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물방울 22
프랑스에 취재 여행을 다녀왔다.
지롱드 강가의 작은 포장마차에서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와인을 사들고
강변에 놓인 낡은 벤치에 앉아 마셨다.
정말 맛있었다.
귀국해 인터넷을 뒤졌지만, 이름 없는 와인이라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뒤 다시는 그 와인을 마시지 못한 채
그 맛만 내 기억 속에 계속 살아 있다.
하긴, 와인이란 어쩌면
원래 그런 음료일지 모르지만--- (타다시 아기)
어릴 때, 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개선문을 배경으로 샹젤리제 거리에서 베레모를 쓴 내가
의기양양하게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허황된 상상을 하며 혼자 희열을 느꼈다.
그러나 그 꿈을 이루려면 막대한 자금과 뛰어난 재능이 필요함을 알고
둘 다 갖추지 못한 나는 너무도 쉽게 그 꿈을 내버렸다.
이 만화를 그리면서 몇 번쯤 프랑스를 방문하고
와인의 본고장에서 명예로운 상까지 받았다.
꿈의 형태는 조금 달라졌지만,
나름 어린 시절의 그 꿈을 이뤘다고 할 수 있으려나?
아직까지 샹젤리제 거리에 서 본 적은 없을지라도(웃음). (슈 오키모토)
꿈만 같아!
엄마랑 오빠랑 셋이서 하와이에 오다니!!!
그렇게 좋아?
가족인데 가끔은 함께 여행도 해야지.
일본에 있으면, 잇세도 일을 접고 우리와 식사할 마음이 들지 않을 테니까,
이렇게 억지로 시간을 비우게 한 거야.
어머니, 어떠세요?
처음에 마신 백포도주와 뒤 이어 나온 적포도주 두 병.
글쎄다.
네가 굳이 블라인드로 내놓을 정도니까,
뭔가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별 감흥이 없어.
미국에 왔으니 미국산 와인을 내놨을 뿐이지?
--- 다만, 미국산 와인을 마시고 느낀 건,
미국의 이 강한 음식들과는 어울린다는 거야.
이탈리아 와인에는 이탈리아 음식이 어울리고, 독일 와인에는 독일 음식이 어울리듯이.
그렇게 간단하게 단정지을 수 없는 건 프랑스 와인밖에 없어.
--- 프랑스 와인은 그것 하나만으로 하나의 독립된 세계를 갖고 있어.
그렇게 때문에 전세계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세계인의 와인으로 군림하고 있는 거지.
--- 나한테서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거니?
아니면 속을 떠보는 건가?
이제 곧 직면하게 될 '제7사도'가 가진 심오한 의미를---
조금이나마 알아내려는 거라면 잘못 짚었어.
그럴 의도는 없습니다.
그건 저 혼자의 힘으로 감당하고 찾아내야 할 과제니까요.
---정말이지, 어머니와 와인을 마시면,
항상 늘씬하게 얻어맞는 기분이 들어요.
넌 뭔가를 파악하기 시작했어.
'신의 물방울'은 과연 무엇인가---.
그걸 한눈에 내려다볼 필요성을 느낀 거지?
그렇지 않으면 남은 대결에서 칸자키 시즈쿠에게 따라잡힐 가능성도 있어.
왜냐하면--- 그는 이미 '12사도'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했을 테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죠?
당연하잖아.
아니면 '제6사도'의 정답을 알아내지 못했을 거야.
네가 틀린 것처럼 말이지.
--- 두렵니?
하지만 염려 마.
그도 아마 혼자서 거기에 도달한 것은 아닐 거야.
와인은 차치하더라도 인생이라는 것을 전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려면,
나이를 먹어야 하니까.
아마도 그는 좋은 연장자에게 조언을 받은 게 아닐까?
무척 사교적인 성격 같으니까.
그런가--- 그건 거였나---
다행이지 않니?
나 같은 가족이 있어서.
