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이랑

파한집 5

2008. 7. 23. 17:36

 

제 15편 罪 죄

 

오랫동안 갇혀 있었던 데다 강제로 짐승의 혼까지 씌워졌다.

남아있는 기가 하나도 없어.

곧 죽을 것이다.

 

배신하면 곤란하다, 이겁니까?

이 자는 짐승의 꼴로 죽어간 것으로 그 죄를 갚았다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인은,

사람을 짐승으로 만들어 죽게 한 죄를 무엇으로 갚으시겠습니까?

죄는 지어도 벌은 받고 싶지 않다.

단지 그런 이유로,

사람을 이다지도 무참히 다룰 수 있는 것입니까?

 

무참하다고요?

그렇다면 지난 십 년, 제가 참아온 세월은 무참하다 생각지 않으십니까?

제게 죄가 있다고요?

그러면 언제고 저 자의 손에 죽어 넘어질 때까지

그 수모를 견뎌야 했다는 말씀이십니까?

 

벌을 받으라니요?

제가 어째서 벌을 받아야 합니까?

제가 한 일이 죄가 된다면, 저를 죄짓게 만든 것 또한 저 자의 죄가 아닙니까?

제가 악귀처럼 보이십니까?

세상에 둘도 없는 모질고 악독한 여자라 생각하십니까?

보십시오, 도사님.

당신이 지금 벌레를 바라보듯 내려다보는 저는, 십년 전의 저는---

얼굴도 보지 못한 남편을 가슴 설레며 기대하던

붉은 비단을 머리에 쓰고 볼을 붉히며 어찌할 바를 모르던

그저 평범하고 평범한 열 일곱의 소녀였답니다.

 

제 16편 異 다른 것

 

자네--- 몸에서 비린내가 나는구만. 요물이 붙었어.

무슨 말씀이신지--- 천녀입니다--- 내가 천의를 숨겨--- 그래서---

하늘로 돌아가지 못하고--- 저와--- 돌아가지 못해서---

이리 미련한 자를 보았나 --- 보나마나 자네의 정기를 노렸거나,

자식이 있다면 그 자식을 노리고 있겠지.

믿기지 않는다면 이것을 가져가게.

흰 늑대의 눈썹이네.

이것을 눈에 대고 보아도 그것이 천녀로 보인다면 그거야 틀림없을 테지.

하지만 아마도 자네가 바라는 대로 보이지는 않을 것이네.

 

---네가--- 나를 속였구나.

살려주었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을 참이냐? 믿었는데--- 믿어서---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그저--- 당신의 순박함에--- 인정에---

비늘이 돋은 징그러운 몸으로 감히 뭐라고--- 이리 무서울 데가--- 가까이 오지 마!

 

천녀가 아니라, 저를 죽이시는 것입니까?

천녀라 하였을 때는 사랑해주시더니, 뱀이라 하니 버리십니까?

어제의 제가 오늘의 저와 다르지 않은데---

어제는 천녀라 여기시어 제 말을 믿으시고,

오늘은 뱀이라 여기시니 저를 믿지 못하시게 된 것입니까?

저는 다만--- 제가 사랑하듯--- 사랑해주시기를 바랐을 뿐인데---

 

호연--- 내가 실수한 것인가.

나는 또--- 어리석은 짓을 하였는가.

나는 어째서 이렇게---

호연--- 나는 잘못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제 17편 水鏡 수경

 

의심도 혼란도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생각지 않으려 했을 뿐.

오만을 말씀하실 때 일부러 귀를 막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제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수경 님--- 저는 잘못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까.

저는 실수에 실수를 보태며 세상을 헛디디고 있는 것입니까.

 

오래된 이야기를 하나 해 드릴까요?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이 섞일 수 없이 다른 것임을 모르고, 수경이 저질렀던, 죄에 대한 이야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람의 머리카락을 섞어 천을 짜고

혈관을 발라내어 수를 섞는 솜씨가 참으로 훌륭하더구나.

산 사람을 죽여 그런 장난질을 치면서

네 마음이 좋더냐?

사람을 죽여 피를 마신 일이야--- 그렇게 태어난 것을 어쩌겠는가.

내가 사람인 이상 너를 죽여--- 사람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 또한 어쩌겠는가.

하지만 고맙구나.

나의 이런 자책을 네가 덜어주었으니.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비의와 같이 사람과 섞여 살아가던 자가 아닙니다.

어떻게 생명을 얻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저 정신을 차려보니 존재하고 있었고,

살아있기 때문에 살아왔습니다.

저 또한 지금에서야 알았습니다.

단순히, 기뻤기 때문에---  칭찬도, 다정함도 좋았기 때문에---

아낀다는 것도, 아끼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도,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 사람을 잃고, 건양 님을 잃고, 아마도 미래에 당신을 잃고---

그렇게 조금씩 더 깊이 알게 되겠지요.

 

주랑께서 죽게 한 그 뱀도

언제고 그 사람에게 스스로 알지 못하는 사이

해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모르기 때문에--- 이토록, 태생부터가 다른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러니 주랑께서 잘하셨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잘못하셨다 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까?

그거야 주랑께서 내키시는 대로--- 멈추시던지, 그래도 앞으로 향하시던지.

다만 당신이 아닌 다른 것들에게 자만하지 마시길.

다른 것을 모르는 다른 것들을

당신 자신과 함께 측은하게 여기시길.

세상에는 반드시 옳은 것도, 반드시 그른 것도 없는 법이니

당신은 그저 후회도 실수도 모두 마음에 담아

그것을 통해--- 생각하는 바대로 살아가 주시길---

 

제 18편 遠行  먼 여행

 

백언의 아버지, 주건양이 죽음을 맞이하던 시절의 이야기

 

내 목을 노리는 것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알고는 있었지만 한꺼번에 덤벼드니 제법 무섭군요.

나는 이토록 많은 원한을 등에 지고 있었군요.

이런 사람이어서 부인에게 미안합니다.

밖에 있는 것들 중 몇몇은 내가 죽은 후에도 당신과 유를 노릴 지 모릅니다.

 

기왕이면 내가 전부 그러안고 갔으면 좋겠건만

내가 이렇게 빨리 가게 될 줄은 나도 몰랐습니다.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을 원망하지 마십시오.

나는 다른 것들에게 그보다 더욱 가혹한 적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원망이란--- 그것을 안고 있는 자가 가장 힘겨운 법이니 말입니다.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주어진 수명을 웃으며 수긍하고 싶으나

그간 밖으로만 나도느라 당신과 유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 이제서야 후회가 되는군요.

곁에 있을 때는 내내 미루기만 하다가 다급해지니 후회라니.

나는 참 어리석습니다.

그것도 무척 미안합니다.

부인이 없는 곳에서 항상 부인이 그리웠습니다.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 생각하니

지금 이렇게 가까이 있어도 당신이 너무도 간절히 그립군요.

다시 태어나도 다시 나를 만나--- 다시 나와 혼인해 주겠습니까?

그렇게 하지요.