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이랑

very! very! 다이스키 / 신지상.지오

2008. 11. 13. 22:32

도련님, 혹시--- '물의 기억'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물의 기억?

네. 동종요법 쪽에서 주장하는 이론 중 하나입니다만,

예를 들면 순수한 물 한 컵에 콜라 한 컵을 섞어 그 중 반에 또 한 컵의 물을 섞고,

그 반에 또 한 컵의 물을 섞는 과정을 무한정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한 컵의 물 속에 콜라 분자 단 1개도 남아있지 않는 단계까지 옵니다.

그럼 그것은 콜라 섞인 물일까요? 그냥물일까요?

그냥 물!

아뇨. 그건 콜라의 기억을 가진 물이라고 합니다.

물분자는 모든 물질들 사이에서 정보를 주고받는 통로 역할을 합니다.

그건 물의 기억능력 때문이죠.

콜라와 섞여있던 물 분자는 아무리 희석시켜도 그 기억을 잃지 않는답니다.

그건---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400년 전이건, 천 년 전이건, 이 집안의 근본이 되는 조선인의 기억.

그건 영원히 지워지지 않도록 각인되어 있을 것입니다.

바로 당신의 유전자 속에.

 

이토(단삼식)가 츠요시(단무지)를 설득하여 한국으로 데리고 오면서 시작되는 순정이야기.

너무너무 사랑해!

 

 

 

나--- 외로운 건가?

무슨 소리야?

어릴 때 집에 할머니가 계셨어.

항상 바쁜 아버지랑 그때도 자주 아팠던 엄마를 대신해서 날 돌봐주셨는데, 사탕을 참 좋아하셨거든.

할일 없는 한낮에 둘이 앉아 오물오물--- 사탕을 먹고 있을 때가 많았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아! 마음이 허전한 사람들이 사탕을 먹는 거구나.

돈 많은 어른들, 바쁜 어른들, 정신없이 앞으로만 나가는 어른들, 그런--- 사람들은 사탕 안 먹잖아.

애들이나, 노인네들, 어른들의 세상에서 밀려난, 외로운 사람들만 먹는 거잖아.

사탕을 한 알 까서 입에 넣을 때,

짧은 순간 말할 수 없는 행복--- 그 느낌 때문에 사탕을 먹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

저기 근데--- 오빠, 지금 외로워?

 

뭔지 모를 불안감으로 외로워하는 산내와 그런 산내를 바라보며 더 많이 외로운 배리.

 

 

 

나쁜 자식!

아무렇지도 않게--- 남 아픈 데를 건드리고 있어.

그런 거---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언니 남친을 좋아하는 걸.

생각하지 말아야지--- 지금도 안 되고--- 앞으로도 안 되고--- 어쨌든 절대 안 되는 거니까.

설령 산내 오빠랑 언니가 헤어진대도, 그렇대도, 나는 안 되는 거니까.

 

언니 남친인 산내 오빠를 좋아하는 배리.

 

뭐랄까--- 생각해보면--- 저 녀석 입장에서 지금--- 이곳은, 얼마나 낯선 풍경일까?

모르는 사람, 모르는 길들, 건물들.

낯선 언어와 낯선 간판들---

어쩌면 지금--- 저 녀석이 헤매는 이유는, 길을 몰라서가 아니라---

사실은 외롭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무지의 처지가 안쓰러워서 곧장 이해해버리는 배리--- 역시나 착해!

 

별 거 아니네, 뭐!

키스란 건 말야, 종소리가 들리고 폭죽이 펑펑 터지는 느낌이라더니. 순 거짓말!

그냥--- 조금 심장이 덜컹--- 하는 느낌?

그나저나 이미혁, 저 자식을 어떻게 죽여준다.

 

나쁜 시키! 나도 좋아하는 사람 있단 말야.

나도 진짜진짜 그 사람 좋아하지만, 너처럼은 안 해.

좋아하니까 그 사람 입장 더 배려하고, 기분 더 신경쓰게 되고.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건 그런 거란 말야.

 

그렇잖아. 세상은 넓고 할일은 또 얼마나 많은데 고작 남자애한테나 목매고---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인생도 아닌데 피곤하게 살기 싫어.

난 재밌는 일만 하고 살 거야.

내가 지금 재밌는 건--- 단지 츠요시뿐이거든.

 

 

 

츠요시는 말야,

수면에 비친 물 그림자 같은 애야.

