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이랑

꽃보다 남자 11 / 사라

2009. 2. 11. 21:43

어디 가는 거야?

어디든.

아아, 그래. 이제--- 어디든지 가도 되지.

전에는 사람 눈을 신경 쓰며 숨어 다녔지.

도묘지 가 경호원들에게 들키면 완전히 끝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괜찮아.

 

어쩐지 실감이 안 나.

그래? 난 팍팍 실감 나는데.

흐릿하게 낀 안개가 걷히고, 겨우 손가락 끝까지 피가 통하는 거 같아.

손 줘 봐.

 

 

 

와아! 엄청 두근거려.

손을 잡고 걷는 일--- 생각해본 적도 없었어.

오해나 혼란이 뒤엉켜버려도, 하나가 풀리자, 너무나 쉽게 풀어져 버린다.

보충을 하자.

소중한 시간을 되살릴 수 있도록.

지금까지 엇갈려 온 만큼.

 

그런데 어디 가고 싶어?

그게~ 좀 염치 없는 부탁일 거 같은데--- 내일 방과후에 우리 학교로 와줄래요?

 

유키의 학교로 찾아가서 방과후 다도부 임시 고문을 하게 되는 소지로.

 

오늘 임시강사를 해줄 소지로예요.

지로!

어? 두 사람 아는 사이예요?

(소지로를 보고 당황한 사라가 사가지고 온 과자더미를 바닥에 쏟는다)

아! 지로는 소꿉친구야.

 

지로라고 불렀던 거죠.

내 사랑은--- 그때뿐이야.

 

유키! 왜 그래, 멍해서?

아--- 미안. 츠쿠시.

있지, 나--- 엄청난 일을 저지른 거 같아.

소지로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진심으로 잊으려 했던 사람을, 만나게 해버렸어---

 

정말--- 소지로가 진심으로 사랑한 여자가 있을까---

 

저기--- 소지로한테 사랑하는 사람 있었어?

없어. 뭐, 그 녀석은 여자한테 진지하지 않으니까.

소지로는 여자라면 다 좋은 거 아냐?

아무나 다 좋아하는 거였나? 그 녀석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거 같던데---

 

지금 아마--- 루이가 가장 정확한 답을 얘기한 거 같아.

난 이해가 안 돼. 왜 다른 여자들과 놀러다니는지.

소지로가 누굴 만나든,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유키--- 난 이제 유키가 무너지는 걸 보고 싶지 않아.

 

굉장히 오랜만이다.

응. 잘 지냈어, 지로?

유키가 데려오겠다는 사람이 지로였다니, 정말 놀랐어.

진짜 내가 더 놀랐어. 그 애랑 같은 학교였구나.

이 길--- 지로네 집으로 이어지는 길, 가끔 지나갔었어.

 

난처하군.

 

 

 

소지로가 유키에게 만나자고 했다.

미안해. 불렀는데 늦어서.

유키와 소지로가 나란히 걷는다.

보틀쉽을 발견한 유키가 신기해 하고, 소지로는 그에 얽힌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준다.

호기심으로 병을 깨서라도, 배를 갖고 싶어했던 소지로는 결국---

 

병하고 같이 배도 박살나버렸어. 어린애의 잔꾀였던 거야.

이런 건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걸 배웠지.

그런데 뭐 별로 상관없는 얘기지만, 유키는 이미 알고 있겠지.

가능하다면 그 날 아침, 유키가 봤던 나는--- 잊어줘.

사라도 지금은 자기 길을 가고 있고, 모르는 편이 나을 거야.

 

말 안 할게요. 걱정 말아요.

그 일은 소지로가 직접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거예요.

전에 나한테 해준 얘기 있죠---

'그런 남자 때문에 자신을 비하하지 마. 나 같은, 이 아니라, 나도라고 해.'

소지로! 지금 '나 같은 게'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가요?

결과적으로 내가 두 사람을 만나게 한 거,

일부러는 아니지만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을 저질렀다고 봐요.

소지로! 용기를 내요! 늦지 않았어요! 괜찮을 거예요!

 

소지로의 사랑을 지켜주고 싶은 유키.

 

유키! 저기, 여러 가지로 많이 고민하고 하는 얘긴데--- 진짜, 그 일로 머리가 터질 거 같은데.

그게, 나, 걱정돼서--- 이제 보고 있을 수는 없어. 유키가 부서져 버릴 거야.

괜찮아. 난 플라스틱으로 돼 있어. 부서지지 않아.

유리배가 아니니까.

 

유키! 부드럽게, 강인하게, 되살아난다.

