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이랑

파한집 6

2008. 7. 23. 18:00

 

제 19편 哀 슬픔

 

배신당한 마음이지만 죽어서도 그를 잊지 못하고--- 그가 준 정표를 찾기 위해 떠도는 어린 여인을 보면서 완을 겹쳐 떠올리고는 상심하는 백언.

 

공자님께서 너무 오래 오지 않으시기에--- 내가 공자님께로 가자 했는데

어쩐지 걷는 것이 하늘을 나는 듯--- 물 위를 스쳐 미끄러지는 듯 빨리---

그런데--- 어째서? 공자님, 어째서--- 왜 저를 데리러 오지 않으셨지요?

저는 여기에 있는데--- 왜 다른 사람이---

사랑한다 말씀하셨으면서--- 왜 저를 버리셨나요?

 

완인듯 안아버린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너를 버린 것이 아니다.

너를 버린 적이 없다.

나는 네가 없이 살 수 없어도--- 너는 내가 없어도 될 줄 알았다.

내 마음은 찢어져 조각이 나도--- 너는 나를 잊을 수 있을 줄 알았다.

내가--- 너를 몰랐다.

 

제 20편 伯言 백언

 

백언과 완의 사랑--- 그리고 이별--- 애상

 

완아--- 너, 나한테 언제 시집 올 것이냐? 기다리기 초조해 죽을 지경이다.

이상한 일이다.

나는 왜 내가 이렇게 널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보기만 했을 때부터 좋았고,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며 점점 알게 되면서 더욱 좋아졌다.

그러니 빨리 나한테 와라.

이 참을성 없는 내가 7년을 기다렸으면 할 만큼 했다.

--- 완아.

나는 월하노인의 인연 같은 것은 믿지 않았는데

너를 처음 봤을 때 없는 줄도 몰랐던 나의 반쪽이 갑자기 허전해지는 듯했다.

그런 것을 정해진 인연이라 한다면

너와 나는 지금뿐 아니라 전생에도 그랬었고,

후생까지도 함께 하도록 정해진 연이었으면 한다.

 

네 아버지는 돌아가는 순간까지 너와 나의 장래를 걱정하셨다.

아직도 온 집안에 부적을 숨겨두고 살고 있는데

이런 집에 완을 들여도 괜찮은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저 임강에 제법 이름이 난 무당이 있다는데 한번 가볼까 싶구나.

--- 유야. 만일 완에게 좋지 않다 하면 어쩌겠느냐?

 

이게 뭡니까? 이것은 사람의 사주가 아니지 않습니까.

이것은--- 아아악---

 

이렇게 설익은 무당을 봤나. 그것이 왜 사람의 사주가 아닌가?

사람이지, 사람이고 말고. 다만 이전에 사람이 아니었을 뿐이지.

어린 도련님, 저를 기억하십니까?

네 아비가 나에게 했던 짓을 너는 알고 있는지?

주건양은 25년 전 내 눈앞에서 내 남편을 죽였다.

그 마음을 네가 알까?

나에게 이런 원한을 품게 하고서--- 자식을 남기고 죽다니.

너는 주건양이 내게 남긴 선물과도 같구나.

 

내 딸은 네가 보기에 어떻더냐?

내가 죽여 네게 보낸 내 딸은 사랑스럽더냐?

아마도 그 아이를 보는 순간 너는 알았을 것이다.

이것은 나의 일부이다--- 하고 느껴지지 않던?

그날 얻은 네 피에 주문을 심어, 그것을 내 딸에게 먹여 죽였다.

인간으로 환생한 내 딸에게는 네 피의 흔적이 있으니

너는 그 아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육친을 사랑하듯 이유없이 사랑할 것이다.

 

죽어서, 다시 태어나거라.

그러면 내 딸은 네 피의 냄새를 맡고, 다시 네 곁에 태어날 것이다.

그리고 또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고--- 너 자신을 죽이고---

내 원혼이 의식마저 잃고, 그저 먼지나 무가 되어 사라질 때까지

너는 끝없이 그것을 반복할 것이다.

내가 그것을 위해 내 혼을 태웠으니--- 너도 가슴을 찢으며 억겁을 살아라.

 

여우의 자식이다.

 

그간 너에게 들떠 세상 전부가 너인 줄만 알았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것이 아니구나.

그러게 나를 기다리게 하지 말라 말하지 않았느냐. 나는 참을성이 없다고.

 

제 어미의 한을 풀기 위해 내 옆에 태어난.

 

이런, 꼭 무정한 말을 하게 만드는구나.

잘 들어라. 나는 더 이상 네가 사랑스럽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사랑한다.

 

내 인생을 너와 함께 할 생각이 사라졌다.

 

이미 자리잡은 마음은 천 번을 생각해도 꺽이질 않는다.

 

내가 너에게 쏟을 수 있는 마음이 여기까지였지 싶다.

 

어렸던 너와 너에 대한 마음과 함께 살아온 것이 7년.

