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렵--- 바라던 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저 소망하는 것만으로는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는데도,
꿈이 하나씩 이루어질 때마다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투어가 끝나면 밥먹으러 온다고 했다.
타구미는 정말로 올까?
차라리 이대로 오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몰라.
그러면 쌈박하게 포기하자.
게다가 타쿠미가 여길 들락거리면 나나한테 얘기하는 수밖에 없어.
숨길 도리가 없으니까.
하긴--- 그렇게 되면 숨길 필요도 없게 되는 건가?
타쿠미가 만약 약속대로 만나러 와 줄만한 남자라면
켕기는 것도 조금을 줄어들 텐데---
가벼운 기분이든, 뭐든 좋으니까--- 와 주면 좋을 텐데---
있잖아, 나나.
꿈이 이루어지는 것과 행복해진다는 건
왜 별개의 것일까.
그걸 아직도 모르겠어.
타쿠미와 말을 나누는 것도 잊은 채
오로지 키스만 해대며 침대로 쓰러졌을 때,
나나가 밖으로 나가는 기척을 느꼈다.
나는 사고회로가 차단된 머리로
렌을 만나러 가는 거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어리석은 것 같긴 하지만--- 다들 그만큼 외로운 거지.
하치도 남친이랑 헤어져서 쓸쓸했던 거 아닐까?
노부 씨가 꿈지럭대니까 타쿠미 같은 놈한테 빼앗기는 거라구요.
처음엔 어쩌다 하는 마음에 그랬겠지만,
하치라면 점점 더 진심이 되어 버릴지도 모르잖아요?
그런데 타쿠미가 하는 꼴로 봐선 하치가 상처받을 게 불을 보듯 뻔하고,
노부 씨는 그래도 괜찮아요? 난 그런 거 싫어---
갖고 싶으면 빼앗아 버려요.
그러니까 난 네 말처럼,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다정하게 지켜봐 주는 게,
그런 게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역시 안 돼---
그 녀석만은 용서할 수 없어.
충분히 애정을 느끼고 있네요, 뭐.
(신은 제일 어린 게, 아는 것은 너무 많아. 완전 성숙을 가장한 미성숙!)
남자친구 없어?
없어요.
그래? 다행이다.
하지만 나나는 귀여우니까 인기 많을 거야.
--- 정말 귀엽구나, 너.
나나--- 아무한테도 넘겨주기 싫어.
계속 나만의 것으로 있어 줘.
타쿠미의 말에서는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야스가 쓸쓸해 하는 나나에게 말했다.
렌이 상경하기 전에 너랑 똑같은 소리를 한 게 생각난다.
사람은 결국 모두 혼자고--- 아무리 가까이 붙어 있어도 하나는 될 수 없어서,
누군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건--- 절대 무리라고.
절대 무리인 건 알고 있지만---
하지만 가끔 나도 모르게 그런 것들이--- 쓸쓸하게 여겨져서---
나, 하치를, 정말로 내가 기르는 강아지처럼 생각했던 걸까?
최저야.
그만큼 늘 같이 있었는데도
나나에 관한 건 조금도 알지 못했어.
상처받고 있는 것조차 몰랐던 거야.
날 용서해.
안 돼.
뭐가?
승산이라곤 눈곱만치도 없는데, 무리야! 상대가 안 된다구!
무슨 얘기야, 나한테 말해 봐!
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뛰어넘고 말 테다!
뭘?
타쿠미.
노부의 후다닥거리는 마음이 걸린다.
미안해.
뭐가?
왠지--- 경멸 당할 거 같기도 하고--- 동경하는 뮤지션과 관계를 갖는다거나---
그런 게 바보 같지? 내가 생각해도 바보 같은 걸.
무슨 소리야. 그야 타쿠미가 제법 잘 나가는 뮤지션이긴 하지만,
그런 거랑 상관 없이, 넌 그 남자한테 반해 버린 거잖아?
그런가.
나에게 있어서 타쿠미는 역시, 트라네스의 타쿠미인 걸.
