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이랑

열세 번째 남자 11

2009. 10. 15. 10:33

네가 갑자기 왜 장휘영의 안부에 대해 관심을 갖는 거지?

 

차라리 내가 널 좋아하기라도 하고 있는 거라면 좋겠어.

 

그런 말을 들었으니 신경 쓰이는 게 당연하잖아!

그 녀석이 날 어떻게 보고 있건 상관없다고 생각 했는데---

상관없지 않은 건가---?

역시 알고 싶어!

그 녀석의 진짜 속마음을!

 

내가 이 시간에 여기까지 온 건 도대체가 궁금해서 못 참겠어서야!

단도직입적으로 물을 테니--- 똑바로 대답해주길 바라!

그때, 나를 좋아하기라도 했음 좋겠다고 말한 게 무슨 뜻이야?

나에 대한 네 진짜 속마음은 뭐야?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다구!

 

알면, 너는 어쩔 건데?

내가 만약 너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어쩔 거야?

그리고 나한테 그런 걸 묻기 전에 네 입장은 정리하고 묻는 거야?

--- 대책도 없으면서 내 마음은 알아서 뭐하게?

알고 싶은 건 나도 마찬가지야.

--- 한번 시험해볼까? 서로의 마음이 어떤 건지.

 

좋아한다는 건 아마도--- 닿고 싶다거나, 만지고 싶다거나,

그런 기분이 드는 거겠지?

키스할 거니까--- 싫으면 피하거나 밀치거나 도망가거나 맘대로 해.

 

얘가 지금 무슨 짓을--- 어디로 피하란 말이야?

그러니까--- 정말로--- 싫지 않단 말이야.

 

장휘영과 무려 키스를 해버렸다!!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한 대쯤은 맞을 걸 각오했는데, 싫지는 않았던 모양이네.'

이 농락당했다는 기분에다 참을 수 없는 패배감이라니!!

 

너 참 이상하다.

티는 다 내면서 왜 아닌 척하는 거야?

내가 널 한두 해 본 것도 아니고.

네가 눈동자 굴리는 것만 봐도 호감이 발동했는지 아닌지 다 알거든?

어느 시점부턴진 몰라도.

넌 지금 장휘영한테 무지 꽂혀 있어.

눈이 아주 반짝반짝하다니까.

 

절친 남주의 말이라면 맞을게다--- 내가 장휘영한테 반했다고?!!!ㅠㅠ

설마--- 그 녀석과 키스했기 때문에?

그럼 단지 키스 하나로 반했다고? 그렇게 쉽게?

만약 내가 진짜로 장휘영을 좋아하게 된 거라면---

두 번째가 되는 거잖아.

같은 사람을 두 번씩이나---

아아, 그렇구나--- 얼굴을 보니까 왠지 두근두근해---

 

장휘영, 내가 재밌는 거 가르쳐줄까?

은희소는 말이야.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성격이 바뀌거든?

근데 지금 은희소가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 상대에 따라 유도리는 있지만, 어쨌든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은희소는 인격과 말투가 변해 버리고 맙니다.

겪어본 적 없는 장휘영은 매우 당황스럽습니다.

 

주인님, 저 무서운 말을 엿들어 버렸어요.

주인님이 가진 그 힘이 목숨과 관계있다는 게 사실인가요?

힘을 쓸 때마다 목숨이 닳는다는 게 사실인가요?

그럼 저는--- 그럼 저라는 존재는---

주인님을 해치고 있는 존재인가요?

 

새벽부터 꽃단장하고 장휘영의 집에 놀러온 희소.

 

이렇게나 열심히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있는 거구나.

설마--- 그게 나는 아니겠지?

--- 뭐?! 우리 주인님이라구?

 

있잖아, 베아트리체.

난 구제불능인지도 몰라.

원준이랑 헤어졌을 때,  이제 다시는 쉽게 누군가를 좋아하진 말자고 생각했었어.

