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랑

쌍화점에서 홍림을 만나다

2009. 1. 14. 22:13

내가 알고 있는 '쌍화점'에 대한 지식,

1. 남녀상열지사를 노래한 고려가요이다.

2. 쌍화점의 '쌍화'는 지금으로 말하면 '만두'와 비슷하므로, 쌍화점은 '만두가게'를 이른다.

   고등학교 때 시험문제로도 나왔었지.

 

 

쌍화점을 보러갔다.

동성애나 정사장면에 대한 시끄러운 소리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2% 때문에 실망했다는 푸념이나,

역사적 진실을 들먹거리는 소리들은 슬쩍 무시하고,

내가 가진 흥미로움을 따라갔다.

 

좋았다.

뻔한 주제이지만 충분히 표현되었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어긋나는 사랑이 몰아가는 파멸'이었고,

남은 것은 왕의 처연한 슬픔뿐이었다.

 

홍림이 왕후를 '연모'한다는 말에 절망적인 질투를 하게 되는 남자, 홍림의 왕.

애초에 왕에게 일렀듯이, '한 순간의 욕정'이었다고 말할 것이지,

왕후 앞에서만큼은 진실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사실 홍림이 왕후를 연모한다는 말도 진실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홍림 자신도 새롭게 알게 된 욕정과 연모 사이에서 방황하지 않았을까.

 

제주에서 진상한 옥돔의 도톰한 살을 발라 얹어주는 왕의 마음.

대식국의 아름다운 말을 선물하고 싶어서 어둡도록 기다리던 마음.

나라인들 못주겠느냐, 며 그윽히 바라보는 마음.

목숨보다 더한 것을 빼앗겼다는 절망감에 돌아서는 마음.

홍림을 거세하고는 드디어 마주볼 수 있겠다며 안심하는 마음.

 

그 마음들을 다 헤아리면서도, 어쩔 수 없이 방황하는 홍림의 마음.

금기를 벗어나서 하염없이 빠져버리는 마음 때문에 두려워하는 마음.

 

너를 닮은 다정한 아이일진대, 어찌 사랑스럽지 않을까.

너를 보듯이 어여쁘게 여길 터인데--- 그 마음을 몰랐더냐.

 

미욱한 놈,

 

너는 진정 지금까지 한번도 나를 '정인'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더냐?

예. 없었습니다. 단 한번도.

 

미욱한 마음은 진정한 마음을 매몰차게 거절하고

절망스런 마음은 죽음을 불렀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 깨닫는 애달픈 마음.

 

고개를 돌려 눈물로 바라본들, 끝이 아니더냐!

정작 바라던 말은 한 마디도 해주지 못하고--- 그대로 떠나보낸다.

그저 가슴이 아플 뿐이다.

 

그리고--- 구름에 달 가듯이---

환한 미소를 마주하며 말 달리는 두 사람 ----

아련한 사랑!

 

공민왕의 ‘천산대렵도’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이 나라를 넘어서 여기저기로 날아들면 좋겠다.

우리의 역사 한 도막에 드리워진 운율과 색감, 풍경이 알려지면 좋겠다.

힘들었던 시절에 애잔하게 불리었을 '쌍화점' 한 곡조가 유유히 전해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