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 언문세설 1 / 기역
기역…… 이 글자를 맨 먼저 ‘기역’이라고 부른 것은 세종이 아니다. 그를 도와 훈민정음을 함께 창제한 집현전의 학자들도 아니다. 그들은 힘들여서 글자 체계를 만들어냈지만, 정작 그 글자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 글자를 꼭 독립적으로 읽어야 할 필요가 있을 땐, 아마 그들은 ㄱ에 기본적인 홀소리 아래아(ㆍ)를 덧붙여서 ‘’라고 읽었을 것이다. 적어도 양성이나 중성의 홀소리를 덧붙여 읽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들이 《훈민정음 언해》에서 글자의 소릿값을 보이며
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어로 옮겨보자. “ㄱ는 어금닛소리니 君(군)자의 처음 내는 소리와 같은데, 나란히 쓰면 虯(뀨)자의 처음 내는 소리와 같다.” 현대어로 옮겨도 ‘ㄱ은’이 아니라 ‘ㄱ는’이다.
다시 15세기의 《언해》로 돌아가 보자. “"에서 보조사로서 ‘
’이 쓰였다는 것은 훈민정음 창제자들이 편히 부르던 ㄱ의 ‘이름’이 밝은홀소리, 즉 양성모음이나 중성모음 ‘ㅣ’로 끝났다는 것을 뜻한다. 만약에 그것이 닿소리로 끝났다면 보조사가 ‘’이나 ‘은’이 됐을 것이다. 현대어에서도 개음절 뒤에는 보조사 ‘는’이 오고, 폐음절 뒤에는 보조사 ‘은’이 온다. “사랑‘은’ 가고 나‘는’ 남는다.”
또 만약에 그 ‘이름’이 음성의 홀소리로 끝났다면 보조사가 ‘는’이 됐을 것이다. 현대어에서와는 달리 15세기어에서는 모음조화가 꽤 철저히 이루어졌으니까. 그러니, ㄱ 글자의 이름은 닿소리로 끝나지도 않았고, 어두운홀소리(음성모음)로 끝나지도 않았다. 그것은 분명히 밝은홀소리나 중성홀소리(ㅣ)로 끝났다. 밝은홀소리 가운데 가장 두루뭉술한 것은 아래아 곧 ㆍ다. 훈민정음 창제자들이, 비록 글자들의 이름에까지는 생각이 못 미쳤더라도, ㄱ을 ‘’라고 읽었으리라는 것은 넉넉히 짐작할 만한 일이다.
물론 그렇게 단정할 수만은 없다. 보조사 ‘’은 체언의 마지막 모음이 양성모음과 중성모음일 경우에 두루 쓰였으므로, 이론적으로는 ㄱ의 ‘이름’이 ‘
’였을 수도 있고, ‘가’였을 수도 있고, ‘고’였을 수도 있고, ‘기’였을 수도 있고, ‘갸’였을 수도 있고, ‘교’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ㄱ의 ‘이름’이 ‘
’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가’나 ‘갸’나 ‘고’나 ‘교’였을 개연성은 그리 크지 않다. 양성모음의 대표성에서 이 모음들은 아래아만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ㄱ에 중성모음 ‘ㅣ’를 붙여 ‘기’라고 불렀을 개연성은 ‘
’라고 불렀을 개연성에 크게 모자라지 않는다. ‘ㅣ’는 중성모음으로서 모음 전체를 대표할 만하고, 또 뒷날의 관습이 이런 개연성을 부분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히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ㄱ에 ‘기역’이라는 이름을 준 사람은 성종 때부터 중종 때까지 살았던 최세진이라는 사나이다. 최세진은 누구인가? 1473년께 태어나 1542년에 죽은 사람이다. 자(字)는 공서(公瑞)이고 본관은 괴산이다. 그는 역관(譯官)이었다. 곧 통역 공무원이었다. 그의 부친 최정발도 역관이었다. 말하자면 당대의 신분 질서 속에서 최세진의 집안은 한미한 중인층에 속했다. 다른 역관들과는 달리 그는 역과 출신이 아니라 문과로 등제했음에도, 사대부 계층의 핍박과 멸시 속에서 불우한 삶을 보냈다. 임금은 그의 재능과 성품을 아꼈지만, 봉건시대의 신분 질서는 늘 그를 변두리로 내몰았다. 그러나 그는 전근대 시기 최고의 국어학자였고, 어쩌면 훈민정음의 창제자들을 제외하고는 전근대 시기의 거의 유일한 국어학자였을지도 모른다.
한힌샘 주시경 이후 근대 국어학의 역사에는 큰 학자들의 이름이 점점이 박혀 있다. 얼른 생각나는 이름들만 해도 김두봉, 김윤경, 최현배, 박승빈, 이희승, 양주동, 이숭녕, 홍기문, 이기문, 서정수 등 꼽다 보면 금세 열 손가락을 채운다. 그러나 근대 이전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면 국어학자 이름이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국어에 관한 저술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은 대체로 유학자들의 여기(餘技)에 지나지 않았다. 정약용을 포함한 실학자들의 저술도 마찬가지다. 단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최세진의 업적이다. 그의 저술들이 대체로 중국어에 관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가 자신의 저술들에 틈틈이 끼워넣은 언문, 곧 정음에 대한 언급은 중세 후기 한국어의 모습을 밝혀주는 중요한 실마리 가운데 하나다.
최세진은 중종 22년(1527년) 4월에 편찬해 3권 1책으로 펴낸 어린이용 한자 학습서 《훈몽자회(訓蒙字會)》의 하권에서 언문 자모에 이름을 부여했다. 그는 훈민정음 스물여덟 글자 가운데 ㆆ을 제외한 스물일곱 글자에 대해서, 그 글자의 소릿값을 나타내는 방식으로 이름을 지었다. ㄱ은 其役(기역)으로, ㄴ은 尼隱(니은)으로, ㄷ은 池末[디귿]으로, ㄹ은 梨乙(리을)로, ㅁ은 眉音(미음)으로, ㅂ은 非邑(비읍)으로, ㅅ은 時衣[시옷]으로, ㆁ은 異凝(이)으로. 디귿의 ‘末’과 시옷의 ‘衣’가 진하게 표시된 것은 이 한자를 소리로 읽지 말고 뜻으로 읽으라는 뜻이다.
