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맨 / 김희경
누나들의 돈줄을 비롯하여 이 집안의 실권은 바로 나,
대한민국 재계의 젊은 프린스,
신웅그룹의 확고부동한 후계자인--- 신규연이 쥐고 있다는 사실!
지저분하고 음침하고 멍청해서 아무도 상대 안 하는, 왕따 연은아!
그러고 보니 너랑 아주 잘 어울리네.
왕따하고 개뼈다귀하고!
아, 연은아요?
회장, 그 애는요--- 말이 안 통하니까 내버려두는 거예요.
왜 있잖아요, 아인슈타인도 생활력은 빵점이었다잖아요.
그러니까 그 애는요--- 천재라고요.
사고 체계가 우리랑 다르다고나 할까---
그래서 평소 생활할 때는 좀 멍청해 보이죠.
두꺼운 안경을 벗은 은아의 예쁜 눈과 귀여운 미소.
나만 알고 싶다.
앞으로 나 말고 딴 사람들 앞에서는 절대 안경 벗지 마.
팥쥐 누나들, 규연의 승승장구한 모습을 무너뜨리고 싶어서 안달하지만,
좀체로 성과가 없다.
그래서 필살기, 반항아 동생, 루시에게 도움의 손길을.
우리의 잘난 장남에 관한 소식이거든.
이게 생겼거든.
꽤 빠졌다나봐, 그 여자한테.
그래서?
부숴줬으면 좋겠어.
누나! 난 나쁜 여자가 좋아.
나중에 괴롭힐 때--- 죄책감이 안 들거든---
숲속의 마왕님께는 말썽꾸러기 왕자님이 한 분 계셨어요.
어느 날 이 말썽꾸러기 왕자님이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천사님을 발견했어요.
호오~ 이거야!
천사님이 맘에 든 왕자님.
급기야 천사님을 납치하고만 왕자님.
큰일났다, 쁘띠 신데렐라맨!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까?
규연이는 정말 착하구나?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규연이처럼 세세히 가르쳐주지 않거든---
그래서 항상 내 마음대로 결정지어버리는데---
사람들은 그게 별로 마음에 안 드나봐.
그래서 항상 거리감을 느껴---
규연이처럼 시원하게 말해주면 좋을 텐데.
그건 사람들이 네가 다 알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넌 천재니까.
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언제나 걱정없이 보이는 이 아이도--- 외로움을 느끼는구나.
참! 아침에 루시를 봤는데--- 뭔가 재미있는 일이 있어 보이더라고---
그럴 땐 너 조심해야 하지 않냐?
걘 널 괴롭히는 게 낙이잖냐?
너에게 애인 생겼단 소린 루시에게 들었어.
뭐라고?
규연이랑 약속했단 말야.
안경 벗지 않기로.
난 약속을 꼭 지키는 사람이야.
안경을 벗기려는 루시와 벗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는 은아.
개입하는 규연.
너같은 놈은 그녀의 좋은 점을 몰라도 돼.
그리고 다시 이런 일 벌렸다가는--- 죽을 줄 알아.
미안. 저 녀석 내 동생인데, 성격이 좀 그래.
어? 규연이 동생이었어?
어쩐지 좀 닮은 데가 있다 했지.
닮다니, 무슨---
어? 못 느끼고 있었어?
그게 닮았잖아, 그게---
그--- 뭐랄까, 나 좀 봐줘, 하는 것 같은 분위기.
나 외로워, 나 좀 봐줘,
나에게 관심을 가져줘--- 그런 거---
규연인 뭐든지 잘 하고, 정점에 서는 것으로 그걸 해소하는 것 같지만---
저 앤 그게 안 되니까 폭력을 써서 주목을 받는 거야.
그게 가장 쉬우니까.
하지만 그래선 사람들이 좋아해주지 않아.
오히려 무서워하지.
그래서 더 외로워지는 거구.
그러니까 규연이가 동생에게 잘 해줘.
이런--- 맹해 보이지만 이런 거 하나는 무섭도록 예리하다니까.
정말로--- 맘에 들어!
천사님을 놔줘!
안 그러면 가만 안 둘 테다!
호오~ 할 수 있으면 어디 해봐라.
요정아, 어서 도망가!
천사님, 죄송해요.
제가 너무 작고 약해서 천사님을 구해드릴 수가 없어요.
어떡해---
어?!
그때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어요.
집요정이 커져버린 거예요!
축하합니다!
집요정, 레벨 업을 이루어냈군요.
집요정은 천사님과 하늘로 날아갔습니다.
부적절한 관계라--- 그렇긴 하지.
첩의 자식과 본처의 자식이라는 관계니까---
서로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관계.
웃기는군.
왠지 재미없어졌어.
왜 항상 규연이 그 자식만---
아--- 정말 한심해라.
요즘 정말 내가 왜 그러는지---
이렇게 사소한 일에 발끈하다니---
그래도 좀 불안하단 말이야.
다른 놈들이 너의 가치를 알아채고 두근거릴까봐---
그건 나만 알고 있어야 해.
너무해! 왜 또 싸우는 거야?
왜 싸우냐고?
너 때문이야, 이 계집애야.
은아에게 손대지 말랬지.
잘들 노는구나.
끼리끼리 감싸가며.
그래봤자 너희들은 안 될 텐데.
다음 달에 파티를 열어 약혼녀를 소개시켜주겠다.