내 친구가 변해간다.

괜찮다고 말하는 유키는 정말 빛나고 아름다웠어.

유키는 이제, 소지로를 잊었을까?

잊지 않았다면 최강의 라이벌 등장에 저런 표정으로 못 웃을 거야.

 

니시카도 소지로.

깁이 다도 가문에 3형제 중 아마 차남.

말 잘하고 언제나 웃고 다니며, 여자는 특별한 상대 없는 다수에, 사교적.

난 이 정도밖에 몰라.

이런 애가 진실한 사랑을 한 적이 있다니, 진짜 불가사의야---

 

 

 

유키가 지로랑 아는 사이라는 거 알았을 때, 진짜 놀랐어.

그때 휴대폰으로, 꿈같은 사람이라고 했었잖아. 지로를 좋아하지?

아니, 그게 아니라, 과거형이에요. 지금은 전혀.

게다가 소지로한테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래. 지로한테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구나. 어쩐지 의외야.

 

사라와 유키가 다정하게 소지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유키의 마음은 어디로 갈까.

 

루이가 가루녹차를 먹고 싶다고 해서 갑자기 소지로의 집에 초대받아 가게된 츠쿠시.

 

여자 손님은 드문 일이네요. 사라 아가씨 이후 처음인가요?

우에노 씨! 쓸데없는 말 말아요.

 

유일하게, 당당히 들어온 여자가 있었구나.

혹시 그 애가---?

그런데, 굉장해--- 시간의 흐름이 정지한 듯한 집---

우리 발소리랑 정원의 물소리,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밖에 안 들려.

이런 곳에서 소지로가 사는구나.

 

소지로 어머니, 굉장히 아름다운데, 어쩐지 차가운 느낌.

왜 이렇게 부자들은 분위기가 비슷하지.

소지로! 저기서 사라를 만났다. 너무 오랜만이라 동관 다도실로 안내했어.

맘대로 그러지 말라구!

스파크가 인 듯한 날카로운 한 순간의 분노가, 고요한 이 대지로 스며들었다.

 

아직도 심장이 쿵쿵 울려.

소지로가 이런 식으로 화내는 걸, 보는 게 처음이라서.

루이도 처음 보나?

역시 드문 일 맞구나.

그런 소지로를 보니까, 평소 소지로는 여러 가지를 참고 지내는 것처럼 느껴져.

 

다도실에서 마주친 사람들.

 

 

사라, 의외야!

소지로가 상대하는 여자들과 이미지가 완전히 달라.

귀여워.

있는 것만으로도 그 자리가 밝아지는 거 같아.

이 소리없는 집안에서, 이 애가 어릴 때부터 드나들었다면, 자연히 사랑하게 될 거 같아.

유키--- 유키도 그걸 알고 있어.

 

유키! 잠깐 나 좀 볼까? 무슨 속셈이야.

사라를 우리집에 초대한 건 우리 어머니지만, 왜 이 근처에서 기웃거리는 거지?

전에 얘기했잖아. 난, 다 아는 척하면서 잔머리 굴리는 여자 딱 재수야.

미안해요.

 

잠깐만. 왜 유키가 사과하는 거야? 내가 이 집에 들어와서?

내가 같이 가자고 했어, 지로.

유키 잘못이 아니라구.

지로는 늘 그런 식이야. 중요한 건, 언제나 나한테 말 안 해.

그게 얼마나 슬픈지 알아?

여기 오는 게 싫다면, 나한테 그렇다고 말하면 되잖아!

 

미안해, 유키!

아뇨. 난 괜찮아요. 쫓아가요! 당장. 어서!

 

소중하니까, 말려들게 하고 싶지 않아.

나도 그랬으니까, 잘 알아.

그래도 달려나가야 할 때가 반드시 온다.

 

사라!

지로가 끓여준 차, 굉장히 오랜만이고 또 맛있었어.

그래. 2년쯤 됐나.

가끔 이 길을 지나간다고 했었지.

무슨 생각을 했냐면, 어릴 때 일들만 떠올랐어.

여기를 다시 한 번 오게 될 줄 생각도 못 했는데.

사라! 미안하다.

난, 네가 여길 안 왔으면 하고 생각한 적 없어. 미안해.

 

아냐, 사과하지 마!

내가 아니라 유키한테 얘기해. 아마 굉장히 상처받았을 거야.

그래.

--- 우리들이 균형을 잃은 건, 나 때문이야.

후회했어.

두번 다시 지로를 못 만날 거라 생각하니, 왜 그런 곳으로 불러 냈을까?

왜 안녕이라고 말해버렸을까?

