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있어?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할 자.신.
난 친구가 아니다.
전 남편도 아니다.
엄연한 현재 남편이다.
그런데--- 아내가 결혼했다!
역시나, 생각했던 대로다.
'아내가 결혼했다'가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아뿔사! 더 이상 미룰 수가 없겠구나, 하면서
2년 전에, 제목과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말에 구미가 당겨 사두고는 자린고비 굴비 쳐다보듯,
간간히 제목만 훑던 책 '아내가 결혼했다'를 잽싸게 손에 들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책을 먼저 읽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사실 책을 읽기 전에 영화를 먼저 봐버리면 책 속 인물들을 상상하면서 읽어가는 재미를 알 수 없다.
게다가 아무리 원작에 충실한다고 하더라도 매체가 다른 이상 결코 좁힐 수 없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원작부터 읽고 싶어한다.
그런데--- 후우~
시작부터, 큰 숨을 내리 쉬고 말았다.
3일에 거쳐 읽으면서 두통과 어깨결림을 느꼈다.
작가의 문체가 산뜻하고 즐거워서 읽기가 편하고, 전혀 지루하지 않았는데도
3일씩이나 걸렸던 이유는, 이야기 속에 삽입된 축구 때문이다.
야구였으면 달랐을 텐데, 축구에 대해서는 영 아는 게 없어서 읽는 데 고전했다.
작가는 연애와 사랑, 결혼에 관한 사회학적 논리와 축구에 담긴 인생 논리를 그럴싸하니 맞물리게 하여 '아내도 결혼할 수 있다'는 주제를 마음껏 설득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주제 밖으로 나와서, 성별을 떠나서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질 수밖에 없구나, 더 사랑받는 자의 오만이구나, 하는
나의 순간적인 감정적 반발이 어느 순간 약해지면서,
뭐, 생각하기 나름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라면서 포기해버렸던 무거운 상념들.
그러면서도, 미련이 많은 나는
한동안 인아라는 여자 때문에, 그리고 그녀의 두 남자 때문에, 머릿속이 묵지근했다.
그렇지만, 이 사회가 요구하는 지극히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테두리 안에 묻혀 사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므로, 그들의 일은 금세 나의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서너달이 지나고, 영화가 개봉 되자마자 후다닥 보고 왔다.
결코 쉽지 않은 주제와 축구 이야기가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엄청 궁금했다,
어려울 거다, 인물들이 제대로 살아나기는 할까,
약간 맑은 뒤 흐려짐, 으로 지레짐작했는데---
글쎄다.
영화는 무거운 주제를 웃어 넘겨 버렸다.
웃으면서 어물쩡 넘어가 버리면 안 되는데---
그렇다고 책에서처럼 치밀하게 쏟아낼 수도 없고,
어려운 작업이긴 했을 테지만, 그래도 뭔가 개운치가 않았다.
웃어 넘긴 데다가, 살짝 피해가는 것들.
책과 달리, 인아는 우리의 아이라고 하면서도 한 명의 남편과는 피임을 했다.
그리고 유전자 검사를 하고야마는 첫째 남편.
핏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의 정서를 그대로 노출시키면서
새로운 땅에서, 다른 방식의 결혼 생활을 선택하도록 했다.
그래, 나를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면
내 마음 하나 바꿔 어떤 사랑을 해도 좋겠다.
그렇게 딴 세상에서는
내 마음만 조절하면 뭐든지 가능할 것 같으므로 안심!
근데 그게 또, 현실적이지 못해서 난감했다.
배우들의 연기는 좋았다.
김주혁은 근사치에 가까웠고, 손예진은 약간 가벼워 보였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남성에게도, 여성에게도 커다란 도발이고, 충격이다.
그렇지만 누군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 사회 깊숙히 박혀버린 논리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이런 도발도 그렇게까지 위력적이지는 않을 지 모른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두 집 살림하는 남자들 아주 많았잖아.
합에 이르려면 이런 정도의 도발은 더 나와줘야 되는 것일까?
현실적인 궤변!?
많이 놀았던 여자가 나중에 현모양처가 된다.
그것이 변증법적 논리이다.
영화에 나오는 대사.
그렇다면---
남편이 많은 여자가 현모양처일 가능성이 더 높다.
그것 또한 변증법적 논리?
모르겠다.
좌우지간 인아는 대단한 여자다.
나는 한 명의 남편이랑 한 가정을 꾸려가며 사는 것도 이렇게나 버거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