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번째 남자 3 / 장휘영
왜 이러지? 진짜 이상해---
원준이가--- 이제야 희소를 좋아하게 됐는데---
저번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왠지 쓸쓸한 기분이 들어.
축하해줘야 할 텐데 왜 기뻐할 수 없는 걸까?
어리광피우지 마.
그럼 언제까지고 그 녀석이 니 옆에서 너만 감싸고 돌 줄 알았냐?
15살이나 처먹어서 아직까지도 7살처럼 구니까 별 수 없이 옆에 붙어 있었던 거라구.
너한테 무슨 알량한 책임의식이 있는지 몰라도 말야.
이제 이쯤에서 그 녀석을 좀 놓는 게 어때?
쉽게 다른 누군가를 좋아할 녀석도 아니고---
7살 때부터 줄곧 너만 보던 녀석이
이제야 좋아하는 여자애가 생겼다잖아.
--- 웬만하면 이번엔 방해하지 말라구.
알겠냐?
넌 날 좋아하는 게 아니라 좋아한다고 생각만 하는 거야.
그러니 이젠 제발 정신 좀 차리고 주변을 똑바로 바라봐.
그리고 원준이가 가고 싶은 대로 내버려둬.
이번에도 발목을 잡으면 그 녀석은 필시 또 니 옆에 엎어져 버릴 테니까.
너랑 원준이 때문에 상처 받을 밥통 같은 기집애 생각도 좀 하라구.
[새봄이의 살아있는 토끼, 토토가 새봄이에게]
옛날에 니가 나 때문에 행복했다면,
그 다음엔 또 다른 누군가 널 행복하게 해줄 사람이 올 거야.
생각해 봐.
줄곧 니 손을 잡아 이끌어준 게 누군지.
그 손을 놓쳤을 때 길을 잃어버릴 것 같다면,
절대 놓치지 마.
니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를 뺏겨서는 안 돼.
그러려면 강해져야 해.
너 스스로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니가 원하는 걸가질 수 없을 테니까.
가장 원하는 하나를 가지면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 든 것처럼,
가장 잡고 싶었던 사람의 손을 잡을 수 있게 되었고,
그 마음을 얻은 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구.
그때 만약 나도 휘영이를 따라서
이 다리를 건넜다면
너를 좀더 일찍 만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야.
오늘 처음으로 이 다리를 건너 낯선 동네에 와서,
나도 널 찾을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는데,
엄청 금방이었어.
이렇게 쉬운 일이었던 건데 말야.
그냥 다리를 건너기만 하면 되는 거였어.
이젠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때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다던 원준이를
나는 영영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은 기분 말이야.
은희소 너는,
지금이 아니라도 처음부터 그랬어.
넌 언제나 감동이었어.
그때 새봄이가 했던 말은 잊어 버려.
은희소에게로 도망치는 거야.
휘영아,
난 오랫동안 널 기다리고 그리워해 왔는데---
이렇게 니가 좋은데---
그런데도 내 행복은
니가 아닌가봐---
다른 곳에 있나봐---
토토에 대한 생각을 지우고 나서야 비로소 또렷해졌어.
내가 기억을 되돌리면서 보게 된 건---
니가 곁에서 손을 잡아 주고 있는 것뿐이었어.
언제나---
옆에서 항상 지켜봐주고
함께 있어줬던 건 너였어.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
그 손을 놓쳐버릴 것만 같아서 무서워.
그렇다고 해서 울고만 있진 않을 거야.
아직은 모르겠는 게 많고 방법도 알 수가 없지만---
새봄이한테---
아니, 나한테 가장 소중한 게 뭔지
이젠 알았으니까.
[휘영이랑 희소가 몰래데이트?]
그렇잖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언젠가 나 때문에 슬퍼지게 될 거라면,
차라리 처음부터 무관심하고 차가운 쪽이 좋은 거야.
미안하지만---
너하고 나 사이에 다음이란 건 없어.
말했잖아.