별개로는 생각할 수 없어.
한 사람의 남자로서 어떠냐고 묻는다면--- 너무 형편없다는 생각도---
타쿠미 품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던 너를 경멸하지는 않아.
타쿠미도 그토록 솔직하게 울면서 매달리니까 사랑스럽다고 생각한 거 아닐까?
그러니까 걱정 마. 기운내라구.
알리고 싶지 않았어.
역시 아무한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구.
난 정말 타쿠미를 좋아하는 걸까.
타쿠미와 잤던 걸--- 정당화 시키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이젠 모르겠어.
노부가 "좋아해" 라고 말했다.
어떡해. 기뻐.
"계속 나만의 것으로 있어 줘"라고 말했던
타쿠미의 그, 진심인지 어떤지도 모르는 말보다--- 몇 배나 더 기뻐.
타쿠미와 그런 일만 없었더라면, 난 틀림없이 노부를 좋아했을 거야.
노부의 여자친구가 되고 싶었다구.
하지만 만약 또 타쿠미가 만나러 오면--- 난 결국 또 타쿠미와 자겠지.
틀림없이 거절 못 해.
난 대체 뭐가 갖고 싶은 걸까.
이렇게 흘려 버리기만 하면 아무 것도 잡을 수 없어.
나나가 집에 없는 2주 동안
나는 혼자 고독을 느끼지 않기 위해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찾아
매일 파김치가 될 때까지 일했다.
그래도 스튜디오 연습에는 빠지지 않고 얼굴을 내밀었다.
돌아오는 길은 늘 노부가 바래다 주었다.
타쿠미로부터의 연락은 없었다.
이대로 타쿠미에게서 연락이 안 오면---
난 못된 남자한테 속아서 버림받은 가엾은 여자가 될 수 있어.
모두 타쿠미 탓으로 돌리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거야.
하지만 타쿠미한테 버림 받았으니까,
여자친구로 삼아달라는 것은 너무 염치 없다는 느낌도 들고---
노부한테는 그런 가벼운 여자로 인식되고 싶지 않아.
노부와 함께 있는 나나 앞에 타쿠미가 나타났다.
이제 와서 올거면--- 하다못해 메일이라도 한 번 주지---
변덕스럽고, 제멋대로인 남자.
뻔뻔한 생각을 하면서 나 혼자 신나서 바래다 달라고 하는 바람에 이렇게 돼버린 거야.
틀림없이 크게 상처 받았겠지.
어떡해--- 이젠 스튜디오에도 못 가.
볼 면목이 없어.
얽매이면 안 돼.
타쿠미한테 난, 결국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편리한 여자잖아.
내가 끊지 않는 한,
이대로 계속 한심한 관계가 지속될지도 몰라.
끝내려면 지금이야.
되돌릴 수 없어지기 전에---
더 이상 오지 말라는 한 마디!
하지만 내가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말 못 해.
한심하다는 걸 알면서도--- 끊을 수 없는 건 왜지?
사실 난,
트라네스의 타쿠미에게 흥미 위주로 접근하고 싶었던 여자일 뿐,
나나가 생각하고 있는 만큼 순수하지도 않고,
노부가 그리고 있는 이상형과도 전혀 달라.
하지만 타쿠미는 어쩔 수 없이 허점투성이인 나를 알고 있다.
난 타쿠미가 어쩔 수 없는 남자라는 걸 알아.
이상해.
가장 먼 세계에 있는 사람이었는데.
타쿠미만이--- 이런 나를 용서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공범자 같아.
트라네스의 휴가가 끝났지만--- 나나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난--- 렌 곁에 있고 싶어서일 거라고,
단순히 그렇게 생각했다.
스튜디오에 가서 나나를 만나고 싶었지만,
노부와 얼굴을 마주치는 게 괴로워서 그만뒀다.
타쿠미는 변함없이 메일 한 통 없었다.
하지만 조만간 또 올 거라고,
이상하리만치 너그러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게 신뢰인지, 포기인지는--- 스스로도 잘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