상대가 들여다 보는 만큼 보여줘.

진심을 다하면 그 진심만큼.

욕심을 부리면 그 욕심만큼,

모욕이든 거짓이든 애정이든 상대방이 보여주는 만큼 보여줘.

니가 보기에 배리는 어때? 썩 괜찮지 않아?

진심이기만 하다면 자존심도 부끄러움도 다 집어던질 용기를 가진 애야.

귀찮을 만큼 별 것 아닌 일에도 최선을 다해.

그런--- 저 애와 함께라면 분명 츠요시도 그럴 테니까.

혹시라도 저 둘 사이가 진짜가 돼버리면---

그땐 정말--- 아무도 못 말릴 테니까.

 

별로 낭만적인 얘기는 못 되지만, 연애는 전쟁 같은 거야.

열심히 더 분발하는 수밖엔 없어.

먼저 더 많이 좋아하는 쪽이 약자일 수밖에 없으니까.

온갖 아이디어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덤벼야 해.

그래야 이기니까!

 

에리카와 혈명관계를 맺은 미혁.

 

꼭 언니 때문만은 아냐.

그냥 사람 마음이란 게 참 가치 없어 보여서---

사랑하던 그 순간엔 언제까지나 영원할 것 같던 그 마음들이--- 어쩜 그리도 쉽게 변하는지.

나는 적응이 안 돼. 따라가질 못하겠어. 어지러워.

 

세상엔 변하고 싶어도 변하지 못하는 마음들도 있어.

그 사람 생각하기 싫은데 계속 생각하고, 계속 좋아하고, 그만두고 싶은데 그만두지 못하고.

변하는 마음이 있으면 변치 않는 마음도 있으니까 공평하네 뭐.

나도 변할까?

 

배리야. 너--- 오빠랑 사귈래?

나 좋아하는 거 알고 있어--- 너라면 오래오래 변치 않고 내 옆에 있어 줄 거지?

 

첨 봤을 때 오빠의 어디가 맘에 들었지?

잘 생겨서? 키가 커서? 웃는 모습이 좋아서?

이유야 수없이 갖다 붙일 수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해.

누군가를 좋아하는 이유가 단지 그런 것뿐이라면

사랑은-- 강동원이나 김태희같이 잘난 사람들만 하는 거게?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는 데는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테지.

다른 사람들 눈엔 보이지 않는,

나만 알아볼 수 있는 그 사람의 특별한 무엇 하나---

나는 산내 오빠의 어떤 특별한 무엇을 본 걸까?

모든 것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다.

 

나 오빠가 생각하는 것만큼 어린애 아냐.

내가 오빠가 생각하는 것처럼,그게 무슨 뜻인지도 모를 만큼 어린애였다면,

오빠 좋아했던 그 마음, 그 힘든 마음, 그렇게 감추지도 않았을 거야.

난--- 정말 노력했는데, 오빠 만난 날부터 1년 넘게 진짜 노력했는데

오빤 그런 내 마음을 너무 비참하게 짓밟았어.

오빠가--- 너무 나빴어.

 

흔한 얘기들이 있어.

친구의 남자친구를 좋아한 바보 같은 여자 얘기.

혹은 두 친구가 동시에 한 남자를 사랑한 바보 같은 얘기.

그리고 또 혹은 자매가 한 남자를 좋아하게 된 얘기.

왜--- 그런 바보 같은 얘기가 소설에서, 드라마에서, 또 일상에서 계속 반복되는 것일까?

비슷한 옷을 사고, 비슷한 음식을 좋아하는 것처럼, 비슷한 음악을 듣는 취향처럼,

사람도--- 남자도---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되는 거야.

뭐가 됐든, 이유야 어쨌든, 그건--- 참 바보 같은 얘기.

한심한 얘기.

너--- 참 한심하다. 강배리---

 

근데 그게 노력한다고 될까---

내 것이면서도 절대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게

내 마음이잖아.

 

어우~ 단무지 마음이라~

 

그래.

그냥 귀여운 거지, 배리는---

규리 네가 너무 멀리 갔어.

 

그래. 나--- 강배리 좋아. 맘에 들어.

근데--- 그러면 다야?

그렇게 억지 쓴다고 나한테 관심도 없는 애 맘 돌릴 수 있어?

나 누굴 좋아해본 적이 없어서--- 생각해보니 그래. 그런 적이 없었어.

그래서 어떡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이런 마음, 이런 기분.