너하고 난 그냥 운 때가 맞아 떨어지는 것 뿐이라고.
지금이 아닌 다음은
너랑 나 사이엔 아무런 의미도 없지.
안 그래?
어떻게 된 거야?
학교에도 안 오고, 전화도 안 받고,
집에 가보니까 집에도 없고---
하루종일 걱정하게 만들고서---
넌 지금껏 장휘영이랑 함께였단 말야?
내가 분명히---
니가 다른 사람 손 같은 거 잡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어째서 항상 장휘영이야?
왜 하필이면 그 녀석이랑 함께였던 거냐구!
있잖아, 난 니가 나를 좋아하는 것만큼 나를 좋아하진 않거든.
그래서 가끔은 니가 좋아하는 난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너는 마음을 전부 보여주니까.
그걸 따라가다 보면 알게 되겠지.
니가 좋아하는 나를, 나도 좋아하게 될까?
너와 함께 있으면
왠지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서 나는 네 옆에 있고 싶은 건지도 몰라.
원준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너무 행복해---
[희소의 선인장이 울다.]
희소야, 있지, 난---
역시 그 강원준이란 애는 불안하기만해.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 않단 말야.
그거 알아?
넌 그 애와 함께면 언제나 울어.
슬퍼도 울고, 기뻐도 울고---
나라면 절대 널 울리지 않을 텐데---
내가 진짜 사람이었다면---
왠지--- 싫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거지?
선인장 따위한테--- 심장이 있을 리가 없는데
뭔가가 아주 빠르게 가슴 속을 내달려서
이러다 터져 버리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만큼---
주인님!
부디--- 제가 진짜 사람이 될 수 있게 해주세요---
[장휘영, 황당!!!]
이 두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아주 가까이에서
내가 모르는 시간을 함께 해온 거야.
왠지---
허기진 뱃속에 질투심만 가득 차올라 까맣게 타들어간다.
희소랑 함께 있으면 평사시랑은 틀리게 자주 웃는구나, 원준이는---
어째서 그렇게 변하게 되는 거야?
어릴 때부터 줄곧 함께였어도 새봄이는 모르겠는데.
너를 웃게 만드는 방법 같은 거---
희소의 어떤 점이 특별해?
은희소는 온통 내 생각만 하고 있다는 게 너무 눈에 보이잖아.
처음엔 별 거 아닌 관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노력하지 않아도,
지켜주지 않아도,
불안감 같은 건 한 번에 날려 버릴 수 있을 만큼
날 좋아한다고 흔들림 없이 말해 주니까.
그럴 때마다
그런 마음을 알게 되면 될 수록,
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내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야.
[주인님은 저랑--- 사랑의 라이벌?!]
정말 알 수가 없네.
대체 무슨 근거로 당연한다는 듯이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
내가 은희소를 좋아한다고 한 번이라도 말한 적 있었냐?
하지만--- 말은 안 해도--- 행동으로 보여주시잖아요.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누구라도 그런 건 알 수 있다구요.
이율배반적으로 들릴진 몰라도
내가 느끼는 그대로를 분명히 말하자면,
그 녀석이 신경 쓰이고
도저히 내버려둘 수가 없고,
잡다하게 끼어들고 간섭하고 상관하게 돼 버리지만,
잡고 싶다거나, 내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기분이 드는 건 아니야.
그 녀석에게서 도무지 시선을 뗄 수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녀석이 나를 봐줬으면 하는 생각 같은 건---
조금도 들지 않는다구!
--- 분명 몸은 그 녀석에게로 움직이는데,
귀찮을 정도로 반응해 버리는데---
마음이 텅 빈 것 같단 말야---
미안해, 새봄아---
너무 오랫동안 함께였지.
이제---
떨어져야 할 때가 된 거야.
나는---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이 있으니까---
하지만 슬펐습니다.
왜냐하면---
인어공주는 아무리 왕자님을 사랑해서 사람이 되었어도---
결코 왕자님의 사랑을 얻지 못한 채
물거품이 된다는 걸---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