게 네 꿈이니?
운명이에요.
최고의 가수가 되는 것이 내 운명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지.
그래 봐야 이루어지지 않으면 꿈에 불과해.
그나마 꿈이라도 꾸고 싶어서, 아편을 피우는 게 내 운명인 거지.
꿈은 아편과 같지.
일단 시작하면 멈출 수 없어.
뭐든지 할게요.
제게 노래하는 법을 가르쳐주세요.
뭐든지 할 필요는 없어.
너 자신을 소중히 여겨.
--- 그게 첫 번째 가르침이야.
신대우의 세심한 지도에 감격하는 춘앵.
아재는 참말로 천재요---
아니--- 천재는 너야---
임효금이 분명하군.
그애랑 네가 명창대회에서 겨룬다면 나도 구경가야겠는걸?
금마가 그리 대단합니꺼?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한 녀석이지.
춤이든--- 소리든--- 악기든--- 많은 걸 배우고 싶어 했지만---
정작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모르고 있더라구.
--- 지금까지 없던 무언가가 되려고 하는 지도 모르지---
느그 아부지--- 경성에 왔다.
해질 때 기다렸다가 경성을 뜨자.
싫어.
난 안 갈 거여.
명창대회에서 우승할 거여.
나도 명창이 되고 말 거여.
어머니와 다투고 집을 나온 춘앵은 신대우의 집으로 간다.
하지만 웅크리고 마는 어린 여자.
난 소리 연습할 공간을 제공해주고 있는 거지,
가출 소녀를 돌봐주는 게 아니야.
이래서야 박귀희를 능가하는 명창이 될 수 있겠어?
뛰쳐나간 춘앵을 따라나서는 신대우.
길에서 춘앵을 찾아다니던 춘앵의 아버지를 만난다.
임성태 씨?
임유앵 명창--- 아니, 효금이 아버님 되시죠?
조선의--- 마지막 궁중악사셨다고 들었습니다.
---따님의 재능은 출중합니다.
당신이 뭘 안다고 그러쇼?
그 애는 내 딸이여!
나가 와 모르겄어? 그 활활 타오르는 천재성을---
그년으 재능은 차고도 넘치제---
지 몸과 마음꺼정 태워버릴 정도로---
그래서--- 따님이 예인이 되는 것을 반대하시는 겁니까?
평론가 양반---
당신 겉은 종자들은 소리꾼이 허는 소릴 듣고 잘헌다~ 못헌다~ 하면 그만이제?
고 작은 싹을 꽃 피우려고 얼메나 피를 쏟는지---
그 피를 쏟고도 재능을 꽃 피우지 못허면 어찌 되는지---
설사 재능을 꽃 피워도 얼마나 피었다가 시들어 떨어질는지---
그런 건 쥐똥만큼도 관심없제? 안 그려?
피우지 못헌 꽃--- 시들어버린 꽃에는 하나 관심도 없다~ 이 말이여!
예술계에선 종종 천재들은 만날 수 있다.
남들이 힘들게 배우는 것을 쉽게 익히거나, 당연한 듯 해내는 사람들---
이런 천재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동경과 부러움,
심지어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예술계에선 종종 몰락한 천재들 역시 만날 수 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단 한 번의 실패 후로 우리 눈앞에서 사라져버리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몰락한 천재들을 보며 한때 잘나가던 사람이었다며 혀를 찬다.
천재들은 넘어져본 적이 없기 때문에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는 법을 모른다.
수없이 넘어지면서 성장해온 범재들은
이런 천재들의 좌절을 이해하지 못한다.
처음 경험하는 실패의 아픔보다도
그 고통을 이해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욱 괴로울 것이다.
그렇게 단 한 번의 실패에 몰락해버린 천재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어찌 보면 천재라는 이들은 동경이나 부러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지켜 주어야 할 섬세하고 가련한 존재들이 아닐까.
임성태 씨가 돌아가시기 전에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
평론가는 예술가들을 보고 잘한다 못한다 하면 그만이라고---
피우지 못한 꽃이나 시들어버린 꽃에는 전혀 관심 두지 않는다고---
뜨끔하더군.
재능 있는 사람을 만나면 호감을 가지고,
또 재능이 없는 것 같으면 실망했지.
최승희가 내게 그러더군.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재능밖에 보지 못하는 것은 직업병이라고---
춘앵 양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최승희도 같은 질문을 했었어.
겉으론 강해 보이지만
오히려 깨지기 쉽고
행여 그 단단한 겉이 깨어지고 여린 속이 드러날까 봐---
더 지켜주고 싶다!
단지 그것뿐--- 단지 그것뿐이야---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최옥성의 레코드판을 찾아 듣는 신대우.
신대우?
그 사람은--- 내 약혼자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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