다만, 네 편을 들어줄 생각은 조금도 없어.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은,
그것 역시 칸자키 유타카가 남긴 뜻이라고 생각해서야.
이 3병의 와인을 내 앞에 늘어놓은 시점에서,
너는 정답을 파악하고 있었던 거야.
맞아.
'제12사도'는 인간 그 자체이자, 인생 그 자체.
그리고 이 세계 자체야.
혼마 쵸스케 등장.
사실, 12병 중에서 '제6사도'까지는 이미 정해 왔어요.
이게 라인업인데요.
시즈쿠의 말대로 이렇게 인생을 더듬어 가는 식으로 열거해 보니까,
'제7사도'가 어렵더라고요.
'제6사도'는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이야기잖아요?
하지만 독립한 뒤에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에요.
그것을 하나의 와인으로 표현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죠.
혼자서는 완성할 수 없을 것 같으니까, 다 같이 머릴 맞대고 연구해요.
오늘은 손님이 한 명 더 왔네.
처음 뵙겠어요.
토미네 잇세의 엄마, 호노카라고 합니다.
지금부터 칸자키 유타카 선생님이 남긴 '제7사도'의 내용을 읽겠습니다.
그때 나는--- 자신감에 넘쳤다.
황야에 홀로 서 있든, 깊은 숲을 혼자 서성이든, 길을 잃든---
혹은 대해에 떠 있는 작은 배에 홀로 흔들리고 있든,
결코 동요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있었다.
무리를 이탈한 젊은 사자처럼 용맹스럽게 행동했던 자신을,
나는 글라스에 이 와인을 따를 때마다 떠올리게 된다.
그 향기는 나를 사로잡고 놔주지 않는다.
그리운 과거처럼,
빛나는 미래에 대한 공상처럼,
나는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그것을 맛본다.
끝없이 높은 하늘.
한없이 펼쳐지는 지평선.
그리고 확고부동한--- 대지.
나는 나 자신의 왜소함을--- 통감한다.
멀리서 땅울림처럼 엄숙하게,
파도 소리처럼 잔잔하게 들려오는 하나의 선율.
그것은 하나,
또 하나씩 차곡차곡 포개지더니,
장엄하고 복잡한 바로크로 어우러져,
나를 에워싸고--- 한없이 울려퍼진다.
그것은 거대한 개미탑처럼 보인다.
그것은 군중의 외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하늘을 떠받친 성스러운 기둥처럼 솟아 있다.
그것은 호소한다.
기도하라.
신이 아닌 인간의 능력에, 지향하라.
하늘이 아닌 목소리가 나는 쪽을.
자아을 잃은 자여.
거들먹거리다가 타인에게 외면당한 자여.
하루하루의 고단한 삶에 지치거나,
또는 정신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그저 몸을 떠맡기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자들이여.
주먹을 펴고 넘치는 힘을 확인하라.
그리고 이 땅을 찾도록 하라.
이곳에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꿈이 있다.
이곳에는 위대한 미완성이 서 있다.
안토니오 가우디.
당신은 믿었던 것일까?
사람들이 포기할 줄 모르고, 당신의 꿈을 이어갈 것이라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서쪽에서 그리고 동쪽 끝에서 모여 들어,
무엇을 바라는 것도 아니면서 망치를 휘두르고, 인두질을 하고,
땀 흘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힘이 닿는 한 당신이 그렸던 꿈을---
함께 일궈나가는 이 기적을---
당신을 믿었던 것입니까?
이 와인은
영원한 미완성--- 사그라다 파밀리아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건축가 가우디가 설계한 바르셀로나의 신비한 건물 말인가?
로베르 고마워요.
내가 그 자리에 참석하는 것을 허락해줘서.
오고 싶다는 당신을 굳이 막을 수도 없으니까.
많이 닮았군요, 그.
--- 그 꼬마가 저렇게 성장해서---
젊은 시절의 유타카 씨를 쏙 빼닮은 청년이 됐어요.
이상한 사람이군.
