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기다리고 있어.
나나가 다시 일어서는 날까지.
마치 쏘아올린 폭죽 같았다.
우리가 그리던 꿈은.
시커먼 어둠을 가로지르는 빛과 소리의 홍수.
눈부신 축제.
(미래) 작은 클럽인가. 피아노 반주에 맞춰서 노래를 부르는 긴 금발 머리의 여자.
흘러내린 옷 위로 살짝 드러나보이는 연꽃 무늬와 마이크를 잡고 있는 장갑낀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다이아 반지. 그녀를 바라다보는 모자 쓴 남자.
쿠라타입니다.
나나는 못 찾았습니다.
이번에도 전부 허위정보예요.
전 이제 이 일 그만두겠습니다. 쿠도 씨도 어지간히 하고 접는 게 어때요?
아무리 찾아봤자 소용없어요.
블래스트의 나나는 소문대로 이미 죽은 겁니다.
그 바다에서.
있잖아, 하치.
올해도 슬슬 그 바다에 첫눈이 내리겠지.
계절을 빗겨난 폭죽을 혼자 보고 있으려니까---
길들여졌을 외로움이
견딜 수 없을 만큼 몸부림치기 시작해.
이봐, 타쿠미.
네.
나나 어리광을 너무 받아주면 못써. 바보녀한테 공을 들여서 어쩌려구? 아주 엄하게 길들여야지.
(쥰의 말을 들은 타쿠미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알겠습니다, 어머님, 하고 놀린다.
오늘은 특별해.
내가 내일부터 두 달 동안 일 때문에 외국에 가게 돼서, 생일을 앞당겨 축하해 주는 거야. 너그럽게 봐주라.
요번엔 내가 타쿠미한테 선물 사줄게. 타쿠미, 다음 달에 생일이지?
내가 준 용돈으로?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
내가 고른다는 거에 의미가 있는 거야.
타쿠미와 하치의 일상적인 행복이 쓸쓸해진다.
미래가 불안해져서일까?---
담배도 안 피면서, 이런 것까지 안 갖고 다녀도 돼.
화가 난다.
불이 붙지 않는 라이터에도, 들러붙는 깍다귀한테도, 초조해하는 나를 배려해주는 유리한테까지.
왜 이렇게 뭐든 다 초조해지는 거지?
아니, 원인은 알아.
하지만 이것저것 너무 많아서 뭐가 뭔지 이젠 잘 모르겠다.
어떻게든 해야 돼. 이대로 가다간 점점 더 밥맛없는 인간이 될 거야.
초조한 마음을 달래려고 노래방에 가자는 나나의 제안으로
어영부영 함께 놀게된 나나와 그 일당들. 뮤까지 초대받는다.
렌 : 뮤라니? 누구야?
나나 : 야스 여자야.
야스 : 네가 묻고 싶은 건 그게 아니잖아.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톡 까놓고 말해.
렌 : 레이라는 이제 괜찮아?
레이라?
나나는 말고. 나나는 내가 어떻게든 할 거야. 너한테 죽어도 안 넘겨줘.
그래도 레이라한텐 역시 대머리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멋대로 그런 생각해봤자야.
걱정 안 돼? 타쿠미 결혼 건도 화제가 됐잖아. 씩씩하게 일하고 있지만, 딱하지 않냐?
걱정은 걱정인데, 응해줄 수도 없는데 다정하게 굴 순 없지.
노래해도, 노래해도, 노래해도, 목이 쉬어갈 뿐.
화는 수그러들지 않는다.
타인은 내 맘대로 안 돼.
울어도, 소리쳐도, 매달려도, 렌은 결국 또 나를 두고 가 버릴 거잖아.
역시 네가 끓인 된장국이 제일 맛있어.
(그런 칭찬 하나도 안 반가운 듯) 나가 봐.
넌 내가 트라네스를 빠져나와서 런던에 안 가면 그걸로 만족해?
하치코가 애를 지우고 타쿠미랑 헤어지면 그걸로 만족할 거야?
