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이랑

서포만필... 우리말 사랑

2012. 10. 7. 15:48

송강의 '관동별곡'과 '전후미인가'는 우리나라의 離騷다. 그러나 그것을 중국 글로 쓸 수 없었기 때문에 다만 음악가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수하거나 혹은 한글로 적혀서 전해질 뿐이다.

어떤 사람이 칠언시로 '관동별곡'을 번역하였으나 잘 되지 않았다. 이 칠언시는 택당이 젊었을 때 지은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

구마라즙(인도 중으로 남북조 초기에 중국에서 불교를 전파하고 또 불경을 한역했음)이 말하기를,

"인도에서 대부분 辭華를 대단히 숭상하여, 인도의 부처를 찬양한 노래는 무척 아름다운데, 이제 그것을 중국 글로 譯出하게 되면 다만 그 뜻을 알게 할 뿐이지, 그 사화는 전하기 힘들다."

이것은 응당 그렇다. 사람이 마음이 입을 통해 나타난 것이 말이고, 말에다 운율을 가미한 것이 노래요, 시요, 문장이요, 賦다. 사방의 언어가 다르기도 하나 말을 잘하는 사람이 있어서 각각 고유언어를 가지고 운율을 잘 맞추기만 한다면 다 충분히 천지를 움직이고, 귀신에게까지도 통할 수 있는 것으로, 그것은 중국의 경우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시와 문장은 고유한 언어를 버리고 다른 나라의 언어를 흉내내어 썼다. 설사 아주 비슷하다 해도 앵무새가 하는 사람의 말일 뿐이다. 그런게 거리의 나무하는 아이들이며 물긷는 아낙네들이 에야데야 하며 서로 和唱하는 것이 비속하다고는 하지만, 그 진위성을 따진다면 사대부들의 이른바 詩賦를 흉내내는 것과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물며 이 세 別曲에는 天機가 자연적으로 발로되어 있고, 미개한 사회에 흔히 있는 낮고 속된 성질은 없다.

 

옛날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구석에 치우쳐 있는 이 나라의 진정한 글이란 이 세 편 뿐이다. 그러나 또 이 세 편에 관해서 말하면 '後美人曲'이 더욱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관동별곡'과 '前美人'은 중국의 어휘를 빌어서 수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