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자만에게 속은 것을 알게 된 샤리야르 일행은 급히 말을 몰아 바그다드로 향한다.
하지만 도중에 반란군인 알리에게 잡혀버리고---
네 말대로 샤리야르는 죄인이다.
신하로서, 친구로서--- 그의 폭주를 막지 못한 것에 책임을 통감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야.
바그다드가 십자군의 손에 넘어가버렸다.
정말이었군.
그래--- 보기 좋게 당했어.
성을 되찾을 방법이 있어.
영어를 썩 잘 할 줄 아는 녀석이라 살려두었더니-- 말이 너무 많구나.
영국을 통일한 아더왕은--- 전통 종교인 드루이드와 기독교의 접목을 이룬 사람이지,
종교 전쟁의 승리자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가 드루이드들을 이교도로 배척했다면 영국은 원정은 커녕
지금까지도 전쟁을 계속하고 있을 것 같은데요.
점령국 적국왕 앞에서 전혀 굽힘이 없이 당당하게 말을 뱉는 세하라,
세하라의 용기는 어디에서 얻어졌을까나! 부러워!
감히 영국의 국왕에게--- 그것도 점령국의 왕을 눈앞에 두고 그렇게 말할 수 있다니---
보기와는 다르게 대단한 담력이로구나.
검을 휘두를 때보다 혀를 놀릴 때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지요.
궁중시인이라더니--- 재미있는 말을 하는 녀석이군.
술탄께서도 같은 말씀을 하셨죠---.
저에게 아더왕과 원탁의 기사들의 무용담을 들려준, 먼 서쪽 나라의 떠돌이 음유시인이
전하의 이야기도 전하더군요.
마치 아더왕이 아발론에서 돌아온 듯--- 백성들의 깊은 사랑을 받는 온화하고 현명한 분이시라고요.
나는 영국의 백성들은 사랑할 뿐이다.
저도 이 나라의 술탄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도 물러섬이 없는 세하라의 힘과 논리를 나도 배우고 싶다. 정말로!
이것만은 확실히 해두자.
내가 네 도움을 받는다고 네가 저지른 죄를 용서받을 거라고 착각하진 말아라.
넌 내 손에 죽는다.
그게 언제인지 어디서인지는 내가 결정한다.
알리의 칼날 같은 외침에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샤리야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예루살렘은--- 약탈당하고 있군요.
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성서에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리리라.'고 했는데
너희는 이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 하고 나무라셨다.
성경을 읽어보았느냐?
물론입니다.
모든 무슬림들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꾸란과 함께 읽지요.
꾸란을 읽어보신 적이 있나요?
사악한 교리를 담은 이교도의 책 따위를 짐이 읽을 리가 없잖은가!
꾸란을 읽어보지 않고 어떻게 이슬람의 교리가 사악한 줄 알지요?
알지 못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으면 미워하게 되지요.
태양이 하나인 것처럼---우리들의 마음 속의 신도 하나입니다.
그러나, 다른 언어를 가지고 다른 문화를 가진 기독교인과 무슬림은---
하나의 신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며 성전을 벌여왔습니다.
(야! 세하라, 말 잘한다.^^ 그러니까 적국왕도 설득당하지!)
7권에 삽입된 여섯 번째 이야기 [어린 전사]는 너무도 마음이 아픈 이야기이다.
지금까지도 놓아버리지 못하고 종교라는 이름으로,
경쟁논리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종교 전쟁.
종교 전쟁 면면에 뻗쳐 있는 강대국의 이기주의를
힘이 없는 우리는 무심히 지켜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래서 세하라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많이 아프다.
사막여우의 눈물처럼--
그리고 어린 전사의 친구인 또다른 전사의 울부짖음처럼--
각오는 되었니?
약속은 지키실 거죠?
알라께 맹세코 우리 조직은 전사의 가족을 내 가족처럼 지켜준단다.
네 여동생에게 필요한 비용은 전부 우리가 책임질 거야. 그 대신---
죽음 따위는 두렵지 않아요.
하나뿐인 여동생을 위해서---
미군의 폭격에 죽어버린 가족들의 복수를 위해서---
그래--- 우리 모두 너와 같은 심정이다.
이런 곳에 지구라트가 묻혀져 있었네.
지구라트?
옛날 사람들이 알라에게 제사를 지내던 탑이야.
여우가 그랬어.
이 근처에는 바벨탑이 묻혀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야.
여우가 말했어.
우리는 알라를 위해서 이 전쟁에서 피를 흘리고 있지만---
정작 이 피는 알라가 원한 건지도 몰라.
알라가 인간에게 내린 벌 중에 가장 가혹한 벌이 뭐라고 생각해?
음---
그건--- 우리가 이렇게 끝없는 전쟁을 해야 하는 것---
바벨탑이 뭔지 알고 있니?
인간이 높은 탑을 쌓아서 하늘에 가까워지려 한 것 말이지?
--- 인간들은 위대한 창조주 알라께 가까워지고 싶어서 높은 탑을 쌓기 시작했어.
많은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으려고 자신들이 가진 지혜와 힘을 한데 모았어.
그렇지만, 알라는 그걸 용납하지 않으셨어.
인간들이 당신께 도전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인간들에게 무서운 저주를 내렸지.
바벨탑의 저주가 내린 이후에는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하고, 또 미워하기 시작했지.
그 때부터 지금까지---
인간은 서로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피를 원하고 있는 거야.
내 무전기를 돌려줘.
폭탄처리반을 부르면---
말했잖아, 수술비가 필요하다고.
그 돈은 내가 마련해줄게!
당신이 무슨 돈이 있어서?
돈 벌려고 목숨 걸고 전쟁하러 온 거 아니었어?
내가 어떻게든 할 거야.
너는 이렇게 죽어선 안 돼.
기다려. 난 널 도우려는 거야!
알고 있어, 죠셉.
유스프--- 내 이름은 유스프야.(죠셉과 유스프는 똑같이 '요셉'을 뜻한다.)
고마워--- 죠셉---
사실은 나 무서웠어.
혼자가 되는 게---
그렇지만, 이제는 정말로 안 무서워.
나와 같은 시간을 살아간 사람들과,
나로 인해 살아갈 사람의 시간들을 생각하면---
재작년인가, 참 어렵고도 힘든 만화책 한 권을 읽은 적이 있었다.
조사코라는 사람이 지은 [팔레스타인]이란 만화책이었다.
몰타에서 태어나서 언론학을 공부한 그가
이스라엘 점령지 팔레스타인을 취재하여 그린 만화인 [팔레스타인]은
이슬람 사회와 현실에 대해 눈을 감고 있었던 나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그 책을 보고, 다른 자료를 읽어보면서 그들의 역사와 현실이 엄청난 굴레처럼 느껴졌다.
지금도 그들의 이야기가 들려오면 괜히 울적해진다.
네 말대로--- 우리는 이 성에서 철수하겠다.
그 대신--- 너는 나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간다.
(왠일이야~ 보물은 누구나 탐내는군!!)
숨어서 이 말을 전해들은 샤리야르가 분개하여 뛰쳐나가자,
세하라가 막아선다.
비켜.
못합니다.
과연--- 이자가 네가 사랑한다는 술탄인가?
이렇게 무모하고 경솔한 자가 일국의 왕이라니---
술탄 샤리야르--- 그대가 되찾으려는 것이 이 바그다드인가?
아니면---
(아름답고 지혜로운 이 남자인가!? 이런 뜻의 말흘림이겠지!)
자파르, 지금 이 자식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세하라! 너도 나를 배신하는 거야?
대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