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주의보 / 김윤정
너도 이거 좋아했잖아.
아--- 지나가듯 한 번 말했던 건데--- 기억하고 있었구나.
심장이 간질간질 기쁘다.
응--- 한여름--- 사랑해.
뭐--- 뭣?
한여름 표 스페셜 라볶이를 사랑한다고.
한여름--- 사랑해--- 사랑해---
나는 이해할 수 없다.
한여름은 너에게 어떤 존재인 거냐?
그런데 너 별걸 다 기억한다? 난 가물가물한데---
너에 관한 일이니까---
훌쩍 자라버린 겉모습 속에 숨겨진 것은--- 어린 시절의 그 무흠이 그대로인 걸까?
내가 좋아한다고 말했던가?
난 친구에게는 키스하지 않아.
여름아, 네가 그런 식으로 피하고 싶어 하는 건, 이해는 하지만---
한여름, 니 마음이--- 처음에는--- 열심히 사는 소녀 가장이구나.
저 애의 친구가 돼서 곁에서 많이 도와줘야겠다--- 그랬어.
돌이켜보니 그게 널 향한 관심의 시작이었던 것 같아.
항상 밝은 네가 좋아.
네 곁에 있으면 누구의 아들, 대륭회란 거대한 뒷배경을 가진 누구라는 등의 수식어가 붙지 않는
그냥 나일 수 있어서 좋아.
매일매일 감정이 쌓이고 쌓여서
너에게 키스했을 때--- 아아--- 이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했어.
네 마음이 누구에게 향하고 있는지 알 것도 같지만---
절대 빼앗기지 않을 거다!
나를 선택해주지 않을래?
한여름, 나랑 사귀자.
와, 엄청 놀랐다.
비한이가 날 좋아하다니---
연무흠말이야! 다쳤다는 소리에 수업도 팽개치고 달려갈 만큼 그 녀석이 소중해?
내가 다쳐도 그렇게 달려와 줄 거야?
당연하지.
그런데도 왜 난 계속 서운한 걸까?
이번에도 또 없던 일처럼 굴면 더 삐칠 거야.
마구마구 삐뚤어질 테다.
풋! 귀엽다--- 비한이--- 좋아, 우리 사귀자!
너희 둘, 사귀냐?
뭐야. 내 주제에 비한이 수준이 너무 높다는 거야?
네 주제가 뭐가 어때서? 바보, 멍청이.
겨우 그따위 마음으로 사귀고 있는 거야? 너 정말 최악이구나, 한여름.
하하하--- 여유 부리다 선수를 빼앗겼군.
나야말로 정말 최악이야.
진짜 바보 멍청이는 너란 말이다, 연무흠---
너--- 아버지가 유학가라고 하신다며?
안 가.
아, 다행이다. 난 또 네가 유학 가는 줄 알고---
다행인 건가?
그럼. 미우나 고우나 어렸을 때부터 매일 얼굴 보다시피 하는 사이잖아.
그러니까 엄청 서운할 거야. 허전할 거야.
정말이지, 너란 녀석은---
여름이가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말 한 마디에 울고 웃는 꼴이라니---
으아, 심란해--- 무흠이 놈은 쓸데없이 왜 날 끌어안아가지고 이런 고민을 하게 만드는 거야.
상냥한 비한이--- 그래.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자.
이렇게나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는데 무슨 걱정이람.
그래, 비한이에게 최선을 다하는 거야, 한여름!
비한아--- 신경쓰지 마.
여름아!
어떻게 신경 안 쓸 수 있겠니.
다른 사람도 아닌 네 일인데---
지금처럼 감추려고만 들지 말고 조금만---
조금만 내게 기대주면 좋을 텐데---
나는 네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너만의 기둥이고 싶다, 여름아.
여름이 괴롭히는 것 그만둬.
그래? 괴롭히는 걸로 보여?
그럼 뭔데? 좋아하는 표현이라도 된다는 거냐? 네가 초딩이야?
그렇다면 어쩔 건데? 이대로 물러날까 생각해봤지만, 왠지 억울해서 말이야.
그리고 둘 사이에 생각보다 빈틈이 많던데.
네가 끼어들 빈틈 같은 건 없어!
그래? 그렇게 자신만만하다니 앞으로 재밌겠는데?
이제부터 나도 죽을힘을 다해 달려볼 생각이거든.
내 마음이 여름이에게 닿을 수 있도록---
비한이 너는? 넌 꿈이 뭐야?
글쎄. 미래에 대한 꿈 따윈 꿔본 적이 없어.