야스가 평생 혼자 살면서 네 곁에 있어 주면 그걸로 만족할 거냐구.
그래--- 그게 독선적인 나의 바람.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
그런 게 아니겠지.
나도 네가 집에서 된장국 끓여놓고 기다려 준다고 해서 그걸로 만족할 리가 없고.
네가 그걸 스스로 원해서 행복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
억지로 강요해 봤자 허무하기만 할 뿐이야.
하지만 난--- 계속 노래하고 싶어. 아이도 원하지 않고. 렌이 바라는 걸 난 바랄 수 없어.
알아. 그건 피차 마찬가지야.
내가 상경한 건 프로 기타리스트가 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기 때문이지만,
지금은 트라네스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고, 멤버는 나의 자랑이야.
알아. 하지만 난 그게 도무지 재미없단 말야.
렌의 소중한 것을 소중히 여겨줄 수가 없어.
상대방의 바람을 들어줄 수 없어서 괴롭다.
자신의 바람을 이룰 수 없어서 쓸쓸하다.
그런 두 사람이 함께 있어봐야 즐거울 리 없지.
끝장이다. 이번에야말로.
잘 먹었어.
맥빠진 아침식사. 달걀프라이라도 해줬으면 좋았을 걸.
마지막까지 난---
나나. 그럼 다녀올 테니까, 매주마다 점프 사다 놔.
그야 식은 죽 먹기지.
마지막이 아닌 건가?
하지만 돌아온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하치가 만든 달걀말이 맛있었지.
맛은 싱거워도 뭔가 폭삭한 게. 다음에 가르쳐 달래자.
그 정도라면 노래하면서 할 수 있어.
반면, 타쿠미의 옷을 붙잡고 흑흑흑 우는 하치, 기어코 타쿠미더러 아기한테 인사하게 만들고, 사치코 아빠다. 내가 없는 동안 엄마를 부탁한다, 그때 아기가 발길질이라도 했나? 잠깐 놀라면서 흐뭇해하는 두 사람. 나나의 말처럼 싱거워도 폭삭해서 행복한 풍경이다. 타쿠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이런 거 아니었나?
신. 휴대폰 울리는데?
괜찮아.
(계속 울려대는 신의 휴대폰)
작작 좀 해. 전화건 메일이건 하지 마. 만나지 않겠다고 한 건 그쪽이잖아.
하지만 신은 좋아해. 부탁이니까 이해해줘. 전화로 얘기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난 기뻐.
그렇게 나오면 이쪽은 만나고 싶어지기만 한다구. 자기밖에 모르는 여자야.
렌 방에서 가져온 짐을 풀었더니 마치 나갈 차례를 기다렸다는 듯,
하치에게 건넬 기회를 놓친 딸기컵이 나왔다.
나를 고민하게 만드는 상황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지만,
무엇 하나 손에서 놓고 싶지는 않으니까, 최소한 내 자신이 바뀌어야 한다고 여겼다.
잃는 게 두렵다니, 축복받은 증거로군.
하치의 스물한 번째 생일.
노부를 제외한 모두가 모여서 축하를 해주었다. 오랜만에 즐거운 사람들.
쥰 :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이것저것 잘 아는구나, 나나.
완전히 뮤지션 부인이란 느낌이야.
나나 : 사실은 조폭마누란데.
타쿠미가 하치한테 그런 얘기까지 한다는 건 사실 의외다.
생각해보면 난, 하치가 그 시로카네 집에서 어떤 삶을 영위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는데.
하치가 조금 또 멀어졌다.
하지만 그건 내가 묻지 않기 때문이다.
하치도, 렌도.
자기들 얘기를 거의 하지 않는 건 나를 배려하기 때문이다.
렌이 귀국하면, 런던에서 레코딩이 어떤 식이었는지, 앨범 컨셉은 어떤 느낌인지.
이것저것 물어보자.
가능한한 즐겁게 얘기할 수 있도록, 나도 좀 더 블래스트 일에 힘써야겠다.
자신의 프라이드를 지킬 수 있도록.
그 점만은 결코 변할 수 없어.