왜? 좋아하는 아이라도 있느냐?
잊어버려라.
너도 알다시피 재벌가의 결혼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다.
이건 비즈니스다.
그래서 어쩔건데?
영감 말대로 따를 거야? 아니면---
할아버님 뜻을 거역할 수는 없어.
재수 없는 자식!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하긴 그 자식은 옛날부터 저랬었지.
그 어떤 것보다 후계자가 되는 것이 우선이었어.
항상 흐트러짐 없는 오만한 얼굴로---
그게 정말 재수 없다고.
왜 자기 감정에 솔직하지 못 해?
뭐, 이렇게 되면 정말로 내가 차지해버릴 테다.
그때 가서 후회나 하지 마, 신규연.
하지만 그런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어---
이젠 잊어버려야---
이젠 잊어버려야 하는데.
그래. 친구로 있는 것이 가장 좋겠지.
너랑 약속했잖아.
안경 안 벗기로.
이젠 그 약속 안 지켜도 괜찮아.
왜?
내가 네게 안경 벗지 말라고 한 의미, 모르겠어?
잘--- 모르겠는데.
모르면 됐어.
아무튼 이젠 그럴 필요 없어졌어.
내가 네게 안경 벗지 말라고 한 의미를 모른다면,
그냥 끝난 거야.
규연아, 너 화났니? 내가 뭘 잘못했어?
아니.
그냥 좀 답답할 뿐이야.
내가 아무리 혼자 좋아하면 뭘 하냐구---
내가 아무리 할아버지 명까지 어겨가면서 은아와 있고 싶다고 해도---
정작--- 그 애는 눈치조차 채지 못 하잖아.
규연이 그런 얼굴 첨 봤어.
내가 잘 몰라서 규연이가 화가 난 걸까?
그치만 안경 벗지 말라고 한 의미가 뭐지?
뭐지? 알아내야 할 텐데---
안 그러면 규연이가--- 무서워.
규연이가 화를 내는 건 무서워.
자기 선 보는 자리에 옛 애인이 온 게 그렇게 불편해?
애인 같은 거 아냐.
그건 서로 좋아했을 때의 이야기지.
나하고 은아 사이는 그냥 아무것도 아니었어.
나보고 어쩌란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했어야 했냐구!
내 앞에는 보장된 미래가 있어!
근데 그럴 날 좋아해주지도 않는 상대 때문에 버리라는 거야?
피앙세라고?
무슨 뜻이었지, 그거?
뭔가 좋은 뜻이었던 것 같은데---
왠지--- 그 말이 가슴을 콕콕 찌르는 듯 해.
규연이를 피앙세라고 부르며 팔을 잡는 여자애를 보며 가슴이 아픈 은아.
이런 멋진 곳으로 수학여행을 오다니---
정말 기---뻐야 하는데--- 몰라--- 왠지 그다지 기분 좋지 않아.
규연이는 아까 팀 나눌 때도 한 마디도 안 하고---
그 애, 영은이라는 애 때문인가?
피앙세라던---
피앙세--- 이젠 나도 알아. 사전 찾아봤어.
약혼자라는 뜻이잖아.
장래 결혼을 약속한 사람.
그렇다면 그 애는 규연이에게 무척 소중한 사람일 거야.
그러니까 그때도 그 애 말을 들어주는 게 당연한 거야.
그치만--- 또 그러네.
왜 심장이 따끔거리지?
규연아--- 네 뒷모습만 보는 거 싫어.
나도 영은이처럼 네 얼굴을 앞에서 보고 싶어.
전에는 안 그런 것 같았는데--- 상냥하게 대해줬는데--- 왜?
미치겠네.
그 뒤로 은아랑 말도 한 마디 못 하고---
점점 더 어색해지기만 하잖아.
하아--- 난 정말 바보 같아.
포기하고 친구 사이로 있기로 했건만---
어째서 아직도 갈팡질팡이냐고---
감정을 다 정리했으면 은아에게도 좀 더 자연스럽게 대할 수 있을 텐데---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무서워.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아.
규연이 사고로 다치자 당황하는 은아.
이럴 줄 알았으면--- 은아에게 한 마디라도 할걸---
좀 더 친절하게 대해주고--- 왠지 미련이 많아.
(비몽사몽) 은아야!
근데--- 너--- 상처투성이다.
맞아. 내가 상처준 거지--
죽을 땐 죽더라도 한?은 풀고 죽어야지.
사랑해.
규연이, 본인에게는 일생일대의 고백이었다 하더라도--- 상황은 좀 아니었다.
아! 혹시 그 자식이 너도 밀어떨어뜨렸냐?
아니--- 그런 게 아니고--- 그냥 내가 내려간 거야.
왜?
그냥--- 걱정되니까---
뭐, 뭐냐? 그 말뜻은---
그--- 그래.
친구--- 친구가 걱정돼서겠지---
걱정했어?
응.
이를 어째--- 뭐라고 해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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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아야. 여긴 웬일이야?
응. 검사 받으러 왔어.
요즘 심장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심장이?
그거 큰일이잖아. 선생님께서 뭐라셔?
별 이상은 없대.
그런데--- 마구 웃으시는 거야, 큰소리로.
?
흐응~ 저 애가 우리 은아의--- 하트?
의사선생님을 그렇게 웃게 만든 상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