난생--- 처음이라서.

 

단무지가 솔직하게 자각했다.

배리 좋아한다고.

 

오늘 일, 모두--- 모두 배리 너 때문이다.

할아버지와 싸운 것도, 에리카 화내는 것도.

너 때문이다, 배리.

--- 정말? 정말 아무런 관심--- 없는가?

내가 누구와 교제하든,

내 맘이 어떻든?

 

난 진짜 모르겠다.

대체 니가 나한테 바라는 게 뭐니?

 

그러니까--- 여자친구---

 

 

 

처음 공항에서 봤을 때,

처음 이 집 앞에서 싸웠을 때, 너 같은 애 처음 봤다.

진짜 목소리가 어떤지, 진짜 성격이 어떤지,

종잡을 수 없을 만큼 귀엽게만 보이려 애쓰는 일본 여자애들만 보다가,

처음 보는 너 같은 행동, 너 같은 표정, 너 같은 목소리.

처음엔 그저 놀랍다가, 재밌다가, 언제부턴가 네가 좋아져버렸다.

하고 싶은 얘기는 그거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배리, 너 다이스키라구!

배리 다이스키 알아? 다이스키?

무슨 말인지 알지? 내 말--- 내가 너 다이스키 한다구.

 

저게 어따 대구 욕질이야?

야! 이 새끼라니!

 

한국말 하면 너 분명 더 잘 알아듣겠지만, 좋아한다는 말은---

자기 말로 하는 거랬다. 머리로 배운 말이 아니라.

네가 일본말 알아들을 수 없어도, 그래도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 눈, 내 마음이,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까.

그건 서로 말이 달라도 알아볼 수 있는 것.

너도 분명 알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왜 이러지? 갑자기 기운이 빠져서---

다리가 후들거려 걸을 수가 없어.

왜 이러지? 미혁이한테 이런 말 들었을 땐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심장은 또 왜 이렇게 뛰는 거야?

뭐라고 해야 돼? 어떤 얼굴로 널 봐야 돼? 너 나한테 왜 이러는데?

 

배리야--- 이런 걸 뭐라고 해야 할까?

난--- 그냥 널 보면 기분이 참 좋다.

괜히 웃음이 나고.

봄날 소풍 나간 아이처럼 좋아.

이런 기분--- 느낌--- 뭐라고 이름 붙여야 할까?

 

뭐긴~ 사랑이지! 근데 산내 오빠는 또 왜 그러는 거냐.

 

축축해--- 손에 땀난다. 그만 놓자고 하면--- 화낼까?

나는--- 말야, 이미혁.

정말 좋아하는 사람 손을 잡는다면--- 말야.

아마--- 심장이 가슴에 있는 게 아니라 손에 있는 것처럼 뛸 것 같아.

꽉 잡힌 손 안에서 심장이 뛰다가, 뛰다가--- 터져버릴 것처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럴 것 같아---

 

미혁과 사귀면서도 닿지 않는 마음 때문에 자꾸만 망설이게 되는 배리.

그리고,

단삼식(이토)에게로 가는 마음 때문에 어쩔 줄 모르는 규리.

 

산내야, 알고 싶어,

어떤 게 가짠지.

어떤 게 순간이고, 어떤 게 계속인 건지.

어떤 게 내가 정말 원하는 거고, 또 니가 원하는 건지.

 

그거 아세요?

사람은, 무서워서 또는 운동해서 심장이 뛰는 거랑

누군가를 좋아해서 심장이 뛰는 거랑 구별을 못 한대요.

지금 막 심장이 두근거리지 않아요?

나랑 키스 한 번 해볼래요?

그--- 심장, 나 때문에 뛰는 거라고--- 착각하면--- 안 돼요?

 

알고 싶어요. 내 마음---

내가 정말 당신을 원하는 건가요?

내가 당신에게 끌렸던 게 진짜라면---

당신이 내게 키스하는 순간, 난 아마 심장이 터져 죽고 말 거야.

 

농담이--- 지나쳐, 규리 양.

 

농--- 담.

그런가요?

 

그리고 밝혀지는 단무지의 비밀스런 과거.

 

도련님--- 데리고 일본으로 돌아가십시오.

아무것도 모르게--- 아니, 처음부터 아니었던 것처럼.

한국여자 윤현경의 아들이 아니라, 나 윤현성의 조카, 윤지민이 아니라---

오로지 영감님의 손자, 타쿠앙 츠요시로 살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