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물방울 20
제 6사도의 이미지를 찾기 위해서 미야비와 함께 아스카로 떠난 시즈쿠.
있죠, 시즈쿠 씨가 보고 싶었던 광경은 어떤 거예요?
한 마디로 표현하기는어렵지만 굳이 말한다면,
우주가 느껴지는 광경이지.
아스카에 이탈리아 사람이 경영하는 이탈리아 식당, '스파치오'
저기, 가게 이름인 '스파치오'는 무슨 뜻인가요?
우주라예.
--- 두 분이 와 이런 외진 곳에 왔는지.
와인과 관련된 사정이 있는 게 아닙니꺼?
그렇군예.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연상케 하는 와인이라--- 어렵네.
'제6사도'의 내용을 들었어요?
들은 적 없어. 그냥 마신 적이 있을 뿐이지.
그 사람과 함께.
알고 싶어?
천만에요! 그런 짓을 하면 싸우지도 않고 지는 게 되니까!
농담이야.
하지만 하나만 말할게.
이런 곳에 뻔질나게 드나들며 불상만 쳐다보고 있어서는,
제6사도는 찾아낼 수 없어.
너는 그 나이에 와인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니?
그런 사람에게 와인의 여신은 미소를 지어 주지 않아.
내가 오만하다고 말하고 싶은가요?
오만과 열등감.
그 상반된 감정이 한데 섞여 있지.
네가 고른 퍼스트클래스의 와인에서, 그런 정신 상태가 엿보이더구나.
하나 더, 이것만은 알아뒀으면 하는구나.
이 '제6사도'조차 찾아내지 못한다면,
너는 아직 칸자키 유타카는 고사하고,
내 수준(잇세의 어머니)에조차 이르지 못한 거야.
이 와인은 '눈물짓는 미륵'.
마셔 보렴.
성 야곱의 밭을 의미하는 와인.
제브레 샹베르텡 프리미에 크뤼 '클로 생 자크' 1997년산.
그리고 똑똑히 알아둬.
네 자신이 얼마나 미숙한지.
칸자키 유타카가 얼마나 아득한 존재인지.
찾았어, 미야비.
이 안에--- '미륵'이 있어!
로랑.
어머니가 내 미숙함을 깨우쳐 줬어.
정말이지, 여전해.
예전부터 그 사람은 내게 지독한 짓만 해왔어.
어린 나에게 콤플렉스를 심어주는 행동을 하지 않나.
날 죽이려 한 적도 있어.
눈물.
따뜻한 눈물.
모듬어 안는 대신 흘리는 눈물.
슬퍼하는 누군가를 대신해 눈물짓는 그 모습.
--- 어머님은 어쩌면--- 잇세가 착각하리라는 걸 알고 계셨는지도 몰라요.
미리 알고 깨우치게 도와주신 건지도 모르죠.
웬 바람이 불었을까?
네가 자진해서 교토 관광을 하자는 말을 다 하고.
무리하고 있는 게 환히 보여, 잇세.
네가 그렇게 쉽사리 나를 용서할 리 없지.
이렇게 같이 다녀도 네 머릿속에 있는 건 오직 와인뿐인걸.
젊은 날의 칸자키 유타카의 일면이 그랬듯이---
부드러운--- 석양이다.
왜일까---
석양과 아침 해는 사진으로 비교하면 전혀 다르지 않은데,
실제로 보고 있으면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보여.
만약 내 생각이 옳다면 내 어머니인 이 사람과 과거에 함께---
짧으나마 생활했던 이 거리를 둘러보면 틀림없이 무언가를 알아낼 수 있을 거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안 보고 갈 거니?
태양이 저문 뒤에 내려앉는--- 땅거미를---
기다려 본 적이 있니?
어둠 속을 헤매면서 간절히 태양을 기다려 본 적이---
간신히 태양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 때가 오면,
그때는 뒤돌아보렴.
꼭 알게 될 거야.