이 집에서 지로가 아직도 매일 외톨이로 지낼까, 걱정돼서 어쩔 수가 없었어.

 

사라! 그 빌딩에 한 번 더 올라가자.

난 회피했었어.

그 무렵의 너를 받아들일 수 있게,

내일 아침,

반드시 갈게.

 

소지로---

오늘은 미안했다. 용서 안 할지 모르지만. 미안해.

아, 아니에요. 전혀. 신경쓰지 마세요.

내일 그 빌딩에 사라랑 올라갈 거야.

유키한테는 얘기 해야 할 거 같아서.

고마워, 유키.

그리고 한 가지 더, 내가 그 학교에 갔던 건, 사라가 있기 때문이 아니야.

정말로 유키한테 뭔가를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어.

 

 

 

모두 행복해지는 사랑 따윈 없어.

반드시 어디선가 누군가는 상처를 받아.

 

있지, 츠쿠시. 나--- 괜찮으니까--- 걱정 마.

오늘 유키가 아직도 소지로를 좋아한다는 걸 직감했다.

차를 끓일 때, 소지로를 바라보는 눈동자.

사라와 마주보며 웃는 소지로를 보며, 함께 미소짓는 얼굴.

유키는 작은 사랑의 무덤을 만들려 하고 있어.

 

유키! 플라스틱 배는 금방 뒤집어져.

어휴--- 왜 눈물이--- 내가 울어서 어쩌겠다고---

 

굉장해, 유키.

침몰할 걸 아는 배에 올라탈 사람은 없어.

 

소지로는 나의 판타지스터야.

꿈을 꾸게 해주는 사람.

깨지 않는 꿈을 꾸게 해주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츠쿠시, 슬퍼 보이는 건, 내 八자 눈썹 탓이야.

 

야, 연락 좀 해라. 걱정했잖아. 휴대폰도 먹통이고---

뭐, 아무 일 없으니까 됐지만.

 

내 나쁜 버릇이야.

한 가지 일이 맘에 걸리면, 중요한 걸 소홀히 하게 돼.

미안. 미안해. 여러 가지 일이 좀 있어서, 여유가 없었어.

유키가 걱정돼서.

 

또, 소지로 일이야? 그렇다면 가보자.

뭐? 이 늦은 시간에? 12시가 넘었을 거야.

무슨 상관이야. 네가 걱정한다면, 그 친구도 상당히 침울해 하고 있을 거야.

그럴 때일수록 얘기를 해야 돼.

시간이든 뭐든 사소한 데 신경쓰지 마. 가자!

 

츠카사는 정말 대단해.

상식에 얽매이지 않고, 뭐가 가장 소중한지 언제나 잘 알고 있어.

돈이 없어도, 학교에서 친구가 별로 없어도, 난 정말 진짜진짜 행복해.

 

진짜진짜 놀랐어. 두 사람이 찾아오다니.

왠지--- 잠이 안 왔는데--- 기뻐! 고마워!

일단 뭐 좀 먹어둬. 그 다음 일은 나중에 생각하면 되잖아.(츠카사)

응. 좋아. 확 먹어버리자.

 

날이 밝는다.

저마다의 생각을 싣고, 새아침이 밝아온다.

케이크를 딱 5개쯤 먹었을 때, 아침이 왔다.

 

스스로 납득하고 한 일인데도,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플까.

이렇게 아름다운 아침인데, 뭐가 좋은지 전혀 정리가 안 돼.

 

유키--- 그런 거 아냐?

뭐가 옳은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고, 너, 네가 한 일 후회하고 있는 거지?

후회하고 있다면, 지금의 네 자신을 깨버려.

잠깐, 츠카사!

넌, 잠자코 있어. 적어도 난 그런 식으로 살아왔으니까,

낑낑대며 고민하는 사람들 마음 이해 안 돼.

단 한 번뿐인 인생이잖아?

 

일찍 왔네. 아직 5시 전이야.

그냥 잠이 안 와서. 지로는 잠 좀 잤어?

아니, 그 뒤로 밤샜어. 올라갈까?

 

 

 

네 모습이 그 무렵의 나를 구해주었어.

고맙게 생각했어, 언제나.

지로--- 내가 지로를 계속 좋아했다는 거 알고 있었어?

그래. 사라는 알기 쉬우니까.

나한테 지로는 정말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어.

 

2년 전 그 날 아침, 그  계단이--- 우리의 역사 같은 기분이 들어.

다 오르고 나면, 어디로 갈까 생각해봤어.

 

뭐야, 진짜! 부술 거면 말을 했어야지.

