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독 : 소생이 짓는소설은 언제나 別傳이란 생각이 듭니다. 외곽을 건드릴 뿐 정작 중심의 문제는 건드리지 못하는... 세상의 참된 도와 곧바로 맞닿아 있는 本傳의 글쓰기는 소설에서 불가능한 건가요?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무엇을 위해 별전 쓰기를 계속해야 하는지요?
곱사등이 스승 졸수재 조성기(세상에 전하는 '창선감의록', '장승상전'의 주인) :
맑고 단정하며 곧고 강한 글도 아름답긴 하지. 허나 소설은 자네 말대로 별전이기 때문에 오히려 도에 다가설 수 있는 거라네. 다양하고 부드러우며 멀리 둘러가기를 주저하지 않는, 산만하고 복잡하며 때론 한없이 지루하기까지 한 글쓰기이기에 세상의 온갖 고민을 건드릴 수 있는 법이야. 소설이 제 분수를 잊고 본전의 자리, 그러니까 대설의 자리를 탐한다면 그 순간 바로 망나니의 칼날이 들이칠걸세. 답답한가? 부끄러운가? 참게. 급할수록 더 낮고 어지럽게, 비틀거리며 돌아가야 하네.
서포 : 아니야. 이건 나의 자서전이 아닐세. 어디까지나 매설가 모독이 바라본 김만중이다 이 말이야. 자네가 바라본 나를 내가 어찌 손 댈 수 있단 말인가? 자네가 쓰고 싶은 대로 쓰게. 세상에 내어놓기 전에 미리 한 번 보여주면 큰 기쁨이겠고. 헌데 이 제목 말일세.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도 나쁘진 않지만 너무 많이 감춘 듯하군. 좀더 직설적인 제목은 어떨까? 요즈음 소설들을 보면 분위기만 잔뜩 피우고 알 듯 모를 듯 이상한 제목만 붙이지. 잔뜩 기대를 품고 소설을 읽어나가던 독자들을 실망시키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야. 자네가 이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게 무엇인지 물어봐도 되겠나?
모독 : 대감의 소설을 살피고... 또 대감을 음해하는 이들과의 대결을 담고... 노도의 풍경도 담고...
서포 :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내가 과연 사느냐 죽느냐 이것에 관한 이야기구먼. ... 허면 '서포척살전말기'라고 하게.
모독 : 어찌 감히 대감을 제목에 넣을 수 있겠습니까? 척살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서포 : 아무렴 어떤가? 양소유가 여덟 여자와 놀아나는 이야기도 장황하게 풀어쓴 나야. 예의와 도덕을 따진다면 소설에 쓸 글이 몇 자나 되겠나? 나도 소설을 써보았기에 이런 소릴 하는 걸세. 서포척살전말기. 그 제목으로 가게. 누가 묻거든 허락을 받았다고 해. '남정기'를 살펴주는 데 그 정도 고마움은 표시해야지.
서포 : 자네 그 이름 말일세... 바꿀 때가 되지 않았는가? 지난 상처와 함께 그 이름을 버리게나... 자네 혼자 아프다고 말하지 말아... 누군들 자네만큼 아파하지 않으리... 누군들 자네만큼 방황하지 않으리...
알고 계셨습니까?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차라리 자기모멸에 빠져버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밤이 있었지요. 젊은 날들을 분노에 분노를 곱씹으며 보냈습니다... 이름까지 모독으로 바꾼 것은 내가 아무리 멋진 이야기를 만들더라도 세상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 때문이었지요. 땀 흘려 이야기를 쓴 다음 그걸 곧바로 모독해버리고 싶은 마음. 이름을 고치라는 건 곧 그 어두운 마음을 버리라는 말씀이시지요?
서포 김만중의 정치소설, '사씨남정기'의 창작 환경을 모험적 추리 속에 담았다. 내내 긴장감 속에서 '남정기'의 탄생을 지켜보았다. 작가 자신일지도 모를 매설가 모독이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소설의 참된 의미를 밝혀내는 심리도 긴박했다. 실제인듯, 가슴조이게 한 노도의 '작은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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