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니, 선영아 / 김연수
왜 우리는 사랑을 '맺거나' 사랑을 '이루지' 않고
사랑에 '빠지는' 것일까?
그선 사랑이란 두 사람이 채워 넣을 수 있는 가장 깊은 관계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집어넣어도 그 관계는 채워지지 않는다.
정열, 이기심, 헌신, 질투, 광기, 웃음, 상실, 환희, 눈물, 어둠, 빛, 몸, 마음, 영혼 등
그 어떤 것이든 이 깊은 관계는 삼켜버린다.
모든 게 비워지고 두 사람에게 방향과 세기만 존재하는 힘,
그러니까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원초적인 감정의 움직임만 남을 때까지
그 관계 속으로 자신이 가졌던 모든 것을 밀어 넣는 일은 계속된다.
질투란 숙주가 필요한 바이러스와 비슷하다.
질투란 독립적인 감정이 아니라 사랑에 딸린 감정이다.
주전선수가 아니라 후보선수라 사랑이 갈 때까지 가서 숨을 헐떡거리면 질투가 교체선수로 투입된다.
질투가 없다면 경기는 거기서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13세기 사랑 앙드레 르 샤플랭은
"질투하지 않는 자는 사랑할 수 없다"는 주장까지 했다.
자신들의 사랑을 충분히 확인한 사람들 중에는 급기야 질투로 사랑을 확인하려는 욕망을 느끼는 부류도 있다.
기억이 아름다울까, 사랑이 아름다울까?
물론 기억이다.
기억이 더 오래가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
사랑은 두 사람이 필요하지만, 기억은 혼자라도 상관없다.
사랑이 지나가고 나면 우리가 덧정을 쏟을 곳은 기억뿐이다.
광수야, 사랑해. 알지? 내가 너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오래전부터 너를 사랑해왔는지, 알지?
너를 처음 볼 때부터 사랑했다는 거.
사랑이라니, 선영아. 무슨 소리야?
오래전부터 나를 사랑해왔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진짜야, 광수야. 왜 그렇게 놀라니? 진짜야, 내마음 믿어줘.
너, 요즘 너무 무섭단 말이야. 진짜야. 사랑해.
광수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넉달 전, 광수는 결혼식장에서
팔레노프시스로 꾸민 부케를 뒤에 선 친구에게 던지기 위해
왼쪽으로 고개를 살짝 놀리는 선영의 모습을 스쳐봤다.
그렇게 짧은 순간에
광수는 자신의 결혼에 지극히 사소한 문제가 하나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선영이는 그때까지 자신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좋아한다고는 말했지만, 사랑한다는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부케를 바라보는 내내 광수는 그런 생각뿐이었다.
선영이는 원래 사랑한다는 말을 안 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광수에게만 그런 것일까?
옛날에 진우와 사귈 때도 사랑한다는 말을 안 했을까?
미안해, 광수야. 사랑해. 믿어줘. 진짜야. 미안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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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니, 선영아!
'사랑'이 아니라는 말인가.
어떻게 감히 '사랑'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인가.
도대체 '사랑'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사랑이었어, 선영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