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랑

아리스토파네스의 이야기 / 플라톤 [향연] 중

2010. 12. 23. 08:56

아리스토파네스(그리스의 가장 유명한 희극작가)의 이야기

/ 인간에 관한 환상적 이야기

 

우선 자네들이 제일 먼저 배워야 할 것은 인간의 본성이 무엇이고, 그 본성이 겪었던 것들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라네.

사실 아주 먼 옛날에 우리의 본성은 오늘날 인간의 본성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네.

 

첫째로 인간은 오늘날처럼 남성과 여성의 양성이 아니라 세 종류로 나뉘어 있었음을 알아야 하네. 그런데 이 세 번째 종류의 인간은 남성과 여성 모두와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며 그것을 지칭하는 이름은 오늘날에도 남아 있지만 그 실재 자체는 사라졌다네.

 

사실 '자웅동성(남성과 여성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은 그 옛날에는 하나의 독립된 종이었으며, 형태상으로나 이름상으로 모두 남성과 여성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네. 어쨌든 그 종은 오늘날에는 사라져서 존재하지 않고, 단지 그 명칭만 특정의 사람을 비난할 때 쓰이고 있다네.

 

두 번째로 알아야 할 것은 이 종이 한 몸으로 이루어져 있어, 둥그런 등과 원형의 옆구리를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이라네. 그들은 네 개의 손과 네 개의 다리를 지니고 있고 완벽하게 둥그런 목 바로 위에 완전히 서로 똑같은 두 개의 얼굴이 반대로 놓여 있고 그 위에 하나의 머리가 붙어 있다네. 그들의 귀는 네 개이고 수치스러운 부분도 두 개인데, 그 나머지 것들은 모두 지금까지 살펴본 것들로부터 상상할 수 있을 것이네. 걸음걸이를 보자면, 그들은 지금처럼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이면 어디로든지 똑바르게 갈 수도 있고, 빨리 달려가고 싶을 때에는 마치 지상 회전을 하는 사람들처럼 다리를 원모양으로 회전하며 앞으로 곧장 갈 수도 있다네. 이때 그들은 여덟 개의 사지를 지지점으로 이용하여 수레바퀴 모양이 되어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쓴다네.

 

그런데 인간은 어떠한 이유로 세 종으로 나뉘어졌고, 또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졌겠는가? 사실 남성은 본래 태양의 자식이고 여성은 지구의 자식이며, 그 두 종의 성질을 모두 지닌 이 세 번째 종은 달의 자식인데, 그 이유는 달이 그 두 행성에 모두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라네. 그리고 그들의 형태가 동그랗고 그들의 걸음걸이 또한 원형을 띠고 있는 것은 그들이 자신의 조상들과 닮았기 때문이라네. 그리하여 그들은 대단한 힘과 능력 그리고 오만함까지 지녀서 신들을 공격할 정도였다네.

 

호메로스가 에피알토스와 오토스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던 것, 즉 하늘을 침범하려고 했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실은 그 당시의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라네. 사실 그 당시의 인간들은 신들에게 대들었으니까 말일세! 그런데 제우스와 그 밖의 여러 신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숙고해봤으나 뾰족한 수가 없어서 매우 당황했었다네. 사실 신들은 인간들을 죽일 수도, 거인족에게 그랬던 것처럼 벼락을 쳐서 멸종시킬 수도 없었고(그리할 경우 신들은 인간들이 바치는 제사와 공물을 받아벅을 수가 없게 될 것이니까 말일세),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방종을 참을 수도 없었다네.

 

제우스는 한참 고민한 끝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네!

 

'나는 인간들이 지금보다 약해져서 더 이상 오만하지 않도록 만드는 방법을 발견했노라! 이제 나는 인간들 각각을 둘로 나누겠다. 그러면 인간들은 더 약해질 것이고 또한 동시에 그 숫자가 증가함으로 인해서 우리 신들에게는 더 유익하게 될 것이니라. 그리하여 인간들이 두 다리로 똑바로 서서 걸어다니게 만들겠노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에 인간들이 또 불손하게 굴고 소요를 일으키려 할 때에는, 나는 그들을 다시 둘로 나누어서 외발로 뛰어 다닐 수밖에 없도록 만들겠노라.'