이 여덟 자 이름의 둘째 음절은 은, 귿, 을, 음, 읍, 처럼 홀소리 ㅡ를 포함하고 있는데, 단지 기역의 ‘역’과 시옷의 ‘옷’만 그렇지 않다. 그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최세진은 한자로써 한글의 이름을 지었는데, 한국 한자음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윽’도 없고 ‘읏’도 없기 때문이다. 또 이 홀소리 이름들의 둘째 음절이 모두 ㅇ으로(곧 모음으로) 시작하는 데 비해서 디귿의 ‘귿’만이 ㄱ으로 시작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한국어 형태소에는, 한자든 고유어든, 그때나 지금이나, ‘읃’이라는 음절이 없는 것이다.
나머지 닿소리 글자에 대해서 최세진은 외자 이름을 주었다. ㅋ에는 箕[키]를, ㅌ에는 治[티]를, ㅍ에는 皮(피)를, ㅈ에는 之(지)를, ㅊ에는 齒(치)를 ㅿ에는 而(ᅀᅵ)를, ㅇ에는 伊(이)를, 그리고 ㅎ에는 屎(히)를. 箕에 동그라미가 둘러진 것은 이 한자의 음과 ㅋ소리가 똑같지는 않다는 뜻이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때도 한국어 한자음에는 ‘키’라는 음절이 없었고, 최세진으로서도 궁리 끝에 음이 비슷한 한자, 곧 ‘箕’로 ㅋ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최세진은 왜 ㄱ에서 까지는 두 자 이름을 붙이고, 나머지 닿소리에 대해서는 외자 이름을 붙였는가. 그것은 당시의 맞춤법으로 ㄱ에서 까지 여덟 글자는 음절의 첫소리(초성)와 끝소리(종성)에 두루 사용될 수 있었지만, 나머지 닿소리들은 첫소리에만 사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곧 ㅋ, ㅌ, ㅍ, ㅈ, ㅊ, ㅿ, ㅇ, ㅎ은 최세진이 이상적으로 생각한 맞춤법에서는 받침이 될 수가 없었다. 받침이 될 수가 없으므로, 받침이 될 때의 소릿값을 드러내는 음절을 이름에 포함시킬 필요도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최세진이 붙인 ‘其役’ ‘尼隱’ ‘池末’ ‘梨乙’ 따위의 이름들이 사실은 언문 자모의 이름이 아니라, 그 자모의 소릿값을 드러내는 범례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뜻한다.
홀소리에 이름을 주면서는 그 글자들의 소릿값 자체를 이름으로 삼았다는 사실도 그런 짐작을 정당화한다. 최세진은 ㅏ를 阿(아)로, ㅑ를 也(야)로, ㅓ를 於(어)로, ㅕ를 余(여)로, ㅗ를 吾(오)로, ㅛ를 要(요)로, ㅜ를 牛(우)로, ㅠ를 由(유)로, ㅡ를 應(응에서 종성이 없는 으)로, ㅣ를 伊(이)로, ᆞ를 思(에서 초성 ㅅ이 없는 )로 불렀다. 만약에 최세진이 언문의 이름을 짓는다는 적극적 의식을 지니고 이 글자들을 불렀다면, ㅇ과 ㅣ를 똑같이 ‘伊’라고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것을 구별하기 위해서인데, 다른 사물에 구태여 똑같은 이름을 붙일 이유가 없지 않은가? 최세진의 생각에는 그것이 이름이 아니라 단지 소릿값의 용례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닿소리 ㅇ과 홀소리 ㅣ를 똑같이 ‘伊’라고 불렀을 것이다. 그러나 최세진의 속마음이야 누가 알 수 있겠는가? 그가 단지 언문 자모의 소릿값을 보인 것일 수도 있고, 자모의 이름을 지은 것일 수도 있다. 또는 그 둘 다일 수도 있다.
금세기 초의 국어학자들은 최세진의 ‘其役’ ‘尼隱’ 등을 글자의 이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수많은 논란 끝에 최세진의 선례를 본받아 한글 자모의 이름을 확정했다. 홀소리 글자들의 이름과 ㄱ에서 ㅇ까지의 닿소리 글자 이름은 최세진이 부여한 이름을 그대로 따랐고, 최세진이 외자 이름을 부여한 나머지 닿소리 글자에 대해서는 다른 닿소리 글자 이름의 예를 좇아 둘째 음절을 부여했다. ‘지(之)’는 ‘지읒’으로 바꾸고, ‘피(皮)’는 ‘피읖’으로 바꾸는 식으로. 그래서 한글 스물넉 자의 자모 이름은 이렇게 확정됐다: 기역, 니은, 디귿, 리을, 미음, 비읍, 시옷, 이응, 지읒, 치읓, 키읔, 티읕, 피읖, 히읗 ; 아, 야, 어, 여, 오, 요, 우, 유, 으, 이.
해방이 되었다. 그 해방은 곧 분단이었다. 북한에는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스탈린주의자들이 정권을 잡았다. 좌(左)든 우(右)든 전체주의자들의 특색은 ‘튀는 것’을 참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반듯반듯한 것, 주머니 속에다 꼭 집어넣을 수 있는 것을 사랑한다. 그래서 그들은 길면 잘라내고 짧으면 늘인다. 그런데 그들의 눈에 ‘기역’이라는 이름과 ‘디귿’이라는 이름, ‘시옷’이라는 이름이 영 거슬렸다. 다른 닿소리 이름들은 그 둘째 음절이 모두 ‘으’로 시작하는데, 기역과 디귿과 시옷만이 ‘여’요 ‘그’요 ‘오’인 것이다. 그것은 ‘윽’과 ‘읃’과 ‘읏’을 표기할 방법을 찾아내지 못한 최세진의 잘못 때문이긴 하지만, 아무튼 북한의 이 전체주의자들은 그런 모난 돌을 참아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정을 들었다. 이 ‘튀는’ 이름들을 깎고 다듬어서 다른 글자들의 이름 형식에 맞추기 위해서. 그 결과로 ‘기역’은 ‘기윽’이 되었고, ‘디귿’은 ‘디읃’이 되었고, ‘시옷’은 ‘시읏’이 되었다. 글자들이 모두 유니폼을 입게 된 것이다. 이것을 잘한 일이라고 해야 할지 못한 일이라고 해야 할지 나는 모르겠다.