이렇게 살다 죽어도 별로 후회는 없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은 울리고 싶지 않아.
사랑하는 사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소중한 사람을 지켜주고 싶어.
그것이 내가 가진 한 가지 소원이라면 소원이야.
과연 그 소원이 이루어질까?
감기는--- 괜찮냐?
또 이놈의 심장이 지조 없게---
사실은--- 병문안 와줘서 고맙다고,
내 대신 알바 뛰어줘서 고맙다고 말하려 했는데---
주인 말도 안 듣는 제멋대로 심장 때문에---
여름이가 그렇게 좋냐?
뭐, 뭐야? 언제? 언제부터야?
아주--- 오래됐어.
녀석은 까맣게 잊었지만---
답지 않게 엄청 정성 가득한 목소리라니---
괜히 눈물이 나오려고 그러네.
안심이 돼서인가---
난 괜찮아. 걱정했어?
--- 그걸 말이라고---
진심은 아니었는데--- 나도--- 무흠이도---
왜 서로--- 솔직하지 못했던 걸까---
그때 조금만 더 솔직했더라면 이렇게 힘들어하며
멀리 돌아올 일도 없었을 텐데---
무흠아--- 미안--- 걱정 시킨 것, 미안.
그리고 사과 안 받아준 것도 미안.
나는 너랑 얼굴 안 볼 마음 같은 건 없어.
우리 오래오래 함께 하자.
나--- 사실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널 좋아해.
여름아, 너 아직도 내가 유학 가면 서운할 것 같아?
응, 엄청!
그렇다면 네가 선택해.
너는 내가 유학 가면 좋겠어. 이 학교에 계속 남아 있었으면 좋겠어?
왜--- 왜 그걸 나한테 물어? 내 말대로 할 것도 아니면서---
네 결정대로 할 거야.
말도 안 돼--- 농담하지 마.
농담 아니야, 진지해.
네가 유학을 선택하면 우리 채무관계는 백지화될 거야.
지금까지 갚은 돈도 전부 돌려주지.
학교를 선택한다면--- 신비한하고 헤어져. 나랑 사귀자!
뜬끔없이 대형 폭탄 하나 투척하고 중국으로 뜬 지 벌써 2주째---
인생에 태클 거는 녀석이 사라지는 게
이렇게 쓸쓸한 일인 줄은 몰랐는데---
이런 건 반칙이란 말이야, 연무흠!
못되게 굴었다가, 잘해줬다가, 한참 사람 헷갈리게 하더니
좋아한다 해놓고 이러는 게 어디 있어.
너 이러면 안 되잖아!
너는 안 가? 연무흠 미국 가기 전에 맘이라도 고백해봐야 할 거 아냐.
그게--- 이미 무흠이한테 고백 받았는데 거절했거든. 염치없게 어떻게---
그래도 가서 만나봐. 염치 좀 없으면 어때? 마음이 진짜잖아.
엄마가 무흠이가 주고 갔다며 통장 하나를 내놓으시는 거야.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얘기하더라면서 둘이 싸웠냐 물어보시는데---
매달 내가 갚은 돈 그대로 한 푼도 안 빼먹고 꼬박꼬박 내 이름으로 넣어둔 통장을 보고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 없더라.
통장 사이에서 떨어진 낡은 종이에
'목표- 강남 60평 아파트'라고 삐뚤빼뚤 어린 글씨로 써 있는 걸 보고,
왈칵 쏟아지는 눈물이 앞을 가려서 도저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
옛날 소꿉놀이할 때였나?
강남에 60평 아파트를 사오면 시집간다고 한 적이 있었거든.
그걸 계속 기억하고 있는 줄 정말 몰랐어.
뭐야, 그렇다는 건 연무흠이 한여름을 코흘리개 시절부터 쭈욱 좋아했다는 거잖아!
몰라--- 난 그저--- 무흠이가 보고 싶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비한아.
나도 널 사랑했다면 좋았을걸.
그런데 이 마음이란 녀석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더라.
무흠이가 좋아. 그 녀석이 없으면 안 될 것 같아.
무흠아. 미국--- 가지 마.
응. 안 가. 안 갈 거야.
이제는 널 두고 가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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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청 재미있어!
그래?
엄마, 나는 못 보는 거야?
응--- 늑대는 주의하라잖아.
수긍한다는 것인지, 별 말이 없다.
딸만 보여주고 싶은데, 아들까지 끼어서 야단이다.
그래서 딸이랑만 몰래 보았는데 들켜버리는 바람에, 말도 안 되는 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