 

이렇게 말하면서 제우스는 마치 저장 식품을 만들기 위해 마가목 열매를 자르는 사람처럼 또는 달걀을 말총으로 자르는 사람처럼 인간들을 둘로 잘랐다네. 제우스는 아폴론에게 이렇게 나뉜 사람들의 얼굴과 목의 반쪽을 잘려나간  쪽으로 돌려놓도록 명령했는데, 그것은 인간이 항상 자신의 잘린 단면을 보면서 좀더 분별력을 지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네. 그리고 제우스는 잘린 다른 부분들도 치료하도록 아폴론에게 명령했었다네.

 

그리하여 아폴론은 사람의 얼굴을 돌려놓고 온 신체의 피부를 오늘날 배로 불리는 부분으로 당겨서, 마치 염낭을 묶듯이, 배 중앙에 하나의 주둥이가 만들어지도록 단단히 묶었다네. 이 주둥이가 바로 우리가 배꼽이라 부르는 부분이라네. 그리고 주름의 대부분을 펼쳐서 가슴에 붙여주었는데, 그러기 위해서 그는 가파치가 나무로 된 목형 위에 가죽을 올려놓고 펴듯이 그와 비슷한 도구를 사용하였다네. 그때 아폴론은 배꼽 주위에 약간의 주름을 남겨놓았는데, 그것은 인간들이 예전의 자기 상태에 대한 기억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네.

 

이렇게 인간의 본래 상태가 둘로 나뉘어졌기 때문에, 그 나뉘어진 각각은 자기 자신의 또다른 반쪽을 갈망하면서 그것과의 합일을 원하게 되었다네. 그래서 그들은 팔로 상대방을 껴안고 서로 얼싸안으며 한 몸이 되기를 원하고, 상대방 없이는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아서 굶주림 또는 무기력으로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네.

 

그리하여 그 반쪽들 중에서 하나가 죽고 다른 하나가 살아남게 될 때마다, 그 살아남은 반쪽은 다른 상대방을 찾아서 그 상대방과 결합을 하려고 드는데, 그 상대방이 순전한 여성의 반쪽이든(오늘날 우리가 여성이라고 부르는 바) 순전한 남성의 반쪽이든 전혀 상관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그 종은 사라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네. 사실 그때까지는 그 수치스러운 부분들이 밖에 있었기 때문에, 인간들은 상대방 몸속에 생식을 하여 아이를 낳는 것이 아니라, 매미처럼 땅속에 생식을 하여 아이를 낳아왔다네. 그래서 제우스는 인간의 수치스러운 부분들을 앞으로 옮겨놓음으로써 인간들이 생식기관들을 이용하여 --- 자식을 낳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네.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네.

즉 남성과 여성이 만날 경우에는 그 결합을 통해 아이를 낳음으로써 종의 재생산이 일어나도록 하고, 남성과 남성이 만날 경우에는 그 결합으로부터 서로 함께 있음에 대한 포만감에 질려 그 자체를 중단하고 오히려 어떤 보람된 행위를 향하여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에 전념하도록 만들어주려는 데 있었지. 그러므로 인간들 서로에 대한 사랑은 그 먼 옛날부터 인간의 본성 속에 자리잡고 있었고, 인간의 원처적 본성을 결합시켜주는 역할을 해왔으면, 둘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작업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치료해왔다고 볼 수 있다네.

 

원시 상태의 인간들이 나눈 사랑의 여러 형태

 

결과적으로 우리들 각자는 하나가 둘로 나뉘어진 존재 즉 반편半片의 사람이어서, 그 모습이 마치 넙치 같다네. 그리하여 우리들 각각은 자기로부터 나뉘어져 나간 또 다른 반편을 끊임없이 찾게 되는 것이라네. 따라서 남자들 중에서 그 옛날에 자웅양성으로 불리었던 이러한 혼합적 존재가 반으로 나뉘어 남자가 된 사람들은 여자들을 매우 좋아하고 이 종에서 많은 색광들이 나온다네. 마찬가지로 남자를 밝히고 간통죄를 저지르는 여자들도 이 종에서 주로 나온다네.