휴대폰이나 살까?
이번에도 렌이랑 한 쌍으로 해도 될까요?
그건 싫어.
그럼 어떤 기종이 좋은데요?
외국에도 걸 수 있는 거 없어?
이제 한 쌍이 아니어도 좋아.
이젠 같은 게 아니어도 좋으니까, 더욱 견고하게 연결되고 싶다.
있잖아, 하치.
너와 살았던 그 방은 엘리베이터도, 에어컨도, 베란다도 없어서 살기는 불편했지만,
난 그 장소가 좋았어. 네가 있었으니까.
렌과 처음 만난 것도, 렌과 처음 맺어진 것도, 그러고 보니 크리스마스였다.
렌, 전화 왔어.
헬로우~ 달링~ 메리 크리스마스~
먼저 마음을 열어보이는 나나.
아무튼 그렇게 됐으니까, 향수병 생기거든 고집부리지 말고 전화해.
각자의 크리스마스.
같은 시간을 보낼 순 없지만, 오늘은 즐거웠다고 서로 보고할 수 있는,
그런 관계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블래스트 팬사은회.
그날 초대객을 30명으로 잡은 건, 반드시 날아와 줄 거라고 생각한 오래된 팬들 숫자였다.
하지만 고향에서 온 참석자는 고작 일곱 명.
하지만 CD는 일본에서 제일 잘 팔리고 있으니까.
이대로 뚫고 나가는 수밖에 없어.
앞만 보는 거다.
나나 씨!
어머, 안녕하세요. 쿠라타 씨. 그땐 신세 많이 졌어요.
저기, 그쪽한테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나나 어머니가 살아 있다는 거 알아?
있잖아, 하치.
난 나를 버린 친모가 모질게 살아남았다는 것 때문에 상처받은 게 아냐.
남들처럼 평범한 여자로 전락했다는 사실이 몸서리 처지게 싫었어.
나도 참 가엾은 인간이지?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내 친모의 마지막 이미지는
봄 눈 속을 빨간 하이힐을 신고 달려가는 뒷모습.
하지만 눈 내리던 날, 그런 구두로 달리다니, 말이 안 된다.
내 기억은 어딘지 리얼리티가 없다.
그런데, 나나를 버리고 행방을 감춘 여자가---
아이를 둘이나 멀쩡하게 키우면서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니, 이해가 안 돼---
그렇게 의심스러우면 스스로 확인해보면 되잖아. 난 그쪽은 믿고 있으니까.
댁은 나나의 비밀을 다른 사람한테 불진 않겠지?
물론이죠. 도대체 특종 욕심 때문에 나한테 말을 걸다니, 경솔하네요, 쿠라타 씨.
서치가 이런 일을 캐고 다닌다는 걸 안 이상, 기사는 전력을 다해 막겠어요.
무리라고 생각하는데. 혼자 힘으로 뭘 할 수 있는데?
타쿠미랑 나나는 확실히 승자 쪽이지만, 당신은 그저 착각에 빠진 여자라구.
야스 : 미우한테 들었어.
살펴본 바로는 그 앤 나나의 순수한 팬인 것 같고 별 문제없이 사은회는 무사히 끝났다.
그런데 그 애는 나나랑 많이 닮았더군. 마치 같은 유전자를 가진 것처럼.
--- 만약 내 짐작이 맞다면 혼자 끌어안지 말고 얘기해 줘.
나나 어머니 소식은 호적을 추적해가다 보면 알 수 있을 거야.
이런 상황에선 언제 누가 냄새를 맡을지 모른다.
그 사람과 그 사람 가족을 위해서라도 조심할 필요가 있어.
상처받는 건 나나만이 아냐.
있잖아, 하치.
네 살 때 어머니한테 버림받고, 열다섯 때 하나밖에 없던 가족도 잃고,
꿈도 희망도 없던 나로선, 노래는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었어.
돈도 명예도 모두 갖고 싶었어.
하지만 지금 갖고 싶은 건 오직 하나.
다시 한 번 맞설 수 있는 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