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이랑

작은아씨들 8

2010. 1. 20. 15:16

그렉이 잠든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는 메그.

 

안경을 벗으니까 어려보여.

하긴 학생이니까 당연한 거지만---

또래 여학생들한테 인기도 많을 텐데--- 왜 내 옆에 있는 걸까.

이런 짓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계산 착오야.

그렉 선배의 가면을 벗기려고 언니를 오라고 한 건데

오히려 더 가까워지다니.

둘을 떨어뜨려놔야 돼.

언니는 선배를 많이 좋아하는 거 같아.

그 동화책을 읽어준 것도 그런 의미겠지?

둘의 사랑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베스를 위해 향기로운 파이를 들고 가는 로리에게 레오도라가 묻는다.

 

너 말이야.

태도를 분명히 해.

실실거리면서 비위나 맞추지 말고.

그 애가 에드에게 기대하지 않게.

애매한 태도는 그만두고 확실히 붙잡으란 말야.

 

제가 보기엔 흔들리는 것도,

잡아주기를 원하는 것도 선배라고 생각되는데요.

믿고 노력하면 소원이 이루어질까요?

하지만 노력 같은 건 아무 소용이 없을 때도 있거든요.

운명 앞에선 말이죠.

 

난 틀린 적이 없어.

 

그래요?

선배의 운명의 상대는 에드가 확실한가요?

운명은 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고,

파이의 달콤함도 끊을 수 없는 거겠죠.

 

너라면 놓아줄 수 있어?

내 것인 게 당연한 존재를 운명이란 말로 흘려보낼 수 있다고?

그런 것이 너의 선택이라면

운명을 만드는 건 나의 선택이야.

 

 

 

그렉 군은 또래에 비해 조숙하긴 해도 순수한 학생입니다.

당신같이 경박한 생각을 하는 하녀에게 나쁜 영향을 받을까 염려되는군요.

그렉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아요.

 

불쌍해라. 정말 못 믿으시네.

좋은 거 보여줄 테니까 입 다물고 거기 있어봐요.

 

또야.

또 속아버린 건가?

바보같이 남자애한테 속기나 하고 한심해.

아냐.

어쩔 수 없었는지도 몰라.

그 하녀가 유혹하니까 상냥한 마음에 거절하지 못한 것일 수도.

그렇게 믿어야 할까?

 

메그 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문 좀 열어주세요.

서재에 오셨던 거 알아요.

그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문--- 열어보세요.

모두 설명할 테니까.

제 말을 들어보세요.

오해라구요.

절 못 믿으시는 건가요?

 

모두가 보고 있어, 그렉 군.

이 이상 날 부끄럽게 만들지 마.

 

끝이 어떨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단지--- 사실을 알게 되면

아무도 상처받지 않고 모든 게 해결될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학교로 돌아가자는 나의 말에

언니는 아무 말 없이 가방을 정리했다.

 

어제 일 들었어.

더 이상 그렉이 연관되는 일은 없어.

메그 선생님은 괜찮을 거야.

그 여자---

나의 어머니 레이디 루이즈 그레이처럼 돌이킬 수 없지는 않으니까.

 

지금 그 얘기--- 행방불명되신 네 어머님 얘기야?

 

더 이상 행방불명은 아니지.

인도 어딘가에서 열병으로 죽었대.

그 여자 일로 신경 쓰는 것도 마지막이야.

 

레이디 루이즈 그레이.

에이버리 부인의 이름, 에드의 어머니.

라빈이 쓰던 편지 속의 이름---

어디선가 들은 적 있던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에이버리 부인이었군.

하지만 이미 죽은 사람에게 쓰는 편지라니?

 

레오노라의 간언으로 교장실로 호출 받은 메그와 그렉.

 

둘에게 물어볼 말이 있답니다.

둘에 대해 좋지 못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먄,

메그 선생님은 누가 봐도 신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 있는 그렉 군이 그 증인이 돼 주리라 믿어요.

성경책에 손을 올리고 맹세하세요.

오직 진실만을 말할 것을!

 

학생을 바른 길로 이끌어야 할 본분을 잊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사실입니까?

 

사실---

 

성경책에 올려진 메그의 손을 뿌리치는 그렉.

 

여기저기서 짜집기된 신화에 대고 맹세하느니

차라리 내 신발에 맹세하지 그래요.

나이가 좀 많아도 얼굴은 봐줄 만해서 건드려볼까 했는데

선생이랍시고 참견하는 것도 지겹고, 얌전빼는 레이디는 금방 질려서 말이죠.

귀족 자제들 사이에서 기웃거리는 짓도 이제 그만 둘 때가 됐나 봐요.

저, 자퇴하겠습니다.

 

기다려. 대체 무슨 생각이야?

학업을 그만두고 에이버리로 돌아가는 건 너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과 같아.

 

에이버리로 돌아간다라---

그쪽이 저한테 어울리긴 하겠네요.

여긴 귀족에게 더부살이하는 빈민가 출신 고아에겐 어울리지 않아요.

 

혹시 서재에 있던 하녀 때문이야?

그 하녀와 같이 있고 싶어서 이러는 거라면 말리지 않을게.

 

어처구니없는 소리 하지 말아요.

에이버리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진학을 해서 의사가 되겠다며 몇 번이나 얘기했잖아.

지금의 위치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잖아.

난 너와 같이 너의 꿈을 바라볼 수 있을 거라 믿었어.

널--- 믿었다구.

 

끝까지--- 믿었으면 좋았잖아요.

 

이제 만족해, 베스 양?

이걸 원한 거잖아.

 

아무렇지 않은 걸까.

모두 포기하겠다니---

그렉 선배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닌데.

선배에겐 안됐지만,

언니에겐 다행인지도 몰라.

 

정말 언니를 좋아했던 걸까?

그저 신분과 위치를 이용한다고 생각했는데.

저택에서 자기 입으로 말했다고.

끝까지 거짓말투성이에 믿을 수 없는 사람이야.

 

적어도 한 가지는 명확하잖아.

교장 선생님 앞에서 메그 누나를 보호한 것.

선배가 자신이 가진 전부를 걸었다는 거,

그거 하나는 틀림없는 거 아냐?

 

지금 떠나는 거야?

 

인사 드리고 갈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뭐가 다행이라는 거야?

마지막이니까 웃으면서 인사하면 받아줄 거라고 생각해?

그런 걸로 쉽게 정리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고.

널 용서해줄 거라고 믿지 마!

 

제가 어떻게 했어야 할까요?

제가 어떻게 해야 용서해주실 건데요?

 

오늘 밤 12시,

학교 뒷문에서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