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있어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김영하

2013. 9. 23. 20:28

1793년에 제작된 다비드의 유화, [마라의 죽음]을 본다.

욕조 속에서 피살된 자코뱅 혁명가 장 폴 마라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다비드의 마라는 편안하면서 고통스럽고 증오하면서도 이해한다.

한 인간의 내부에서 대립하는 이 모든 감정들을

다비드는 죽은 자의 표정을 통해 구현했던 것이다.

다비드는 멋지다.

격정이 격정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건조하고 냉정할 것,

이것이 예술가의 지상 덕목이다.

마라를 죽인 샬롯 코데이라는 여자도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했다.

 

압축할 줄 모르는 자들은 뻔뻔하다.

자신의 너저분한 인생을 하릴없이 연장해가는 자들도 그러하다.

압축의 미학을 모르는 자들은 삶의 비의를 결코 알지 못하고 죽는다.

 

당신의 고민을 들어드립니다.

 

나는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함으로써 내 취향을 은폐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상정한 인간 유형에서 자꾸만 벗어나는 나를 보고 당혹해할 따름이다. 하기사 당연한 일이다.

누구도 신에 대해서 너무 많이 알 수는 없는 법이다.

 

고객과의 일이 무사히 끝나면 나는 여행을 떠나고

여행에서 돌아오면 고객과 있었던 일을 소재로 글을 쓰곤 했다.

그럼으로써 나는 완전한 신의 모습을 갖추어간다.

 

이 시대에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에게는 단 두 가지의 길이 있을 뿐이다.

창작을 하거나 아니면 살인을 하는 길.

 

그녀에 대한 첫인상은 클림트의 그림, [유디트]를 닮았다는 것이었다.

아시리아의 장군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하여 잠든 틈에 목을 잘라 죽였다는

고대 이스라엘의 여걸 유디트.

클림트는 유디트에게서 민족주의와 영웅주의를 거세하고

세기말적 관능만을 남겨두었다.

 

사람은 딱 두 종류야.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람과 죽일 수 없는 사람.

어느 쪽이 나쁘냐면 죽일 수 없는 사람들이 더 나빠.

누군가를 죽일 수 없는 사람들은 아무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해.

 

C. 어느새인가 이 비디오의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는 방식에 익숙해져버린 자신을 발견한다. 길을 걸어도 프레임으로 시야를 구획하고, 비디오에 담겨진 것들, 자신이 편집한 것들을 그의 두 눈으로 본 것보다 더 신뢰한다, 아니 애착한다.

그리하여 비디오는 다시 그의 무기가 되고, 작지만 안전한 도피처가 된다.

 

[사르다나팔의 죽음]

성도의 함락을 눈앞에 둔 바빌로니아의 왕이 무사들을 시켜 그의 왕비와 애첩들을 살해하는 장면이다.

이 광란의 무도회를 지켜보는 사르다나팔 왕은 들라크루아 자신의 모습이다.

그는 신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들라크루아는 알고 있었으리라.

죽음을 주재하는 자의 내면에 대해서 말이다.

 

아무도 다른 누구에게 구원일 수는 없어요.

그게 내가 이 조화들을 키우는 이유이기도 하죠.

 

나는 이만 가볼게요.

좋은 여행이 되길 바랍니다.

 

미미는 멋지게 떠났다.

유디트는 편안하게 갔다.

지금 이 순간 절실하게 그녀들이 그립다.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글도 완성되었고

이제 이 글은 그들의 무덤 위에 놓일 아름다운 조화가 될 것이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 모두 일생에 한 번쯤은 유디트와 미미처럼 미로니에 공원이나 한적한 길 모퉁이에서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아무 예고 없이 다가가 물어볼 것이다.

멀리 왔는데도 아무것도 변한 게 없지 않느냐고.

또는, 휴식을 원하지 않느냐고.

그때 내 손을 잡고 따라 오라.

그럴 자신이 없는 자들은 절대 뒤돌아보지 말 일이다.

고통스럽고 무료하더라도 그대들 갈 길을 가라.

나는 너무 많은 의뢰인을 원하지 않는다.

내 거실 가득히 피어 있는 조화 무더기들처럼

내 인생은 언제나 변함없고 한없이 무료하다.

이제 이 소설을 부치고 나면 나도 이 바빌로니아를 떠날 것이다.

비엔나 여행에서처럼 그곳에도 미미나 유디트 같은 여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왜 멀리 떠나가도 변하는 게 없을까, 인생이란.

 

'책이 있어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잠시 동안의 일 / 줌파 라히리  (0) 2013.04.26
갑신년의 세 친구 / 안소영  (0) 2013.03.08
방자왈왈 / 박상률  (0) 2012.08.21
허균, 최후의 19일 / 김탁환  (0) 2012.08.21
가시고백 / 김려령  (0) 2012.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