 

반면에 본래 순전히 여성적인 존재가 나뉘어져 반편이 된 여성들은 남자들에 전혀 관심이 없고 오히려 여성들에게 친근감을 느끼며, 이러한 부류로부터 레즈비언들이 생겨나는 법이라네. 마지막으로 순전히 남성적인 존재가 나뉘어져 반편이 된 남자들은 남자들만 따라다니기 마련인데, 그들은 소년 시절에는 진정한 남성의 축소형 같아서, 성인 남자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동침하는 육체적 결합 속에서 즐거움을 찾기도 한다네. 이들이야말로 가장 남성다운 자들이기 때문에 청소년들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자들이라 할 수 있다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을 불순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하나 그 말은 틀린 것이네. 왜냐하면 그들은 불순한 동기에서가 아니라 자기 확신과 용기 그리고 남성다움 때문에 자신들과 비슷한 사람들을 사랑하기 때문이지.

 

그 가장 커다란 증거는 그 같은 소년들만이 나중에 성장했을 때 국가를 위해 헌신하게 된다는 사실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네. 그들은 성인이 되었을 때 자연스런 본성상 소년들을 사랑하고 결혼과 자식 낳는 일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지만, 관습상 할 수 없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는 것이라네. 그래서 그들은 결혼하지 않고 그들끼리 서로 함께 살아가는 것도 충분히 하나의 삶의 방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네. 따라서 그 같은 사람들은 소년을 사랑하고 연인들을 아끼는 법이지. 마찬가지로 그들이 언제나 자기들과 비슷한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우연히 본래 자기 자신의 반쪽을 만나게 되는 경우에는, 소년애에 빠진 사람들 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우정이나 친족감 또는 사랑과 같은 경이로운 감정에 사로잡혀 그 상대방과 한 순간도, 말로 표현하자면, 떨어지지 않으려고 할 것이네. 그리고 그러한 감정 때문에 그들은 평생을 함께 살아도 상대방이 자신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를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네. 사실 어느 누구도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그렇게 진지하게 함께 살기를 원하는 이유가 육체적 사랑의 기쁨을 공유하려는 목적에 있다고 믿지는 않을 걸세.

 

각자의 영혼이 원하는 것은 그러한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임은 분명하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단지 추측하여 상대방에게 어렴풋이 암시할 뿐이라네. 만약에 그들이 같은 침대에 누워 있을 때, 그 옆에서 연장을 든 헤파이스토스가 다음과 같이 묻는다고 생각해보게. '인간들이여! 그대들은 그렇게 함께 있으면서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원하는가?' 그리고 대답을 못 해 어쩔 줄 모르고 있는 그 인간들에게 헤파이스토스가 다시 다음과 같이 묻는다고 생각해보게.

 

'자네들이 밤낮으로 서로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으면서 정말로 원하는 것은 가능한 한 서로가 하나가 되려는 것 아니겠는가? 그대들이 원하는 것이 진정으로 그렇다면, 나는 둘인 자네들을 하나가 되도록 만들어 즉 그대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각자가 모두 하나가 되어 살고, 죽음도 동시에 맞이하며 죽은 후에도 저 피안의 세계에서 하나로 살 수 있도록, 자네들을 녹인 다음 화로의 불을 함께 불어서 하나로 만들어주고자 하네. 그러나 자네들이 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고, 그러한 운명과 마주했을 때 자네들이 만족해할지 한번 살펴보게나.'

 

이러한 말을 듣고서, 우리가 알기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하거나 그와는 다른 어떤 것을 원한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걸세. 오히려 각자 아무 주저없이 그 옛날부터 원해왔던 것, 즉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합하여 두 존재자가 하나로 되는 것을 들었다고 생각할 것이네. 그 상태야말로 우리들의 원초적 본성은 하나이었고 우리들이 한 몸이었다는 느낌을 갖게 해주기 때문이라네. 그래서 우리는 그 하나가 되고자 하는 욕망과 노력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된 것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