어미로서 잇세의 편을 들 줄 알았는데,
시즈쿠 녀석을 소녀 같은 시선으로 좇다니.
무슨 생각을 하는지 통 모르겠어.
--- 뭐, 내가 아는 건 당신이 나타남으로써,
잇세 녀석이 한층 힘든 시련을 겪게 될 거라는 게야.
의외로 신대륙 와인이 아닐까?
미야비~ 신대륙 와인이 어떤 거였더라?
와인의 세계에서 신대륙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독일권과 달리,
예전에는 와인을 전혀 만들지 않았지만,
현재는 와인 생산자가 들어가 정착한 지역을 말해요.
물론 남북아메리카, 호주도 해당되지만, 예를 들면,
남아프리카와 중국, 인도도 와인 세계에서는 신대륙에 포함시켜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아마 일본도.
미국 와인 쪽이 마실 시기가 빨리 온다는 얘긴가?
아니, 마실 시기가 아니어도 맛있게 마실 수 있는 것이,
미국을 비롯한 신대륙 와인의 특징이야.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직접 가서 본 적 있는데,
그 건축물은 긴 세월 자원봉사자 등,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지어지고 있는,
현대의 피라미드 같은 존재예요.
오늘 마신 두 병 중에서 천지인 가운데 사람의 힘이 두드러진 쪽은 도미누스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이전에 마신 칠레 와신 코노수르나 뉴질랜드의 아타랑기에서도 느낀 점이에요.
보르도나 부르고뉴의 기라성 같은 테루아르와는 다른 천지인으로,
사람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근사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제7사도의 내용에 들어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빗대어,
아버지가 표현하려고 하는 건---
사람의 힘--- 맨파워가 만들어낸 기적,
거기에 담긴 인생에 대한 오마주예요.
로랑!
이번 사도찾기 여행에는 당신도 동행하도록 해.
그런데 어디로 가시나요?
미국, 나파밸리야.
나파밸리 와인 트레인이라는 관광열차야.
차로 가면 편도 30분인 거리를, 3시간에 걸쳐 왕복하면서 여유롭게 식사와 와인을 즐기지.
나파 밸리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와이너리의 와인을 열차 안에서 시음할 수 있으니까,
시간이 없는 우리 같은 사람은, 효율적으로 제7사도의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제7사도는 정말로 미국 와인이야?
솔직히 나도 몰라.
다만,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구대륙의 와인이 아니라는 확신은 있어.
제7사도에 있던 사람의 힘이라는 표현은---
인간의 지혜와 노력에 의해
유럽에서 다양한 지역으로 퍼져나간 근대 와인의 역사를 상기시켜 주지.
특히 이 캘리포니아는 하늘과 땅의 힘을 훨씬 뛰어넘는 인간의 힘으로---
세계 유수의 위대한 와인을 생산하게 된 지역이니까.
평소와 다르네, 잇세.
무슨 뜻이야, 로랑?
지금까지 잇세는 사도의 표현과 자기 안에 있는 와인의 이미지를 일치시키기만 하면,
굳이 와인을 찾아다닐 필요도 없이 바로 이름을 알아냈잖아?
그렇게 애매한 마음으로 산지까지 오는 건, 처음 있는 일이야.
역시 대단해, 로랑은.
맞아. 지금 난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
왜냐하면 프랑스나 이탈리아와 달리 신대륙의 와인은,
와인을 생산하는 포도밭의 지질과 환경 자체의 개성인 테루아르가 완전히 확립되지 않은 지역이 많아서야.
그런 와인을 바꾸는 것은 무수히 많은 사람의 힘.
아무리 나라도 비슷한 것을 마셔보지 않는 한 알 수가 없어.
만약에 이곳 캘리포니아의 와인이 아니라면?
다른 곳으로 날아가는 거지.
기한인 3주를 꽉 채워 쓰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찾아낼 거야.
난 절대 질 수 없으니까.
적어도 그 사람 앞에서는---
이것은 로버트 몬다비 사의 탄생 40주년을 기념해서 만든 복각판 와인이야.