그런데 그들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이 닿소리 이름들은 이름으로서 그다지 품위가 없었다. 기윽, 니은, 디읃…… 발음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훈민정음을 창제한 15세기 조상들의 예를 따라서 기본적인 홀소리만을 첨가해 이 닿소리들의 별명을 짓기로 했다. 그래서 ‘기윽’은 ‘그’라는 별명을 얻었고, ‘니은’은 ‘느’라는 별명을 얻었고, ‘디읃’은 ‘드’라는 별명을 얻었다. 나머지 닿소리 글자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ㅇ만은 ‘응’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으’라고 읽으면 닿소리로서의 ㅇ의 소릿값이 드러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홀소리 ㅡ의 이름 ‘으’와 혼동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잘한 일 같다.
그들이 잘한 일이 또 하나 있는데, 자음 글자든 모음 글자든 겹글자들을 모두 독립적인 글자로 내세운 것이다. 그래서 남한에서는 한글이 스물넉 자이지만, 북한에서는 조선 문자가 마흔 자에 이른다. 예컨대 남한에서 ‘쌍비읍’이라고 부르는 글자를 북한에서는 ‘된비읍’이라고 부르는데, 남한에서 ㅃ이 독립된 글자가 아닌 반면에, 북한에서는 ㅃ이 독립된 글자다. 그들은 이런 겹글자들을 홑글자가 다 끝난 뒤에 배열했다. 그래서 자모의 수만이 아니라 사전에서의 자모 배열 순서에도 차이가 나게 되었다. 북한에서, 조선어 자모의 이름과 차례는 이렇게 되었다: 기윽, 니은, 디읃, 리을, 미음, 비읍, 시읏, 이응, 지읒, 치읓, 키읔, 티읕, 피읖, 히읗, 된기윽, 된디읃, 된비읍, 된시읏, 된지읒 ; 아, 야, 어, 여, 오, 요, 우, 유, 으, 이, 애, 얘, 에, 예, 외, 위, 의, 와, 워, 왜, 웨.
위에서 얘기했듯, 닿소리 글자들은 별명이 있다. 즉 그, 느, 드, 르, 므, 브, 스, 응, 즈, 츠, 크 ,트, 프, 흐, 끄, 뜨, 쁘, 쓰, 쯔.
다시 ㄱ으로 돌아가자. 이 글자가 나타내는 소리는 국제음성문자로는 /k/로 표기되는 연구개 무성 파열음이다. 연구개 무성 파열음이라…… 학창 시절의 음성학 시간이 생각난다: “ㄱ의 대표소리는 연구개 무성 파열음 /k/다, 이 소리는 한국어에서 유성음 사이에 오면 [g]소리로 유성음화한다, 말하자면 ‘가게’의 첫 ㄱ은 [k]이고 두 번째 ㄱ은 [g]다, 그 두 번째 ㄱ은 때로 마찰음화해서 [ɤ]로 소리 나기도 한다, ㄱ 소리는 또 ㅣ 모음 앞에서는 다소 구개음화하고, 반모음 /w/ 앞에서는 살짝 원순화한다, 그래서 ‘광교’의 첫 ㄱ은 ‘원순화한 [k]’이고, 두 번째 ㄱ은 ‘구개음화한 [g]’이다, 같은 ㄱ이라도 이렇게 소리들이 제각각이다, ㄱ 소리는 분석의 수준에 따라서 이보다도 훨씬 더 잘게 나뉠 수 있다. 그 모든 소리들의 총체가 ㄱ이다…….”
ㄱ…… 이 글자의 꼴은 이 글자가 나타내는 소리를 낼 때 혀의 뿌리가 굽어서 목젖 가까이 붙는 옆모양을 본뜬 것이다. 훈민정음의 창제자들이 예외적인 상상력과 독창성을 지닌 사람들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세상에, 조음기관의 모양을 본떠 글자를 만들다니. 아마 이것은 세계 문자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일 것이다. 아니, 후무(後無)까지는 몰라도 전무(前無)한 것은 확실하다.
레드야드라는 언어학자의 찬탄을 들어보자. “(글자의) 모양과 (그 글자의) 기능을 관련시킨다는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를 실현한 방식에 대하여 정말이지 경탄을 금할 수 없다. 유구하고 다양한 문자사에서 그런 일은 있어본 적이 없다. 소리 종류에 따라 글자 모양을 체계화한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이다. 그런데 그 글자 모양 자체가 그 소리와 관련된 조음기관을 본뜬 것이라니…… 이것은 견줄 데 없는 문자학적 호사다.”