 

어떻게 갑자기 그럴 수 있느냐 묻지 마라.

 

내 홍안의 시절은 모두 너와 함께 있었다.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겠다.

내 마음만을 아껴 너를 붙든 채 미적대다 너마저 망가지도록 하지는 않겠다.

가슴에 새겨져 접히지 않는 마음은

사라져 없어진 듯 숨길 것이니

그러니 너는 나를 잊어라.

 

더 할 말은 없다. 잘 가거라.

 

세월도 추억도 지금 보이는 눈물도

모두 미련없이 털어내고서

망설이지도 뒤돌아보지도 말고

잘 가거라.

 

내 딸을 어찌할 것이냐!

우리 완이--- 간밤에 목을 매었다!!

 

참으로 어리고도 어리석구나.

너에게 그 아이가 네 자신처럼 여겨질 때

그 아이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느냐?

--- 너는 말로써 내 딸의 목을 졸라 죽였구나.

아무것도 모르는 듯 더욱 아껴 사랑했어야지.

그 마음마저 짓이겨 죽게 하였으니--- 네 마음이 어떠하냐?

살아가거라--- 혹은 죽어버려라--- 그리고 다음 생에도 내 딸을 만나려무나.

 

슬프고 아팠겠구나.

숨을 잇기가 힘들었던 것이구나--- 지금 내가 그렇듯.

원망하겠구나--- 내 가혹한 말들을 그대로 믿으며.

앞으로는 어찌할까.

다시 생을 받아 내가 태어나면--- 나를 따라 태어날 너를 어찌할까.

너는 또 그토록 사랑스러울 텐데.

나는 또 너를 똑같이 뿌리쳐 보내려 할 텐데.

 

네 아버지는 선하고 곧은 분이셨다.

 

무참한 결과를 낳은 선의는 무책임입니다.

 

세상의 한을 가진 것들을 달래고 싶어하셨다.

 

그렇게 하지 못하였으니 욕심입니다.

한을 없애고, 그로 인해 또다른 한을 만들고,

것이 끝없이 되풀이되는 그런 길을 택하였으면서,

자식을 세상에 남긴 것은, 정녕 그 업을 물려주고 싶었던 것입니까?

그래서는 안 되었습니다.

스스로 정한 선악의 잣대로 세상을 살아가려 했다면---

적어도 그렇게 일찍 죽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러니 저는 다르게 살겠습니다.

같은 길을 다르게 걸어가 보이지요.

저로 인해 생기는 원망은 모두 제 손에 그러쥐고,

손에 더러움을 묻히는 것을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오로지 혼자서 세상에 살다--- 혼자서 가겠습니다.

 

제 21편 天涯 하늘의 끝

 

손공께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어--- 가봐야 하는 것 아닌가?

괜찮습니다. 무인의 죽음은 곧 신념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습니다.

아마도 웃으며 가셨을 것입니다.

욕심 앞에 신념을 구겨넣은 저와는 다른 분이시니---

 

이제, 정말 하늘 아래 혼자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두가 죽어서 사라지고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는 것이 저일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모른다는 것은 거짓이다.

그러나 모두가 안다는 것 또한 거짓이겠지.

어쩌란 말인가?

안다고 생각하면 알지 못하고,

모른다고 생각하면 저리도 잘 알고 있으니

내가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그 사람도 그랬겠구나.

내 아버지도--- 나와 같았겠구나.

내 아버지도 나처럼 알지 못하고

세상 앞에 그저 사람 하나로 무력했을 뿐이겠지.

단지 사람의 힘으로 미리 알 수 있었던 일도,

어쩔 수 있었던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예전만큼 내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는다.

 

하지만 호연.

여전히 나는 혼자서 살아갈 것이다.

나에게 가진 원망은 나만을 향하도록

생을 거듭해 되물어 찾아오더라도

오로지 나 하나만을 찾도록

세상에 흔적을 남기지 않겠다.

 

이 소통할 수 없어 무력한 세상에

애정도, 미움도, 기쁨도, 슬픔도 모두---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혼자서 살아가다--- 혼자서 떠날 것이다.

 

허망하군요.

그렇지. 하지만 어울리지 않나?

그렇습니까.

 

그 허망한 생에

제가 있어드리겠습니다.

홀로 살아내는 당신의 길을

혼자인 제가

지켜드리겠습니다.

 

그럼--- 또 어디론가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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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새겨지는 말들이 많아서.

인생을 바라보는 다른 길이 열리는 듯해서.

한스러운 정서가 왠지 내 마음을 자극해서.

세상에 흔적을 남기지 않겠다는 허망함이나,

홀로 살아가겠다는 의지도,

그다지 외롭게 들리지 않아서.

이래저래 절제된 감정들이

따뜻한 시선 위에 얹어 있어서.

뭐--- 좋았다.

홀로이지는 않을 것이다.

백언과 호연이 함께 가는 길이

절대 홀로일 수는 없다.

무수한 잡귀들도 들러붙어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