아--- 정말. 괜히 두근두근했어.

그런데 정말 많은 시간이 지났구나.

아까 하려다 만 얘기 말야.

우리 다시 만난 뒤로 계속 옛날 얘기만 하고 있어.

지로도 알고 있었지.

2년 전 그 날 아침이, 우리에게 단 한 번뿐인 인연이었던 거야.

 

응. 슬프지만 정말--- 그때가 아니면, 안 되는 거였어.

난 이제 2년 전의 사라가 아니고, 어린 사라도 아니야.

지로도 마찬가지지?

그래, 맞아.

그래도 이 순간만은 2년 전으로 되돌리고 싶어.

사라! 난, 널 좋아했어. 누구보다도 소중했어.

나도--- 지로가 넘 좋았어!

 

소지로가 지금 와주지 않겠냐고---

 

용기를 내, 유키.

그렇게 울보였던 유키가 전혀 눈물을 보이지 않았어.

언제나 언제나 남의 일만 생각했어.

뭐가 옳은지는 알 수 없어.

정말 그래.

츠카사는 오늘을 기억하고 싶을 만큼, 멋진 말을 했어.

그러니까 더욱, 후회하지 않는 이 순간을 살아야 해.

 

 

그리고 끝났어.

그래도 예전처럼 두번 다시 만나지 못하는 건 아냐.

아마 또 놀러오겠지.

신기하게도 저 문을 열고 나가는 사라의 뒷모습을 보니까, 꿋꿋해진 여동생처럼 느껴졌어.

이제 정말로 끝났어.

 

그런데 내가 오늘 유키를 불러낸 이유는, 유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였어.

그때 여기 경치를 보여줘서 고마워하고 있어.

그리고 확실히 얘기하는 게 좋을 거 같아서 말야.

유키를 연애대상으로 볼 수는 없어.

하지만, 유키는 내게 혁명을 일으켜준 사람이야. 중요한 사람.

앞으로도 친구로서 잘해보자는 뜻으로, 뭐 먹으러 안 갈래? 배고프다.

좋았어! 오늘부터 다시 작업 들어가야지.

마음이 추워---

 

지금의 네 자신을 깨버려! 깨버려!

한 번뿐인 인생이잖아?

 

츠카사가 한 말을 떠올리는 유키.

 

내, 내가 따뜻하게 해줄게요!

--- 그건 머플러 같은 거 짜주겠단 뜻이야? 미안하지만, 난 손뜨개는---

아, 아녜요. 윽, 뭐라고 해야 되지?

그러니까--- 나한테도 혁명이 필요하다구요.

(유키에게 키스하며) 이제 됐어. 더 이상 말하지 마.

따뜻하게 해줘---날.

 

소지로! 난--- 내 자신을 더 좋아하게 될 거 같아요.

 

 

 

유키는 어떻게 됐을까---?

 

--- 나, 오늘 곰곰이 생각했어. 나를 깨부셔 준 건 츠카사구나.

양갈래로 머리 땋고, 매일 억지로 청소나 하던 난, 지금 어디에도 없어.

츠카사를 만나서--- 내 인생이 달라졌어.

나도 그래.

그거야, 내가 썩어빠진 성격을 싹 고쳐줬으니까.

아! 그러고 보니 곧 졸업이야.

 

츠쿠시! 우리 결혼 안 할래?

 

 

 

이상하다, 이상하다, 했지만--- 이렇게까지 머리가 이상한 녀석일 줄이야.

무슨 말이야? 그 녀석 무슨 소릴 한 거야?

'우리--- 결혼하자.'

방 안 가득 채워지는 장미꽃다발.

사고 회로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츠카사!!

그 녀석이 하는 일, 도저히 쫓아갈 수가 없어.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거야?

우린 이제 막 사귀기 시작했을 뿐이잖아.

이제서야 여러 일들을 극복하고 평범한 연인이 됐는데---

 

츠쿠시, 어제는 진짜 고마웠어.  여러 가지로 걱정시켜서 미안해.

유키--- 해결됐어?

있잖아---

뭐어? 우와, 진짜야? 거기다 소지로랑?

사귀는 건 아냐. 전부 끝났어.

최고의 추억을 만들고, 내 안에서 전부 끝이 났어.

그래도 괜찮겠어?

전에 내가 여기서 사랑을 하겠다고 했었지.

지금은 진심으로 그런 생각이 들어.

소지로 덕분에.

 

엄청 귀여운 얼굴로 웃잖아.

결과야 어떻든, 사랑의 힘이란 굉장한 거야.

나도 그런 마법에 걸렸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