어떻게 보면 캘리포니아의 와인 계보는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어.
그래서 일부러 이 데일리 와인을 마셔본 거야.
프랑스 와인과 바라보는 방향이 전혀 다르다는 건 나도 알겠어.
이상해. 프랑스의 와인을 목표로 만들었는데 이렇게 다르다니.
이제야 알래야 알 길이 없어.
왜냐하면 과거에 몬다비가 만든 와인과 이 복각판은 완전히 다른 와인이기 때문이야.
미국을 시작으로 대부분의 신대륙 와인에 같은 말이 적용돼.
그것이 내가 여기에 찾아온 이유야.
--- 와인의 가격이란 대체 뭘까?
3천엔대 중에서도 이것에 뒤지지 않는 와인을 잇세가 줘서 마셔본 기억이 여러 번 있는데.
미국의 컬트 와인이라는 장르에 한해서는,
품질 이상으로 희소가치가 가격을 결정하는 커다란 요소로 작용해.
나를 포함해 저명한 평론가가 높게 평가하면,
거기에 투기가치를 발견한 투자가가---
거기에는 더 이상 내가 사랑하는 예술 작품으로서의 와인의 의미는 없어.
슬픈 일이지만.
가격을 듣지 않으면 보다 단순하게 즐길 수 있을 텐데.
로베르 선생님의 말씀을 빌리면,
이것 또한 와인, 이라고 해야 할까.
미스터 켄트 나카가와.
당신을 찾으러 일본에서 온걸요.
--- 와인을 찾고 있습니다.
사람의 힘이 만들어낸 걸작 와인을.
나파밸리의 뛰어난 와인의 대부분은 사람의 힘이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아뇨.
제가 찾고 있는 것은 술이라는 수준을 크게 넘어선,
세기의 예술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와인입니다.
괜찮으시다면 함께 레스토랑에 가서 와인을 마시며---
아뇨. 나는 와인을 마시지 않습니다.
마셔도 의미가 없어요.
자, 다들, 자기가 맡은 신대륙의 와인들을 가져왔겠지?
이번에 당사자인 시즈쿠는 아무것도 찾지 않고, 편안하고 솔직하게 이 시음에 임하길 바라네.
부장님, 그런데 왜 신대륙 와인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을 뺐나요?
좋은 질문이네.
미국은 그 하나만으로도 종류가 너무 많아서야.
이렇게 자네들이 가져온 미국을 제외한 신대륙 와인에서
시즈쿠가 제7사도의 이미지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면
반대로 미국으로 범위를 좁혀서--- 미국 와인의 진원지인 나파 밸리로 가보면 어떻겠나 생각했네.
사람의 힘이 느껴지는 남아프리카의 이 와인,
제7사도가 아닐지라도 뭔가 커다란 힌트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가져왔어요.
그럴지도 모르겠어.
사람의 힘---
뭔가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인간이 기울인 노력의 결정체---
제7사도는 분명히 그런 와인일 거야.
사그라다 파밀리아도 작가의 강렬한 목적 의식이 존재하고,
그것을 수많은 제3자가 표현하기 위해 모여들어.
우선은 목적의식이 바탕에 깔려 있어.
제7사도라는 와인은.
어떤가, 시즈쿠?
이 발상의 연장선에 제7사도가 있다면,
호주일 가능성이 다분해.
난 그렇게 생각하는데?
제7사도가 예술작품이라고 해도 무언가를 만들려면 풍부한 재료와 인재가 필요해.
그러기 위해서는 신대륙 중에서도
인재가 풍부하고 다양한 포도를 재배하면서 경지면적도 넓은 곳---.
즉, 호주나 미국, 이 둘로 좁히면 될 것 같다만?
어떡할래요? 미국? 호주?
정해진 날짜까지 현지에 가서 찾아보려면,
둘 중 하나를 고르는 수밖에 없는데---
정했어.
호주다.
미국 대 호주
제7사도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