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이랑

호타루의 빛 14

2009. 10. 29. 10:33

자네들이 본 그대로야.

1년 반쯤 전부터 우연에 우연이 겹쳐 함께 살고 있어.

물론 전혀 수상한 관계는 아니고, 단순한 동거인 사이야.

 

세상에 비밀은 없지?

 

어째서 그렇게 남 일처럼 말하는 겁니까?

남자고 지위가 있는 부장님은 괜찮을지 몰라도 호타루는 20대 여자예요!

이런 일이 공개적으로 알려지면 회사에 다닐 수가 없어요!

어떻게 책일질 겁니까?

부장님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호타루와 동거라는 비상식적인 일을 한 겁니까?

그러니까--- 이런 동거는 처음부터 부자연스러웠어요!

 

아니.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어. 나한테는.

 

네? 왜, 왜 태도를 싹 바꾸는 겁니까?

뭐가--- 뭐가 자연스럽다는 거예요!

당신 같은 몰상식한 아저씨에게 맡겨둘 수 없어!

지금 당장 동거를 해소해주세요!

 

그런데--- 자네야말로 왜 이제 와서 남친 행세지?

그렇게 어르스럽지 못한 방법으로 비참하게 차놓고서.

그 녀석이 가장 힘들었을 때 옆에 있었던 건 나야.

자네한테 이러쿵저러쿵 간섭받을 이유가 없어!

 

생각해보면---

호타루 씨 앞에선 한 번도 무리한 적이 없었어.

하긴 그런 꼴을 하고 있는 여자 앞에서 허세 부릴 필요도 없었지만.

뭐든지 서로 얘기하고, 서로의 존재를 잊을 만큼 자유로웠달까---

하지만--- 지금 왜 이렇게 심란한 걸까.

그 집에서의 그런 시간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거라고 믿고 있었다는 걸까---

 

책임?

아아, 결혼?

좋은 생각이지?

난 자네와 앞으로도 같이 살고 싶어.

자네도--- 그렇지 않나?

라는 현 시점에서 볼 때 서로의 욕구와 문제점.

그리고 사회적 책임을 통합하면

이게 최선의 답이라는 결과를 도출했어.

내일부터는 그렇게 알고 잘 부탁해!

 

다카노 부장님 나름의 어른다운 해결 방법이겠지?

하지만 너무 자기 멋대로 아냐?

그 사람, 정말로 호타루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는 거야?

난--- 호타루가 다카노 부장님과 있는 게 행복하다면 분하긴 해도---

이번에야말로 힘이 되어 주겠다고 생각했어.

전엔--- 동거하고 있다는 사실보다 내가 모르는 두 사람의 유대감을

눈 앞에서 보고 견딜 수 없어서 달아났던 거야.

난 정말 한심했어---

하지만 그런 제멋대로 아저씨에게 호타루를 눈앞에서 뺏기다닌 역시 열받아---

--- 이런 건 전화로 할 말이 아니지만--- 어쩐지 지금 말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

우리 다시 시작하지 않을래?

 

 

 

부장님! 할 말이 있어요.

전 체면이나 결혼을 떠나서

늘 마지막까지 보이지 않는 부장님의 진짜 마음을 알고 싶어요.

 

생각해보면 그 여름날 혼자로서 완벽했던 나의 이 집에

느닷없이 다카노 부장님이 찾아와 모든 게 변해버렸다.

 

호타루씨!

자신의 연애관을 트럼프의 조커에 비유한 적 있었지.

그렇게 말하면 내 경우엔 설령 한 방에 역전할 기회가 있어도

자멸할 가능성이 있는 카드는 쓰지 않는 인생이었어.

하지만 자네와 있으면 꼭 그렇지도 않아.

이건 함께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깨닫지 못했던 거야.

그것이 한 장밖에 없으니까 필요한 거고.

소중한 거란 걸---

지금의 날 움직이고 있는 건--- 지금 여기 있는 자네뿐이야.