순간의 감정이나 느낌에 휩쓸려 버리지 말자고 말이야.

그런데 날 좀 봐.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또 이러잖아.

달라진 게 하나도 없어.

쉽게 반하고, 금방 좋아져 버리고, 순식간에 불타올라서는

바보처럼 열렬해져 버리고 말야.

왠지 이젠 시작하면서도 끝이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이야.

--- 지금 이렇게 좋아하고 있어도,

언젠간 끝날 거라고 생각하면 미리부터 풀이 죽어버리는 것 같아.

 

그렇구나.

희소는 그동안 괜찮은 척했지만, 사실은 매번 상처를 많이 받아온 거야.

만일 누군가가 희소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줄 수 있다면---

지금까지의 기억을 날려 버릴 만큼의 사랑을 줄 수 있다면---

 

한결같고, 변함없고, 끝이 없고,

그리고 오직 너만 바라보는 그런 마음도 있어, 희소야.

 

호오~ 그런 게 어딨는데?

 

여기.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는 베아트리체.

 

걱정 마, 희소야.

난 언제나 네 편이니까.

네가 바라는 게 바로 내가 바라는 거야.

다시 한 번 믿음을 가지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최선을 다해 봐.

이번엔 나도 널 도울 테니까.

이번에야말로 네가 진짜를 찾았으면 좋겠어.

 

알고 있어.

그게 나는 될 수 없다는 걸---

하지만---

내가 가진 이 마음만큼은,

분명 진짜야.

그리고

이 사람이 내가 가진 이 마음의 진짜 주인.

 

주인님.

오늘 희소한테 못되게 구셨다면서요?

딴에는 예쁘게 잘 보이고 싶어서 애 좀 쓴 모양이던데요.

--- 그쯤 되면 눈치 챌 법도 한데--- 생각보다 둔하시네요, 주인님.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시면 좋을 텐데---

앞으로 우리 희소를 어쩌실 생각이세요?

남자답게 책임을 지셔야지요.

--- 한 번쯤은 자신의 행동을 깊이 생각해보셔도 좋을 텐데---

 

희소에 대한 감정을 물을 때마다 주인님은 항상 모르쇠로 일관하시죠.

하지만 모르는 건 답이 아니에요.

확신이 없거나 회피하고 있는 거죠.

분명 제가 지켜봐온 주인님은 희소에게 무심한 것처럼 보이지만요.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무엇보다도 저는 처음부터 목적이 분명한 마음을 주인님께 받았으니까요.

 

소중한 사람을 지켜 달라고 하는 염원이 담긴 마음.

그렇기 때문에 저는 그 사람만을 바라보게 된 거예요.

그것이 바로 '은희소를 위한 마음'이었기 때문이죠.

그러니 제가 희소에게 느끼는 모든 것, 모든 감정들은---

주인님으로부터 비롯된 거라고 생각해요.

희소에 대한 감정에 확신을 가질 수 없는 게 문제라면,

그건 어쩌면 저 때문인지도 몰라요.

그러니 제가 다시 주인님께 받은 마음을 돌려드린다면---

 

참나--- 그놈의 실체도 없는 마음 타령은---

네 말대로 돌려받거나 하면--- 너는 어떻게 되지?

그래로 사라져버리거나 하는 걸까?

 

무엇보다도--- 이 녀석이 정말 사라져 버리기라도 하면---

그 녀석이 죽도록 슬퍼할 게 뻔하니까---

내가 은희소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의 정체가 무엇이든---

그 녀석이 우는 것만은 싫단 말이야.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텐데---

귀찮아하지 마시고 잘 좀 받아주세요.

그건 은희소가 좋아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니까요.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도 나는

너를 향해 달리고 있었어.

그러고 보면 난---

언제나 너를 향해 달리고 있었던 것 같아.

생각할 겨를조차 없이 말이야.

 

장휘영.

왜.

장휘영.

왜.