소리 종류에 따라 글자 모양을 체계화했다는 것은 예컨대 어금닛소리(연구개음) 글자인 ㄱ에 획을 더해 같은 어금닛소리 글자이되 거센소리 글자인 ㅋ을 만들고, 또 입술소리 글자인 ㅁ에 획을 차례로 더해 같은 입술소리 글자이되 새로운 음운 자질이 더해진 ㅂ과 ㅍ을 만들어냈다는 뜻이다. 실제로 한글의 닿소리 글자 하나하나는 음소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그 음소를 이루는 음운 자질까지를 드러내고 있다. 한글이 로마 글자 같은 음소 문자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음운 자질 문자’라는 평가는 그래서 나온다. 그런데 그 글자의 꼴 자체가 조음기관의 형태를 본뜬 것이다. 예컨대 ㄱ은 이 소리를 낼 때의 혀 모양을 본뜬 것이고, ㅁ은 이 소리를 낼 때의 입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 견줄 데 없는 문자학적 호사라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그렇다. ㄱ은 혀의 뿌리가 굽어 있는 모양이다. ㄱ의 이 굽어 있는 글자꼴에 바탕을 두고 ‘기역자(字)자’ ‘기역자쇠’ ‘기역자집’ ‘기역자홈’이라는 말이 생겼다. ‘기역자자’는 글자 그대로 ㄱ자 모양의 곱자를 뜻하고, ‘기역자쇠’는 ㄱ자처럼 90도 꺾인 쇠이며, ‘기역자홈’은 ㄱ자 모양으로 파낸 홈이고, ‘기역자집’은 지붕이나 집의 평면이 ㄱ자 꼴을 한 집이다. 전통 한옥은 대체로 ‘기역자집’이 아니면 ‘디귿자집’이다. ‘디귿자집’은 지붕이나 집의 평면이 ㄷ자 꼴을 이룬 집이다. 한옥은 한국식 집이라는 뜻일 터이다. 이 한국식 집이 한국의 어디에 있을까? 적어도 이제 서울에서는 한옥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아파트가 들어서지 않은 강북의 종로나 마포 변두리에나 한옥이 모여 있을 뿐이다.
배움이 전혀 없는 사람을 두고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는 속담을 흔히 사용한다. 낫을 눈앞에 놓고도 낫 모양으로 생긴 기역 자도 모른다는 것이니, 아주 무식하다는 뜻이다. 이 속담이 1443년 이후에 생긴 것은 확실하다 ㄱ자가 생긴 것이 그때이니 말이다. 더 정확히는 최세진의 《훈몽자회》가 나온 1527년 이후에 생겼을 것이다. ‘기역’이라는 이름이 생긴 것이 그때이니까.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와 비슷한 뜻을 지닌 속담으로 “기역 자 왼 다리도 못 그린다”라거나 “가갸 뒷자도 모른다”라는 것도 있다. 기역 자나 그 기역 자를 첫소리로 해서 이뤄지는 ‘가갸’는 한글을 배울 때 처음 익히는 것인데, 그것도 모른다면 얼마나 무지하냐는 뜻이겠다. “기역니은도 모른다”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기역니은’이라는 말은 일차적으로 ㄱ과 ㄴ을 뜻하는 것이지만, 한글을 뜻하기도 한다. 마치 그리스어 자모의 첫 글자 이름인 알파와 둘째 글자 이름인 베타를 합쳐 만든 알파벳이라는 말이 로마 글자를 비롯한 소리글자 일반을 나타내듯이.
‘기역니은순’은 차례를 매길 때 한글 자모의 차례에 따라 매긴 순서를 말한다. ‘가나다순’이라고도 하고 그저 ‘자모순’이라고도 한다. 사전의 올림말을 배열하는 순서가 이 ‘기역니은순’이다. ‘가나다표’는 한글을 가르치기 위해서 닿소리와 홀소리를 하나씩 차례로 합성하여 받침 없는 음절 글자를 만들어놓은 표다. 말하자면 반절표를 현대화해 만든 표다. 그 가로축 가운데 맨 위에 있는 것은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일 것이고, 그 세로축 가운데 맨 왼쪽에 있는 것은 ‘가갸거겨고교구규그기’일 것이다. 그래서 ‘가갸’라는 말은 한글 합성자를 뜻하기도 하고, 한글 자체를 뜻하기도 한다. 한글날의 처음 이름이 ‘가갸날’이었다. ‘가갸 뒷다리’라는 표현도 있다. 한글 합성자의 받침을 우스개로 일컫는 말이다. 이북에서는 ‘가나다표’를 ‘가갸표’라고 부른다. 아무튼 가나다표의 첫 번째 한글 합성자는 ‘가’다. 첫 번째 닿소리 글자인 ㄱ과 첫 번째 홀소리 글자인 ㅏ가 결합한 ‘가’…… 그러니 이 ‘가’는 ‘처음의 처음’이라 할 만하다. ‘가’는 ‘시작의 시작’이고 ‘머리의 머리’다.
이 ‘가’는 한국어에서 여러 의미를 지닌다. 우선 어떤 물건이나 장소의 둘레 언저리나 끝부분을 의미하는 ‘가’가 있다. ‘책상 가’ ‘건물 가’ ‘넓은 호수의 가’ 할 때의 ‘가’ 말이다. ‘가장자리’도 비슷한 말이지만, ‘가’가 대상의 가장 바깥쪽 부분만이 아니라 그 물체 가까이에 있는 주위의 공간까지를 가리킬 수 있는 데 비해, ‘가장자리’는 그 물체 자체의 가장 바깥에 있는 부분만을 가리킬 뿐 그 가까이에 있는 주위의 공간을 가리킬 수 없다. 즉 이 두 단어는 동의어가 아니다.
예컨대 우리는 ‘책상 가에 놓인 꽃병’이라고도 말할 수 있고 ‘책상 가장자리에 놓인 꽃병’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강가를 산책했다’ ‘난롯가에 모였다’를 ‘강 가장자리를 산책했다’거나 ‘난로 가장자리에 모였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적어도 표준어에서는 그렇다. ‘강가’나 ‘난롯가’는 강의 주변이나 난로의 주위 공간을 가리키지만, ‘강 가장자리’나 ‘난로 가장자리’는 강이나 난로의 일부분, 즉 강이나 난로의 가장 바깥쪽 부분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강 가장자리’는 강의 일부분이니 우리가 거길 산책할 수는 없고, ‘난로 가장자리’는 난로의 일부분이니 우리가 거기에 모일 수는 없다.
한자어 ‘가’도 여럿 있다. 우선 가법(加法)이나 가산(加算)의 준말 가(加)가 있다. 쉬운 고유어로는 ‘더하기’라고도 하는 ‘가’ 말이다. 같은 한자를 쓰는 또 다른 가(加)는 부여나 고구려에서 족장이나 높은 벼슬아치를 일컫던 말이다. 비록 접미사처럼 사용되기는 했지만 고추가(古鄒加), 대가(大加), 마가(馬加), 우가(牛加) 같은 말에서 보이는 가(加)가 그 ‘가’다. 족장을 일컫는 ‘가’는 더하기를 일컫는 ‘가’와는 달리 한국제 한자어다.