칠흑 같은 어둠이라고 생각했던 그 우주에---
네가 걸어가는 길을 어슴푸레 비추는 하얀 달이 멀리서 빛나고 있었다는 것을.
변호사 선생.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선생은 누가 이기기를 바라나?
저는 변호사입니다.
유타카 선생님의 유지에 따라 이 싸움을 공정하게 지켜볼 뿐이에요.
그것 참 유감이군.
선생은 유타카의 마지막 말을 들었나 했는데 말이야.
부르노 자코사 '바를로' 환상의 붉은 라벨.
츄구지에 모셔놓은 미륵반가사유상.
두광을 갖추신 숭고한 그 모습과 이미지가 겹칩니다.
그것이 제6사도인가?
--- 뺨을 비비고 싶은 친밀감을, 이 와인에서는 느끼지 못했어요.
제6사도는 두광을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이 와인은 제6사도가 아닙니다.
잇세--- 녀석이 틀렸다.
표현은 둘째치고 골라온 와인 자체부터.
틀리면 안 돼.
이걸 틀리면 나나 잇세나 남아 있는 사도에 도전할 수 없을지 몰라.
믿자.
나 자신을.
이 한 잔의 루비색 액체 속에 펼쳐지는 우주를, 감지해내야 해.
보여다오, 와인아!
아찔한 우주와 미륵보살상의 이미지에 아버지가 담은,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그것으로 끝이냐?
아뇨.
그 뒤에 제가 느낀 것이야말로,
아버지가 저한테 하고 싶었던 말이라고 생각해요.
겨우 알았어요.
처음에 느낀 고독은,
길을 떠날 때 느끼는 불안함과 허전함이었어요.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혼자 걸음을 내딛기 시작할 때의,
그 형언할 수 없는 초조감.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선뜻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불안함과 망설임.
난 지금 아주 잘 알아요.
내가 어떻게 여기에 서 있을 수 있는지.
주저하면서도 어떻게 앞으로 걸어갈 힘을 계속 간직할 수 있는지.
그게 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비롯해,
성장해가는 나를
자상하게 지켜봐 주는 사람들 덕분이라는 것을요.
--- 그것이 이 와인에 대한 저 나름의 표현이에요.
루치아노 산드로네, '바롤로 카누비 보스키스' 2001년.
이 와인은 지나간 반생을 돌아볼 때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는---
인간의 '진정한 따스함'이라는 것을 나에게 가르쳐줬어요.
알았겠지?
고전도 모던도 상관없어.
와인을 마시고 느낀 순간부터가 그 세계의 시작인 게지.
--- 잇세, 자네는 와인을 너무도 잘 알고 있어.
그렇기 때문에 빠질 수 있는 덫이 있다는 것을,
유타카는 전하고 싶었는지도 몰라.
응--- 이겼어.
어쩌면 처음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저 천재를 이긴 건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한 순간부터 자네는 다음 패배를 향해 걸음을 내딛기 시작하게 될 수도 있어.
그것 또한 와인이라는 거지.
잘 듣게, 시즈쿠. 명심해둬.
남자는 경쟁에서 진 뒤 패배를 인정하고,
나아가 그것을 밑거름으로 삼아 성장해가는 동물이야.
토미네 잇세는 그걸 잘 알고 있는 게 분명해.
어쩌면 그렇게 반생을 살아왔는지도 모르지.
그래, 제6사도는 자네에게 어떤 와인이었나?
저는 부모님을 모두 잃었기 때문에 뭐랄까---
가슴에 확 와 닿는 와인이었어요.
부모님 품에서 완전히 벗어난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러면서 부모님을 포함해
이제까지 나를 지켜봐준 사람들의 마음으로 돌아보는 듯한.
'홀로서기'인가?
너도 이제 부모로부터 독립했다는 얘기야.
그런 의미를 담아 네 아버지는,
'카누비 보스키스'를 제6사도로 선택했는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