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있어서

자연과 꿈을 빚은 건축가 가우디 / 김문태

2010. 9. 7. 09:49

가우디 군, 존경하는 건축가가 있나?

 

네. 저 창밖에 있는 나무가 존경하는 스승입니다.

 

 

 

가우디 군! 불합격.

 

가우디 군, 나는 자네와 함께 일을 해 봐서 자네의 능력을 알고 있네.

그러나 학장님이 반대를 하면 나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네.

그러니 자네의 설계도를 조금 고치도록 하게.

 

가우디를 며칠 밤낮을 괴로워했다.

며칠 후 가우디는 비야르 교수의 충고를 따르기로 결심했다.

 

그래, 졸업 후에는 내가 만들고 싶은 건물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을 테니

이번만 참는 거야.

 

 

 

가우디 씨, 그런데 어떻게 집 안팎에 이런 동식물 그림과 조각을 넣을 생각을 했나요?

 

저는 건물이 주변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자연은 우리의 뿌리이고, 우리는 자연의 한 부분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집이나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자연과 하나가 돼야 하죠.

--- 저는 인간이 자연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순간부터

세상은 잘못되기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만을 위한 건물과 환경은 곧 죽음을 의미하지요.

--- 무작정 나무를 베어 버리고 맑은 공기를 원하는 것이나,

쓰레기를 강물에 마구 버리고 깨끗한 물을 바라는 것과 같지요.

이런 뜻에서 저는 될 수 있는 대로 자연을 그대로 두고,

자연과 어울리는 집을 짓고 싶었답니다.

 

신경 쓰지 말게.

사람들은 비록 좋지 않은 것이라 하더라도

자기들에게 익숙하면 아무런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받아들이지.

그러나 자기들에게 낯선 것이면 무조건 욕하고 화를 내기 쉬운 법이야.

--- 우리가 남들이 생각하지 않는 일을 하니까 우선 싫은 거야.

 

그러나 우리가 짓는 건물이 사람들에게 익숙해지면 달라질 걸세.

--- 두고 보게.

언젠가 세상이 우리를 이해하게 될 걸세.

어쩌면 칭찬해 줄지도 모르지. 하하.

 

선생님께서 모든 곳에 정성을 다 하신다는 건 잘 알지만, 굴뚝이야, 뭐.

 

굴뚝은 이 건물에 붙은 게 아닌가?

굴뚝도 이 건물과 잘 어울려야 한다는 말일세.

밑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누가 내려다 본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나?

그런 상상을 한다면 옥상을 대충 만들 수는 없을 거야.

 

위에서 누가 내려다보나요?

 

신이 내려다보고, 내 마음이 내려다보지.

그러니 보이지 않는 곳에도 정성을 기울일 수밖에---

 

가우디 씨, 저를 알아준 건 당신뿐입니다.

 

갑작스러운 일에 가우디의 눈이 둥그래졌다.

 

저는 마지막에 올린 저 긴 돌을 깎고 다듬은 인부입니다.

저 돌이 홈에 딱 들어맞지 않아 두 번이나 무너졌지만

당신은 한 번도 저를 탓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등을 두드리며 제 기술과 예술적 감각을 믿는다고 말씀하셨거든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돌을 다듬는 석공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당신은 저에게 예술가 대접을 해 주셨던 거예요.

그때부터 저는 온 정성을 다해 제가 그동안 갈고닦은 모든 기술을 동원해

이 돌을 다듬었답니다.

그리고 오늘 마침내 성공한 겁니다.

당신은 저를 알아준 단 한 분이십니다.

 

가슴이 뭉클해진 가우디가 입을 열었다.

 

아! 그랬었군요.

나도 당신처럼 마음과 기술을 다해 건물을 짓는 예술가가 되고 싶을 뿐이에요.

그러나 아쉽게도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군요.

당신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나에게 점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어요.

슬프게도 내 손으로 성가족 대성당을 완성시키지 못할 겁니다.

내 뒤를 이어서 완성시킬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고,

그러면서 성당은 웅장하고 엄숙한 모양으로 탄생하리라 믿어요.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남기고 사라지듯이--- 나도 이제는 가야죠.

 

나는 요셉과 마리아와 예수님께서 이루었던 성가족을 꿈꾸었어요.

그분들이 보여주었던 포근한 사랑을 누리고 싶었지요.

그러나 나는 가정을 이루지 못했어요.

하느님께서 나에게 특별한 일을 맡겼거든요.

나의 모든 인생을 성가족 대성당에 건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어요.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지은 잘못을 뉘우치고 사랑하며 살게 하고 싶었어요.

 

성가족 대성당을 보는 사람들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나의 모든 것을 바쳤어요.

나의 꿈, 나의 희망.

아! 성가족 대성당, 성가족의 사랑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