장휘영.

왜.

 

안 되겠어.

도저히 못 참겠어.

입이 근질거려서---

이 마음을 마구 표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다구---

 

좋아해.

--- 네가 너무 좋아.

 

몰랐다.

진짜 몰랐어.

이런 기분이 될 거라고는---

너의 고백이

이렇게 기쁠 줄은 몰랐단 말이야---

어쩌면 몰랐던 게 아니라

모른 척했던 것 뿐인지도 모르지.

어차피 너에게 해줄 대답은

하나밖에 없어.

이렇게 잠이 몰려오지만 않는다면---

말해주고 싶은데.

나도 네가 좋다고---

 

요즘 들어서 잠을 거의 하나도 못 잤어.

그래서 머릿속이 멍하고---

좀더 시간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지금은 너무 피곤해서--- 괜찮다면 한숨만 잘게.

한숨자고 일어나서, 그래서 괜찮아지면

--- 그때 말해 줄게.

 

진짜 많이 피곤했나 보네.

좋아.

그럼 네가 자고 일어날 때까지 기다릴 테니까,

그땐 꼭--- 내가 좋다고 말해 줘야 돼.

 

벌써 12월입니다.

희소는 수업이 끝나면 가끔씩 병원에 들르곤 합니다.

희소는 매번 병원에 올 때마다 시끄러운 음악을 잔뜩 담아 와서는

주인님과 함께 음악을 듣습니다.

주인님은 벌써 두 달째 잠에서 깨지 않습니다.

 

베아트리체, 넌 직접 눈을 맞아 보는 건 이게 처음이지?

 

이것 말고도 난 처음 겪는 것들이 많아.

함께 빗속을 달린 것도,

녹아 버릴 것 같은 뙤약볕도,

하늘을 뒤덮은 잠자리들,

어지럽게 흩날리던 낙엽.

지금 내리고 있는 이 눈도---

특별하고 의미가 있는 건

처음이라서가 아니야.

이 모든 순간들이 소중하고 또 소중한 건

바로 너와 함께이기 때문이야.

그리고 어쩌면

두 번은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야.

희소야, 어쩌면 말이야---

주인님이 저렇게 깊이 잠들어 깨어나지 못하시는 건

전부 나 때문인지도 몰라.

그건 아무 대가 없는 힘이 아니었어.

주인님은 그런 사실을 분명 알면서도---

자기 자신이 이렇게 되도록까지---

어째서 멈추지 못하고 여기까지 오신 거죠?

주인님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건지---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은지 알려 주세요.

주인님---

 

희소야, 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만약에 나랑 주인님 둘 중에 한 명만 네 곁에 있을 수 있고

나머지는 사라져야 된다면--- 넌 어느 쪽을 선택할래?

 

갑자기 왜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을 해?

지금 너랑 장휘영을 비교하는 거야?

 

그치? 바보 같은 질문이지?

어차피 답은 뻔할 텐데 말야.

 

뻔하지, 그럼!

너인 게 당연하잖아?

 

왜? 왜 나야?

넌 주인님을 좋아하잖아.

그런데 왜 나를 선택해?

 

그건 얘기가 다르지.

일단 너랑 장휘영을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면 안 된다구.

왜냐면 넌 선택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으니까.

널 두고 다른 무엇하고도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어.

 

그렇지--- 희소에게 있어서 나는---

없어서는 안 되는, 당연하고 소중한 존재지.

하지만 누구와의 비교도 무의미하다는 건 결국---

좋아하는 남자와의 비교선상에는 결코 놓일 수 없다는 뜻이야.

희소에게 있어서 난 영원히 남자는 되지 못해.

그러니--- 희소를 행복하게 해줄 남자는 내가 아니야.

크리스마스 선물---

 

나도--- 희소한테 크리스마스 선물 하고 싶어.

 

은희소의 운명의 상대.

꼭 만나게 해줄 테니까.

 

그게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