‘분가하여 따로 한 가(家)를 이루다’에서처럼 같은 호적 안에 있는 사람의 무리, 즉 호주와 그 가족을 의미하는 ‘가’도 있다. 또 옳음, 좋음이나 회의에서의 찬성을 의미하는 가(可)가 있다. ‘연소자 관람 가’ ‘의원 여러분의 가와 부를 묻겠습니다’ 할 때의 가(可)가 그것이다. ‘연소자 관람 가’ 할 때의 ‘가’에 상대되는 말은 불가(不可)이고, ‘의원 여러분의 가’ 할 때의 ‘가’에 상대되는 말은 부(否)다. 이 가(可)는 또 성적을 수우미양가로 나눌 때의 맨 아래 등급이기도 하다. 가장 아래 등급임에도 불구하고 그 뜻은 그리 사납지 않다. 아무튼 ‘불가’가 아니라 ‘가’ 아닌가.
한자어 ‘가’에는 또 접두사, 접미사들이 많다. 가속도, 가추렴에서처럼 ‘더함’을 뜻하는 접두사 가(加)가 있고, 가계약, 가건물, 가매장(假埋葬), 가석방, 가수요(假需要), 가결의(假決議) 같은 말에서처럼 ‘임시의’ ‘우선의’ ‘정식이 아닌’ ‘일시적인’의 뜻을 지닌 접두사 가(假)도 있다. 바로 이 접두사 가(假)는 가성명(假姓名), 가어사(假御史), 가형사(假刑事) 같은 말에서는 글자 그대로 ‘가짜의’ ‘거짓의’ ‘참된 것이 아닌’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접미사 가(家)는 소설가, 예술가, 법률가, 은행가, 기업가에서처럼 ‘그 방면의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의 의미를 지니기도 하고, 전략가, 사교가, 웅변가에서처럼 ‘그 방면의 일을 능란하게 하는 사람’의 의미를 지니기도 하며, 장서가, 자산가, 재산가, 자본가에서처럼 ‘그러한 것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니기도 한다. 또 야심가, 공상가, 노력가, 정열가, 애주가에서처럼 ‘그러한 성질이나 경향이 두드러진 사람’을 뜻하기도 하고, ‘케네디가’에서처럼 집안을 나타내기도 하며, 상가(喪家)에서처럼 ‘어떤 일이 일어난 집’을 의미하기도 한다.
접미사 가(哥)는 김가(金哥), 박가(朴哥)에서처럼 성(姓) 뒤에 붙어 그 성임을 나타내는데, 이 말에는 성을 낮게 일컫는 뉘앙스가 있다. 자기 성 뒤에 가(哥)를 붙이는 것은 당연하지만, 남의 성 뒤에 붙이는 것은 허물없는 사이가 아닌 다음에야 일반적으로 결례다. 남의 성 뒤에는 당연히 접미사 씨(氏)를 붙여야 한다. 물론 아주 가까운 친구끼리 농담 삼아 ‘황가야’ ‘전가야’ 할 수는 있다.
접미사 가(街)는 종로 3가, 퇴계로 5가, 용산동 2가에서처럼 큰 도시의 노(路)나 동(洞)을 다시 나눈 행정구역을 지칭하기도 하고, 상점가, 환락가, 번화가, 유흥가, 빈민가에서처럼 ‘그러한 것이 주로 모인 거리’ ‘그러한 특색을 띤 거리’임을 나타내기도 한다. 애국가, 찬송가, 찬불가, 응원가, 유행가, 농부가, 자장가 같은 말에서 보이는 접미사 가(歌)는 노래 이름이나 노래 종류를 나타낸다. 한편 또 다른 접미사 가(價)는 기준가, 생산가, 판매가, 최고가, 낙찰가에서처럼 ‘값’을 뜻하기도 하고, 3가 알코올에서처럼 숫자 뒤에 붙어 원자가(原子價)를 나타내기도 한다.
한국어의 ‘가’ 가운데 가장 흔히 쓰이면서도 문법적으로 까다로운 말은 조사 ‘가’일 것이다. 자음으로 끝난 말 뒤에서, ‘가’는 ‘이’로 교체된다. 그러니까 ‘가’와 ‘이’는 동일한 형태소의 두 변이 형태다. 이 ‘가/이’에 대해 남김없이 설명하기 위해서는 여러 권의 책이 필요할 것이다. 그만큼 ‘가/이’의 용법은 복잡하다. 그러나 한국인에게는 그 세세한 설명이 조금도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가/이’의 용법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어도, 그 말을 문법에 맞게 잘도 사용하고 있다.
‘가’는 우선 앞의 말이 그 문장의 주어라는 것을 나타낸다. ‘누나가 울고 있네’ ‘해가 졌다’ ‘죽느냐 사느냐가 문제다’ ‘지구는 초록색이다, 가 우주인의 첫 보고였다’ 같은 문장에서 ‘가’는 주격조사다. ‘가’는 또 ‘되다’나 ‘아니다’를 서술어로 하는 문장에서 주어 이외의 성분 뒤에 붙어 그것이 서술어의 보어라는 걸 나타낸다. ‘마리 퀴리는 열심히 노력해서 위대한 과학자가 되었다’ ‘고래는 어류가 아니다’ 같은 문장에서 그런 보격조사 ‘가’가 보인다. ‘가’는 또 어미에 붙어서 그 말의 뜻을 강조하는 보조사(한정사) 노릇을 하기도 한다. ‘꽃이 예쁘지가 않아’ ‘예사롭지가 않더니만’ 같은 표현에 나오는 ‘가’가 그런 보조사다. ‘가’는 이밖에도 ‘이건 한 자가 넘는 고기야’ ‘물이 1리터가 될까 말까 한다’에서처럼 정도를 나타내는 조사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것이 ‘가’의 대표적인 용법들이지만, ‘가’는 이런 소루한 설명이 해결하지 못하는 숱한 이론적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다. ‘내가 성질이 괴팍하다’나 ‘여기가 사람이 많다’나 ‘마을버스가 승객이 모자란다’ 같은 겹주격 문장에서 ‘내가’나 ‘여기가’나 ‘마을버스가’는 동사나 형용사의 서술 작용이 직접 미치는 주어는 아니지만, 문장 전체의 주어 구실을 하면서 화자의 관심, 배타성(‘다른 사람이 아니고 바로 내가’ ‘저기나 거기가 아니고 바로 여기가’ ‘일반 버스나 지하철이 아니라 마을버스가’) 따위를 나타내는 ‘주제’가 된다. 그러니까 이때의 ‘가’는 딱히 주격조사라기보다는 보조사 ‘는/은’처럼 주제 표지라고 할 만하다.
