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이랑

호러컬렉터

2008. 9. 17. 22:22

저주라는 이름으로 가두어진

그대를 향한 --- 무심하며--- 지독한---

사랑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이름이 뭐야?

이블리스

 

악마는 유혹하는 자.

인간은--- 유혹 당하는 자.

 

절대적인 빛은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인간은--- 우리의 사냥감이 될 자격이 주어진 거다.

나는 --- 덫을 놓고

너는 그 덫에 한 걸음씩---

걸어와 주면 돼.

엘리자베스.

너는 나의 소유다.

너의 마음 역시--- 내 소유다,

 

엘리자베스--- 주인님을 이 지상으로 올라오게 한 여자다.

직접 이블리스를 움직이게 했어.

확실히 그녀가 소유한 빛의 크기는

우리가 탐낼만큼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 불안감---

이블리스와 엘리자베스

그 둘이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덫이 만들어진 느낌.

 

그래, 엘리자베스.

너는 인형 안에 숨어 있으면 안 돼.

그건 절대 내가 원하는 게 아냐.

너는 너의 본 모습으로 이블리스를 자극시켜야돼.

그리고

이블리스의 피를 탐하는 피의 여왕이 되는 거다.

 

 

 

지옥의 서.

샛별이 떨어지니

하늘 옥좌에  앉은 자가 격노하시어

둘을 갈라 하나를 가두었다.

가장 사랑하는 자를

그 하나로 인해 잃었다 하시며

하늘 옥좌에 앉은 자가 슬퍼하시더라---

빛을 꺾인 샛별은

구렁의 바닥으로 떨어지고 저증의 왕이 되었도다.

하나가 하나를 타락시키니

하나가 맹수의 왕이 되었도다.

 

눈치챘듯 지옥의 서에 적힌 하나가 바로 나다.

그리고 다른 하나--- 맹수의 왕이 된 하나는 너의 주인 '이블리스'다.

샛별이었던 그를 내가 하늘에서 떨어뜨렸어.

대천사였던 이블리스를 내가 타락시켰다.

그때부터 그는 내 꺼였어.

나는 이블리스를 갖을 거야.

 

처음부터 이름 없는 자.

그런 그를 언제부턴가 죄(sin)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 이름 그대로---

그는--- 절대악의 근원.

 

선악과를 따먹은 최초의 인간은 '이브'였다.

하지만 '이브'보다 먼저 과실을 맛본 자가 있었다.

조물주께서 '아담'을 완전한 인간으로 세상에 내보이기 전

인간이길 원했으나 인간이 아닌 자가 만들어졌다.

천사도 악마도 인간도 아닌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자.

그 이유로

인간이길 원했으나 인간이 아닌 자는

하늘에서--- 버려졌다.

버려진 그 자의 손에는 선악을 구분할 수 있는 열매가 쥐어있었고

자신을 만들었으나 자신을 버린 자에게 대적할

열매의 어두운 면을 베어먹었다.

그는 스스로를 죄(sin)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불리워지길 원했다.

인간이길 원했으나 인간이 아닌 자는 첫번째 희생양을 찾았다.

조물주께서 가장 사랑하는 자---

성스런 대천사의 자리에 우뚝 선 자.

그를 타락시켜 하늘에서 떨어뜨리리라!

 

하늘의 노함을 산 그는 형벌을 받게 됩니다.

사랑하는 자에게서 잊혀지는 형벌.

사랑합니다.

또한

앞으로도 영원히---사랑받을 수 없다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하늘 옥좌에 앉은 자가

자신이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피조물이 타락하자

타락한 피조물의 몸에서 빛을 떼어내 가두어버렸어.

대천사의 빛을 타락의 어둠에서 보호하고자.

그런데 지금에 와서 그 가두었던 빛을

다시 너에게 보낸거야.

엘리자베스--- 여인의 모습으로 이블리스에게 보내진 거야.

 

대천사의 빛.

바로 너의 빛이었지.

그 이유로 네가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끌렸던 거야.

아직도 모르겠어?

그 옛날 네가 나에게 했던 고백과

그녀에게 한 고백은 엄연히 다르단걸.

그녀에 대한 집착은 잘려버린 자신의 것을 되찾으려는 본능일뿐.

사랑이 아니라구.

다를뿐만 아니라 그녀는 어둠의 제왕인 너에겐 위험해.

너를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그녀에게 저주를 행했던 거야.

 

내가 너를 각별히 생각했었나.

 

물론 특별하게 생각했지.

그 특별함 땜에 결국 넌 하늘에서 떨어지는 벌을 받았으니까.

대천사가 해선 안 될 가장 큰 죄를 저질렀거든.

 

사랑합니다.

이렇게 속삭였어.

 

이블리스가 나에게

 

사랑합니다.

이렇게 속삭였다구---

사랑한다는 고백을 자신의 주인이 아닌 다른 자에게 해버린 거야.

 

그렇게 너는 나를 택했어---

 

 

 

원해.

이블리스의 절망을 원해.

내가 자신에게 어떠한 존재였는지 자각한 그가

고통과 후회로 살길 원해.

너에게 쏟았던 사랑이 바로, 그 옛날---

나를 사랑한 방식 그대로였단 걸 알길 원해.

엘리자베스 네가 아닌---

나를 --- 향한---

 

선택의 기억을 지워라.

내가 선택한 자가 누구인지

내가 그 사실을 기억할 수 없게 만들어라.

 

자신이 사랑을 쏟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 알아버린다면

포기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테니.

더욱 절실해지고 집착할 것이 뻔할 테지.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는 기억조차 너는 할 수 없어.

이블리스---

그것이 네가 받아들여야할 형벌이니까.

찢겨져버린 날개의 무게는 그리 가벼운 게 아니거든---

너를 향한 씬의 고백을---

너는 기억할 수 없을 거다.

 

사랑해, 이블리스--- 영원히---

 

 

 

전해주겠나.

혹 내가 그에게 전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칠 때.

대신 네가 이블리스에게 전해주겠나.

언젠가--- 이 말만은 꼭 전해주고 싶었어.

내가--- 더 많이 사랑했다고---

 

이제--- 됐어.

씬.

이블리스가

씬, 너의 고백을 들었으니

이제--- 된 거야.

그러니

그러니, 편히 쉬어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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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무슨 호러물일 거란 생각에 쉽게 손을 내밀지 못했다.

근데 완결이 나와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빌렸는데,

왠걸~ 호러물은 아닌데--- 호러물보다 더 고심하게 만들어버렸다.

이소영 작가, 쉽지 않은 작가야!

 

'저주받은 물건'을 취급하는 '이블리스'와

'살인도구' 컬렉터인 '씬'

그리고 '영혼' 수집가인 '청',

이들은 충분히 '호러컬렉터'이다.

 

그리고 이들과 지독하게 얽혀 있는 엘리자베스,

그들에게 내려진 근원적이고도 서글픈 사랑 이야기가

작가의 종교철학적 사유 세계 속에서 따라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