 

간지러울 만큼 너무나 행복하고 꿈만 같아서

이때 조금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결국 이 날이 20대 최후의,

건어물과 가장 거리가 먼 날이 되리라는 건.

 

정말로 내가 부장님과 결혼하는구나---!

 

그래.

지금은 확실히 여러 가지로 어색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변해가면 돼.

다 괜찮을 거야.

아빠--- 난 아마도--- 틀림없이 아주 행복할 거야.

 

뭐, 하지만--- 다카노 부장님의 마음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야.

아니--- 당신과 비교하는 건 아니겠지만,

전처 일은 역시 트라우마가 됐을 거 아냐.

그러니까 더 이상 실패하고 싶지 않을 테고,

그래서 가급적 빨리 확실한 형태로 해두고 싶어서 안달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몰라.

 

그래--- 내가 망설이고 있을 때가 아니야.

사실은 서투르고, 과거의 자신을 책망하기만 하던 부장님이

미래로 나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어.

나와 함께.

그래! 나도 힘내자!

 

내가 지금 해야 할 건 회사일이야.

이 툇마루에서 부장님과 둘이 마음 편히 있을 수 있었던 건

내 나름대로 밖에서 힘내고 오면 그걸 인정해주는 사람이 옆에 있어줬기 때문이야.

분수머리도, 맥주도, 부장님의 다정한 말도.

내가 할 수 있는 걸 최선을 다해 한 후가 아니라면

난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 없어.

 

부장님이 하고 있는 말이 옳아.

내 행복을 생각하고,

날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거야.

난--- 그런 다카노 부장님을 너무나 좋아해.

하지만--- 어째서 이 마음은--- 지금까지처럼---

 

다카노 부장님--- 저---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요---

지금의 전--- 부장님에게--- 나비들에게조차 못 미쳐요.

부장님과 결혼할 자격 따위 없어요.

 

어떡해.

와, 완전히 화나게 해버렸어.

--- 아니야. 타카노 부장님이기 때문이야---

그 관계 그대로가 아니라, 부장님과 제대로 마주하려는 각오를 해야 해.

이렇게 한심한 내가 그렇게 필사적으로 노력할 만큼,

좋아하게 된 사람이 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깨닫지 못했을 거야---

 

그건 그렇고--- 왜 갑자기 결혼이야?

세이이치는 호타루 씨를 좋아하니까 결혼하고 싶은 거잖아?

그걸 제대로 전하지 않으니까 잘 안 되는 거 아냐?

 

바보로구나, 세이이치.

가정은 틀에 맞춰 만드는 게 아니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돌아오는 장소가

어느 새 기분좋은 두 사람의 집이 되는 거지.

 

또 달아나는 건가요?

부장님 자존심에 금이 갔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는 거 아니에요.

트라우마를 넘어서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쩔 수 없어요!

전 과거의 여자와는 달라요.

더 이상 지금까지의 한심해서 내버려둘 수 없는 단순한 동거인도 아니에요.

제대로--- 지금의 절 봐주세요.

 

이 집 밖에서 저와 부장님은 전혀 대등하지 않으니까요.

전--- 지금까지 이 집에서 부장님과 뭐든지 서로 얘기하고

이런 맨얼굴로도 태연히 지내고, 정말 편하고 매일 행복했어요.

그래서 기운을 내서 회사일도, 서툴렀던 연애도 열심히 노력했고,

성장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건 전부 부장님이 준 것이었던 거예요.

제가--- 정말로 잘못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전--- 이 따스한 공간에서 제 힘으로 빠져나간 후에 부장님과 연애했어야 했어요.

 

기다리고 있으면--- 돼?

 

아, 안 돼요--- 부, 부장님의 귀중한 40대를--- 헛되이---

저, 전 분명--- 멋대로--- 계속 끈질기게--- 좋아하겠지만---

 

훗! 자네를--- 언제부터 좋아하게 됐는지 생각해봤어.

사실은--- 그 남자와 자고 왔던 날, 가슴이 꽤 욱씬거렸어.

틀림없이--- 내가 더 끈질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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