‘집이 세 채가 팔렸다’에서나 ‘값이 1백 원이 싸다’에서 ‘세 채가’나 ‘1백 원이’의 성분이 무엇인지는 모호하다. 앞에서 예로 든 ‘물이 1리터가 될까 말까 한다’의 ‘1리터가’도 마찬가지다. 이것들을 보어로 보고 그 앞에 오는 ‘집이’나 ‘값이’나 ‘물이’를 주어로 보는 견해도 있고, ‘집이’ ‘값이’ ‘물이’를 서술절에 대한 주어, 즉 문장 전체의 주어로 보고 ‘세 채가’ ‘1백 원이’ ‘1리터가’를 서술절 안의 주어로 보는 견해도 있다. 또 ‘세 채가’ ‘1백 원이’ ‘1리터가’를 주어로 보고 ‘집이’ ‘값이’ ‘물이’를 주제로 보는 견해도 있고, ‘집이’와 ‘세 채가’, ‘값이’와 ‘1백 원이’, ‘물이’와 ‘1리터가’를 각각 동격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나는 채시라가 보고 싶다’에서 ‘채시라’의 성분이 주어인지 목적어인지 아니면 제3의 성분인지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다. 그만큼 ‘가’의 용법은 이론적으로 설명하기 까다롭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쯤에서 멈추는 것이 좋겠다. 위에서 얘기했듯, 우리는 그걸 설명하지 못해도 잘만 사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가/이’의 앞에 오는 체언에 존대를 할 경우에는 ‘께서’를 쓴다. ‘철수가 그렇게 말했어’의 주어를 ‘아버님’으로 바꾸면 ‘아버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어’가 된다. 그러나 존대를 표시하는 맥락에서 ‘가/이’가 자동적으로 ‘께서’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께서’의 쓰임은 ‘가/이’보다 훨씬 더 제한적이다. 우선 ‘께서’는 ‘가/이’와 달리 ‘좋다’ ‘싫다’ 같은 심리적 작용이 미치는 대상을 나타내는 자리에 쓰일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를 ‘나는 선생님께서 좋아요’로 바꿀 수 없다. 또 어떤 인물의 존재 유무를 표시하는 문장의 주어 자리에도 이 ‘께서’가 나타나지 못한다. ‘나는 할머님이 두 분이 있다’를 ‘나는 할머님께서 두 분이 있다’로 바꿀 수 없다. 또 ‘께서’는 ‘가/이’와 달리 ‘되다’나 ‘아니다’ 앞의 보어 자리에 나타나지 못한다. ‘그분은 내 할머님이 아니다’를 ‘그분은 내 할머님께서 아니다’라고 말할 수 없고, ‘미자는 할머니가 되었다’를 ‘미자는 할머니께서 되었다’라고 말할 수 없다. 요컨대 ‘께서’는 ‘가/이’와 달리 보격조사로 사용될 수 없고, 주격조사로서도 그 쓰임이 제한적이다.
‘가’는 또 동사 ‘가다’의 어간이다. ‘가다’는 한국어에서 가장 빈도수가 높은 동사들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프랑스에 가고 싶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너 다음 달에 군대 간다며?’ ‘그 친구는 대학 교수로 갔어’ ‘기별이 아직 안 갔니?’ ‘이대로 가면 우린 끝장이야’ ‘금이 간 도자기는 내버려라’ ‘바지에 주름이 갔네’ ‘잔주름이 많이 간 어머니의 얼굴’ ‘몸에 무리가 가도록 공부를 하니?’ ‘너한테 손해 갈 일이 아니야’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날이 가고 달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민주주의로 가는 길’ ‘이 구두라면 3년은 가겠지’ ‘오래 못 갈 목숨’ ‘걔들 결혼이 얼마나 갈까?’ ‘이 비누를 쓰면 때가 잘 가’ ‘호감이 가는 사람이야’ ‘눈길이 가는 물건이지’ ‘손이 많이 가는 일이야’ ‘그 영감도 이젠 가고 없다네’ ‘걘 한 대 맞고 완전히 갔어’ ‘그 이론은 이제 한물갔어’ ‘김치 맛이 갔어’ ‘그 친구는 맛이 갔어’ ‘그 사람은 한국에서 제일가는 피아니스트야’ ‘둘째가라면 서러운 주먹이지’ ‘어디로 이사를 간다구?’ ‘걔 문병을 갔니?’ ‘항상 정도(正道)를 가야지’ ‘장가 좀 가자’ ‘3년이 가도록 소식이 없네’ ‘결국에 가서는 우리 모두가 파산하고 말 거야’ ‘어려운 지경에 가서야 잘못을 뉘우치는구나’ ‘나한테는 두 개가 왔는데, 너한테는 세 개가 갔구나’ ‘짐작이 가는 데라도 있니?’ ‘기둥이 왼쪽으로 좀 갔네’ ‘이 땅이 시가로 얼마나 가나?’ ‘전깃불이 왔다 갔다 하는구먼’ ‘홀에 갈래, 짝에 갈래?’ 같은 문장들에서 동사 ‘가다’가 지닌 뉘앙스의 스펙트럼이 감지된다.
