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이랑

후삼국시대와 후삼국고교

2007. 12. 16. 12:14

예전에 [후삼국고교 / 황미리]를 보면서 웃은 적이 있었다.

별로 웃긴 내용은 아니었는데--- 역사의 한 단계를 끄집어 내어 현대 감각으로 재구성해 놓았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닥 깊이 있는 메시지가 담겨 있거나, 읽을거리가 풍족하진 않았지만 후삼국을 거머쥐었던 인물들이 지금의 고교생들로 새롭게 분장되어 다투는 이야기. 1100여 년 전의 이름들을  역사책이 아닌 만화책에서, 그것도 역사 만화가 아닌, 하이틴로맨스로 만들어내어 호기심을 끈 점은 그럴 듯했다.

다만 인물들의 성격이 기존 역사물이나 드라마 등에서 그려진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서 아쉬웠다. 궁예는 여전히 애정결핍으로 자라난 자의 포악함이, 진성은 남자 사냥에 노출된 여성상으로, 왕건은 사려 깊은 우등생으로 그려졌다. 견훤만 좀 달리 보였다.

그래도 후삼국고교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후삼국시대가 정리되는 것 같아서 나름 재미있었다.

 

책읽기 모임에서 [아! 그렇구나, 우리 역사 고려1 / 윤경진]를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나 시작은 후삼국과 왕건의 통일로부터였다. 후삼국 이야기를 읽는데, 자꾸 드라마에 나왔던 인물들과 [후삼국고교]에 나왔던 캐릭터들이 섞여 떠오르는 바람에 웃음이 나왔다.

왠지 멋적은 웃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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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구나. 궁예에 관한 다섯 가지 의문 (윤경진)

1) 궁예는 정말 신라의 왕자였을까?

사실이 아닐 것이다. 궁예 자신이 주장했거나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가 돌았을 뿐 확실한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실 여부가 아니라 그것이 나라를 세운 궁예의 행동에 권위를 실어 주었다는 점이다.

 

2) 궁예는 왜 신라에 적대적이었을까?

이 문제는 그를 몰아낸 왕건이 유난히 신라에 우호적이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왕건은 신라에 대한 우호적인 자세 덕분에 신라의 귀순을 얻어 냈다. 그 정당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궁예의 적대 정책이 잘못되었음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 이 때문에 신라에 대한 궁예의 적대 행위가 실제보다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

 

3) 궁예가 국호를 자주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궁예는 국호를 처음에 '후고려'라고 했다가, 곧 '마진'으로 바꾸고, 다시 '태봉'으로 바꾸었다. 처음에 '후고려'라고 한 것은 고구려 계승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속마음은 옛 왕조계승보다는 새로운 나라 건설 쪽에 있었던 듯하다. 그래서 나라의 기틀이 잡히자 거듭 나라 이름을 바꾸고 도읍을 옮긴 것이라 짐작된다. 그리고 이런 궁예의 자세가 옛 고구려 지역 사람들의 반발을 불러 몰락의 원인이 된 듯하다. 이에 반해 왕건은 나라 이름을 '고려'라고 하면서 적극적으로 고구려 계승을 내세웠다. 이는 그가 송악 출신이라는 점도 있지만 궁예의 실패를 거울 삼았기 때문이 아닐까?

 

4) 궁예는 왜 스스로를 미륵이라 했을까?

자신이 중생을 구원할 존재임을 과시하기 위해서다. 궁예는 본디 승려 출신으로 나라를 세운 뒤에도 불교를 국가 이념으로 삼았다. 그는 특히 미륵 신앙에 관심을 두었다. 미륵은 말세가 되면 세상에 내려와 중새을 구원한다고 예정된 부처다. 신라에는 미륵의 구원을 염원하는 신앙이 널리 퍼져 있었는데, 신라 말의 혼란기에 더욱 호소력이 있었다. 궁예는 스스로를 미륵이라 함으로써 지친 백성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이끌 지도자로 자신을 내세운 것이다. 이것은 처음에 태봉이 세력을 떨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지만, 도가 지나치면서 설득력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5) 궁예는 정말 백성에게 맞아 죽었을까?

이것 역시 사실이 아니라고 본다. 기록에 따르면, 궁예는 왕건의 거사로 쫓겨나 도망하던 중 들판에서 곡식을 훔쳐 먹다가 사람들에게 들켜 맞아 죽을 것으로 되어 있다. 참으로 비참한 최후다. 하지만 앞서 그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모습을 생각하면 정말 이랬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어쩌면 왕건 쪽에서 궁예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그런 내용을 만든 것은 아닐까? 그의 포악함을 과장한 것과 마찬가지로 폭군의 비참한 최후를 드러내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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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리자의 것이고, 힘 있는 자의 기록이라고 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궁예에 대한 기록은

다음 권력자였던 왕건의 힘이 끼어든 기록이었을 가능성이 많다.

후삼국을 이끌었던 인물들 중 가장 애증이 느껴지는 궁예.

과연 그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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