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랑
처음 안 일 / 박두순
놔
2011. 3. 25. 16:24
처음 안 일
---- 박두순
지하철 보도 계단 맨바닥에
손 내밀고 엎드린
거지 아저씨
손이 텅 비어 있었다.
비 오는 날에도
빗방울 하나 움켜쥐지 못한
나뭇잎들의 손처럼
동전 하나 놓아줄까
망설이다 망설이다
그냥 지나가고,
내내
무얼 잊어버린 듯---
집에 와서야
가슴이 비어있음을 알았다.
거지 아저씨의 손처럼
마음 한 귀퉁이
잘라주기가 어려운 걸
처음 알았다.
마주치는 눈빛 싫어서 실컷 외면하지는 않았던가.
괜히 마음만 시들시들 찬 기운 들어올까봐 딴 길을 찾지는 않았던가.
이 시를 안 지 얼마 안돼서 중1 아들 녀석이랑 지하보도를 건넌 적이 있었다.
함께 시를 떠올려보고 작은 마음을 넣어보았다.
참... 멋쩍게 만드는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