그 다양한 뉘앙스들의 공통분모는 화자에게 지리적·심리적으로 가까운 곳에서 먼 곳으로의 이동이다. 즉 ‘여기’에서 ‘저기’나 ‘거기’로의 이동이다. ‘가다’에 상대되는 동사는 ‘오다’이다. ‘오다’는 화자에게 지리적·심리적으로 먼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의 이동이다. 즉 ‘저기’나 ‘거기’에서 ‘여기’로의 이동이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가는 방망이 오는 홍두깨” “오는 정이 있어야 가는 정이 있다” “오란 데는 없어도 갈 데는 많다” 같은 속담에서 그 ‘가다’와 ‘오다’의 상대성이 드러난다. ‘오락가락’ ‘오다가다’ ‘왔다 갔다’ ‘오갈 데 없는’ 같은 말에서도 그렇다.
조동사 ‘가다’도 있다. 조동사 ‘가다’는 연결어미 ‘아/어/여’ 뒤에 쓰여서 동작이나 상태가 앞으로 진행됨을 나타낸다. ‘날이 어두워간다’ ‘사과가 붉게 익어가네’ 같은 데서 조동사 ‘가다’가 보인다. 이 조동사 ‘가다’에 상대되는 조동사가 ‘오다’이다. 조동사 ‘가다’와 ‘오다’의 차이는 본동사 ‘가다’와 ‘오다’의 차이와 비슷하다. 즉 조동사 ‘가다’는 화자에게 지리적·심리적으로 가까운 곳에서 먼 곳으로의 진행을 뜻하고, 조동사 ‘오다’는 화자에게 지리적·심리적으로 먼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의 진행을 뜻한다.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살아갈 세월이 남아 있다’에서 조동사 ‘가다’와 ‘오다’의 뉘앙스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또 거기서 더 나아가 조동사 ‘가다’는 화자에게 좋지 않은 느낌을 주는 일에 대해 쓰이는 반면에, 조동사 ‘오다’는 화자에게 좋은 느낌을 주는 일에 흔히 쓰인다: ‘환자들이 죽어가고, 머리가 백발이 되어가고, 강물이 썩어가지만, 결국 새날이 밝아올 것이다.’
물론 조동사 ‘가다’와 ‘오다’의 쓰임새를 구별하는 일차적인 기준은 진행의 방향이다. ‘저기’나 ‘거기’에서 ‘여기’로 이동하는 것은 나쁜 것일지라도 ‘오다’이다. 그래서 ‘슬픔이 북받쳐오고’ ‘몸이 아파온다.’
‘가’를 나란히 이어놓으면 ‘가가’다. 가가(可呵)는 ‘가히 웃을 만함’ ‘웃을 노릇임’의 뜻이다. 구어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고 흔히 편지글에서 쓰는 말이다. 비슷한 뜻의 표현으로 홍연대소(哄然大笑)라는 말이 있다. 가가(呵呵)는 ‘껄껄 웃음’의 뜻이다. 가가대소(呵呵大笑)는 껄껄거리며 한바탕 크게 웃는 것이다.
가가(家家)는 ‘집집’의 뜻이다. 가가문전(家家門前)은 ‘집집의 문 앞’이라는 뜻이고, 가가호호(家家戶戶)는 ‘한 집 한 집’ ‘집집마다’의 뜻이다. ‘가가문전 다니면서 탁발하다’라거나 ‘가가호호 찾아다니면서 보험 가입을 권유하다’ 같은 표현에 ‘가가문전’과 ‘가가호호’가 보인다. 가가(假家)는 임시로 지은 집, 즉 가건물의 뜻이다. 이 ‘가가’라는 말은 ‘가게’의 원래 말이기도 하다. ‘가게’라는 말은 고유어로 보이지만 실은 가가(假家)라는 한자어가 변한 말이다.
‘가게’라는 고유어에 대응하는 한자어 유의어로 ‘점포’라는 것이 있다. ‘가게에서 물건을 샀다’라는 문장과 ‘점포에서 물건을 샀다’라는 문장에서 ‘가게’와 ‘점포’는 거의 동의어다. ‘점포’를 줄인 ‘점’(店)은 접미사로 쓰여서 식료품점, 카메라점, 양장점, 양복점, 음식점 따위와 같이 쓰인다. ‘식료품점’은 ‘식료품 가게’로 바꿀 수 있고, ‘카메라점’도 조금 어색한 대로 ‘카메라 가게’로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양장점’을 ‘양장 가게’라고 한다거나 ‘양복점’을 ‘양복 가게’라고 하지는 않는다. 또 ‘음식 가게’라고 하면 ‘음식점’과는 뜻이 다르다. ‘음식 가게’는 손님이 음식을 사서 집으로 가져가게 되어 있는 곳인 것이다. 그렇다면 ‘가게’와 ‘점포’의 차이를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가게’는 주로 사람들이 물건을 사서 가지고 가게 되어 있는 곳이다. 주인이 그 안에서 작업을 하거나 손님이 음식을 먹거나 하는 곳은 가게라고 하지 않는다. 반면에 상가 건물의 일부나 방을 의미하는 ‘점포(점)’는 주인이 작업을 하거나 고객이 음식을 먹거나 하는 장소에 대해서도 쓰일 수 있다. 또 ‘점포’는 ‘가게’보다는 그 다루는 물건이나 일이 다소 전문적이라는 뉘앙스가 있다.
