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광주

광주시립미술관 / 봄날은 간다 / 자연은 내 친구

2008. 4. 22. 10:13

어느 맑은 봄날을 위하여

1978년 어느 날.

긴급조치위반으로 쫓기던 어느 대학생이 전남 S시의 어느 마을로 숨어들었다.

처음에는 매일을 집안에서만 지내다가

이 대학생은 차츰 산책도 나가게 되었다.

22살, 불과 대학교 3학년.

햇살은 나뭇잎위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고, 살짝 졸리기까지 한 따뜻한 봄날.

개나리의 노란 색이 가장 예쁘고, 목련이 가장 우아해지는 그 즈음.

자동차도 드물어 저만치 걸어가는 여고생들의 웃음소리,

도란도란 이야기소리도 다 들리는 조용하고 따뜻한 봄날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때가 자기 인생의 봄인지 몰랐다.

또한 그 대학생과 마침 길거리를 지나가던 여학생들은 아쉽게도 그날 만나지 못했다.

그냥 햇살이 따사로운 조용한 봄날이었다.
그날 이후 그 청년의 삶은 우리들이 다 짐작하는 바대로,

때로는 곤봉도 맞아보고,

때로는 386이라는 자랑스러운 호칭을 받기도 했다가,

지금은 다른 어떤 일보다 먹고 사는 일이 더 중요해진, 배가 볼록한 중년이 되었다.

물론 아직도 예전의 혈기가 남아있어

허름하더라도 맛있는 술집과 가난하더라도 편한 친구가 있으면,

언제라도 권유하는 술을 마다하지는 않는다.

그러다가 그는 어찌어찌하여 백수가 되었다.

한때 후배 여대생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던 민주화투사,

V자 턱 선이 날카로워 면도를 안 해도 멋져보이던 청년이,

이제 아이들 다 키워놓고, 친구들은 잘 나가고 있는데,

혼자 집안에서 맞이하는 오전의 햇살이 반갑지만은 않은 사오정이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기 또래의 지인들과 함께 봄나들이를 떠나게 된다.

목적지는 전남 S시.

낮술에 얼큰해진 그는,

버스가 S시의 오래된 공영터미널에 도착하는 순간,

예전에 보았던 그 터미널의 풍경들이

용케도 긴 세월동안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그대로 있음을 깨닫고,

그동안 잊고 있었던

자신의 지난봄을 떠올렸다.
이 전시는

그의 지난봄과

앞으로 그가 살아야 할 봄에 대한 전시이며,

그리고

그날 저만치 걸어가던 여학생들의 지나온 삶에 관한 전시이다.

변길현(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박태규, 김희련 선생님은 광주에서 미술을 전공한 부부화가입니다.

두 선생님은 <자운영 미술학교>를 운영하면서,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 미술을 매개로 해서 환경실천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아이들이 미술을 통해 ‘자연에 대한 예의’를 배울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박태규, 김희련 선생님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보물이 두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쌍둥이 자운, 운영이와 신아 세 딸들이고, 다른 하나는 깨끗한 환경입니다. 무등산 골짜기로부터 광주천, 영산강으로 깨끗한 생명의 물줄기가 흘러가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사랑하는 세 딸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두 분 선생님의 소원입니다.

박태규 선생님은 이름 때문에 ‘밥태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밥태기 선생님이라고 가끔씩 놀려대지만, 아이들의 손을 잡고 김희련 선생님과 함께 산과, 들, 바다를 찾아 자연생태 체험학습을 정기적으로 하고 계십니다. 자연에 대한 관심과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도록, 그리고 이를 통해 자연에 대한 예의를 스스로 배워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두 분 선생님은

현재 생태탐방 모임인 <물 한 방울 흙 한 줌>과 광주천 지킴이들의 모임 <모래톱>, <환경을 생각하는 미술인의 모임>등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전시 내용

자연과 미술, 놀이가 만난다.

생태말판놀이 자연에서 만난 생명의 보물을 찾아라!’

자연은 내 친구 생태말판놀이는

오감을 이용하여 자연에서 내 친구 보물을 만나고 느낌을 표현한 미술작품으로 이루어진다.

전시는 김희련·박태규의 생태세밀화와 더불어 숲, 습지가 좋아요, 나눔의 숲으로 구성된다.

자연환경을 미술로 표현하여 50여개의 생태미술 말판놀이와 생태주사위로 꾸며지고,

전시장을 관람한 어린이와 가족이 어울려 한판 놀이를 한다.

 

김희련 <강아지풀>                                           박태규 <애기졸잠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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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립미술관을 옮겨 개관했다기에 한번 가봐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마침 기회가 되어 들렀다.

번듯한 건물과 넓고 깨끗한 전시공간에 가득 채워져 있는 작품들을 보면서 배가 불렀고,

특히 아이들의 꿈을 충분히 보여줄만한 어린이들의 미술놀이터,

어린이갤러리에서 마음껏 뛰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미술관이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갤러리를 가면 늘상 해대는 조심하라는 잔소리도 할 필요없이,

신나게 즐길 수 있는 어린이들의 공간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지금 어린이갤러리에서 전시하는 생태미술전을 아이들과 함께 즐길 수 있다면

참 좋은 어린이날 선물이 될 것 같다.

작가들의 생태세밀화를 찬찬히 보고 있으면 자연물에 애정을 쏟고 있는 작가들의 숨결이 전해진다.

자연과 친구가 된 사람들의 소중한 그림들!!

이번 전시물들을 가볍게 훑어보지 않고 마음을 다해 보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렇게 한만큼 마음은 풍요로워진다.

관람료 500/200원이 무색해지는 전시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