ㄱ은 접미사로서 일부 단어의 줄기에 붙어 그 말을 부사로 만든다. ‘새록새록’ ‘어둑어둑’ 같은 말들의 ㄱ이 그 예다. ㄱ 소리는 대체로 투박하고 무뚝뚝하고 딱딱하고 팍팍하다. 특히 ‘가갸 뒷다리’로 쓰일 때, 즉 받침으로 쓰일 때 그렇다. ‘투박하다’ ‘무뚝뚝하다’ ‘딱딱하다’ ‘팍팍하다’ 같은 말에도 벌써 ㄱ 받침이 들어가 있다. 모나고 인정이 박하고 아주 인색한 것을 뜻하는 ‘각박하다’, 서로 이기려고 다투는 것을 뜻하는 ‘각축’, 흡혈 모기의 일종인 ‘각다귀’, 본래는 새겨 깎는다는 뜻이지만 남에게 가혹하게 군다는 뜻을 지니게 된 ‘각삭’(刻削). 마구 덤벼 돌격하는 싸움을 뜻하는 ‘육박전’, 머리로 사람이나 물건을 받아치는 ‘박치기’, 먼지나 때 같은 것이 두껍게 붙어 있는 모양인 ‘닥작닥작’, 다시 왕정으로 돌아가자는 ‘복벽’, 깎아서 벗긴다는 뜻의 ‘삭박’(削剝) 같은 말에 그 투박하고 무뚝뚝하고 딱딱한 ㄱ 받침이 보인다.
꺼무칙칙, 으지직으지직, 빠지직빠지직, 타박타박, 바각바각, 대깍대깍, 뚜벅뚜벅, 서걱서걱, 삐걱삐걱, 허덕허덕, 푸석푸석, 허우적허우적, 부둑부둑, 부득부득, 바득바득, 바짝바짝, 따짝따짝, 거덕거덕, 으드득으드득, 빠드득빠드득, 캑캑, 빠작빠작, 빡빡 같은 말들에서 보이는 ㄱ 받침은 얼마나 무뚝뚝하고 팍팍한가? 그 말들에는 물기가 없다. 바짝 건조된 말들인 것이다. 죽다, 삭다, 식다, 썩다, 막다, 박다, 묶다. 꺾다, 깎다, 들볶다 같은 동사들도 대체로 마찬가지다. 학사, 석사, 박사 같은 말에 들어 있는 ㄱ 받침은 마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공부라는 것이 팍팍하고 딱딱하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주걱턱’이나 ‘벼락’에서 부드러움, 원만함을 느끼기는 어렵다. ㄱ은 고체성의 자음이다. 그것은 바스라지거나 깨질 뿐 휘거나 흐르거나 휘발하지 않는다. ‘묵직하다’라는 형용사는 그 고체성의 한 표상이다.
ㄱ 소리가 더 세어진 ㄲ은 그 투박함과 무뚝뚝함과 딱딱함의 강도가 더하다. ㄲ 소리는 국제음성문자로는 /k’/로 표기한다. 목구멍이 막혀서 나는 소리인 ‘끽’에서 시작해, 고생을 겪는다는 뜻의 끽고(喫苦), 몹시 겁낸다는 뜻의 끽겁(喫怯), 까마귀 울음소리인 ‘깍깍’을 거쳐, 나무 따위를 깎아 물건을 만드는 깎음질, 힘껏 붙잡거나 단단히 묶는 모양인 ‘꽉’에 이르기까지 ㄲ을 포함하는 말들은 꼭 막혀 있다. 부드러운 맛이 없이 딱딱하거나 거칠다는 뜻을 지닌 ‘꺽꺽하다’와 ‘꼭꼭’ ‘꾹꾹’이라는 부사도 그렇다. ‘깩깩’ 소리나 ‘껙껙’ ‘끽끽’ ‘꿱꿱’ 소리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 ㄲ도 말랑말랑하고 열려 있는 소리의 도움을 받으면 가벼운 느낌의 말을 만들 수 있다. ‘꿈’이나 ‘꿀’이나 ‘꿩’ 같은 것이 그런 예다.
ㄲ 소리를 지닌 말들의 일부는 ㄱ 소리를 지닌 말들의 센말이다. ‘까슬까슬’은 ‘가슬가슬’의 센말이고, ‘껌다’는 ‘검다’의 센말이고, ‘끼울어트리다’는 ‘기울어트리다’의 센말이고, ‘꼬들꼬들’은 ‘고들고들’의 센말이다. ‘꼬꾸라뜨리다’와 ‘고꾸라뜨리다’, ‘꼬기작꼬기작’과 ‘고기작고기작’, ‘꺼무뎅뎅하다’와 ‘거무뎅뎅하다’, ‘깐닥깐닥’과 ‘간닥간닥’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ㄲ이 음절의 마지막에 올 때는 ㄱ 소리로 난다. 즉 ‘낚시’의 ‘낚’은 [낙]으로 소리 난다. 받침 ㄱ은 ㄴ, ㅁ 같은 콧소리(비음) 앞에서는 그 콧소리에 동화돼 콧소리 ㅇ으로 변한다. 그래서 ‘죽는구나’ ‘삭는구나’ ‘식는구나’ ‘썩는구나’ ‘막는구나’ ‘박는구나’ ‘먹는구나’ ‘묶는구나’ ‘꺽는구나’ ‘들볶는구나’ ‘깎는구나’ ‘낚는구나’는 각각 [중는구나] [상는구나] [싱는구나] [썽는구나] [망는구나] [방는구나] [멍는구나] [뭉는구나] [껑는구나] [들봉는구나] [깡는구나] [낭는구나]로 소리 나고, ‘국물’은 [궁물]로, ‘목마르다’는 [몽마르다]로 소리 난다.
ㄲ 소리는 한자음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위의 끽(喫)이 있을 뿐이다. ‘끽고’와 ‘끽겁’ 외에, 아주 요긴하다는 뜻의 끽긴(喫緊), 몹시 놀란다는 뜻의 끽경(喫驚), 밥을 먹는다는 뜻의 끽반(喫飯), 담배를 피운다는 뜻의 끽연(喫煙), 차를 마신다는 뜻의 끽다(喫茶), 만족할 만큼 즐긴다는 뜻의 만끽(滿喫) 같은 말에 이 ‘끽’이 보인다.
끽끽거리다 보니 이어서 ‘끅’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배고파서 불행한 소크라테스보다는 배불러서 행복한 돼지가 냄 직한 소리. 끅. 끄윽. 너무 껍신거린 것을 용서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